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게네스에게서 플라톤의 사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오리게네스는 요한계시록과 사도들의 편지에 심오한 진리가 내포되어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것을 두고 예수가 율법학자들에게 말한 지식의 열쇠를 가져야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이 비로소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성경으로부터 지식의 열쇠를 꺼낼 수 있다고 보았다.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1:52)
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기록하여
너로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 (잠언 22:20-21)
나는 너에게 서른 가지 잠언을 써 주지 않았느냐?
거기에 권고와 지식이 담겨 있다.
나에게 참되게 사는 길을 가르쳐,
참되게 사는 길이 어떤 것인지 누가 물을 때에
바른 대답을 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공동번역)
오리게네스는 보통사람에게는 ‘성경의 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명확하게 해석하는 방법으로 가르쳐야 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에게는 ‘성경의 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지혜를 깨달을 수 있는 방법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성숙한 사람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고린도 전서 2:6-7)에 언급한 사람이다.
성숙한 사람에게는 장차 나타날 훌륭한 것들의 그림자에 비유되는 영적인 율법으로 가르쳐도 그 가르침이 바르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로마서 7:14)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
오리게네스는 사람이 몸, 영혼, 영 세 가지로 구성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려고 제공한 성경도 ‘성경의 몸’, ‘성경의 혼’, ‘영적인 율법’ 세 가지로 구성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성경의 몸’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구절들은 ‘성경의 혼’ 또는 ‘영적인 율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는 ‘성경의 몸’에 해당하는 구절은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성경의 혼’에 해당하는 구절은 쉽게 이해되지 않으므로 해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고린도전서 9:9-10)
또한 ‘영적인 율법’에 해당하는 구절은 영적인 해석을 필요로 한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실체가)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
그는 율법서를 읽고서도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바울이 이를 비난했음을 지적했다.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본부인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갈라디아서 4:21-24)
오리게네스는 바울이 “율법으로 살기를 원하는 여러분 You who desire to be under the law”이라고 했지 “율법 아래에 있는 여러분 You who are under the law”이라고 기술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여러분은 율법을 들어 보지 못했습니까?”라는 말 가운데 들어 보지 못했느냐고 물은 것은 이해하지 못했느냐고 물은 것과 같다고 했다.
그리고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하나님과 독생자에 관한 내용, 성자로서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 그리스도가 육체의 형체를 지니고 지상으로 와서 완전한 인성을 가진 것에 대한 내용을 꼽으면서 예수가 누구를 위해서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행위했는가를 헤아리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에게서 플라톤의 사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는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물질을 하찮게 취급했으며 영혼의 궁극적 관심사만을 중요하게 여겼다.
오리게네스는 플라톤의 사상을 받아들였지만 심원한 진리에의 몰입을 위해 역사에서 등을 돌리지는 않았다.
그는 영혼이 죄에 빠지고 또 구속받는 사건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역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