해리

<기독교 동물 상징사전>(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 도마뱀과 유사한 해리의 습성에 대한 기록은 아엘리아누스( 6. 34 ), 플리니우스( N.H. 8. 109 ), 호라폴로( 2. 65 ), 키케로( Scaur. 9 ), 유베르날( sat. 12. 36 ) 등이 남기고 있다.
위험에 처한 해리가 자신의 몸뚱이 일부를 떼어주고 달아난다는 사실은 모든 문헌에서 공통된 내용일 뿐더러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리스 어로 ‘해리’를 일컫는 ‘카스토르kastor’의 명칭으로부터 수컷 해리의 성기에 비상한 약효가 있다는 속설이 유래하였다.
그리스 신화에서 레다의 쌍둥이 형제 가운데 동명의 ‘카스토르’가 여인들의 구원자인 것과 같이, 또 다른 카스토르 곧 해리도 여자들에게 이로운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1 로마서 13: 7
공동번역에서는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라고 옮겨졌다.
그러나 라틴 성서의 “Reddite omnibus debita”는 “누구에게든 그들에게 주어야 할 것을 돌려주어라”라고 옮길 수 있다.

2 갈라디아 5: 19-21
육정이 빚어내는 일은 명백합니다.
곧 음행, 추행,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그 밖에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3 시편 124: 7-8
새 잡는 그물에서 참새를 구하듯이
우리의 목숨을 건져 내셨다.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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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나

<기독교 동물 상징사전>(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 하이에나나 오소리가 암수의 성을 번갈아 바꾸는 양성동물이라는 기록은 고전 문헌에서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오비디우스( Metam. 15. 409), 아엘리아누스의 기록이 대표적인 문건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만 근거를 완전히 밝히지 못하였다(플리니우스 N.H. 8. 105의 기록과 비교할 것).
테르툴리아누스는 하이에나의 양성론을 그대로 인용한다.
성적 역할을 바꾸는 인간에 대해서 양성동물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동성애의 문제는 올바른 신앙에서 벗어난 그릇된 이교적 행위로 해석되어 왔다.

1 신명기 14: 8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하지 아니하므로 부정한 것이다.
이런 것들의 고기는 먹지 못할 뿐아니라 그 주검을 건드려도 안 된다.

성서에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돼지를 가리켜 먹어서는 안 되는 부정한 짐승으로 꼽고 있다.
피지올로구스는 ‘하이에나hyaina’와 ‘돼지hys’를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2 예레미아 12: 7-8
나는 나의 백성을 버렸다.
내 것으로 삼았던 이 백성을 물리쳤다.
내가 진정 귀여워하던 백성을
원수들의 손에 넘겨주었다.
내 것으로 삼았더니
이 백성은 숲에 있는 사자처럼 나에게 달려들었다.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었다.

피지올로구스는 본문에서 ‘숲 속의 사자 leo in silva’를 ‘하이에나 hyaena’로 바꾸었다.

3 로마서 1: 27
로마서에는 남자들 사이의 정욕에 대하여 기술되어 있으나, 그리스 어로 씌어진 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추정되는 성서의 에티오피아 어 번역에는 남자들이 아니라 여자들 사이의 정욕을 경계하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어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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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
 

<기독교 동물 상징사전>(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 피지올로구스의 여러 판본에 hydros, enhydros, ydris, hyllos 등으로 표기된 수달은 제26장의 ‘몽구스’와 같은 동물을 다룬 것으로 추정된다.
몸에 진흙을 발라서 무장하고 악어와 대적하는 수달의 습성은 고대 문헌에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아리스토텔레스·스트라본·아엘리아누스·플루타르코스·오피아누스가 수달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1 이사야 49: 9
감옥에 갇혀 있는 자들에게 일러라
‘어서 나오너라.’
캄캄한 곳에 웅크리고 있는 자들에게 일러라.
‘나와 몸을 드러내어라.’
그들은 가는 길마다에서 풀을 뜯으리니
돌아가는 길가 어디든지 뜯을 풀이 있고
사는 곳마다에서 푸른 풀로 덮인 언덕을 만나리라.

