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이야기
김윤철 지음 / 지와사랑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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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로 이주한 야곱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요셉의 형제들이 이집트에 왔다는 소식은 바로의 궁전에까지 전해졌다.
바로 왕은 신하들과 더불어 요셉의 해후를 기뻐하며 요셉에게 말했다. (45:17-20)
“네 형들에게 명하기를 너희는 이렇게 하여 너희 양식을 싣고 가서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너희 아비와 너희 가속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 땅 아름다운 것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이제 명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비를 데려 오라
또 너희의 기구(세간)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 하라”

요셉은 바로의 명령대로 형들에게 마차를 내어 주고 여행길에 먹을 양식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각자에게 나들이옷을 한 벌씩 주었는데 특히 베냐민에게는 나들이 옷 다섯 벌과 은 삼백 세겔을 주었다.
그리고 아버지께는 이집트에서 생산되는 귀한 물품들을 수나귀 열 마리에 가득 실어 보냈다.
또한 야곱이 이집트로 올 때 먹을 밀과 빵 같은 음식을 암나귀 열 마리에 가득 실어 보냈다.
요셉은 형들과 베냐민을 떠나보내면서 가는 도중에 서로가 서로를 탓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렇게 그들은 요셉에게서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고 아버지에게로 돌아왔다.
그들은 아버지에게 고했다. (45:26)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처음에는 그들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요셉이 아버지께 전하라는 말을 그대로 전하며 아버지를 모시고 오라고 보낸 마차들을 보여주자 정신이 들었다.
야곱은 아들들을 향해 말했다. (45:28)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야곱은 곧 재산을 챙겨 모든 식구를 거느리고 이집트로 향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요셉이 살아 있다는 꿈만 같은 사실에 그는 하나님이 평생 자신을 보살펴 주신다는 것을 알고 감격했다.
야곱은 브엘세바에 이르자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에게 제물을 바치고 기도를 드렸다.
그날 밤 하나님이 환상 가운에 나타나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46:2-4)

“야곱아, 야곱아.”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야곱은 하나님의 분부를 받자 비로소 안심하고 모든 자손과 모든 가축과 재물을 싣고 갔다.
야곱의 아들들은 바로가 아버지를 모셔 오라고 보낸 마차에 아버지와 어린 것들과 아내들을 태우고 길을 재촉했다.

이집트로 간 야곱의 자손들은 다음과 같다.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과 르우벤의 아들들은 하녹(Hanoch), 발루(Phallu), 헤스론(Hezron), 그리고 갈미(Garmi)이다.
야곱의 둘째 아들 시므온의 아들들은 여무옐(Jemuel), 야민(Jamin), 오핫(Ohad), 야긴(Jachin), 스할(Zohar)과 가나안 여인에게서 난 사울(Saul)이다.
셋째 아들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손(Gershon)과 크핫(Kohath), 므라리(Merari)이다.
넷째 아들 유다의 아들들은 엘(Er), 오난(Onan), 셀라(Shelah), 베레스(Pharez), 그리고 세라(Zarah)였는데 엘과 오난은 가나안 땅에서 죽었다.
베레스의 아들들은 헤스론(Hezron)과 하몰(Hamul)이다.
잇사갈의 아들들은 돌라(Tola), 부아(Phuvah), 욥(Job), 그리고 시므론(Shimron)이다.
스불론의 아들들은 세렛(Sered)과 엘론(Elon), 야홀르엘(Jahleel)이다.
이상은 레아가 밧단아람에서 야곱에게 낳아 준 여섯 아들과 그 자식들이다.
그 밖에 딸 디나를 포함해서 33명이나 된다.

갓의 아들들은 시뵨(Ziphion), 학기(Haggi), 수니(Shuni), 에스본(Ezbon), 에리(Eri), 아로디(Arodi), 그리고 아렐리(Areli)이다.
아셀의 아들들은 임나(Jimnah), 이스와(Ishuah), 이스위(Isui), 그리고 브리아(Beriah)인데 그들에게는 누이 세라(Serah)가 있었다.
브리아에게는 아들들 헤벨(Heber)과 말기엘(Malchiel)이 있었다.
이상은 라반의 딸 레아에게 딸려 준 종 실바가 야곱에게서 난 자손들이다.
이렇게 야곱이 실바에게서 얻은 자손들은 16명이다.

