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는 실체는 특별한 사물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이지만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그레고리는 실체는 특별한 사물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이지만 사람이란 말은 본질을 나타내는 말로서 특정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고 했다.
사람이란 말은 실체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명사와 고유명사를 구별해서 사용하지 않았는데 그가 구별해서 사용해야 함을 지적한 것이다.
고유명사에 해당하는 바울이란 말은 고유명사가 지칭하는 대로 실재하는 바울의 실체를 가리키는 말이라면서 실체는 특별한 사물을 지칭하나 본질은 일반적인 사물을 강조함을 역설했다.
그리고 고유명사를 명사처럼 사용한 예로 욥기의 구절을 들었다.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기 1:1)
그레고리는 ‘이름하는 사람 a certain man’이란 욥의 본질에 관한 언급이 아니므로 주제의 특별한 성격을 지칭하면서 욥을 일반적인 사람과 구별한다고 했다.
이름, 장소, 성격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특정한 사람으로 만드는데 특정한 사람으로 지칭했음에도 불구하고 욥의 본질은 설명되지 못했으므로 본질과 실체를 분리해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방법으로 사람에게 해당하는 문법을 하나님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플로티누스의 사상을 받아들여 하나님에 관한 설명으로서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이상의 존재이므로 그분에 관한 어떤 설명도 그분의 본질에 관한 설명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레고리는 하나님의 본질에 관해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그리스도와 성령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며 창조되지 않은 점과 불가해한 점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성령 모두에게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고 했다.
삼위일체에 관해 설명하더라도 실체에 관한 설명에 그칠 뿐 그 본질에 관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은혜의 선물은 성령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것이라며 그는 바울의 말을 인용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2:11)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로새서 1:17)
그레고리에게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분이므로 우주는 그리스도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과 함께 하지 않은 그리스도란 상상할 수 없으며 성령이 계시가 있어야만 그리스도에 관해 이해할 수 있다.
성령은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은혜를 선물로 주는데 선물을 창조한 분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성령과 그리스도를 한 데 묶어서 이해해야 하며, 성령은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비롯한다는 종속론을 주장했다.
그는 성령의 실체는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알려진다면서 성령의 실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하기 때문에 삼위는 각각의 성격을 지닌 독자적인 실체지만 본질에서는 일체를 이룬다는 삼위일체론을 지지했다.
또한 성령은 그리스도에 속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오는 경우도 있다면서 바울의 말을 인용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9)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2:12)
그레고리는 그리스도를 알면 그리스도 양편에 있는 하나님과 성령도 함께 알 수 있다고 하고 이는 하나님과 성령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리스도는 늘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고 하나님을 떠나 존재하는 경우는 없으며 성령으로부터 분리되는 일이 없으므로 성령을 통해서만 역사하는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면 신성을 지닌 그리스도와 성령을 동시에 알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삼위일체론의 중요한 점은 삼위의 실체가 각기 다를지라도 본질에서는 일체한다는 데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바질과 동명이인 그레고리 세 사람은 캅파도키아 학파를 형성했으며 용어를 구별해서 사용하는 방법으로 삼위가 한 본질(homoousios)임을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권위를 잃은 니케아 신조를 새삼 옹호하는 일에 전력했다.
캅파도키아 학파는 오리게네스의 개념을 받아들여 하나님은 한 본질(one ousia)이나 실체에 있어서는 셋(three hypostaseis)이라고 주장했는데 본질과 실체란 말을 이 같은 방법으로 구별한 것이다.
실체의 개념이 삼위일체론에 적용될 때 신격의 삼위는 그들 나름대로 특유한 성질과 속성을 가짐으로써 상호간에 구별되는 동시에 각기 특별한 존재형태를 취하게 된다.
당시 사람들은 본질과 실체를 같은 의미로 사용했으며 니케아 신조와 아타나시우스의 저서에서도 동의어로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캅파도키아 학파는 본질과 실체의 의미가 각기 다른 개념임을 들어서 많은 실체가 한 본질일 수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리스도, 성령은 이런 방법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안 캅파도키아 학파는 두 가지 예외를 인정할 경우에는 같은 방법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두 가지 예외란 첫째, 베드로와 마리아와 요한의 경우 세 사람이 서로 불일치할 수 있고, 그들은 다른 동기에서 각기 행동하며, 상이한 목적을 추구할 수 있으나 삼위의 경우에는 삼위가 늘 완전하게 일치가 되도록 행동하고 목적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둘째, 바질은 세 개의 구리동전을 예로 들어 세 개의 동전을 가지고 네 개의 동전을 다시 주조하려면 세 개의 동전을 한 덩어리의 구리로 녹인 후에야 가능하므로 재료(본질)와 동전(실체)은 구별된다고 했다.
캅파도키아 학파는 삼위의 경우 세 실체는 하나의 본질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형태라고 주장했다.
캅파도키아 학파의 주장에는 무리가 있었는데 이것은 그들이 그리스인의 독특한 개념에 지나치게 집착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의 개념을 번역해서 각 나라 사람에게 적용할 때 그리스인의 개념은 어려워지고 만다.
테르툴리아누스가 라틴어를 구사한 이래 많은 신학자들이 세 사람(three personae)은 한 실체(substantia)라는 말로 삼위일체를 주장했는데 ‘아래에 서 있는 것’이란 뜻의 실체는 본질(hypostaseis)이란 그리스어를 직역한 것에 불과하다.
한 마디로 캅파도키아 학파는 본질과 실체라는 말을 구분해서 사용한 것이 아니라 혼용한 것으로, 동의어를 상대적인 두 개념으로 사용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그리스어를 사용한 신학자들은 삼중성(threeness)을 강조하기 위해서 본질과 실체란 말을 사용한 반면 라틴어를 사용한 신학자들은 세 인격의 단일성(oneness)을 강조하기 위해서 본질과 실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사용한 신학자들이 본질과 실체란 말을 함께 사용한 것은 어쩌면 그들 신학의 근본적 차이를 은폐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그리스어를 사용한 신학자들은 늘 하나님과 그리스도, 성령이란 말을 함께 사용하면서 하나님에게만 기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성령에게도 기도했다.
그들의 신학적 과제는 세 실체를 한 본질 안에 병합시키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사람은 유일신에게만 기도했는데 그들의 신학적 과제는 한 실체에 세 인격을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어를 사용한 신학자와 라틴어를 사용한 신학자 모두가 설명할 수 없는 점을 설명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과거의 신학자들이 삼위일체론에서 논리적 모순을 드러냈다면서 신학자들은 셋이 하나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