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티누스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교부들은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유스티누스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교부들은 선의 세계의 정점을 하나님으로 이해했다.
플라톤 철학에 근거한 그들은 하나님은 선이기 때문에 모든 선하고 유익한 사물의 근원이며 악의 원인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모든 고통의 원인을 다른 데서 찾아야 했다.
하나님은 변치 않는 존재로서 때에 따라서 고의적으로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 사람을 기만하고 자기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게 만드는 마술사와 같은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선의와 아름다움과 우월의 완성이기 때문에 그에게서 어떤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은 곧 그보다도 나쁜 상태로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플라톤은 저서 『티마이오스 Timaeus』에서 신을 영원한 모형에 따라서 우주를 만든 창조주 아버지 및 장인 등으로 불렀다.
이런 플라톤의 사상은 교부들의 환심을 샀으며 그들의 신학에 영향을 주었다.
플라톤은 영혼이 불멸하는 증명으로서 영혼의 비물질성, 단순성, 생명력, 영원적인 이데아를 파악하는 능력 등을 꼽았는데 이런 증명을 교부들이 받아들였다.
플라톤은 저서 『파에도 Phaedo』에서 영혼은 신적 존재를 꼭 닮으며, 불멸적이고, 이성적이며, 균일적이고, 불가분리적이며, 변함이 없다고 했다.
만일 영혼이 외부로부터 움직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적인 것이라면 시작과 끝이 없는 불멸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유언을 전했다.
나는 인간이 다시 산다는 것을 믿는다.
또 인간이 죽더라도 영혼은 남아 있으며 선한 영혼은 악한 영혼보다 좋은 곳에 간다는 것을 믿는다.…
너희가 만일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나를 매장해도 좋다.…
그러나 너희는 오직 나의 육체만을 매장할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라.
그리스어 그노시스(gnosis)에는 세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일반적 지식(knowledge)과 지혜(wisdom) 또는 신비적 교섭과 성적 교섭을 뜻하는데 성적 교섭이란 남편과 아내가 일체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그노시스를 정신적 지식이라고도 말하는 이유는 과학적 지식과는 달리 신비적 교섭 또는 성적 교섭과 구원을 소망하는 지식이며 동시에 삶과 죽음에 관한 실존적 지식이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자들은 플라톤의 영혼불멸설과 스토아 철학자들의 로고스론을 받아들였는데 이들이 철학으로부터 도움을 구한 이유는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이므로 철학으로부터 신비스러운 지혜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눈으로 지각(sense)할 수 있는 물질세계와 눈으로 지각할 수 없는 이데아(Idea) 또는 정신세계가 양립하는 이원론을 주장하면서 사물은 불변하는 정신세계에 속한 형상의 이미지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지각을 통해서는 이미지만을 볼 수 있을 뿐 정신세계의 형상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플라톤은 지각을 진리의 첩경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정신세계의 형상은 지각의 대상이 아니라 영혼의 대상이었다.
불변하는 형상을 영혼이 어떻게 체험으로 알 수 있을까?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통해 바커스 종교의 개신교라고 말할 수 있는 피타고라스의 신비주의 종교 오르피즘(Orphism)의 영향을 받았다.
오르피즘은 영혼이 불멸하고 윤회한다고 가르쳤고 이에 플라톤은 영혼이야말로 불변하는 형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 믿었다.
육체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면 영혼이 불변하는 형상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플라톤에게 불변하는 형상을 본다는 것은 전생에서 얻은 지식을 기억하는 것을 뜻했다.
3세기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를 주창한 플로티누스(Plotinus)는 영혼이 우주에 내재하는 역동적인 힘 즉 신성과 교섭할 수 있다고 했다.
다음의 말에서 그의 신비주의적 요소를 발견한다.
영혼은 생명의 원천, 지성의 원천, 존재의 시작, 선의 우물, 영혼의 뿌리를 응시한다.
미지의 양식에 관한 것이 아닌 한 그것은 사실 좀처럼 시야에 포착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아로부터의 벗어남이며, 단순해지는 것이고, 포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의 삶이며, 신과도 같은 자들의 삶이고, 사람에게 내려진 축복이며, 우리를 에워싼 이방인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지상에 속한 쾌락을 취하지 않는 삶이며, 고독으로부터 고독으로 이어지는 통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