야곱의 아내 라헬에게서 난 아들들은 요셉과 베냐민이었으며 요셉은 이집트 땅에서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얻었다.
이들은 온의 제사장 보다베라의 딸 아세낫이 그에게 낳아 준 아들들이다.
베냐민의 아들은 벨라(Becher), 베겔(Becher), 아스벨(Ashbel), 게라(Gera), 나아만(Naaman), 에히(Ehi), 로스(Rosh), 뭅빔(Muppim), 후빔(Huppim), 그리고 아롯(Ard)이다.
이상은 야곱이 라헬에게서 얻은 자손들로 모두 14명이다.

단의 아들은 후심(Hushim)이며 납달리(Naphtali)의 아들들은 야스엘(Jahzeel), 구니(Guni), 에셀(Jezer), 그리고 실렘(Shilem)이다. 이상은 라반이 딸 라헬에게 준 종 빌하에게서 난 자손들이다.
이렇게 야곱이 빌하에게서 낳은 자손들은 14명이다.

이렇게 야곱에게 딸린 직계자손들로 이집트에 들어간 사람들은 며느리들을 빼고 전부 66명이었다.
여기에 이집트에서 요셉에게 생긴 두 아들을 합치면 이집트로 간 야곱의 가문 식구는 무려 70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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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당정치 실록 2권
연시중 지음 / 지와사랑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국민이해와 전혀 무관

<한국정당정치 실록>(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부산 정치파동(발췌개헌), 4사5입 개헌파동, 12월 24일에 일어난 일이라고 해서 2·4 국가보안법 파동을 3대 정치파동이라고 한다.
모두가 이승만 대통령의 집권연장을 위해서 유발된 사건들이다.
국민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했고, 국민의 이해와 하등의 관계가 없이 오직 한 사람을 위해 헌정사가 굴절되고 비극이 연출되었다.
특정인의 한 정파를 위해 제도가 창안되었고 또 바뀐 것이 40년 우리나라 헌정사의 특징인 것이다.

2·4파동의 여파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원외에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민혁당, 노농당 등 재야세력이 연합하여 민권옹호총연맹을 결성한 후 장기투쟁의 태세를 갖추었고, 원내에서도 91명의 의원들이 민주구국투쟁위원회를 구성하여 민권옹호총연맹과 유기적 연결을 맺으면서 대여투쟁의 강경책을 세웠다.
이에 호응하여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 대도시에서 민중데모가 계속해서 일어났으며,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 충돌이 빈번하여 사회적 불안이 가증되어 갔다.

국회는 간신히 소집되었으나 여야 간 다른 의제를 주장하여 공전을 거듭할 뿐 정국타개의 방안을 모색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2·4파동에 대한 공개사과, 책임자 인책, 보안법 중 독소 조항 삭제, 지자법 환원을 요구했고, 자유당은 의사방해와 폭력행사를 배제한다는 명목으로 엉뚱하게 국회법 개정을 내세웠다.
여야는 총무회담을 통해 의제 절충을 협상했으나, 서로 당략에 집착되어 타결안이 나올 수 없었다.
이같이 정국이 교착되자 이의 타개를 위해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4파동 문제를 초월하여 대국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개헌론이 대두된 것이다.

1959년 1월 19일 조병옥 민주당 대표가 중앙의료원에 입원 중이던 이기붕과 회담을 갖고 보수 세력의 단합을 강조하며 1년 후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유혈참극을 피하기 위해서는 내각책임제 개헌을 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러나 이기붕과 조병옥 두 사람의 합의로만은 불가능했고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기붕과 조병옥은 공동으로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시킬 것을 합의하고, 이기붕은 이승만 대통령과 조병옥의 면담을 주선해 줄 것을 약속했다.

