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티누스는 로고스가 예수의 몸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유스티누스는 로고스가 예수의 몸, 마음, 영혼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예수를 통해 무지한 사람들도 삶과 죽음에 관한 실존적 진리를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과거에는 철학자들이 교육을 통해 로고스를 가르쳤지만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에 소수만이 로고스를 이해할 수 있었고 대부분은 계속해서 무지한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예수가 명료하게 로고스를 직접 계시해 주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로고스를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 그는 예수를 가리켜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철학자라고 했다.


유스티누스는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를 비난하면서 이것들은 소크라테스와 예수를 살해하도록 부추긴 악마의 작품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예수 또한 신에 대한 불경죄로 처형당한 것이기 때문에 로고스의 산물인 철학자와 그리스도인은 악마의 종교와 투쟁하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예수가 구약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성취하여 구원의 새 역사를 열고, 도덕적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구원한 일을 통해 모세의 율법을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두 가지로 요약했다고 하며 예수를 제2의 모세에 비유했다.


『트리포와 대화』에서 유스티누스는 예수가 하나님의 독생자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했는데 이는 신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당시는 예수의 인성과 신성에 관해 논란이 격심했다.
1세기에 유대인-그리스도인은 에비온주의(Ebionitism)을 주장하고 있었다.
유대인-그리스도인이란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유대인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종교적 분파를 일컫는 말로 66년경 유대교의 탄압이 심할 때 요단강 동쪽으로 축출되었다.
이들의 독특한 사상을 에비온주의라고 하는데 바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요소를 자신들의 사상에 혼합시킨 것이다.
에비온주의는 ‘가난한 자’라는 뜻의 에비오님(evionim)에서 비롯한 말로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이 가난함에서 연유한 명칭이다.
신학자들은 근래 발견된 사해사본(Dead Sea Scroll)을 근거로 에세네파(Essene)와 에비온파가 동화되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에비온파는 모세 율법의 유효함을 신봉했으며 개종자에게 율법을 강요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펼쳐질 ‘메시야 왕국’을 고대했는데 유대교의 시온주의(Zionism)와 유사한 데가 있다. 교회를 새 이스라엘로 인식하기는 이스라엘 밖의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율법에 대한 엄격한 적용은 달랐다.
바울이 율법의 무효를 주장한 일로 인해 에비온파는 이스라엘 밖의 그리스도인과 불화할 수밖에 없었다.


에비온파는 예수가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예수를 “단순히 사람에 지나지 않는 자”로 부르면서 그리스도의 선재(preexistence)를 부인했고 따라서 성육신(incarnation)과 동정녀 탄생도 부인했다.
그들은 예수가 요한으로부터 세례받을 때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택함을 받았다고 했으며 세례 받을 때와 부활할 때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들은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사망과 부활과 관련이 없으며 천 년 왕국이 시작되는 예수가 재림할 때에 구원이 가시적인 실재로 나타난다고 했다.
에비온파는 약 350년 동안 존속하다가 사라져 그리스도 신학에는 별로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모하멧(Mohammedanism)에는 영향을 주었다.
모하멧교는 참선지자(true prophet)의 개념과 모세와 예수를 동등하게 취급하는 사상으로 예수를 모세와 마찬가지로 위대한 선지자라로 취급한다.


에비온주의에 비교되는 것이 도세티즘(Docetism)인데 주로 2세기 영지주의자들에 의해서 주창되었다.
도세티즘을 환영설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에비온주의자들과는 달리 예수에게서 신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도세티즘을 주장한 사람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신성을 지닌 성년의 모습으로 갑자기 나사렛에서 출현했다고 했다.
예수의 신성에 관한 당시의 신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을 때 비로소 예수는 신성을 가질 수 있었다.
이 같은 인식은 다음의 구절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쌔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3:21-22)


2. 처녀 마리아의 자궁에 수태될 때 신성이 이미 예수에게 내재해 있었다.
이 같은 인식은 다음 구절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 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태복음 1:18)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누가복음 1:35)


