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가들의 저서는 대부분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지성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교를 공격한 사람들 중에 그리스인 셀수스(Celsus)가 있다.
아테네에서 교육을 받은 철학자이자 과학자(의사)인 셀수스는 그리스도교가 열광적인 미신과 단편적인 철학 이론으로 혼합된 종교에 불과하다면서 성경이 말하는 역사의 기록은 모순투성이이며 증거도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찼다고 했다.


그가 178년에 저술한 『참 말씀 The True Word』은 현존하지 않고 내용의 일부가 인용으로 전해 오는데 여기서 셀수스는 그리스도교가 우매한 사고와 신화로 꽉 찬 종교이며, 부활이 중요한 사건이긴 하지만 예수를 신봉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주장되었으며 단지 황홀경에 빠진 몇 여인에 의해 처음 확인되었을 뿐이라고 했다.
신이 불변한 존재인 데도 성육신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모순을 드러낸 하찮은 신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그의 비위를 거tm린 것은 하나님의 성육신 개념이었다.
그는 신이 직접 지상으로 내려왔다면 어째서 세상의 모퉁이로 왔으며 이런 일이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왜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는지에 관해 말하려고 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질문하지 말고 그저 믿어라” 또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할 것이다”라고 한다.
그들은 “세상의 지혜는 사악하며 어리석은 것이 오히려 좋은 것이다”라고 한다.


셀수스는 그리스도인은 교육을 받고 지혜로워지는 것을 악으로 여기면서 무지하고 어린이 같아지는 것을 오히려 바람직하게 생각한다고 비방했다.
3세기 중반 그리스도인의 수가 급증했는데 셀수스의 말대로라면 교육받지 못하고 비천한 계급의 사람들이 주로 교인이 된 것이다.


3세기 중반에는 로마 교회에 입교한 그리스도인이 많았으며 교회는 재정적으로 넉넉해서 다른 교회를 도울 수 있었다.
로마 교회에는 감독 한 사람과 46명의 장로, 7명의 집사, 7명의 준집사, 42명의 시종품, 52명의 귀신을 내쫓는 사람, 그리고 수위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생활비를 교회가 지급했다는 것에서 재정적인 풍요를 알 수 있다.
당시 교회에는 도움을 받으려고 등록한 사람의 수가 1,500명이나 되었으며 교회의 창고에는 금과 은 등의 보석류와 음식, 옷, 책, 그리고 현찰이 보관되어 있었다.
교인이 이교도에게 베푼 사랑은 전도의 효과를 증가시켰다.
테르툴리아누스가 인용한 이교도의 말은 “그리스도인들은 어쩜 그토록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였다.
테르툴리아누스는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거두어서 가난한 교인을 도왔다고 한다.
그는 “모든 남자는 자발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돈이나 자신이 기증하고 싶은 것을 교회로 가지고 왔다”고 했다.
이렇게 모은 돈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식량, 장례식, 가난한 고아, 늙은 노예, 난파한 선원들을 돌보는 데 사용되었다.


셀수스와 같은 지식인에게 그리스도교의 파급이 이해되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본질인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궁극적 관심사는 단지 납득할 만한 이론에만 있었을 뿐이었다.


변증가들의 저서는 대부분 현존하지 않고 단편적 인용으로만 전해 오기 때문에 그들이 셀수스와 같은 지식인의 공격을 어떻게 방어했는지는 알 수 없다.
314년에 가이사랴의 감독이 된 유세비우스는 저서 『교회사』에 변증가들의 글을 많이 인용했으므로 그들의 신학적 관심사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다.
대부분 변증가들은 바울과 요한의 신학을 받아들여 그들의 가르침에 기초해서 자신들의 이론을 정립하였다.
『교회사』는 모두 10권인데 303년까지를 7권으로, 323년까지를 3권으로 나누어 교회의 활약상을 상세하게 기록해 두었다.
『교회사』는 324년 이전까지의 신학을 아는 데 중요한 사료이다.


변증가들의 이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신은 한 분뿐이며 창조주가 되는 하나님이 만물을 무로부터 창조했다.
사도와 교부로 이어지는 신학과 일치하며 신학에서 정통성을 이룩했다.

2. 보이지 않고, 태어나지 않았으며, 불가해 하다는 말로 하나님을 소극적인 방법으로 표현했다.
그 이유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 하나님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많은 신들 중 하나로 묘사하게 될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3. 하나님은 대리자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을 창조했다.
한계가 없는 무한한 존재자인 하나님과 창조물인 사람 사이에 그리스도가 중보적인 역할을 한다.

