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케돈 회의
Chalcedon Council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시릴의 제자 디오스쿠루스(Dioscurus)는 스승의 정책을 좇아서 알렉산드리아의 대감독을 동방 교회의 대표자로 만드는 일에 전력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그는 스승의 모든 단점을 계승했고 장점은 전혀 계승하지 못했다.
디오스쿠루스는 스승이 반대 학파 사람들에게 모든 이론을 양보했다고 한탄했으며, 유티케스의 한 속성(mono-physis) 그리스도론을 받아들였고, 유티케스를 영웅으로 존경했다.

황제는 449년 8월 감독들로 하여금 에베소에 모여서 종교회의를 개최하도록 했는데 디오스쿠루스가 회의의 진행을 맡았다.
회의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두 속성과 관련된 모든 이론을 비난하면서 안디옥 학파의 그리스도론의 잔재를 철저히 일소하려고 했다.
그는 회의에서 교황 레오 1세의 의견서를 낭독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두 본성 그리스도론은 이설로 규정되어 유티케스의 명예는 회복되었지만 플라비안이 파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디오스쿠루스가 자신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감독들에게 전혀 발언할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레오 1세는 에베소 회의를 도적회의(robbers council)로 선언했다.
레오 1세는 에베소 회의의 결의를 비난하면서 로마 대감독의 주재 하에 새 회의를 개최해야 한다고 했다.

디오스쿠루스의 도적과도 같은 행위에 대해 감독들의 비난이 점차 거세어지자 그는 수도원의 군대를 이용해서 난폭한 방법으로 감독들의 반발을 진압했으며 교황의 사절은 겨우 도망쳐 로마로 돌아갔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디옥의 단성론자들은 도적회의의 결의사항을 지지했지만 두 본성 그리스도론을 지지한 사람들은 소란을 일으키며 일방적인 회의의 진행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강도회의의 후유증으로 교황 레오의 공한은 모든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레오는 종교회의를 새로 열어 지난번 회의에서 채택된 결의사항을 취소해 버리려고 했다.
레오 1세는 황제의 누이 풀케리아(Pulcheria)의 지지를 받았다.
황제가 450년에 타계하자 풀케리아와 그녀의 부군 마르시아누스(Marcianus)가 그 뒤를 계승했다.
그들은 알렉산드리아의 디오스쿠루스를 반대하고 레오 1세의 편을 들어 주었기 때문에 451년에 새 종교회의가 니케아에서 소집될 수 있었다.
그러나 황제의 희망에 따라 장소가 칼케돈으로 옮겨졌다.
이렇듯 당시 상황은 레오 1세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었으므로 그의 교서는 회의의 모든 회무를 처리하는 지침으로서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신학이 신랄하게 비판의 대상이 된 반면 레오 1세가 이끄는 서방 교회의 입장은 추켜세워졌다.
레오 1세의 서한이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추세에 의해 서방 교회의 신학에로 기울어진 새 이론을 작성하기로 결정했다.
이 이론은 네스토리우스 뿐만 아니라 유티케스도 거부하려는 의도가 내포된 것으로 요컨대 회의는 이 이론을 통해 분명한 이성론(Duophysitism)과 명백한 단성론(Monophysitism)을 배격하였다.
이와 더불어 칼케돈 회의에서는 두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자들과 “연합 이전에는 두 본성이었으나 이후에는 하나의 본성”이라 하는 자들도 함께 정죄했다.
이 회의에서 디오스쿠루스는 파면되었으며 그리스도의 두 인격을 주장한 감독들은 축출되었다.
이렇게 칼케돈 회의는 시릴의 이론을 정통으로 받아들였다.