3. 예수는 그리스도의 성육신된 모습이며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신성을 지녔다.
이 같은 해석은 다음 구절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


하나님의 외아들 그리스도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유스티누스의 신성론에는 2와 3의 요소가 포함된다.
그는 성령에 의한 수태를 신성이 마리아의 자궁에 수태된 것으로 해석하지 않고 단지 그리스도가 성육신되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이 혼동했듯이 그도 그리스도와 성령을 혼동했던 것이다.
그는 마리아에게 수태된 것이 성령이 아니라 그리스도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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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누스는 『제1 변증서』에서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유스티누스는 『제1 변증서』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무차별 탄압을 비난하면서 정죄하려면 죄명을 분명하게 밝혀야 하고, 범죄의 내용도 지적해야 한다고 하며, 단지 그리스도인이란 이유만으로 정죄하는 것에 대해 반론을 펼쳤다.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황제로 막 즉위한 때인 161년에 『제2 변증서』를 원로원에 제출했다.
『제2 변증서』에서는 온전한 로고스가 예수로 성육신되었으므로 예수에 의해서 구원의 진리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고, 그가 어두운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밝혀 주었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아담이 하나님에게 불순종했으므로 인류가 아담의 죄를 상속받아 부패해졌다고 했는데 유스티누스는 바울과 견해를 달리 했다.
그는 부패의 원인으로 악마에 의한 기만을 꼽으면서 사람이 진리로부터 멀어지고 부패해진 것은 사악한 관습에 의한 해로운 영향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스도가 성육신된 것은 인류로 하여금 진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며 예수를 신성을 지닌 교사이자 가장 이상적인 사람으로 정의했다.
바울의 신학이 유대교를 근본으로 삼았다면 이러한 유스티누스의 신학은 스토아 철학과 연합한 이성주의를 근본으로 삼았다고 말할 수 있다.


유스티누스는 로마로 가서 크리스천 아카데미(Christian Academy)를 창설했다.
그러나 그는 황제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았다는 불경죄로 165년에 로마에서 참수되었다.


엥겔하르트(Moritz von Engelhardt)는 저서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그리스도교 Das Christentum Justinus des Maertyrers』(1878)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유스티누스는 자기가 그리스도인이기를 바랐으며 사실 그의 신앙으로 보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만하다.
그러나 그는 만사에 있어 이교도적 세계관에 의존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면서 동시에 이교도였다.


엥겔하르트 외에도 유스티누스를 비판한 사람이 많이 있다.
아돌프 본 하르낙(Adolf von Harnack, 1851-1930)은 저서 『교의사 Lehrbuch der Dogmengeschichte』(1890)에서 “변증가들은 그리스도교를 자연신적 종교(deistical religion)로 만들었다”고 했다.
하르낙은 변증가들의 신학이 내용으로 보면 당시 이상주의 철학과 거의 다름이 없지만 그들의 종교는 한 하나님과 덕, 불멸을 강조하는 합리적인 종교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변증가들에 대해 이해해야 할 점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방과 중상을 변호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비방자들이 구사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철학자들은 순수한 이론과 합리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영혼의 치유 즉 번뇌와 고난을 겪는 지식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론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의 풍조에 따라서 유스티누스도 철학의 순수이론보다는 종교의 역할에 관심이 더욱 많았다.
그에게 있어서 “철학의 임무는 하나님에 관한 교훈을 주고 사람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조명하는” 일이었다.
그리스도교가 가장 우수한 철학이라는 그의 말은 그리스도교가 “참된 종교로서 올바른 구원의 길,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로 이끌어 주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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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영지주의(Gnosticism)는 그리스도교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그리스도교와 관련한 영지주의는 1세기에 다양하게 발전한 여러 사상적 학파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교를 보편적인 종교, 철학적 사상 체계 속에 포함시키려고 했는데 그들의 특징은 신비주의, 우주론적 사유,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뚜렷하게 구분하는 이원론(dualism)이다.
그들은 물질세계에 갇힌 영혼의 해방을 강조했으며 윤리적으로는 극단적인 금욕주의를 표방했다.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래 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
빌립이 하나님 나라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 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 (사도행전 8:9-24)


