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게네스는 젊었을 때 여자들에게 성경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클레멘트에게는 상당한 지식이 있었지만 진취적이지 못했으므로 신학을 진전시키기에는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절충주의적 태도를 취했다.
그는 그리스 철학을 그리스도가 사람에게 나누어 준 이성의 빛에 비유했으며 복음서에 나타난 이성의 빛을 깨닫는 데 철학이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영혼은 그리스 철학을 통해 믿음에 이르게 되며 이런 신앙의 터전 위에 진리는 지식의 체계로서 세워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철학을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방편으로 여겼는데 이 같은 사상을 제자 오리게네스가 받아들였다.
그리고 소극적인 방법이었지만 오리게네스에 의해서 삼위일체론과 일반적 신학이 제시되었다.


유스티누스와 클레멘트는 신성을 지닌 그리스도가 인류의 역사에 로고스의 씨앗을 심었다는 신학을 창조했다.
두 사람은 그리스도교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로고스를 부분적으로는 알 수 있다고 보았다.
두 사람은 구약성경과 이교철학에서도 로고스의 일부가 나타나지만 로고스가 전모를 드러낸 것은 그리스도에 의해서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오리게네스에 의해 보존되었으며 그는 로고스-그리스도론(Logos-Christology)을 창조했다.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그리스도인을 탄압하던 시기에 클레멘트가 알렉산드리아를 떠나자 오리게네스는 이듬해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지도자로 부상했다.
알렉산드리아는 그의 고향이었으며 부모는 신실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었다.
아버지는 202년 교회가 탄압받을 때 순교했다.
그때 오리게네스는 17살이었는데 참수당하기 위해 끌려가는 아버지를 따라 가려다가 제재당했다.
고아가 된 그는 남동생 여섯 명을 돌보아야 했다.


오리게네스는 18살 때 교리문답학교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학자와 교사가 될 소질을 보였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열정이 생기자 그는 직장을 버리고 책도 모두 팔아치우고 남은 여생 50여 년을 신학에 전념했다.
그는 마루바닥에서 잠을 잤으며, 고기를 먹지 않았고,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
겉옷은 한 벌 뿐이었고, 신발은 아예 없었다.
그의 독서량은 대단했는데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히브리어 실력이 우수해서 원전들을 유대인 학자들이 이해하듯이 했다고 한다.
그는 잃어버린 시편을 발견하여 그 중 4편을 소장했으며, 여리고에서는 항아리에 들어 있던 한 편을 몸소 발굴하기도 했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성경을 연구했으며 많은 분량의 주석을 쓰기도 했는데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현존하지 않는다.


제롬은 “오리게네스의 저서를 모두 읽어본 사람이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그가 얼마나 많은 저서를 집필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또한 저서에는 주석이 많은 데다 그 내용도 깊이가 있어 그의 신학의 깊이를 헤아린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는 성서적 신학을 확립했는데 성경의 한 구절이라도 놓치지 않고 해석하려는, 숨은 보화를 찾아내는 것과 같은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 철학을 배척하면서 그는 성경에 관한 지식만으로도 진리의 첩경을 삼을 수 있다고 했다.
그에 의해서 신학은 지성적으로 진전되었다.


유세비우스는 『교회사』에서 오리게네스가 어렸을 적부터 성경을 연구했다며 말했다.


오리게네스는 거룩한 말씀을 그저 문학적인 내용으로 읽는 것에 만족해하지 않고 좀더 유익한 점을 추구했으며, 어린 나이에 깊은 사색에 빠졌고, 성경의 영감에 관한 궁극적인 의미를 캐물어 아버지를 곤혹스럽게 만든 적이 있었다.


오리게네스는 플로티누스와 함께 스승 암모니오스 삭코스(Ammonios Sakkos)에게서 수학했는데 스승을 통해 초기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1세기 동안 알렉산드리아에서 급격히 발전한 플라톤주의에 심취했다.
이 사상은 고대 플라톤 사상의 연속이지만 고전적 플라톤주의를 순수이론보다는 종교성이 주요 요소가 된 포괄적 범세계주의 사상체계로 변형시킨 것이다.
여기에서 제시된 이데아세계는 단순한 관념의 세계만이 아니라 신성으로부터 온 영적 또는 정신세계를 의미한다.
이런 사상은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를 통해서 그리고 오리게네스의 신학을 통해서 부각되었다.