이기붕과 조병옥의 회담이 진전됨에 따라 자유당의 이재학, 박만원, 조순과 민주당의 유진산, 김의택, 윤제술 의원들이 막후 교섭을 진행시켜 정국의 일대 전환과 정치세력의 대유동이 전망되었다.
자유당과 민주당 구파가 힘을 모을 경우 충분히 개헌을 추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가 성숙해지자 민주당 신파가 반발하고 나섰다.
그들은 구파에 대해 자유당과의 막후교섭의 저의와 경위를 추궁하고 있었던 점에서 개헌 추진은 해당 행위이며, 대여투쟁의 약화를 자초하는 행위라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구파는 내각책임제는 민주당의 기본 정책인데 자유당이 진심으로 제의해 온다면 거부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응수했다.
이 문제로 양파 참모진 사이의 시비에서 한 층 위로 올라가 조병옥 장면 사이에 의견이 상충되었다.
장면은 “이기붕과 조병옥의 회담은 당론의 테두리 안에서 논의되어야 하며, 당론과 방침은 최고위원회와 간부회에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라는 데 반해, 조병옥은 “당대표의 자유재량권으로 회담을 가진 것이며, 또 이미 최고위원회에서 양해가 되었다”고 맞섰다.

이같이 2·4파동의 여파는 예상외의 방향으로 파급되어 민주당의 파쟁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자유당은 2·4파동에 대한 국민의 지탄을 피할 수 있었던 이득을 본 셈이었다.
이렇듯 민주당의 신파와 구파는 파별 이해에만 급급하여 대여 작전에서 행동통일을 하지 못했고, 자유당은 계속 이 점을 교묘히 이용했다.
자유당은 그렇지 않아도 여태까지 추진해 오던 내각책임제 개헌이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로 벽에 부딪치자 소위 정·부통령 동일 티켓제 개헌을 구상하고 구파 의원들을 포섭하기 시작했다.
사실 야당 의원들은 오랜 파쟁에 지쳐서 당에 대한 애착심이 식어가고 있어 자유당이 유혹의 손길이 뻗치기에 좋은 실정이었다.

오비이락인지는 몰라도 구철회, 조정훈, 송영주, 김주묵, 홍순희, 허윤수, 유승준, 김삭, 김규만, 박창화 의원이 탈당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당 내분에 염증을 느껴 더 이상 민주당에 머물고 싶지 않다고 탈당 이유를 밝혔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호헌 선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들 외에도 탈당은 유보하고 있으나 자유당과 밀약한 의원들의 수는 모를 일이었다.
구파는 당황했다.
이들은 속출하는 탈당을 막기 위해 만일 자유당이 대통령 선거에서 공명선거를 보장할 수 있는 선거법을 개정한다면 개헌에 응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신파는 개헌 동조자들의 징계론을 주장하여 두 파의 알력은 격화되었다.
민주당은 대여투쟁보다 집안싸움의 진화작업이 더 급했다.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모든 것을 좀더 연구하자”는 결론을 내리며 여당과의 협상을 지연시켰다.
때마침 항간에 탈당 의원들에 대한 금전거래 풍문이 퍼지자 자유당과 밀약했던 야당 의원들의 행동이 위축되었고, 여당은 기대하던 개헌선 확보가 어렵게 되어 개헌 열기는 식어갔다.
2·4파동 후 개헌을 둘러싼 대여자세 문제로 내분의 진통을 겪은 민주당은 그 여진이 끊기지 않은 채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 임하게 되어 창당 이래 최대의 파란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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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당정치 실록 1권
연시중 지음, 김윤철 엮음 / 지와사랑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장면 후보에게 사퇴권유

<한국정당정치 실록>(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구파 중견들은 2월 22일, 23일 양일간 서울의 중국음식점 대도려에서 회합을 갖고 장면 부통령 후보 사퇴권유와 선거포기 및 별도 교섭단체 구성에 관한 문제를 논의했다.
유진산, 고기룡, 강영훈, 정중섭, 이병하 의원은 민주당의 정통파는 구파임을 상기시킨 후 송진우, 김성수, 신익희, 조병옥 등 서거한 지도자들의 유지를 계승할 수 있는 서클을 조직하자는 데 합의하고 이 문제를 구파 의원총회에 제기했다.
그러나 윤보선, 조영규, 양일동, 조한백 등 온건파 의원들은 신파에 협조하여 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것이 급선무이며, 당내 문제는 선거 후에나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설득했다.