4. 예수를 신격화했으며, 그리스도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했다.
그리스도는 신성을 지닌 로고스로서 항상 하나님과 더불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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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철학자 마르시아누스 아리스티데스는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아테네 철학자 마르시아누스 아리스티데스는 124년경 황제 하드리안(Hadrian)에게 변증서를 제출했는데 근래 학자들의 견해로는 하드리안이 아니라 그로부터 약 20년 후의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에게 보낸 것으로 짐작한다.
아리스티데스는 그리스도인만이 진리를 알 수 있다면서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는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부활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리스티데스는 말했다.


그리스도인은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하나님을 외아들과 성령을 통해서 알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에 새겨 준 계명을 지니며, 그 계명을 지키고, 죽은 자들의 부활과 생명(영생)의 시대가 도래하리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교인은 이방인을 만나면 집으로 데리고 가 잠자리를 제공하고, 형제를 대접하듯 기꺼이 대접하며, 육체적이 아닌 영적으로 형 또는 아우로 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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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고라스
Athenagoras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유세비우스는 아테네 철학자 아테나고라스에 관한 기록도 남겼는데 아테나고라스는 177년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의 아들이면서 섭정자인 콤모두스(Commodus)에게 그리스도교를 옹호하는 글을 보냈다.
아테나고라스는 근거도 없는 비방이 그리스도인에게 행해지고 있다면서 황제와 섭정자에게 무신론, 방탕, 근친상간에 관한 비방이 들려오더라도 믿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테나고라스는 저서 『사망한 자들의 부활에 관하여 On the Resurrection of the Dead』에서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영혼과 육체가 더불어 행위하는 것이므로 영혼은 하나님으로부터 상 또는 벌을 받게 된다고 했는데 그리스 철학자와 달리 그에게 일원론적 사고가 있었음을 본다.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 철학자들은 육체를 영혼의 무덤으로 간주하며 육체를 벗어날 때 비로소 영혼은 자유로워진다는 이원론 사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테나고라스는 영혼이 육체를 떠나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일원론을 주장했다.


아테나고라스는 또한 결혼에 관해 언급하면서 하나님이 정해 주는 결혼은 죽음조차도 무효화할 수 없다고 했다.
여기서 그가 예수의 말을 따르고 있음을 찾아 볼 수 있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 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 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지니라 (마태복음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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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성자와 성부로부터 구별되기는 하지만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데오필루스는 170년대 경 지금은 신원을 알 수 없는 아우톨리쿠스(Autolycus)라는 사람에게 그리스도교를 변호하는 글을 썼다.
안디옥 교회 감독이면서 안디옥 학파의 초기 멤버인 데오필루스는 그 글에서 그리스인의 신화는 야만적인 내용으로 가득 찼으며 그리스도 신학은 그에 비해 월등히 우수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글에서 처음으로 삼위일체가 언급되었는데 그는 신성을 하나님, 그리스도, 지혜의 세 쌍 또는 삼인조(trias)로 표현했다.