유스티누스와 마찬가지로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교를 수준 높은 철학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리스도가 플라톤이나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 제논보다 뛰어난 분이라고 믿었는데 이는 다신교를 극복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오리게네스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자랑일 뿐만 아니라 동방을 대표할 만한 신학자였다.


철학자 외에도 오리게네스는 언어학자, 비평가, 주석가, 교의학자, 변증론자, 논쟁자였다.
저서는 방대한 양에 이르지만 일부만이 현존하는데 정확한 성경의 원문을 결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헥사플라 Hexapla』를 썼다.
이것은 구약성경 원문에 대한 6개의 번역본을 원문 옆에 병기한 컬럼형식으로 쓴 것이다.
『헥사플라』는 극히 적은 부분만 현존하며 그의 설교집과 주석집도 부분만 현존한다.
제롬은 그가 무려 2000편을 저술했다고 한다.
저서 대부분 현존하지 않는 이유는 가톨릭이 그를 553년 제5차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오리게네스는 젊었을 때 여자들에게 성경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이 일이 문제가 되자 사역에 방해가 되는 육체의 요소를 제거했다.
다음과 같은 예수의 말을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마태복음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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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게네스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서 오류를 범하는 까닭이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오리게네스는 평생 성경의 영감에 관한 궁극적 의미를 캐는 일에 전념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이는 영지주의의 영향 때문이었다. 심오한 진리란 처음에는 비밀스러운 것일지라도 오래 숙고하면 그것이 계시하는 영감의 궁극적인 의미를 알 수 있다라는 신념에 회의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회의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눈으로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참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원리들에 관하여 On First Principles』에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하루, 이틀, 사흘 그리고 아침과 저녁에 태양, 달, 별이 없어질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농사꾼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에덴의 동쪽에 낙원을 만들었다”고 믿을 어리석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나님이 “서늘할 때 동산을 거닐었다”고 했을 때 나는 이것이 실재와 유사하면서도 실재의 사건이 아닌 어떤 신비를 시사하는 상징적 표현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이 의심 없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리게네스는 하나님에 관해 기록된 성경을 가르칠 때 문자의 뜻 그대로 가르치는 것이 마땅한 일이지만 “야만적이고 불의한 사람들이 믿지 않을 때는” 명확한 상징의 의미를 찾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성경의 심오한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언어에 관한 충분한 지식이 사전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담과 원죄에 관한 이야기에서 아담은 히브리어로 남자를 뜻하며, 아담과 관련해서 언급한 말에는 모세가 사람의 속성에 관해 시사한 점이 있는데 이 점을 아는 사람은 성경을 철학적으로 해석하게 될 것이다.


그는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1, 언어학적(somatic, body의 뜻이다) 해석으로 성경을 문자 그대로 직접적인 방법으로 해석하는 것인데 누구에게나 이해가 가능하다.

2, 도덕적(psychic) 해석으로 성경을 오늘날의 정황에서 해석하는 존재론적인 방법이다.

3, 정신적(pneumatic) 해석으로 도덕적이 아닌 신비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방법인데 소수의 지성인들에게만 이해가 가능할 뿐이다.


오리게네스는 성경에 신비적인 뜻으로만 기록된 구절이 있음을 밝히고 이런 구절은 은유적 방법을 통해 그 이면에 내재한 숨은 뜻을 발견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접적인 방법으로 언어적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을 두고 수준 낮은 그리스도인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구절 이면에 내재한 숨은 뜻을 발견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수준 높은 그리스도인의 태도라는 것이다.
그 예로 그리스 철학자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다면 구절 이면에 내재한 숨은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그의 능력으로 수준 높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 교리는 그리스인의 첫 걸음마에 해당하며, 둘째 걸음은 자율적 방법과 이성적 방법으로 성경의 숨은 뜻을 헤아리는 것이었다.
자율적인 방법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한 점은 훗날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강조된다.