무려 5시간이나 논란을 거듭했으나 결론을 짓지 못하고 2월 27일 구파 원내외 각도 대표 40명의 확대회의에서는 강·온 양면의 의견들을 절충해서 우선 선거에 협조하고 선거 후 장면에게 신, 구파가 혼연일체가 될 수 있는 영토를 요구하며, 만일 신파의 극렬분자들이 태도를 시정치 않을 때는 결별하겠다고 결의했다.
이에 민주당은 당내의 어수선하던 여론을 수습하고 전열을 다시 가다듬어 부통령 선거에 힘을 기울였다.
대통령 선거는 확정되다시피 되었던 만큼 부통령 선거에 전력을 쏟아 앞으로 대통령직 계승권에 가냘픈 기대를 거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구파의 협조는 소극적이었고, 자금난으로 기동성을 잃었으며, 특히 두 번이나 대통령 후보를 잃었다는 심리적 위축감에 사로잡혀 사기를 만회할 수 없었다.

민주당의 이런 사정과는 대조적으로 자유당은 철두철미 완벽한 부정선거를 계획했다.
당무위원 13명으로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에 한희석을 임명하고, 최인규 내무장관, 홍진기 법무장관, 송인상 재무장관, 김진형 한국은행 총재, 반공청년단 단장 신도환 등이 실행체제를 가동시켰다.

최인규 내무장관은 비밀리에 지방 기관장(군수, 서장)회의를 소집해서 사표를 받아놓고 자기의 방침에 협조하지 않거나 관할지역의 선거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파면시킨다는 압력을 가하며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1. 유효표의 40%를 사전에 투표할 것
2. 3인조·9인조를 편성하여 조장의 감시 하에 자유당에 투표하게 할 것
3. 여당계 유권자들에게 자유당 완장을 착용하도록 해서 투표소 주위에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유권자들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줄 것
4. 민주당 참관인을 매수하거나 불가능할 때는 시비를 걸어서 함께 퇴장하도록 소동을 일으킬 것
5. 위의 지령을 실행하는 데 있어 방해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유혈을 불사할 것

내무부는 이상과 같은 지령을 내리고도 그 실천 여부에 대해서는 불안했다.
최인규는 고급 경찰 간부를 순시시켜 지령의 실천 여부를 감독 확인하게 했다. 치안국장 이강학은 다시 도 경찰국장회의를 소집하여 지령을 재차 강조하면서 앞으로 모든 문제는 자신의 육성(肉聲)에 의하지 않고는 여하한 압력이 가해지더라도 변경하지 않을 것을 지시했다.

부정선거는 날이 갈수록 강도를 더하여 테러행위까지 자행했다.
자유당은 반공청년단으로 하여금 야당인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부정사실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테러를 가하여 자유로운 취재를 하지 못하게 했다.
자유당이 지시하는 운동 외에는 누구 한 사람 자유로운 의사표시나 행동을 하지 못하고 정부 여당의 계획대로 강압선거가 진행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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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타고난 선호 감각 양식이 있다

