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게네스 , 그리스도를 한 인격체로 보았으며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2, 3세기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론에 치중하느라고 성령을 특별히 문제 삼지 않았다.
성령이 신학의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 것은 오리게네스가 처음 언급한 후부터였다.
그 후 신학자들이 다투어 성령론을 발표했다.
오리게네스의 성령론에서는 요한의 신학이 다분히 발견되는데 그는 만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는 요한의 말을(요한 1:3) 인용하면서 ‘말미암아 through whom’라는 말이 항상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로 기술되었음을 지적했다.

오리게네스는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복음을 전할 것을 미리 약속했으며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종처럼 행동했으므로 그들이 바로 ‘말미암아’의 주인공이라고 했다.
그는 하나님이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이방인들이 자신을 믿고 복종할 수 있도록 바울과 그 외의 사람들에게 은총과 사도직을 주었다고 하고 예수가 ‘말미암아’의 주인공이라는 논리를 펴며 히브리서를 인용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히브리서 1:1-2)

하나님이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주를 창조했다는 바울의 가르침에 대해 오리게네스는 바울이 ‘말미암아’의 주인공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지적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주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보다 한층 위대한 분에 의해서 창조된 것인데 그 한층 위대한 분이 하나님이라 했다.
만일 우주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되었다면 성령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되었다고 믿어야 마땅하므로 이럴 경우 그리스도는 성령보다 위대한 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성경의 기록을 진실이라고 믿으면서도 성령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성령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주장과 성령이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주장 외에도 성부나 성자와 달리 성령은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제3의 이론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그의 말을 통해서 당시 다양한 이론들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에 비해 열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성령을 하나님과 같은 동등한 수준으로 여길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다음의 구절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사람의 아들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2:32)

오리게네스는 성부와 성자, 성령 삼위는 각기 구분되는 존재로 성부만을 예외로 하고 그리스도와 성령은 태어난 것들이라 했다.
그리고 가장 성서적이고 신뢰할 만한 이론으로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서 우주가 창조되었다는 것과 성령은 하나님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된 것들 중 최고의 것이라는 이론을 꼽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와 달리 성령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태초에 태어났고, 성령은 그리스도를 중재자로 만들기 위해서 창조되었으므로 성령이 그리스도에게 지혜, 이성, 정의, 그리고 그 외의 성격을 제공한다고 했다.
성령은 하나님에 의해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집행으로 은총의 선물을 주며 “은총의 선물은 여러 가지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고린도전서 12:4-6)인 것이다.

오리게네스는 하나님과 성령이 성자 그리스도를 보낸다는 이사야의 말을 두고 성령이 그리스도를 보낸다고 해서 성령이 그리스도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단지 예수로 성육신되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기 위해서 구세주를 성령보다 낮은 등급에 둔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2:9)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는 죽음의 고통을 당하심으로써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못하게 되셨다가 마침내 영광과 영예의 관을 받아 쓰셨습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의 고통을 겪으신 것은 신의 은총의 소치입니다. (공동번역)

오리게네스는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지상으로 내려보내면서 성령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보필하게 했다고 하고 이에 예수가 세례 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에게 내려 와 보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세례자 요한은 성령이 비둘기의 형체로 예수의 머리 위에 내려오는 것을 직접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성령이 예수에게 머무는 것도 알았다고 한다.

요한이 또 증거 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요한복음 1:32-33)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이란 말로 보아 성령이 다른 사람에게도 머물렀었음을 알 수 있지만 특별히 예수에게는 계속해서 머물렀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또한 만물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성령은 만물에 포함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에 비해 열등할 수밖에 없는 데도 성경에는 오히려 성령이 그리스도보다도 우월한 것처럼 기록되었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오리게네스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계시하는 분이다.
이런 사상은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이다. 사람에게 의지가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로고스 또는 이성이 있다는 사상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리스도가 태어났다는 주장과 관련이 있으며,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태어났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항상 낳고 있다고 보는 견해에서 비롯한다.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를 한 인격체로 보았으며 태초부터 하나님과 한 실체로 간주했다.
그는 성령을 전적으로 계시에 의존해 설명하려고 했으므로 그것이 비록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해도 하나님과 한 실체로서의 신성을 지닌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이성적 사물 가운데서 활동하는 것과는 달리 성령은 영혼 가운데서만 활동하기 때문에 그 활동은 삼위 가운데 가장 적다.
하지만 하나님이 존재의 영역을 지배하고, 그리스도가 이성의 영역을 다스리듯이 성령은 교인들 또는 교회의 영혼 가운데서 활동하므로 오리게네스는 비록 활동은 가장 적지만 성령이 삼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임을 지적했다.

그리스 교회는 겉으로는 오리게네스의 신학을 거부했지만 내면적으로는 일부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의 신학은 부분적으로 그리스 감독들을 통해 존속되었다.
오리게네스는 교회의 전통, 성경의 권위, 그리고 그리스 철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성경을 은유적인 방법으로 해석했는데 이 같은 방법은 신학과 철학의 통일을 도모하는 사변에로의 통로를 개설하는 데 한 몫을 했다.
그러나 전통을 존중했던 그는 사변의 주제를 선택함에 있어 보수주의 입장을 취했으며, 성경을 존중하여 신약성경에 대한 광범위한 주석을 만들었으므로 그에게는 공인된 정경에 대한 검증도 관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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