사마리아 사람 시몬은 스스로를 가리켜 “하나님의 능력”이라며 그리스도를 가장했다.
교부들은 시몬 마구스(Simon Magus)가 영지주의자라는 점에 동의했다.
시몬은 율법으로부터 해방을 선포했으며 구원이 선행으로 인해 획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시몬)을 믿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부들은 시몬의 가르침을 모든 이단의 원형이 되는 교설로 간주했다.


영지주의자들의 사상은 그것에 관한 교부들의 비난을 통해 알려졌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 신학을 교부들의 전매특허품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교부들을 거치지 않더라도 개인의 노력으로 그노시스를 획득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연히 교부들과 불화했다.
그들은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받았는데 예수가 로고스를 이해할 수 있는 신비로운 지식과 영원한 정신세계에 속할 수 있는 삶(zoe) 즉 영생을 준다고 믿었다.
신비로운 지식은 과학이 미칠 수 없는 정신적 지식(athanatod gnosis)을 말한다.
그들은 정신적 지식인 로고스가 사람을 영원하게 만든다고 믿었다.
당시 그리스인의 지성주의(intellectualism)에는 실존적 지식(existential knowledge, 과학적 지식에 상반되는 개념이다)이 편중되었는데 영지주의자들은 실존적 지식이야말로 지식 중에 최고의 지식으로 여겼다.
그들에게 지식과 존재는 분리될 수 없는 일체였다.


우리는 앞서 유스티누스에게서 영지주의적 요소를 발견했다.
獨瑙㈅纘謬볕?로고스에 관해 말했기 때문에 엘리야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초대교회 교인들이 소크라테스를 하나의 도덕적 모범으로 삼았음을 본다.
여기서 교부시대의 도덕주의적 특색을 알 수 있다.
지식과 선행을 동일시한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영지주의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에게서 이런 사상이 발견되며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교부들에게서도 이런 사상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플라톤은 이데아와 현상세계를 언급하면서 실재세계는 오직 관념의 세계뿐이라고 했다.
변전무상한 현상세계는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이데아 세계에 참여하는 한에 있어서 실재적 성격을 지닌다.
이데아 세계만이 선의 세계라는 플라톤의 이 같은 이원론적 세계 사이의 형이상학적 구별은 윤리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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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누스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교부들은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유스티누스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교부들은 선의 세계의 정점을 하나님으로 이해했다.
플라톤 철학에 근거한 그들은 하나님은 선이기 때문에 모든 선하고 유익한 사물의 근원이며 악의 원인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모든 고통의 원인을 다른 데서 찾아야 했다.
하나님은 변치 않는 존재로서 때에 따라서 고의적으로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 사람을 기만하고 자기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게 만드는 마술사와 같은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선의와 아름다움과 우월의 완성이기 때문에 그에게서 어떤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은 곧 그보다도 나쁜 상태로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플라톤은 저서 『티마이오스 Timaeus』에서 신을 영원한 모형에 따라서 우주를 만든 창조주 아버지 및 장인 등으로 불렀다.
이런 플라톤의 사상은 교부들의 환심을 샀으며 그들의 신학에 영향을 주었다.


플라톤은 영혼이 불멸하는 증명으로서 영혼의 비물질성, 단순성, 생명력, 영원적인 이데아를 파악하는 능력 등을 꼽았는데 이런 증명을 교부들이 받아들였다.
플라톤은 저서 『파에도 Phaedo』에서 영혼은 신적 존재를 꼭 닮으며, 불멸적이고, 이성적이며, 균일적이고, 불가분리적이며, 변함이 없다고 했다.
만일 영혼이 외부로부터 움직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적인 것이라면 시작과 끝이 없는 불멸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유언을 전했다.