변증가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삼위일체의 개념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세 쌍 또는 삼인조로 이해했다.
이는 성령이 성자와 성부로부터 구별되기는 하지만 성자와 성부에게 종속되었다고 한 말에서 알 수 있다.
로고스는 선지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지금도 도처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관념으로 인해 그것을 성령의 활동으로 돌릴 만한 여지가 거의 없었다.
다행히도 변증가들은 이교도에게 성령에 관해 설명해야 할 기회가 없었으므로 성령에 관한 관념을 밝혀 놓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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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누스는 사람이 진리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그리스도교는 내가 발견한 가장 적합하고 명료하며 유일한 철학이다.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말은 듣기에 따라서 그리스도교를 철학의 범주 안에 넣고 종교로서는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그리스도교의 옷을 입은 철학자”라고 빈정거리거나 그리스도교를 철학으로 융해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교를 유일한 철학이라고 주장한 것은 철학으로 융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리스도교가 미신적이지도 마술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종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철학수준이 높다고 생각한 유스티누스는 철학의 목적이 하나님과 실존에 관한 진정한 지식을 찾아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하나님과 인간이 일체가 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스도교를 철학에 비유한 것은 철학(philosophy)이 지혜(sophia)를 사랑(phil)하는 학문인 것처럼 그리스도교가 지혜를 사랑하는 가장 우수한 종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 철학은 순수 이론으로 삶과 죽음에 관한 실존주의 지식이었다.
유스티누스는 철학의 관념 안에서 그리스도 신학이 철학의 최고봉임을 입증하려고 했다.
100년 사마리아(Samaria)에서 태어난 유스티누스는 개종하기 전 피타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심취한 스토아 철학자였다.
비범한 노인이 그리스도교에 관해 말해 주기 전까지 그는 철학에서 만족을 구하지 못했다.
노인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선지자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라면서 선지자들만이 진리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유스티누스는 “선지자들은 성령의 도움으로 자신들이 보고 들은 바를 가르치기만 했다”는 노인의 말을 전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영혼은 즉시 불타오르기 시작했으며 나는 선지자들과 그리스도의 친구들에 대한 사랑을 갈망하여마지 않았다.
내가 그들의 교훈을 상고했을 때 그 속에는 참으로 의지할 만하고 유용한 철학이 있음을 발견했다.
모든 일이 이렇게 일어났으며 나는 비로소 진정한 철학자가 되었다.
선지자들이 아니면 누구라도 우리에게 하나님과 참 종교에 관해 가르칠 수 없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지해서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그리스 철학과의 연속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그가 제기한 로고스-그리스도론(Logos-Christology)에서 로고스는 요한의 말씀(Word)에 해당한다(요한복음서 1:14).
로고스는 말씀 외에도 이성(Reason)이란 뜻을 지닌 말인데 영원한 존재로 하나님과 더불어 존재하는 모든 지식의 근본이다.
하나님의 본질에서 나온 이성은 그분으로부터 발원된 말씀이다.
그리스도는 이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참여했다.
하나님으로부터 발원된 말씀을 통해서 만물이 창조되었다.
그리고 때에 이르자 로고스(또는 말씀)는 육신의 형체를 자취했다.
이렇게 유스티누스는 그리스어를 사용함으로써 신격(Godhead)에서 성자와 성부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철학을 찾아냈다.
그러므로 로고스-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 신앙의 가장 난해한 문제를 당시의 언어로 풀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유스티누스는 155년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에게 제출한 『제1 변증서 First Apology』에서 그리스도의 진리는 위대한 이교 저술에서도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로고스 스페르마티코스(Logos spermatikos, 씨앗을 품은 말씀, seed-bearing word)란 말을 사용했는데 신성의 로고스가 인류역사에 그 씨앗을 심었다는 뜻이다.
그는 하나님이 고전 철학 속에 담긴 진리의 편린을 거쳐 그리스도 안에서 최종적으로 계시를 위한 길을 예비했다고 확신했다.
로고스가 일시적으로 구약성경에 나타났더라도 완전한 로고스는 예수를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의 종속론에 의하면 성부만이 진정한 하나님이며 성자는 단지 제2급에 속하는 신적 존재일 뿐이다.
변증가들 가운데 그처럼 힘 있게 종속론을 주장한 사람은 없었다.


에베소에서 수년 동안 가르치는 일을 한 유스티누스는 마흔다섯 살 때 유대인 철학자 트리포(Trypho)와 논쟁을 벌였다.
『트리포와 대화 Dialogue with Trypho』에서 그는 철학자들이 인간에 내재한 이성이 우주적 로고스에 참여한다고 가르치는 데 비해 그리스도인은 요한복음서를 통해 예수 안에서 로고스가 성육신되었음을 배운다고 했다.
사람이 이성을 사용할 때 로고스는 이미 역사하는 것이며 선지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했기 때문”에 “만물의 시종과 철학자들이 알아야 할 것들”에 관한 선지자들의 설명은 가장 고전적이며 참되다고 했다.
선지자들에게는 고상한 사고가 있어서 그들이야말로 “가장 훌륭하다고 알려진 철학자들보다 더욱 위대하다”는 것이다.


유스티누스는 사람은 천부적으로 로고스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감을 받기 때문에 진리의 요소가 되는 로고스는 이교의 저서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교의 저서에서도 로고스를 발견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불멸의 지식 또는 그노시스(gnosis)가 영혼을 자유롭게 해 준다는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로고스를 그노시스를 주는 분으로 믿었는데 다음과 같은 유스티누스의 말에서 영지주의자들의 사상을 볼 수 있다.


진리에 관해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라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스티누스는 사람이 진리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로고스가 돕기 때문이라면서 로고스는 어디에도 있고, 늘 역사하며, 스토아 철학을 발전시킨 것도 로고스라고 했다.
그리스인은 로고스(logos)를 가진 사람을 현인(logikos)이라고 불렀는데 현인들이 로고스에 관해 말했으며 소크라테스와 헤라클레이투스도 로고스에 관해 말했으므로 그들도 선지자 엘리야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유스티누스는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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