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티누스는 『제1 변증서』에서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유스티누스는 『제1 변증서』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무차별 탄압을 비난하면서 정죄하려면 죄명을 분명하게 밝혀야 하고, 범죄의 내용도 지적해야 한다고 하며, 단지 그리스도인이란 이유만으로 정죄하는 것에 대해 반론을 펼쳤다.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황제로 막 즉위한 때인 161년에 『제2 변증서』를 원로원에 제출했다.
『제2 변증서』에서는 온전한 로고스가 예수로 성육신되었으므로 예수에 의해서 구원의 진리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고, 그가 어두운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밝혀 주었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아담이 하나님에게 불순종했으므로 인류가 아담의 죄를 상속받아 부패해졌다고 했는데 유스티누스는 바울과 견해를 달리 했다.
그는 부패의 원인으로 악마에 의한 기만을 꼽으면서 사람이 진리로부터 멀어지고 부패해진 것은 사악한 관습에 의한 해로운 영향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스도가 성육신된 것은 인류로 하여금 진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며 예수를 신성을 지닌 교사이자 가장 이상적인 사람으로 정의했다.
바울의 신학이 유대교를 근본으로 삼았다면 이러한 유스티누스의 신학은 스토아 철학과 연합한 이성주의를 근본으로 삼았다고 말할 수 있다.


유스티누스는 로마로 가서 크리스천 아카데미(Christian Academy)를 창설했다.
그러나 그는 황제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았다는 불경죄로 165년에 로마에서 참수되었다.


엥겔하르트(Moritz von Engelhardt)는 저서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그리스도교 Das Christentum Justinus des Maertyrers』(1878)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유스티누스는 자기가 그리스도인이기를 바랐으며 사실 그의 신앙으로 보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만하다.
그러나 그는 만사에 있어 이교도적 세계관에 의존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면서 동시에 이교도였다.


엥겔하르트 외에도 유스티누스를 비판한 사람이 많이 있다.
아돌프 본 하르낙(Adolf von Harnack, 1851-1930)은 저서 『교의사 Lehrbuch der Dogmengeschichte』(1890)에서 “변증가들은 그리스도교를 자연신적 종교(deistical religion)로 만들었다”고 했다.
하르낙은 변증가들의 신학이 내용으로 보면 당시 이상주의 철학과 거의 다름이 없지만 그들의 종교는 한 하나님과 덕, 불멸을 강조하는 합리적인 종교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변증가들에 대해 이해해야 할 점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방과 중상을 변호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비방자들이 구사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철학자들은 순수한 이론과 합리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영혼의 치유 즉 번뇌와 고난을 겪는 지식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론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의 풍조에 따라서 유스티누스도 철학의 순수이론보다는 종교의 역할에 관심이 더욱 많았다.
그에게 있어서 “철학의 임무는 하나님에 관한 교훈을 주고 사람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조명하는” 일이었다.
그리스도교가 가장 우수한 철학이라는 그의 말은 그리스도교가 “참된 종교로서 올바른 구원의 길,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로 이끌어 주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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