2 I 고린토 15: 54-55
이 썩을 몸이 불멸의 옷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불사의 옷을 입게 될 때에는,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갔느냐?
죽음아, 네 독침은 어디 있느냐?”
라는 성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II 디모테오 1: 10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이제는 분명히 드러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의 권세를 없애 버리시고 복음을 통해서 불멸의 생명을 환하게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호세아 13: 14
공동번역에는 호세아 13: 14의 번역이 누락되었다.
루터 성서의 “Aber ich will sie aus dem Totenreich erl쉝en und vom Tode erretten. Tod, ich will dir ein Pest sein; Rache kenne ich nicht mehr”는
“나는 그들을 죽음의 왕국에서 구하리라.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건져 내리라. 죽음아, 나는 너의 역병이 될 것이요, 어떤 복수도 용납치 않으리라”라고 옮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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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구스

<기독교 동물 상징사전>(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 피지올로구스가 기록한 ‘몽구스ichneumon’는 오늘날 동물도감에 등장하는 몽구스와 다르다.
본서 제25장에서 수달이 악어를 죽이듯이 몽구스는 같은 방식으로 상대를 무찌른다.
몽구스의 일화에서 피지올로구스의 의도는 명백하게 드러난다.
악어는 몽구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섣불리 대적하지 못한다.
몽구스는 진흙을 발라서 변장한 다음, 꼬리를 앞세우고 뒷걸음질로 악어에게 접근한다.
악어는 그것이 몽구스인 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싸움에 걸려든다.
몽구스와 악어의 대결을 종교적인 의미로 옮겨서 유추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스 어 ‘드라콘drakon’은 ‘뱀’이라는 뜻이지만 ‘용’이나 ‘악룡’ 또는 ‘비룡’으로 옮겨졌다.
이 책에서는 주로 ‘악룡’으로 번역하였다.

1 에제키엘 29: 3-4
에집트 왕 파라오야,
나 이제 너를 치리라.
나일강 가운데 엎드려 있는 큰 악어야, 네가,
나일강은 내 것이다, 내가 만들었다 - 한다마는
나는 너의 턱을 고리로 꿰고
네 비늘에 나일강 물고기들이 들러붙게 하리라.

에제키엘 서의 ‘큰 악어’는 라틴 성서의 ‘큰 용draco magne’을 옮긴 것이다.
루터 성서에도 ‘용Drache’으로 옮겨졌다.

2 필립비 2: 6-8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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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기독교 동물 상징사전>(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 까마귀가 일부일처의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고대 문헌에서 자주 언급되었다.
그러나 중세 이후 까마귀가 불길한 새로 간주되면서 산비둘기가 까마귀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
피지올로구스의 기록은 호라폴로와 가장 가깝다( I 8).

1 예레미아 3: 2
라틴 성서의 “ In viis sedebas expectans eos quasi latro in solitudine”에서 ‘ latro’는 ‘우짖는 짐승’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곳저곳 길가에 앉아서 그들을 기다리는 품이 (까마귀나 승냥이 같은) 고독한 짐승이나 다름없구나”로 옮길 수 있다.
루터 성서에는 ‘ latro in solitudine’를 ‘광야의 아랍인’으로 번역되었고,
공동번역에는 ‘사막에 숨어 있는 아랍인들처럼’으로 옮겨졌다.

2 II 고린토 11: 2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염려하시는 것처럼 나도 염려하는 나머지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순결한 처녀인 여러분을 오직 한 남편 그리스도에게 바치려고 정혼을 시켰기 때문입니다.

3 예레미아 3: 9
돌과 나무를 섬기며 음란을 피워 땅을 더럽혔다.

라틴 성서의 “ Et moechata est cum lapide et cum ligno”에서 ‘ moechata’는 ‘혼인의 언약을 깨다’, ‘정절을 훼손하다’라는 뜻이므로 “그러나 그들은 돌이나 나무와 더불어 정절을 훼손하였다”라고 옮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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