칼케돈에 모인 감독들은 자신들의 중론을 레오 1세가 로마로부터 도적회의에 보낸 서신(Tome)의 윗부분에 기록했는데 감독들이 교황의 서신을 사용한 것은 교황의 권위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행위는 결국 교황의 위신을 증대시키는 일에 한 몫을 했다.
감독들은 단성론을 거부하고 신인양성론을 지지하면서 예수에게는 두 본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칼케돈 회의는 다음과 같은 결의를 선언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교부들을 좇아 한결같이 한 분이며 동일한 성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할 것을 가르치노라.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에 있어서 완전하며 인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완전하다.
그는 참 하나님이요, 이성적 영혼과 육체를 가진 참 인간이다.
그는 인성에 있어서 우리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
그분은 모든 것에 있어서 우리와 마찬가지이지만 무죄하다.
신성을 따라서 그분은 태초에 하나님으로부터 났으나 인성을 따라서는 이 마지막 날에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동정녀 마리아 곧 하나님의 모친에게 탄생되었다.
그는 한 분이며 동일한 그리스도, 성자, 독생자이다.
그는 혼합될 수 없고, 변화시킬 수 없으며, 나누일 수 없고, 분리시킬 수 없는 두 속성을 가지고 있다.
두 속성의 구별은 결합으로 인해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각각 그 속성을 보존하며, 두 속성은 한 인격과 한 존재 안에서 일치되어 두 인격으로 분할되거나 나뉘지 아니하고 한 분이며 동일한 성자, 독생자, 말씀이신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에게 관해서는 처음부터 예언자들이 선포했고,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가르쳤으며, 거룩한 교부들이 신조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당시 감독들은 마리아를 하나님의 모친이라고 불렀는데 하나님을 탄생케 한 마리아에 대한 숭배전통은 한 세기가 지나도록 계속되어 왔으며 마리아에게 신성을 부여하여 그녀에게 기도하게 했다.
이레네우스와 일부 신학자들이 예수를 제2의 아담으로 해석하면서 아담이 죄를 지어 상실한 영생을 제2의 아담이 회복시켰다고 했듯이 마리아에게는 제2의 이브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그들은 제2의 이브는 본래의 이브와 달리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렇게 당시 감독들에 의해서 마리아 숭배사상이 확산되었다.

칼케돈 회의가 단성론을 이설로 규정했다고 해서 단성론이 그리스도론의 무대 위에서 퇴장한 것은 아니었다.
단성론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은 이집트와 인근 지역에 아주 많이 분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칼케돈 회의의 의미는 컸다.
회의 결의사항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이론과 안디옥 학파의 이론을 결합시키려는 데 있었다.
비록 네스토리우스가 정죄되기는 했지만 그와 동일한 처분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유티케스의 교훈은 거부되었지만 시릴만큼은 정통신학의 신봉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칼케돈 회의에 소집된 감독들은 동방과 서방을 한 데 묶으려고 했다.
그러나 칼케돈 회의의 후유증은 장기간에 걸쳐서 교리에 대한 논쟁으로 나타났다.
더러는 정치적인 동기에서 유발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칼케돈 결의가 불씨가 되었다.
특히 동방 교회 지역 내에서 수많은 집단들이 칼케돈 결의사항 가운데 특정 부분의 표현에 반대했다.
그들은 칼케돈 회의가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이 있다고 가르친 네스토리우스에게 양보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인격의 통일성이 부인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칼케돈 결의사항에는 그리스도가 두 얼굴을 가진 우상으로 묘사되었다는 말까지 서슴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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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론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라고 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사도행전 2:38)

바울은 세례의 의미를 그리스도와 일체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6:3-4)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린도전서 6:11)

바울은 성령에 관해 말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 (고린도후서 13:13)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는 성부였고,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였으며, 성령은 세 번째 분이었다. 삼위의 이름대신 은총, 사랑, 친교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2:7-11)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에게서 지혜의 말씀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지식의 말씀을 받았으며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믿음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병 고치는 능력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어떤 사람은 신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직책을,
어떤 사람은 어느 것이 성령의 활동인지를 가려내는 힘을,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을,
어떤 사람은 그 이상한 언어를 해석하는 힘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나누어 주십니다. (공동번역)

은사는 (은총의 선물은)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고린도전서 12:4-6)

성령은 히브리어로 루아(ruach)인데 그리스어로는 뉴마(pneuma)라고 한다.
구약성경 저자들은 성령을 바람과 생명의 호흡 또는 선지자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영감으로 묘사했는데 루아의 사전적 의미도 이런 뜻이다.
구약성경 저자들은 말씀과 지혜, 성령을 하나님의 행위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망상이 (별들이) 그 입 기운으로 (성령으로) 이루었도다 (시편 33:6)

그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성령을) 불게 하신 즉 물이 흐르는도다 (시편 147: 18)

주께서 낯을 숨기신 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성령을) 취하신 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시편 104:29-30)

또한 구약성경 저자들은 하나님이 지혜를 주었다고 했는데 지혜는 성령과 동의어였다.

