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
Gregory, 330-395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바질의 동생 그레고리는 조직과 행정능력에서 형에 견줄 만하지는 못했지만 웅변술과 문필력 그리고 신학적 통찰력에서는 우수함을 나타냈다.
웅변술로 말하면 친구 나지안주스의 감독 그레고리도 뛰어났지만 닛사의 감독 그레고리는 웅변술 외에 시적 영감에도 뛰어났다.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가 381-2년에 개최되었을 때 시가가 신학적 논쟁으로 떠들썩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그레고리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도시 전체가 골목길, 번화가, 공회, 광장들로 가득하고 여기저기에는 의복장사꾼, 환전상, 음식물을 파는 사람들로 우굴거린다.
당신이 변화를 요구하면 그들은 선험적인 것과 후험적인 것에 관해 철학의 논리로 설명해 줄 것이다.
당신이 빵 값을 물으면 하나님이 더욱 우월하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에 비해 열등하다고 대답해 줄 것이다.
당신이 목욕탕이 제대로 갖추어졌느냐고 물으면 그리스도가 무로부터 창조되었다는 견해를 피력할 것이다.
그레고리는 예수가 제2의 아담이라는 바울의 주장을 받아들였으며, 본래 아담이 그르친 것이 무엇이며 제2의 아담이 바로 잡은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려고 했다.
그리고 원죄에 관해 언급하면서 아담이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않고 자유의지로 사탄에게 복종하는 바람에 사탄이 아담의 후손을 다스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 것이라는 이론을 제기했다.
하나님이 사탄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아들을 지상으로 보냈는데도 아들이 한낱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을 감히 제압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아들도 역시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들을 제압하려는 사탄의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말았으며, 사탄의 권세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킴으로써 하나님은 사탄을 처벌할 수 있었다.
그레고리의 이러한 해석들은 새로운 방법이 아니라 당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이었다.
그는 저서 『위대한 교리문답 The Great Catechism』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신성은 사람의 본성이라는 베일에 가리워져 있다.
그러므로 걸신들린 물고기를 대하듯 신성이란 낚시 바늘은 육신이라는 미끼와 함께 깊이 가라앉아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훗날 그레고리의 신학을 받아들여 저서 『설교 Sermon』에 유사한 내용을 적었다.
주의 십자가는 악마의 덫이 되었으며 주의 사망은 악마로 하여금 덫에 빠지도록 한 미끼가 되었다.
형 바질과 마찬가지로 그레고리도 누이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수사학 교사직을 그만두고 형의 수도원에 합류했다.
형과 달리 그레고리는 경륜을 쌓은 적도 없고 경건을 도모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유랑생활을 통해 심오한 신앙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에게 믿음이란 영혼에 속삭이는 사랑의 초대와도 같았다.
그는 시인이며 몽상가로 불릴 만했는데 그의 저서 『아가에 관한 주석 Commentary on the Canticle』(아가는 솔로몬의 노래를 묶은 책이다)에 믿음에 관한 시인의 영감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녀(믿음)가 죄에 대한 집착에서 자신을 떼어 놓은 후 신비한 입맞춤을 통해 입술을 빛의 샘에 갖다 대기를 열망할 때 그녀는 진리의 빛으로 반짝이면서 아름다워진다.
그녀는 감각으로, 이성으로, 지각하는 모든 것을 뚫고 준마처럼 질주한다.
그녀는 사과나무 그늘 아래를 갈망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때까지 한 마리 비둘기와도 같이 비상한다.
그래서 그녀는 사랑하는 자가 접근해 오는 동안 발각되지 않도록 하는 거룩한 어둠에 에워싸인다.
감각과 이성과 지각하는 모든 것을 뚫고 준마처럼 질주하는 그레고리의 영상은 신플라톤주의와 관련이 있는데 신플라톤주의는 그리스 철학과 고대 종교의 종착역과도 같았다.
세계주의 철학으로 등장한 신플라톤주의에는 플라톤 철학의 근본적 경향, 후기 스토아주의의 종교적 도덕론, 필로의 사상, 일반적인 동양의 사상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신플라톤주의는 3세기에 성행했는데 창설자는 플로티누스(Plotinus, 204-269)였다.
그레고리는 신플라톤주의의 일원론에 관심이 많았으며 세계는 태초에 하나님으로부터 유출되어 나중에 그분에게로 회귀한다는 유출설에 동조했다.