오리게네스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서 오류를 범하는 까닭이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므로 고집이 세고 무지한 사람들은 성경을 읽어도 예수가 구세주임을 깨닫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가 구주임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로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서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점을 꼽았다.
고집이 세고 무지한 사람들은 예수가 포로에게 해방을 알려 주거나 옥에 갇힌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참 도성을 건립하지 않았으며, 에브라임과 예루살렘의 병거와 군마를 없애지 않아 양젖과 꿀을 먹지 못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또한 고집 세고 무식한 사람들은 예수가 이미 행위로 나타내어 실제로 벌어진 사건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가 구주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까닭도 영감에 관한 궁극적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리게네스는 성경에 불가해하고 신비스러운 내용이 적혀 있음을 시인하면서 롯이 두 딸과 섹스하여 아이를 낳은 것, 아브라함이 아내를 둘 거느린 것, 두 딸이 아버지 야곱의 아내가 되었고 두 여종이 야곱의 자식을 낳은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이런 내용들을 불가해하며 신비스러웠던 시기의 역사적인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잠언 1:6)는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복음서의 경우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일지라도 이면에 내재한 그리스도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서 바울의 말을 인용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린도전서 2:16, 참조 이사야 40:13-14)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함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린도전서 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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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게네스에게서 플라톤의 사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오리게네스는 요한계시록과 사도들의 편지에 심오한 진리가 내포되어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것을 두고 예수가 율법학자들에게 말한 지식의 열쇠를 가져야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이 비로소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성경으로부터 지식의 열쇠를 꺼낼 수 있다고 보았다.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1:52)


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기록하여
너로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 (잠언 22:20-21)

나는 너에게 서른 가지 잠언을 써 주지 않았느냐?
거기에 권고와 지식이 담겨 있다.
나에게 참되게 사는 길을 가르쳐,
참되게 사는 길이 어떤 것인지 누가 물을 때에
바른 대답을 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공동번역)


오리게네스는 보통사람에게는 ‘성경의 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명확하게 해석하는 방법으로 가르쳐야 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에게는 ‘성경의 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지혜를 깨달을 수 있는 방법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성숙한 사람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고린도 전서 2:6-7)에 언급한 사람이다.
성숙한 사람에게는 장차 나타날 훌륭한 것들의 그림자에 비유되는 영적인 율법으로 가르쳐도 그 가르침이 바르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로마서 7:14)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


오리게네스는 사람이 몸, 영혼, 영 세 가지로 구성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려고 제공한 성경도 ‘성경의 몸’, ‘성경의 혼’, ‘영적인 율법’ 세 가지로 구성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성경의 몸’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구절들은 ‘성경의 혼’ 또는 ‘영적인 율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는 ‘성경의 몸’에 해당하는 구절은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성경의 혼’에 해당하는 구절은 쉽게 이해되지 않으므로 해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고린도전서 9:9-10)


또한 ‘영적인 율법’에 해당하는 구절은 영적인 해석을 필요로 한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실체가)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


그는 율법서를 읽고서도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바울이 이를 비난했음을 지적했다.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본부인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갈라디아서 4:21-24)


오리게네스는 바울이 “율법으로 살기를 원하는 여러분 You who desire to be under the law”이라고 했지 “율법 아래에 있는 여러분 You who are under the law”이라고 기술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여러분은 율법을 들어 보지 못했습니까?”라는 말 가운데 들어 보지 못했느냐고 물은 것은 이해하지 못했느냐고 물은 것과 같다고 했다.
그리고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하나님과 독생자에 관한 내용, 성자로서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 그리스도가 육체의 형체를 지니고 지상으로 와서 완전한 인성을 가진 것에 대한 내용을 꼽으면서 예수가 누구를 위해서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행위했는가를 헤아리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에게서 플라톤의 사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는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물질을 하찮게 취급했으며 영혼의 궁극적 관심사만을 중요하게 여겼다.
오리게네스는 플라톤의 사상을 받아들였지만 심원한 진리에의 몰입을 위해 역사에서 등을 돌리지는 않았다.
그는 영혼이 죄에 빠지고 또 구속받는 사건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역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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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게네스 : 내 질문에 당신이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구려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한편 선한 사람이 수난을 당하고 사악한 사람이 평생 지복한 인생을 누리는 사실이 당시 사람들의 선과 악에 대한 문제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오리게네스는 선과 악의 문제는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보았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므로 모든 영혼에게 동등하게 자유를 허락했지만 천사로 존재하는 영혼 이외의 어떤 영혼이 사람이나 악마로 존재하는 이유는 그 영혼이 하나님의 은사를 잘못 사용한 까닭이라고 했다.
또한 영혼이 자유의지에 의해서 악마로 전락했더라도 구원받을 수 있는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라는 여지를 남겼다.