종용히 들리는 지혜자의 말이 우매자의 어른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지혜가 병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한 죄인이 많은 선을 패궤케 하느니라 (전도서 9:17-18)

어리석은 무리를 거느린 임금의 호령 소리보다는 조용한 현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지혜는 어떤 무기보다도 낫다고 하는 것이다. (공동번역)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성령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전도서 1:5-6)

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하느니라 (전도서 7:7)

아무리 지혜로와도 탐욕을 내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뇌물을 받았다가는 망신을 당한다. (공동번역)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궁구하여 악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전도서 7:25)

나는 지혜롭게 계획을 세우고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더듬어 찾아 알아보려고 거듭 애써 보았다.
그래서 악하게 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요, 어리석음은 곧 얼빠진 노릇임을 깨달았다. (공동번역)

바울은 부활한 예수가 생명을 주는 영적 존재라고 했으며(고린도전서 15:45), 요한은 예수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낸다고 했다(요한복음 7:39, 15:26, 19:30,34, 20:22).
누가와 요한은 성령은 예수로부터 오지만 그것은 예수가 아버지로부터 받아서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성령을 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게 되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한복음 14:16-17)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14: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5:26)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성령 즉 그리스도의 성령에 관해서도 말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9)

바울을 포함한 신약성경 저자들은 성령을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등하게 인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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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게네스 , 그리스도를 한 인격체로 보았으며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2, 3세기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론에 치중하느라고 성령을 특별히 문제 삼지 않았다.
성령이 신학의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 것은 오리게네스가 처음 언급한 후부터였다.
그 후 신학자들이 다투어 성령론을 발표했다.
오리게네스의 성령론에서는 요한의 신학이 다분히 발견되는데 그는 만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는 요한의 말을(요한 1:3) 인용하면서 ‘말미암아 through whom’라는 말이 항상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로 기술되었음을 지적했다.

오리게네스는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복음을 전할 것을 미리 약속했으며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종처럼 행동했으므로 그들이 바로 ‘말미암아’의 주인공이라고 했다.
그는 하나님이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이방인들이 자신을 믿고 복종할 수 있도록 바울과 그 외의 사람들에게 은총과 사도직을 주었다고 하고 예수가 ‘말미암아’의 주인공이라는 논리를 펴며 히브리서를 인용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히브리서 1:1-2)

하나님이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주를 창조했다는 바울의 가르침에 대해 오리게네스는 바울이 ‘말미암아’의 주인공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지적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주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보다 한층 위대한 분에 의해서 창조된 것인데 그 한층 위대한 분이 하나님이라 했다.
만일 우주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되었다면 성령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되었다고 믿어야 마땅하므로 이럴 경우 그리스도는 성령보다 위대한 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성경의 기록을 진실이라고 믿으면서도 성령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성령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주장과 성령이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주장 외에도 성부나 성자와 달리 성령은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제3의 이론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그의 말을 통해서 당시 다양한 이론들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에 비해 열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성령을 하나님과 같은 동등한 수준으로 여길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다음의 구절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사람의 아들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2:32)

오리게네스는 성부와 성자, 성령 삼위는 각기 구분되는 존재로 성부만을 예외로 하고 그리스도와 성령은 태어난 것들이라 했다.
그리고 가장 성서적이고 신뢰할 만한 이론으로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서 우주가 창조되었다는 것과 성령은 하나님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된 것들 중 최고의 것이라는 이론을 꼽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와 달리 성령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태초에 태어났고, 성령은 그리스도를 중재자로 만들기 위해서 창조되었으므로 성령이 그리스도에게 지혜, 이성, 정의, 그리고 그 외의 성격을 제공한다고 했다.
성령은 하나님에 의해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집행으로 은총의 선물을 주며 “은총의 선물은 여러 가지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고린도전서 12:4-6)인 것이다.

오리게네스는 하나님과 성령이 성자 그리스도를 보낸다는 이사야의 말을 두고 성령이 그리스도를 보낸다고 해서 성령이 그리스도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단지 예수로 성육신되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기 위해서 구세주를 성령보다 낮은 등급에 둔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2:9)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는 죽음의 고통을 당하심으로써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못하게 되셨다가 마침내 영광과 영예의 관을 받아 쓰셨습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의 고통을 겪으신 것은 신의 은총의 소치입니다. (공동번역)

오리게네스는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지상으로 내려보내면서 성령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보필하게 했다고 하고 이에 예수가 세례 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에게 내려 와 보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세례자 요한은 성령이 비둘기의 형체로 예수의 머리 위에 내려오는 것을 직접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성령이 예수에게 머무는 것도 알았다고 한다.