플로티누스의 유출(emanation) 또는 범람(overflow)은 세계가 신으로부터 유출 또는 범람하는 것을 말한다.
그레고리에게 있어서 신은 만물의 근원이지만 만물을 창조한 분이 아니므로 세상을 필요로 하지 않고 또 세상을 창조할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유출 또는 범람의 과정을 세 단계로 구분했는데 첫째, 누스(nous)로서 순수한 마음 또는 이성이고, 둘째, 프쉬케(psyche)로서 영혼(soul)이며, 셋째, 물질(matter)이다.
플로티누스는 현상의 세계가 영혼과 물질이 결합해서 생겨나며 그 결과 영혼은 죽거나 사악한 것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된다고 했다.
즉 영혼이 육체 안에 들어온 것은 타락한 것이며 영혼이 신을 주목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주목한 것이라고 간주했다.
이렇게 그는 육체를 근본적으로 사악한 것으로 여겼지만 영혼이 육체에 거하는 동안 유익함을 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영혼이 육체 안에 거하면서 악을 인식할 줄 알게 되고, 자신의 힘을 이용할 줄 알게 되며, 결국 신에게 회귀하는 길을 떠나게 된다고 했다.
그레고리는 플로티누스의 신의 개념을 받아들였는데 플로티누스는 신을 단순하고, 완전하며,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하면서 오로지 한 분뿐인 신에게는 복수성이나 다양성이 없다고 했다.
그에게 있어서 신은 만물과 지식을 초월하는 존재였다.
만일 신을 정의하려고 시도한다면 그것은 결국 어떤 한계 안에 신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우리는 신에 관해 생각하고 느끼는 것조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신학적이든지 철학적이든지 우리의 지식에 관한 한 신은 접근할 수 없는 존재이며 세상으로부터 구별되는 존재이므로 플로티누스에게 영혼의 임무는 둔중한 육체의 속박을 견디어 내고 차츰 신에게로 상승해 회귀하는 것이었다.
이에 회귀에 실패하게 되면 영혼은 죄의 성질과 정도에 따라서 사후에 다시 사람이나 짐승 또는 식물로 태어나게 된다는 윤회설을 주장했다.
또한 순결한 영혼은 별들의 세계에 살게 되며 성숙한 영혼만이 신에게로 회귀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
그러므로 그에게 점차 회귀할 수 있도록 나아가는 상승적 운동의 수단은 신비주의적 도취와 금욕주의적 윤리였다.
신비주의적 도취의 상태에서 영혼은 자아를 초월하여 플라톤이 주장한 이데아 세계로 상승되며 자신이 신이라고 깨닫게 될 뿐 아니라 실제로 신이 되는 것이라는 것이 플로티누스 논리이다.
그레고리는 플로티누스의 이론에 자신의 독특한 시적 감정을 보태어 신학이 보다 지성적이 되도록 했다.
그는 동방의 신비주의 신학을 더욱 진전시켰는데 이런 점에서 보면 오리게네스보다 진일보했다.
또한 사랑이 지성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묘약이라고 믿었으므로 형 바질이 친구와 불화하고 대화도 하지 않고 지낼 때 친구가 보낸 것처럼 허위로 사과하는 편지를 써서 형에게 보냈다.
바질은 동생이 자신에게 허위편지를 보낸 것을 알고 화를 냈지만 결국 친구와 화해했다.
이렇게 사랑이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는 것을 그레고리는 체험으로 알았으며 자신이 잘못된 일을 꾸민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만족해했다.
그레고리는 사람들이 비평 없이 본질과 실체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본질을 단수로 취급할 때는 단수의 실체를 의미하지만 삼위의 실체를 말할 때는 삼위의 본질이 된다고 했다.
그는 모든 명사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므로 일반적인 의미와 특별한 의미로 구별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사람이란 말은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보통이고 어느 한 사람에게 특별히 적용되지는 않으므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 등에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이란 말은 특별히 베드로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지만 바울과 디모데 같은 명사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 아니라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라고 했다.
바울, 디모데, 실바누스를 예로 들어 그들에게 본질이란 말을 적용한다면 바울에게 적용한 본질과 디모데와 실바누스에게 적용한 본질은 다를 수가 없다면서 바울에게 적용된 본질은 누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본질임을 지적하였다.
이렇게 그레고리는 본질이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명사임을 명확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