오리게네스는 218년에 팔레스틴을 방문했는데 그때 가이사랴(Caesarea)와 예루살렘의 감독으로부터 초빙 받아 교회에서 설교를 했다.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디메트리우스(Demetrius)는 안수를 받지 않고 설교하는 것은 교리를 위반하는 행위라며 그를 비난했다.
성직도 주지 않고 기회만 있으면 비판하려고 했기 때문에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온 오리게네스는 12년가량 집필에만 전념했다.


그는 230년에 다시 팔레스틴을 방문했으며 가이사랴 감독의 초빙을 받아 교회에서 설교했다.
이번에도 디메트리우스 감독은 교리를 내세워 가르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제제를 가해 줄 것을 가톨릭 교단에 요청했다.
그래서 오리게네스는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오지 않고 가이사랴에 정착한 후 그곳에 학파를 설립하고 집필에만 몰두했다.
그는 황제 데시우스(Decius)가 249-50년 그리스도인을 탄압할 때 체포되어 고문당했는데 건강이 그때부터 아주 나빠져 결국 254년에 세상을 떠났다.


오리게네스의 로고스-그리스도론은 신약성경을 근거로 한 이론이다.
여기서 율법과 예언을 준 구약의 하나님과 복음을 준 신약의 하나님은 동일하며 만물의 근원이 되고 우주를 창조하는 전지전능한 분이다.
그리고 창조적인 힘인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고, 하나님의 현존이며, 우주가 창조되기 전에 이미 존재한 분이다.
그리스도는 본질에서는 하나님과 동등(homoousios to patri)하다고 했는데 ‘동등한 본질’이란 말은 그가 처음 사용했다.
그리스도가 본질에서 하나님과 동등할지라도 그분의 대리자로 우주를 창조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한 수준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같은 본질이나 수준에서 등급을 부여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지만 하나님은 태어난 분이 아니기 때문에 본래부터 존재(auto theos)한 하나님은 그리스도에 비해 우수하고 그리스도는 열등할 수밖에 없다.
또 성령을 그리스도에 비해 열등하다고 했는데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은 그 우위 면에서 순위적이다.


오리게네스는 육체는 멸하지만 영혼은 불멸한다고 믿었으므로 영혼의 부활은 믿었지만 육체의 부활은 믿지 않았다.
그는 플라톤의 이원론을 받아들여 지각할 수 있는 물질은 일시적으로 존재할 뿐이나 지각할 수 없는 형상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사고는 바울의 신학과 일치한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린도후서 4:18)


오리게네스는 말년인 244년과 249년 사이에 아라비아에서 헤라클리데스(Heraclides)와 대화했는데 대화한 내용이 1941년 이집트에서 발견되었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당시 지식인들의 관심과 지성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파피루스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헤라클리데스 : 저는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을 믿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1-3)

우리는 요한의 말씀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가 육체의 형체를 지니고 태어났으며, 육체를 지닌 모습으로 부활하여 승천한 후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고,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사람으로 최후의 심판 때 지상으로 와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리게네스 : 하나님에 관해 의문이 생겼다면 논의해야 하는 것이 타당한 일이겠지요.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 관해 의문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의문에 대한 대답을 듣기를 바라지요.
교회마다 답변을 달리 한다면 그건 옳지 않은 일이지요.
장로 헤라클리데스, 난 당신에게 다음과 같이 묻고 싶구려.
스스로 존재하는 전능한 분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교리를 믿소?

헤라클리데스 : 믿습니다.
저는 교리를 믿습니다.

오리게네스 :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재했고, 육체를 지녔든지 않았든지 하나님이었지 않겠소?

