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티누스는 사람이 진리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그리스도교는 내가 발견한 가장 적합하고 명료하며 유일한 철학이다.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말은 듣기에 따라서 그리스도교를 철학의 범주 안에 넣고 종교로서는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그리스도교의 옷을 입은 철학자”라고 빈정거리거나 그리스도교를 철학으로 융해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교를 유일한 철학이라고 주장한 것은 철학으로 융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리스도교가 미신적이지도 마술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종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철학수준이 높다고 생각한 유스티누스는 철학의 목적이 하나님과 실존에 관한 진정한 지식을 찾아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하나님과 인간이 일체가 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스도교를 철학에 비유한 것은 철학(philosophy)이 지혜(sophia)를 사랑(phil)하는 학문인 것처럼 그리스도교가 지혜를 사랑하는 가장 우수한 종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 철학은 순수 이론으로 삶과 죽음에 관한 실존주의 지식이었다.
유스티누스는 철학의 관념 안에서 그리스도 신학이 철학의 최고봉임을 입증하려고 했다.
100년 사마리아(Samaria)에서 태어난 유스티누스는 개종하기 전 피타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심취한 스토아 철학자였다.
비범한 노인이 그리스도교에 관해 말해 주기 전까지 그는 철학에서 만족을 구하지 못했다.
노인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선지자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라면서 선지자들만이 진리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유스티누스는 “선지자들은 성령의 도움으로 자신들이 보고 들은 바를 가르치기만 했다”는 노인의 말을 전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영혼은 즉시 불타오르기 시작했으며 나는 선지자들과 그리스도의 친구들에 대한 사랑을 갈망하여마지 않았다.
내가 그들의 교훈을 상고했을 때 그 속에는 참으로 의지할 만하고 유용한 철학이 있음을 발견했다.
모든 일이 이렇게 일어났으며 나는 비로소 진정한 철학자가 되었다.
선지자들이 아니면 누구라도 우리에게 하나님과 참 종교에 관해 가르칠 수 없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지해서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그리스 철학과의 연속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그가 제기한 로고스-그리스도론(Logos-Christology)에서 로고스는 요한의 말씀(Word)에 해당한다(요한복음서 1:14).
로고스는 말씀 외에도 이성(Reason)이란 뜻을 지닌 말인데 영원한 존재로 하나님과 더불어 존재하는 모든 지식의 근본이다.
하나님의 본질에서 나온 이성은 그분으로부터 발원된 말씀이다.
그리스도는 이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참여했다.
하나님으로부터 발원된 말씀을 통해서 만물이 창조되었다.
그리고 때에 이르자 로고스(또는 말씀)는 육신의 형체를 자취했다.
이렇게 유스티누스는 그리스어를 사용함으로써 신격(Godhead)에서 성자와 성부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철학을 찾아냈다.
그러므로 로고스-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 신앙의 가장 난해한 문제를 당시의 언어로 풀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유스티누스는 155년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에게 제출한 『제1 변증서 First Apology』에서 그리스도의 진리는 위대한 이교 저술에서도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로고스 스페르마티코스(Logos spermatikos, 씨앗을 품은 말씀, seed-bearing word)란 말을 사용했는데 신성의 로고스가 인류역사에 그 씨앗을 심었다는 뜻이다.
그는 하나님이 고전 철학 속에 담긴 진리의 편린을 거쳐 그리스도 안에서 최종적으로 계시를 위한 길을 예비했다고 확신했다.
로고스가 일시적으로 구약성경에 나타났더라도 완전한 로고스는 예수를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의 종속론에 의하면 성부만이 진정한 하나님이며 성자는 단지 제2급에 속하는 신적 존재일 뿐이다.
변증가들 가운데 그처럼 힘 있게 종속론을 주장한 사람은 없었다.


에베소에서 수년 동안 가르치는 일을 한 유스티누스는 마흔다섯 살 때 유대인 철학자 트리포(Trypho)와 논쟁을 벌였다.
『트리포와 대화 Dialogue with Trypho』에서 그는 철학자들이 인간에 내재한 이성이 우주적 로고스에 참여한다고 가르치는 데 비해 그리스도인은 요한복음서를 통해 예수 안에서 로고스가 성육신되었음을 배운다고 했다.
사람이 이성을 사용할 때 로고스는 이미 역사하는 것이며 선지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했기 때문”에 “만물의 시종과 철학자들이 알아야 할 것들”에 관한 선지자들의 설명은 가장 고전적이며 참되다고 했다.
선지자들에게는 고상한 사고가 있어서 그들이야말로 “가장 훌륭하다고 알려진 철학자들보다 더욱 위대하다”는 것이다.


유스티누스는 사람은 천부적으로 로고스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감을 받기 때문에 진리의 요소가 되는 로고스는 이교의 저서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교의 저서에서도 로고스를 발견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불멸의 지식 또는 그노시스(gnosis)가 영혼을 자유롭게 해 준다는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로고스를 그노시스를 주는 분으로 믿었는데 다음과 같은 유스티누스의 말에서 영지주의자들의 사상을 볼 수 있다.


진리에 관해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라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스티누스는 사람이 진리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로고스가 돕기 때문이라면서 로고스는 어디에도 있고, 늘 역사하며, 스토아 철학을 발전시킨 것도 로고스라고 했다.
그리스인은 로고스(logos)를 가진 사람을 현인(logikos)이라고 불렀는데 현인들이 로고스에 관해 말했으며 소크라테스와 헤라클레이투스도 로고스에 관해 말했으므로 그들도 선지자 엘리야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유스티누스는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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