요한이 또 증거 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요한복음 1:32-33)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이란 말로 보아 성령이 다른 사람에게도 머물렀었음을 알 수 있지만 특별히 예수에게는 계속해서 머물렀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또한 만물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성령은 만물에 포함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에 비해 열등할 수밖에 없는 데도 성경에는 오히려 성령이 그리스도보다도 우월한 것처럼 기록되었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오리게네스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계시하는 분이다.
이런 사상은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이다. 사람에게 의지가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로고스 또는 이성이 있다는 사상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리스도가 태어났다는 주장과 관련이 있으며,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태어났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항상 낳고 있다고 보는 견해에서 비롯한다.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를 한 인격체로 보았으며 태초부터 하나님과 한 실체로 간주했다.
그는 성령을 전적으로 계시에 의존해 설명하려고 했으므로 그것이 비록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해도 하나님과 한 실체로서의 신성을 지닌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이성적 사물 가운데서 활동하는 것과는 달리 성령은 영혼 가운데서만 활동하기 때문에 그 활동은 삼위 가운데 가장 적다.
하지만 하나님이 존재의 영역을 지배하고, 그리스도가 이성의 영역을 다스리듯이 성령은 교인들 또는 교회의 영혼 가운데서 활동하므로 오리게네스는 비록 활동은 가장 적지만 성령이 삼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임을 지적했다.

그리스 교회는 겉으로는 오리게네스의 신학을 거부했지만 내면적으로는 일부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의 신학은 부분적으로 그리스 감독들을 통해 존속되었다.
오리게네스는 교회의 전통, 성경의 권위, 그리고 그리스 철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성경을 은유적인 방법으로 해석했는데 이 같은 방법은 신학과 철학의 통일을 도모하는 사변에로의 통로를 개설하는 데 한 몫을 했다.
그러나 전통을 존중했던 그는 사변의 주제를 선택함에 있어 보수주의 입장을 취했으며, 성경을 존중하여 신약성경에 대한 광범위한 주석을 만들었으므로 그에게는 공인된 정경에 대한 검증도 관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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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릴,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삼위일체 안에 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349년에 예루살렘 감독이 된 시릴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성지를 순례케 하는 일에 노력했다.
그는 아리우스주의에 반발했다는 이유로 세 차례나 추방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가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스도의 본질을 하나님과 동등하게(homoousios) 여기지 않은 행위는 니케아 신조를 존중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안디옥 회의는 379년에 그레고리를 예루살렘으로 파견해서 진상을 알아보도록 했다.
그레고리는 예루살렘 교회가 부패하긴 했지만 니케아 신조를 믿고 있다고 보고했다.
시릴은 381년에 개최된 콘스탄티노플 회의에 참석해서 니케아 신조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용하는 신조를 콘스탄티노플 회의에 제출하고 예루살렘 신조를 회의록에 포함시키는 일에 노력했다.

콘스탄티노플 회의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Niceno-Constantinopolitan Creed)를 제정했는데 이것은 325년에 제정한 니케아 신조를 보완한 것으로 가톨릭 교회의 두 번째 공식 교리였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아리우스의 신학을 비난했으므로 아리우스의 이론은 일부 독일 사람들에 의해서만 전수되었다.

시릴은 350년경 사순절 기간에 다가올 부활절에 세례 받을 사람들을 위해 성묘교회(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에서 교리문답식 강의를 했는데 당시 성령에 관한 신학자들의 이론이 대부분 언급되었다.
그는 바울의 말을 인용한 후 강의를 시작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은총의 선물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2:1-7)

시릴에게 있어서 성령은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말로는 표현이 가능하지 않은 실재이면서 하나님이었다.
시릴의 성령론은 다음과 같다.
성령은 살아 있고, 이성적이며, 하나님에 의해서 그리스도가 창조한 만물을 신성하게 만들고, 의인들의 영혼을 교화시키는 일을 한다.
과거에는 성령이 선지자들에게 내려졌지만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 계약이 만들어진 후부터는 사도들에게 내려졌다.
옛 계약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오기로 예언된 분이므로 현재에는 그리스도가 새 계약 안에 있다.
오로지 한 분뿐인 성령이 선지자들을 통해 그리스도가 올 것을 선언하게 했으며 그가 지상으로 왔을 때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새 계약을 옛 계약으로부터 단절해서는 안 되며 각각에 내재하는 성령은 같은 성령이다.
이렇듯 성령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더불어 거룩한 삼위일체의 구성원이며 그리스도는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았을 때 삼위일체의 구성원이 되었다.
따라서 시릴은 그리스도만이 사도들에게 명령할 수 있는 분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 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19-20)

