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란드 러셀의 <서양철학사> 중에서
종교가 발전하는 일정한 단계
원시종교는 어느 곳에서나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 종족적인(색채가 짙은) 것이었다.
공감적인 마술의 힘에 의한 어떤 종교 의식 특히 곡식이든 가축이든 인간이든간에 풍족한 생산을 위한 종교의식은 종족의 이득을 추구하려는 의도에서 그럴 듯하게 집행되었다.
동지는 태양의 힘이 더이상 감소되지 않도록 고무되어야 하는 시기이다.
봄과 가을도 각각 계절에 맞는 의식을 올릴 필요가 있다.
이런 때에는 집단적으로 커다란 흥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이 집단적 흥분상태에서는 개인은 그들의 개체 의식을 상실하며 자기의 종족들과 일체임을 느끼게 된다.
세계 어디서나 종교가 발전하는 일정한 단계에서는 의식에서 신에게 동물이나 사람을 죽여 바치고, 그 고기를 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단계에 도달한 시기도 지역에 따라 크게 달랐다.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일은, 그 제물을 먹지 않게 된 후에도 오래 계속 되었으며,
그리스에서는 역사가 시작될 무렵까지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잔인한 의식이 따르지 않는 풍작의 숭배의식도 그리스 전역에 공통적이었으며, 특히 엘레우시우스의 신비 종교는 그 상징 체계에서 볼 때 본질적으로 농업적이었다.
호머의 종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종교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 신들은 매우 인간적이다.
다만 인간과 다른 점은 그들이 죽지 않고 초인간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뿐이며, 도덕적으로는 신에게서 조금도 특이한 면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이런 신들이 어떻게 인간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후기에 쓴 것으로 보이는 어떤 문장에서는 볼테르와 같은 경건치 못한 태도로 신을 대하고 있다.
호머에게서 볼 수 있는 이런 독특한 종교 감정은 올림푸스의 신들과 관련이 있다기보다 숙명이나 필연성, 운명과 같은 음울한 것들과 관련이 되어 있다고 하겠다.
제우스까지도 이 숙명에 복종하는 것이다.
숙명은 그리이스 사상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이 숙명은 과학이 자연법칙에 대한 믿음을 도출한 근원들 중의 하나이다.
호머의 신들은 정복을 일삼는 귀족계급의 신들이며 농부들에게 유용한 풍요의 신은 아니었다.
길버트 뮤레이(Gilbert Murray)의 말대로 "어느 민족의 신이든 다 세계를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올림푸스의 신들은 그러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전에 한 것은 세계 정복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네 왕국을 정복하고 나서 무엇을 하였는가?
정치 참여인가?
농업 발전인가?
상, 공업 종사인가?
그들은 이런 일은 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그런 정직한 일을 하겠는가?
그들은 세금으로 사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벼락으로 친다.
그들은 정복한 추장이요, 왕권을 손에 넣은 해적이다.
그들은 싸우고 축하하고 노래를 부른다.
마시고 취하며, 자기네를 시중드는 절름발이 장식공을 보고 요란스레 웃는다.
그들은 자신의 왕 이외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연애와 전쟁 때 이외에는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다"
[그리이스 종교의 5단계](Five Stages of Greek Religion), 67쪽].
호머의 영웅들도 그의 신들과 마찬가지로 결코 훌륭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그가 중요시하는 가문은 펠롭스 가문이다.
그러나 이 가문이 행복한 모범적인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시아 왕조를 처음으로 세운 탄탈로스는 당초에 신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그는 신들을 속여 사람들에게 자기 아들 펠롭스의 고기를 먹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펠롭스는 기적적으로 소생하여 이번에는 이 펠롭스가 신들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의 유명한 피사의 왕 오이노마오스와 병차의 경주를 해서 이겼는데 그것은 피사의 왕의 병차를 모는 미르틸로스와 공모한 때문이었다.
그나마 그는 그 공모자에게 약속한 보수는 안 주고 오히려 그를 바다에 던져버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저주는 그의 아들에게 미치게 됐다.
그의 두 아들 아트레우스와 티에스테스는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소위 아테(ate)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것은 범죄를 하고 싶은 충동으로 전혀 항거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단히 강하게 작용한다.
티에스테스는 형수를 타락시켜 그 집 '행운'을 표시하는 금양털의 산양을 훔치려고 공작을 한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아트레우스가 동생을 유배시키고 나서 화해를 하자고 불러내어 그에게 자기 자식들의 고기를 먹인다.
그러자 이 저주는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이 물려받게 된다.
아가멤논은 신성한 사슴을 죽여, 아르테미스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그리하여 자기 딸 이피게네를 제물로 바쳐 그 여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트로이까지 안전하게 도망을 친다.
이번에는 자기를 배신한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이며, 티에스테스의 살아 남은 아들 아이기스토스의 손에 살해당한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자기 어머니와 아이기스토스를 죽여 부친의 원수를 갚게 된다"
[로스(H.J. Rose), [초기 그리이스 문화](Primitive Culture in Greece), 1925, 193쪽 참조].
호머는 그 전체가 이오니아의, 다시 말하면 그리스의 소아시아와 이웃섬들의 산물로 늦어도 B.C. 6세기까지는 그의 시가 오늘날 보는 바와 같은 형태로 고정되어 버렸다.
그리스의 과학과 철학 및 수학이 시작된 것은 바로 이 세기였다
이와 같은 시기에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근본적으로 중요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공자나 석가, 조로아스터가 생존했다면 아마 이 세기의 일일 것이다.
[그러나 조로아스터의 연대는 분명치 않다.
어떤 책에는 B.C. 1000년까지 소급해 올라간다.
[캠브리지 고대사](Cambridge Ancient History), 4권 207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