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나시우스,  이레네우스와 오리게네스의 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데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아리우스주의와 그 이단자들을 후원한 황제의 권력에 대항해 오랜 동안 투쟁하는 과정에서 믿음의 수호에 앞장 선 사람은 아타나시우스였다.
니케아 회의에서 아리우스 신학을 성토하는 일에 전력을 다한 아타나시우스는 학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 태생으로 알렉산더가 328년에 사망하자 뒤를 이어 33살에 감독에 올랐다.
그의 생애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변화무쌍했다.
감독에 재직하는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제국의 변방으로 추방당했으며 이집트 광야에서 수년 동안 은둔했지만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를 지지했다.
77살에 타계할 때까지 그는 45년 동안 감독에 재직했다.
30살의 아타나시우스가 니케아 회의에서 아리우스를 비난할 때 아리우스는 75살의 늙은이였다.


아타나시우스는 주로 이레네우스와 오리게네스의 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데 23살때 저술한 『이방인에 대항하여 Oratio contra Gentes』와 『성육신에 관하여 De Incarnatione Verbi』를 보면 두 사람의 영향이 두드러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클레멘트와 오리게네스와 같은 알렉산드리아 학파 신학자들과는 달리 그리스도교의 믿음을 폐쇄적인 철학체계 속에 삽입시키려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발전시킴에 있어서 그리스 철학을 거부하고 대신 성경을 유일한 근저로 삼았으며 클레멘트처럼 신앙의 규범을 성경의 내용과 동일한 것으로 인식했다.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교의 전통도 성경과 불일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권위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367년 부활절 서신에서 적었듯이 신약성경을 가장 권위 있는 말씀으로 보고 신약성경의 내용을 원칙으로 신학을 정립했다.
또한 성경을 율법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성경을 그리스도와 그에 의해서 성취된 구원을 중심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마르틴 루터는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아타나시우스의 말을 상기하게 한다.


아타나시우스는 335년경에 『아리우스주의자들을 논박하는 글들 Orationes contra Arianos』을 썼는데 저서에서 예수로 태어난 그리스도에게는 신성이 있으며 아담이 하나님에게 불순종하여 생긴 원죄에 의해 상실한 인류의 인성을 그리스도가 회복했다고 한다.
그리스도가 창조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아리우스의 이론을 비난하고 오리게네스의 신학을 받아들여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본질을 지닌 채 태어난 분이라고 했다.
바울과 이레네우스의 신학도 받아들인 그는 그리스도를 제2의 아담으로 인식하고 구원이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의지함으로써 얻게 되는 도덕적 변화라고 했다.
아리우스가 주장한 대로 그리스도가 피조물에 불과하다면 피조물이 어떻게 같은 피조물인 인류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또한 그리스도가 예수의 영혼만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 육체도 함께 차지했기 때문에 예수의 인성이 신성으로 달라질 수 있었다고 보았다.


이렇게 아타나시우스는 하나님과 동등한 분인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는 죄와 죄의 저주인 사망을 용서받을 수 있으며 새 생명 즉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영생이란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 도덕적으로 말하면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이다.
즉 영생이란 신성을 지니는 것으로 사람이 신격화되어 하나님과 동등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구원은 불가해한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성령을 통하면 이해가 가능해지므로 성령은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신성을 지닌 분이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분이 아니라 태어난 분인데 이것이 보통 사람이 부모로부터 태어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이유는 그리스도가 시간 안에서 태어난 분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신성한 관계의 영원함을 언급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사람의 태어남과 같지 않다.
사람의 태어남은 하나님이 존재한 후에야 자신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의 속성은 무한하고 영원하기 때문에 그의 태어남도 마찬가지로 무한하고 영원해야 한다.


아타나시우스는 독창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종교에 있어서 실천적 요소를 간파했으며 구원의 종교에 대한 교회의 근본적 관심을 체계화할 줄 알았다.
그리고 동방 신학을 대표하는 오리게네스 학파의 순수한 철학적 관심을 무시해 버리고 교회를 구속자인 그리스도 위에 확립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그가 아리우스의 신학을 물리치고 마침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동질론에 대한 승리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이러한 신학적 입장의 표명 외에도 그의 확고부동한 태도였다.
교회의 화평을 바라는 많은 중립파 감독들은 그의 웅변술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분이며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항아리가 항아리를 창조한 토기장이의 속성을 전혀 공유할 수 없다는 비유를 들어 창조물은 창조자와 분리될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한 창조와 달리 태어나는 것은 아이가 부모의 실체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부모의 속성을 닮는 것임을 지적하면서 그리스도가 태어났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속성이 곧 하나님이란 뜻이지 피조물이란 뜻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태어났다는 말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같은 동질 또는 실체(substance, 그리스어로 homoousios)임을 뜻하는 것이다.


아타나시우스가 아리우스의 그리스도론을 반박한 근본이유는 아리우스가 제2의 하나님을 인정해 결국 그리스도교를 다신교로 만들려고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리우스의 주장대로 만일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등한 영원성과 본질을 지니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영지주의자들의 창조신에 비교할 만한 중간적인 존재 혹은 반신(半神) 반인간(半人間)의 존재에 해당할 것인데 이것은 피조물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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