헤라클리데스 : 그분은 과거에도 하나님이었지요.

오리게네스 : 그분이 육체를 지녔든지 않았든지 하나님이었지 않겠소?

헤라클리데스 : 그렇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었지요.

오리게네스 : 육체를 지니고 존재한 하나님과 육체를 지니기 전의 하나님은 구별이 되겠소?

헤라클리데스 : 물론 그분은 다른 존재들과 구별될 뿐만 아니라 우주를 창조한 분의 형상 안에 있는 한 그분은 창조주와도 구별이 되어야 할 줄 압니다.

오리게네스 : 하나님의 독생자인 그분은 우주가 창조되기 전 처음으로 태어난 분으로 하나님인데 하나님은 오로지 한 분뿐이라고 말하는 우리가 감히 두 분의 하나님이 있다고 말할 수가 있겠소?

헤라클리데스 : 선생님의 말씀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저희가 확인한 바는 이렇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전지전능한 분은 우주를 품고 있지만 그분은 어떤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그분의 말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사람이고, 그분에 의해서 우주가 창조되었으며, 그분은 성령에 의해서 사람의 몸으로 마리아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오리게네스 : 내 질문에 당신이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구려.
당신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 보구려.
내가 당신의 대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소.
아버지가 하나님이란 말이오?

헤라클리데스 : 물론입니다.

오리게네스 : 아들은 아버지와 구별되는 분이란 말이오?

헤라클리데스 : 물론입니다.
그분이 아버지이면서 어떻게 아들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오리게네스 : 아들이 아버지와 구별된다면 아들도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겠소?

헤라클리데스 : 아들 역시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리게네스: 그렇다면 하나님이 유일하다는 말은 두 분의 하나님이 유일하다는 말이오?

헤라클리데스 : 그렇습니다.

오리게네스 : 우리가 두 분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고백할 수가 있겠소?

헤라클리데스 : 그렇습니다.
능력은 하나니까요.

오리게네스 :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인에게 두 분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말하면 그리스도인이 반발할 테니 조심스럽게 교리를 만들어야 할 것이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두 분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 두 분이 유일한 하나님이 되는가를 설명해야 할 것이오.
성경의 몇 군데서도 두 분이 유일한 하나님이라고 가르치고 있소.
두 분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두 분 이상 많은 분을 유일한 하나님이라고 가르치고 있소.
우리가 이제 해야 할 일은 문제가 되는 점을 풀어야 할 뿐만 아니라 단순한 마음을 가진 대중을 위해서 그들이 고기를 씹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청취자들의 귀에 점차 스며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여러 곳에 두 분이 유일한 분이라고 기록되어 있소.
성경의 어느 구절을 말하느냐구?
아담이 한 사람이고 아내가 또한 한 사람이라는 구절이오.
아담은 아내와 구별되며 아내는 남편과 구별되지만 창조설화에는 두 사람을 한 몸이라고 기록하고 있소.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세기 2:24, 마태복음 19:5)

그러므로 두 분은 때에 따라서 한 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의 경우 유의할 점은 두 사람이 한 영이 된다고 하지 않고, 한 혼이 된다고도 하지 않으며, 한 몸을 이룬다고 했소.
그리고 의인은 그리스도와는 구별이 되나 사도(바울)는 의인이 그리스도와 일체가 된다고 말했소.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고린도전서 6:17)

그리스도는 신성을 지닌 분이고 사람은 그분에 비해 열등한 존재인 데도 찬양과 복을 받을 수가 있겠소?
그런 경우 사람과 그리스도는 더 이상 둘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소?
남자와 아내는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라고 했지만 의인과 주는 영적으로 하나라고 하지 않았소?
우리의 구주와 주는 우주의 하나님인 아버지와의 관계가 한 몸도 아니고, 한 영도 아니며, 몸과 영보다도 더욱 고상한, 말하자면 한 분의 하나님과 일체가 되는 관계라 하겠소.
남자가 아내와 일체가 되는 것은 몸으로서이고, 의인과 그리스도가 일체가 되는 것은 영으로서이나 그리스도가 아버지와 일체가 되는 것은 몸도 영도 아닌 그것들보다도 고상한 하나님이요.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의 구절을 이해해야 할 줄 아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한복음 10:30)

