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우스의 그리스도론은 모순이라고 보았다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아리우스의 종속론에 대한 아타나시우스의 신랄한 비판은 변증가들을 향한 것이기도 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달랐더라도 그들이 종속론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리우스의 주장대로 그리스도가 신성을 지녔다면 분리될 수 없는 하나님의 속성을 지닌 것에 해당하므로 따라서 아리우스의 그리스도론은 모순이라고 보았다.
기원과 본질에 있어 그리스도는 피조물과 같지 않고 피조물에 비한다면 전혀 다른 수준의 본질이며 하나님과 동일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온전한 신성을 강조함으로써 그는 유일신 신앙을 표방하는 삼위일체론을 주장했으며 니케아 신조를 대단히 만족해하면서 그 권위를 성경과 신앙의 규범에 두었다.
이에 대해 아리우스파가 니케아 신조에 사용된 용어가 성경에 없음을 말하자 아타나시우스는 그런 용어가 바로 성경적 교훈의 본질을 나타낸다고 응수했다.


젊은 아타나시우스가 자신이 존경하는 아리우스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유세비우스는 서방 교회 감독들의 이론을 비난함으로써 간접적인 방법으로 니케아 신조에 불만을 나타냈다.
준공된 예루살렘 교회의 봉헌식 때 유세비우스는 봉헌식에 참석한 감독들에게 아리우스가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사제로 복직되어야 한다고 설득작업을 폈다.
감독들은 아리우스의 복직을 335년에 황제에게 탄원형식으로 건의했으며 황제는 탄원의 타당성을 인정해 교회의 평화를 저해하는 아타나시우스를 교회 밖으로 추방하라고 명령했다.
이듬해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아리우스를 입교시키려고 했지만 입교 전날 밤 86살의 아리우스는 급사하고 말았다.


콘스탄티누스에 의해서 336년에 추방된 아타나시우스는 이듬해 5월 22일 콘스탄티누스가 사망하자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와 다시 감독직에 올랐다.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교를 보호해 주는 동안 그리스도인의 수가 급증한 것은 사실이지만 폐단도 있었다.
감독들이 신학적 논쟁으로 분열된 교회를 자율적으로 수습하지 못하고 황제의 정치적 힘을 빌려 해결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신학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실추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339년에 로마로 가서 이탈리아 감독들을 설득했으며 그들이 자신의 신학에 동조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콘스탄티누스 사망 후 그의 세 아들들이 제국을 분할해서 통치하고 있었는데 아타나시우스는 콘스탄티누스의 큰 아들인 서방의 황제 콘스탄스(Constans)의 호의를 받으며 346년에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왔다.
그러나 둘째 아들인 동방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십 년 후에 그를 다시 추방했다.
콘스탄티누스는 니케아 신조로 야기된 동방과 서방 감독들의 신학분쟁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아타나시우스를 추방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아타나시우스가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온 것을 안 배교자 줄리안(Julian the Apostate, 331-63)은 362년에 그를 다시 추방했는데 줄리안은 콘스탄티누스의 손자로서 361년에 동방의 황제에 즉위했다.
줄리안은 그리스도인을 박해하지는 않았지만 이교도에게도 종교의 자유를 허락함으로써 이교가 재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줄리안이 363년에 죽자 아타나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와 다시 감독직에 올랐다.
이렇게 수차례에 걸쳐서 추방되었지만 계속해서 그가 감독직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줄리안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 발렌스(Valens)에 의해서 아타나시우스는 365-66년에 또다시 추방되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신성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실체와는 분리될 수도 나뉠 수도 없는 존재임을 역설한 유일신 사상을 펼쳤으며 그리스도가 태초부터 존재했으며 삼위의 인격체는 피차 분리되지 않는 것임을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관계는 수원과 그것으로부터 흐르는 시냇물의 관계와도 같다.
수원(水源)과 강(江)은 비록 형태가 둘이고 명칭이 둘이지만 피차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으며 하나님 또한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아타나시우스는 하나님과 동등한 영원성을 그리스도에 부여하면서 하나님은 태어나지 않은 분이고, 그리스도는 태어난 분이며, 성령은 나온 분이라는 말로 삼위를 구별했다.
그리고 세 인격체는 모두 동일한 신성과 힘과 능력을 지녔고, 동일한 실체와 본질을 지녔으며, 따라서 동일한 존엄과 영광을 가진다고 역설했다.
그의 관심거리는 삼위일체론을 그리스도에 의해 이룩된 구원과 결합시키는 것이었는데 이런 점은 모든 신학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런 신념 때문에 그는 아리우스주의 이단이 교리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 전체를 전복시키려고 한다고 분노한 것이다.
그러나 아타나시우스의 신학을 현대 신학에 비유해서 그의 그리스도론이 단지 구원의 개념과 관계될 때만 중요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아타나시우스는 자신의 그리스도론이 기본이 되는 신학 중의 하나인 동시에 진리 자체에 대한 필수적인 요소라는 신념을 가지고 아리우스주의에 대항해 니케아 삼위일체론을 수호하려고 했다.


이레네우스와 마찬가지로 아타나시우스도 창조에서 시작해 종국에 가서는 완성의 단계에 이르는 구원의 질서를 분명하게 설명했다.
이레네우스의 구원론은 아타나시우스에게 아리우스주의를 논박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주었는데 이는 이레네우스가 구원론을 바탕으로 영지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인 예와 같다 하겠다.
아타나시우스는 구원과 창조의 근원을 동등하게 인식하면서 하나님 자신이 구원의 역사를 성취함으로써 타락한 사람들로 하여금 본래의 운명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역사를 이룩한 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상에 온 그분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구원의 의미를 구속으로 인해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로워진 사람이 신격화 될 수 있다는 것에 두었다.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은 영생과 창조 당시에 영위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삶 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는 삶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구원의 궁극적인 목표를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이라고 했다.
구원을 설명할 때 죄에 대한 용서를 받는 것보다 이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을 더욱 강조한 것은 당시 감독들의 일반적 경향이었다.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의 또다른 면도 아울러 강조했다.
그는 그리스도가 사람의 형체로 온 이유를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임을 나타내어 사람들의 무지와 몽매 가운데 망각된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예배를 회복시켜 주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다.
『아리우스주의자들을 논박하는 글들』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성육신한 그리스도는 자신의 선하심을 두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나타냈는데 하나는 사망의 요소를 제거해서 우리를 새롭게 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스스로 숨겨진 존재자이며 보이지 않는 그분이 행위를 통해 자신을 나타냄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로고스이고, 우주의 통치자이면서 왕이라는 사실을 알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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