나는 인간이 다시 산다는 것을 믿는다.
또 인간이 죽더라도 영혼은 남아 있으며 선한 영혼은 악한 영혼보다 좋은 곳에 간다는 것을 믿는다.…
너희가 만일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나를 매장해도 좋다.…
그러나 너희는 오직 나의 육체만을 매장할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라.


그리스어 그노시스(gnosis)에는 세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일반적 지식(knowledge)과 지혜(wisdom) 또는 신비적 교섭과 성적 교섭을 뜻하는데 성적 교섭이란 남편과 아내가 일체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그노시스를 정신적 지식이라고도 말하는 이유는 과학적 지식과는 달리 신비적 교섭 또는 성적 교섭과 구원을 소망하는 지식이며 동시에 삶과 죽음에 관한 실존적 지식이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자들은 플라톤의 영혼불멸설과 스토아 철학자들의 로고스론을 받아들였는데 이들이 철학으로부터 도움을 구한 이유는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이므로 철학으로부터 신비스러운 지혜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눈으로 지각(sense)할 수 있는 물질세계와 눈으로 지각할 수 없는 이데아(Idea) 또는 정신세계가 양립하는 이원론을 주장하면서 사물은 불변하는 정신세계에 속한 형상의 이미지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지각을 통해서는 이미지만을 볼 수 있을 뿐 정신세계의 형상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플라톤은 지각을 진리의 첩경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정신세계의 형상은 지각의 대상이 아니라 영혼의 대상이었다.
불변하는 형상을 영혼이 어떻게 체험으로 알 수 있을까?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통해 바커스 종교의 개신교라고 말할 수 있는 피타고라스의 신비주의 종교 오르피즘(Orphism)의 영향을 받았다.
오르피즘은 영혼이 불멸하고 윤회한다고 가르쳤고 이에 플라톤은 영혼이야말로 불변하는 형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 믿었다.
육체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면 영혼이 불변하는 형상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플라톤에게 불변하는 형상을 본다는 것은 전생에서 얻은 지식을 기억하는 것을 뜻했다.
3세기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를 주창한 플로티누스(Plotinus)는 영혼이 우주에 내재하는 역동적인 힘 즉 신성과 교섭할 수 있다고 했다.
다음의 말에서 그의 신비주의적 요소를 발견한다.