『아동 미술치료 Child Art Therapy』, 주디스 아론 루빈(2010, 출판사 知와 사랑) 중에서


『아동 미술치료』의 저자 주디스 아론 루빈은 발달과 관련된 쟁점들 중에는 모든 발달 단계에 두루 영향을 미치는 안건이 몇 가지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아동의 미술적 심상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에 대한 문제가 그러하다.
어떤 학자는 아동의 상상력이 조작manipulating(1-2세) 단계 초기의 운동신경 발달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시각보다는 신체감각과 주관적 정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촉각형haptic type 인간도 있다는 주장도 타당하다.
미술적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은 대개 인간 내면이나, 몸의 주요 기관, 처리 과정 내에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테면 본능적 충동도 그러하다.
반응적이고 생산적인 표상representing(4-6세) 행위에 영향을 끼치는 신경생물학적인 원천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사람마다 타고난 선호 감각 양식이 있으며, 인류의 보편적인 원시적 심상을 뜻하는 ‘원형archetypes’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자극적이고 솔깃한 주장을 펼치는 학자들도 있다.
인지적 성숙을 비롯한 주요 발달 요인들이 미술적 표상에 영향을 끼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혹은 단계별 발달 과업이나, 방어기제를 통해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

내부 요인 외에도 여러 외부적 힘이 어린이의 미술적 심상에 영향을 미친다.
어머니, 아버지, 형제, 친구 등 가까운 주변인의 영향력 하에 있는 아이는 그들을 기쁘게 해주거나,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 심상을 만들어내려 할 수 있다.

또한 당연히 시각적 세상 그 자체가 아이들의 심상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내면의 압력이 어떤 식으로 외부 심상을 인지하고 선택하도록 만드느냐 하는 점이다.

아동 미술치료에 대한 연구에서 가장 매혹적인 부분은 외부 자극과 내부 욕구의 상호작용이다.
미술 활동을 하는 아이들은 각자 선호하는 심상을 발달시킨다.
아이의 개인적 감정이나 경험과 결합된 그런 심상에는 강력한 힘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선호하는 심상의 겉모습이 바뀔 때도 있기는 하지만, 거의 모든 연령대의 아이들이 선호하는 심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만은 동일하다.

2세 혹은 12세 아동이 그림을 그릴 때 공간을 얼마나 크게 활용하는지는 인지 발달이나 운동신경 발달 수준보다는 성격 요인을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
평가의 관점에서 볼 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인지, 정서, 운동신경 발달 수준 등의 관련된 모든 변인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후 대부분의 아동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발달적 특징과, 특정 아이에게서만 발견되는 특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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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란드 러셀의 <서양철학사> 중에서

종교가 발전하는 일정한 단계


원시종교는 어느 곳에서나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 종족적인(색채가 짙은) 것이었다.
공감적인 마술의 힘에 의한 어떤 종교 의식 특히 곡식이든 가축이든 인간이든간에 풍족한 생산을 위한 종교의식은 종족의 이득을 추구하려는 의도에서 그럴 듯하게 집행되었다.
동지는 태양의 힘이 더이상 감소되지 않도록 고무되어야 하는 시기이다.
봄과 가을도 각각 계절에 맞는 의식을 올릴 필요가 있다.
이런 때에는 집단적으로 커다란 흥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이 집단적 흥분상태에서는 개인은 그들의 개체 의식을 상실하며 자기의 종족들과 일체임을 느끼게 된다.

세계 어디서나 종교가 발전하는 일정한 단계에서는 의식에서 신에게 동물이나 사람을 죽여 바치고, 그 고기를 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단계에 도달한 시기도 지역에 따라 크게 달랐다.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일은, 그 제물을 먹지 않게 된 후에도 오래 계속 되었으며,
그리스에서는 역사가 시작될 무렵까지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잔인한 의식이 따르지 않는 풍작의 숭배의식도 그리스 전역에 공통적이었으며, 특히 엘레우시우스의 신비 종교는 그 상징 체계에서 볼 때 본질적으로 농업적이었다.
호머의 종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종교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 신들은 매우 인간적이다.
다만 인간과 다른 점은 그들이 죽지 않고 초인간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뿐이며, 도덕적으로는 신에게서 조금도 특이한 면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이런 신들이 어떻게 인간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후기에 쓴 것으로 보이는 어떤 문장에서는 볼테르와 같은 경건치 못한 태도로 신을 대하고 있다.