시릴은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삼위일체 안에 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는 삼위의 하나님에 관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한 성령에 의해 한 분 뿐인 하나님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교회가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지상에 내려보낸 것과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변호자를 우리에게 보내 주기로 약속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성령이 선지자들에게 계시했듯이 오순절에 불같은 혀의 모습으로 사도들에게 내렸는데 이 같은 사건이 예루살렘 사도들의 교회에서도 일어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며, 믿는 모든 것을 성령은 알고 있다고 말하며 성령이 자신에게 오지 않았다고 해서 성령을 탓하는 사람은 성령을 탓하지 말고 자신에게 믿음이 없음을 탓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또한 변호자로서 성령은 하나님의 심원한 곳까지 통찰하는 분이라고 보았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태복음 11:27)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니라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요한복음 16:13-14)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린도전서 2:10-11)

시릴은 모든 은총은 하나님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과 함께 주어지는 것이기에 하나님과 그리스도, 성령으로부터 각기 주어지는 은총이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오로지 하나의 구원, 하나의 능력, 하나의 신앙이 있을 뿐이고 한 분의 하나님 아버지, 한 분의 주 독생자, 한 분의 성령 변호자가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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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나시우스, 그리스도와 성령은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라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아타나시우스는 359-60년에 트무이스(Thmuis)의 감독 세라피온(Serapion)에게 네 차례에 걸쳐 편지를 보냈는데 세 번째 편지에서 성령에 관해 상세하게 언급했다.
특히 세 번째 편지에 나타난 내용을 통해 그의 성령론을 알아볼 수 있다.
그는 편지에서 변호자인 성령이 와서 자신의 말을 전할 것이라고 한 예수의 말(요한복음 16:13-14)과 다음 구절을 인용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20:22-23)

아타나시우스는 요한이 전한 대로 예수가 그리스도의 성령을 제자들에게 준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성령을 만민에게 준다고 보았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환상을) 볼 것이며 (요엘 2:28)

성령과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관계에 비유했다.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요한복음 16:15)

그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모든 것이 성령 안에 있음을 우리가 알게 되었다 하고 예수가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을 때 하나님이 예수에게 한 말을 상기시켰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마태복음 3:17)

예수가 세례 받을 때 성령이 그에게 속했으며 사람들에게 주어진 성령은 그의 성령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성령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모두에게 속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2:11-12)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것이 아니라 태어난 것으로 하나님의 본성을 이어 받았기 때문에 로고스이며, 지혜이고, 이미지이며, 광휘이다.
그는 이러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보았다.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요한1서 2:23)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와 성령은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라 했다.
피조물은 무로부터 온 것이고 시간 안에서 시작이 있었기 때문이다(창세기 1:1).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분이 아니라 태어난 분임을 강조하고 성령을 피조물과 구별했으며(고린도전서 2:12)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준다고 말했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한 I서 2:27)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사야 61:1)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4:30)

마지막 날에 여러분을 해방하여 하느님의 백성으로 삼으실 것을 보증해 주신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여 드리지 마십시오. (공동번역)

아타나시우스는 피조물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기 때문에 이에 성령이 포함될 수 없음을 거듭 강조하며 기름 붓는 것과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의 상이한 점을 설명했다.
그는 기름 부음을 하나님 아들의 향기라고 했는데 이는 바울의 신학에 동조한 것이다.

우리는 구원 얻은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고린도후서 2:15-16)

우리는 하느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이 향기는 구원받을 사람에게나 멸망당할 사람에게나 다 같이 풍겨나가지만
멸망당할 사람에게는 역겨운 죽음의 악취가 되고
구원받을 사람에게는 감미로운 생명의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공동번역)

아타나시우스는 성령을 받은 사람은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형성하게 된다고 보았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라디아서 4:19)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립보서 2:5-6)

그리고 성령은 기름을 붓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기 때문에 성령과 그리스도는 창조물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한복음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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