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에 영향을 준 개념들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신학에 영향을 준 개념들 가운데 스토아 철학의 로고스가 두드러졌다.
로고스는 플라톤의 불변하는 형상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순수 현존(actus purus)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과 신이 비물질이란 점에서는 플라톤의 견해에 동조했지만 영혼을 이성적인 요소와 비이성적인 요소로 구분했다.
그리고 신은 이성적인 요소만을 지닌, 그 자체로서 완전한 최고의 형상이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신은 순수 현존이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로고스를 만물에 내재한 신성을 지닌 힘으로 이해했는데 만물을 움직이는 창조적인 힘 또는 자연법칙을 로고스라는 말로 대신한 것이다.
그들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적 법칙도 자연법칙에 포함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로고스는 만물을 섭리하는 창조적인 힘 외에도 도덕의 규범이 되는 윤리였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는 금욕주의야말로 로고스에 합당하다고 믿었는데 영지주의자들은 스토아주의 윤리가 예수의 윤리에 부합하는 것으로 여기고 금욕주의를 이상적인 도덕규범으로 받아들였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사람을 로고스를 지닌 이성적인 동물로 정의한 데 비해 구약과 신약성경 저자들은 하나님의 영을 지닌 자녀로 정의했다.
스토아 철학자와 성경 저자들 모두 로고스에 대한 무지를 경멸했지만 성경 저자들이 하나님에 관한 무지를 죄악으로 여긴 반면 스토아 철학자들은 로고스에 관한 무지를 죄악으로까지 여기지는 않았다.
구원이란 말을 스토아 철학에 적용한다면 철학자들에게 구원이란 교육을 통해 무지의 상태로부터 벗어나 지혜로워지는 것이었다.
교부들도 하나님에 관한 무지의 상태로부터 벗어나 지혜로워지는 것을 구원이라고 했지만 교육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린 문제로 보았다.
이교도가 그리스도교의 구원론을 절망적이라고 비난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스토아 철학과 신학의 이런 차이는 오늘날의 지식인들에게도 상충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주를 지배하는 합리적 원리인 신성 또는 로고스가 사람의 이성에 내재한다고 했는데 그들에게 로고스 또는 이성은 곧 천성이었다.
요한은 로고스를 말씀과 동의어로 사용했는데 그에게 로고스는 지혜와 성령, 그리스도에 대한 동의어이기도 했다.
말씀, 지혜, 성령은 신성을 나타낸 말들로 하나님의 아들 또는 그리스도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이렇듯 영지주의는 고대 후기에 나타난 철학에 의존한 이성주의 종교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고 여러 종교의 요소를 골고루 갖춘 종합적 종교라고도 말할 수 있다.
영지주의를 제설혼합주의(syncretism)라고 말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폴 틸리히는 저서 『신학사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1967)에서 영지주의가 발생하게 된 동기를 요약했다.
1, 알렉산더 대왕과 로마 제국의 부상으로 각 나라의 고유한 종교가 무너진 때문이다.
2, 철학이 신화를 이성주의 방법으로 해석한 때문이다.
3, 고대 신비주의 관습이 재활한 때문이다.
4, 동양으로부터 정신적이고 마술적인 요소가 서양으로 유입되었는데 제국들이 동양을 지배하면서부터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
제국주의 말렵 경제적 침체와 함께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자 사람들은 안정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도시국가와 소왕국들의 고유한 문화와 종교가 제국들에 의해서 소멸되었으며, 지식인들은 정신적인 자원이 고갈되었다고 느꼈고,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대한 소속감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되어 정신적으로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영지주의자들은 여러 이교와 그리스도교의 요소를 한 데 융합시킴으로써 모든 정신적 혼란을 타개하고 고대 세계를 회생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알렉산드리아 사람 클레멘트가 인용한 데오도투스(Theodotus)의 글에서 당시 지식인들의 방황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누구였고, 무엇이 되었으며, 어디에 있었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구속을 받고 어디를 향해 서두르고 있는가.
출생은 무엇이며 중생이란 또한 무엇일까.
영지주의자들은 여러 가지 사변적 종교철학을 종합했지만 그것이 주된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철학의 문제는 이차적이었으며 궁극적인 관심은 구원에 있었다.
구원이 목적이었으므로 신적 계시, 신비적 경험, 상징적 형식의 마법, 금욕주의의 실천 등에 관심이 기울였으며 구원과 관련된 불멸의 지식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이교의 신비적 의식을 모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였다.
그들은 신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세계는 어디에서 생겼을까?
사람은 어디에서 왔을까?
악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우리에게 나타난 영혼과 물질의 신비스러운 결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은 왜 물질로부터 구속받는 것일까?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구원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구원을 베푸는 분은 누구일까?
사람이 어떻게 영원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등에 관심이 많았다.
영지주의자들이 바란 것은 한 마디로 해탈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금욕주의로 육체를 다스리면서 오래 명상하기를 즐겨했고 신과의 교섭을 고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