기도에서 우리는 신성과 인성을 보존하면서 두 분을 한 실체로 말해야 할 것이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첫째, 성자를 성부로부터 구분하여 결국 성부까지도 부인하는 환상적인 군주국의 관념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가 있소.
둘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불경한 교리를 가진 사람들의 의견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소.
다음과 같은 성경의 구절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부터 구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성부와 일체라는 뜻이 아니겠소?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이사야 43:10)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 (신명기 32:39)

위와 같은 구절은 예수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한 말과 같은 의미라고 말해야 할 것이오.
이 같은 교리에 관해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는 까닭은 교회 내에 의견이 분분한 때문이오.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감독의 서명을 요구했고, 의심이 가는 감독들에게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보는 앞에서 서명하도록 해서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관해 논쟁하거나 더 이상 그런 문제로 시끄럽지 않도록 방지했소.
하나님의 허락함과 둘째 감독들과 셋째 장로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허락으로 다시금 나의 의견을 말하리다.
예배는 신성에 있어 성부와 동등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전지전능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오.
예배는 둘일 수가 없고 한 예배를 성자를 통해서 성부께 드리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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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트와 오리게네스로 대표되는 동방 신학의 특색은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결론적으로 클레멘트와 오리게네스로 대표되는 동방 신학의 특색은 신앙 또는 믿음(pistis)과 믿음의 내용에 관한 심오한 지식(gnosis)의 관계에 중점을 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클레멘트는 “아는 것이 믿는 것보다 낫다”라고 했는데 그에게 있어서 믿음은 하나님을 외면적으로 그리고 그리스도를 문자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가 말한 믿음에는 심오한 지식의 요소가 이미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이 심오한 지식은 구원을 획득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평범한 믿음에서부터 하나님의 신비한 지혜를 통찰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상태로 승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철학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클레멘트로부터 철학이 이방인을 위해 하나님이 나타낸 로고스라는 사상을 받아들인 오리게네스는 예수에게서 로고스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을 가르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했다.
당시 성경을 은유적인 방법으로 해석하는 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일반적이었는데 오리게네스는 은유적인 방법을 더욱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신학자였다.
그는 복음의 어리석음을 숨기고 지혜를 더욱 고상하게 만들었다.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는 영적인 것만을 실재라고 했으므로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추상적 개념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의인적인 표현을 조심스럽게 배제했다.
그는 하나님은 선하고, 무소부재하며,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계시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계시를 떠난 하나님이란 상상할 수도 없었고, 그의 창조활동 자체가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었으며, 그에게 그리스도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였다.
그는 신플라톤주의를 받아들여 하나님으로부터 그리스도(누스, nous, 로고스 또는 이성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가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성부로부터 성자가 태어난(genesis)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하나의 인격으로 이해하면서 태초에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한 실체 또는 본질이라고 했다.


오리게네스에게 그리스도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영원히 선재한 분이었다.
그는 “그리스도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는 결코 없었다”고 하며 그리스도의 탄생이 영의 세계가 신성으로부터 나온 것과 같은 유출(emanation)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관계는 무엇일까?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본질에서는 동일하지만 하나님에게 종속되었다는 논리로 그리스도는 제2의 하나님이라는 즉 동일본질(homoousios)과 종속론을 주장했다.
또한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구원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폈다.
사람은 이지적 세계로부터 유출된 하나의 영으로서 혼에 의해서 움직이게 된 육체 속에 융합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영의 세계로 다시 올라가야 한다.
그곳에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다시 연합할 수 있는데 이는 사람이 된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의 혼이 자신의 순수한 상태를 상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오리게네스의 신학에는 전형적인 플라톤의 철학이 결합된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신학은 부분적으로 철학화되었으며 이는 성서적인 것과 무관하다.
예를 들면 이지적인 세계가 신성으로부터 유출되었다든지, 만물이 궁극에 가서는 다시 회복된다든지, 물질적이며 육체적인 모든 것들의 존재가 멈출 것이라는 등의 주장들이 그렇다.
이런 점을 제외하면 그의 신학은 그리스도교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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