영혼은 생명의 원천, 지성의 원천, 존재의 시작, 선의 우물, 영혼의 뿌리를 응시한다.
미지의 양식에 관한 것이 아닌 한 그것은 사실 좀처럼 시야에 포착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아로부터의 벗어남이며, 단순해지는 것이고, 포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의 삶이며, 신과도 같은 자들의 삶이고, 사람에게 내려진 축복이며, 우리를 에워싼 이방인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지상에 속한 쾌락을 취하지 않는 삶이며, 고독으로부터 고독으로 이어지는 통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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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에 영향을 준 개념들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신학에 영향을 준 개념들 가운데 스토아 철학의 로고스가 두드러졌다.
로고스는 플라톤의 불변하는 형상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순수 현존(actus purus)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과 신이 비물질이란 점에서는 플라톤의 견해에 동조했지만 영혼을 이성적인 요소와 비이성적인 요소로 구분했다.
그리고 신은 이성적인 요소만을 지닌, 그 자체로서 완전한 최고의 형상이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신은 순수 현존이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로고스를 만물에 내재한 신성을 지닌 힘으로 이해했는데 만물을 움직이는 창조적인 힘 또는 자연법칙을 로고스라는 말로 대신한 것이다.
그들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적 법칙도 자연법칙에 포함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로고스는 만물을 섭리하는 창조적인 힘 외에도 도덕의 규범이 되는 윤리였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는 금욕주의야말로 로고스에 합당하다고 믿었는데 영지주의자들은 스토아주의 윤리가 예수의 윤리에 부합하는 것으로 여기고 금욕주의를 이상적인 도덕규범으로 받아들였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사람을 로고스를 지닌 이성적인 동물로 정의한 데 비해 구약과 신약성경 저자들은 하나님의 영을 지닌 자녀로 정의했다.
스토아 철학자와 성경 저자들 모두 로고스에 대한 무지를 경멸했지만 성경 저자들이 하나님에 관한 무지를 죄악으로 여긴 반면 스토아 철학자들은 로고스에 관한 무지를 죄악으로까지 여기지는 않았다.
구원이란 말을 스토아 철학에 적용한다면 철학자들에게 구원이란 교육을 통해 무지의 상태로부터 벗어나 지혜로워지는 것이었다.
교부들도 하나님에 관한 무지의 상태로부터 벗어나 지혜로워지는 것을 구원이라고 했지만 교육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린 문제로 보았다.
이교도가 그리스도교의 구원론을 절망적이라고 비난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스토아 철학과 신학의 이런 차이는 오늘날의 지식인들에게도 상충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주를 지배하는 합리적 원리인 신성 또는 로고스가 사람의 이성에 내재한다고 했는데 그들에게 로고스 또는 이성은 곧 천성이었다.
요한은 로고스를 말씀과 동의어로 사용했는데 그에게 로고스는 지혜와 성령, 그리스도에 대한 동의어이기도 했다.
말씀, 지혜, 성령은 신성을 나타낸 말들로 하나님의 아들 또는 그리스도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이렇듯 영지주의는 고대 후기에 나타난 철학에 의존한 이성주의 종교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고 여러 종교의 요소를 골고루 갖춘 종합적 종교라고도 말할 수 있다.
영지주의를 제설혼합주의(syncretism)라고 말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폴 틸리히는 저서 『신학사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1967)에서 영지주의가 발생하게 된 동기를 요약했다.


1, 알렉산더 대왕과 로마 제국의 부상으로 각 나라의 고유한 종교가 무너진 때문이다.

2, 철학이 신화를 이성주의 방법으로 해석한 때문이다.

3, 고대 신비주의 관습이 재활한 때문이다.

4, 동양으로부터 정신적이고 마술적인 요소가 서양으로 유입되었는데 제국들이 동양을 지배하면서부터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


제국주의 말렵 경제적 침체와 함께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자 사람들은 안정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도시국가와 소왕국들의 고유한 문화와 종교가 제국들에 의해서 소멸되었으며, 지식인들은 정신적인 자원이 고갈되었다고 느꼈고,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대한 소속감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되어 정신적으로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영지주의자들은 여러 이교와 그리스도교의 요소를 한 데 융합시킴으로써 모든 정신적 혼란을 타개하고 고대 세계를 회생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알렉산드리아 사람 클레멘트가 인용한 데오도투스(Theodotus)의 글에서 당시 지식인들의 방황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누구였고, 무엇이 되었으며, 어디에 있었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구속을 받고 어디를 향해 서두르고 있는가.
출생은 무엇이며 중생이란 또한 무엇일까.


영지주의자들은 여러 가지 사변적 종교철학을 종합했지만 그것이 주된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철학의 문제는 이차적이었으며 궁극적인 관심은 구원에 있었다.
구원이 목적이었으므로 신적 계시, 신비적 경험, 상징적 형식의 마법, 금욕주의의 실천 등에 관심이 기울였으며 구원과 관련된 불멸의 지식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이교의 신비적 의식을 모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였다.
그들은 신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세계는 어디에서 생겼을까?
사람은 어디에서 왔을까?
악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우리에게 나타난 영혼과 물질의 신비스러운 결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은 왜 물질로부터 구속받는 것일까?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구원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구원을 베푸는 분은 누구일까?
사람이 어떻게 영원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등에 관심이 많았다.
영지주의자들이 바란 것은 한 마디로 해탈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금욕주의로 육체를 다스리면서 오래 명상하기를 즐겨했고 신과의 교섭을 고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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