호머에게서 볼 수 있는 이런 독특한 종교 감정은 올림푸스의 신들과 관련이 있다기보다 숙명이나 필연성, 운명과 같은 음울한 것들과 관련이 되어 있다고 하겠다.
제우스까지도 이 숙명에 복종하는 것이다.
숙명은 그리이스 사상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이 숙명은 과학이 자연법칙에 대한 믿음을 도출한 근원들 중의 하나이다.

호머의 신들은 정복을 일삼는 귀족계급의 신들이며 농부들에게 유용한 풍요의 신은 아니었다.
길버트 뮤레이(Gilbert Murray)의 말대로 "어느 민족의 신이든 다 세계를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올림푸스의 신들은 그러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전에 한 것은 세계 정복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네 왕국을 정복하고 나서 무엇을 하였는가?
정치 참여인가?
농업 발전인가?
상, 공업 종사인가?
그들은 이런 일은 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그런 정직한 일을 하겠는가?
그들은 세금으로 사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벼락으로 친다.
그들은 정복한 추장이요, 왕권을 손에 넣은 해적이다.
그들은 싸우고 축하하고 노래를 부른다.
마시고 취하며, 자기네를 시중드는 절름발이 장식공을 보고 요란스레 웃는다.
그들은 자신의 왕 이외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연애와 전쟁 때 이외에는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다"
[그리이스 종교의 5단계](Five Stages of Greek Religion), 67쪽].

호머의 영웅들도 그의 신들과 마찬가지로 결코 훌륭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그가 중요시하는 가문은 펠롭스 가문이다.
그러나 이 가문이 행복한 모범적인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시아 왕조를 처음으로 세운 탄탈로스는 당초에 신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그는 신들을 속여 사람들에게 자기 아들 펠롭스의 고기를 먹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펠롭스는 기적적으로 소생하여 이번에는 이 펠롭스가 신들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의 유명한 피사의 왕 오이노마오스와 병차의 경주를 해서 이겼는데 그것은 피사의 왕의 병차를 모는 미르틸로스와 공모한 때문이었다.
그나마 그는 그 공모자에게 약속한 보수는 안 주고 오히려 그를 바다에 던져버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저주는 그의 아들에게 미치게 됐다.
그의 두 아들 아트레우스와 티에스테스는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소위 아테(ate)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것은 범죄를 하고 싶은 충동으로 전혀 항거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단히 강하게 작용한다.

티에스테스는 형수를 타락시켜 그 집 '행운'을 표시하는 금양털의 산양을 훔치려고 공작을 한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아트레우스가 동생을 유배시키고 나서 화해를 하자고 불러내어 그에게 자기 자식들의 고기를 먹인다.
그러자 이 저주는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이 물려받게 된다.
아가멤논은 신성한 사슴을 죽여, 아르테미스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그리하여 자기 딸 이피게네를 제물로 바쳐 그 여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트로이까지 안전하게 도망을 친다.
이번에는 자기를 배신한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이며, 티에스테스의 살아 남은 아들 아이기스토스의 손에 살해당한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자기 어머니와 아이기스토스를 죽여 부친의 원수를 갚게 된다"
[로스(H.J. Rose), [초기 그리이스 문화](Primitive Culture in Greece), 1925, 193쪽 참조].

호머는 그 전체가 이오니아의, 다시 말하면 그리스의 소아시아와 이웃섬들의 산물로 늦어도 B.C. 6세기까지는 그의 시가 오늘날 보는 바와 같은 형태로 고정되어 버렸다.
그리스의 과학과 철학 및 수학이 시작된 것은 바로 이 세기였다
이와 같은 시기에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근본적으로 중요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공자나 석가, 조로아스터가 생존했다면 아마 이 세기의 일일 것이다.
[그러나 조로아스터의 연대는 분명치 않다.
어떤 책에는 B.C. 1000년까지 소급해 올라간다.
[캠브리지 고대사](Cambridge Ancient History), 4권 207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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