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마스
Hermas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종의 신분으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헤르마스는 로다(Rhoda)란 이름의 여인에 의해서 자유인이 되었다.
그는 로마의 감독 피우스(Pius)와 형제처럼 지냈다.
장사에 소질이 있는 그는 곧 부자가 되었는데 상업행위에서 양심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양심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황제가 그리스도인을 탄압할 때 배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산을 모두 잃어버리는 불이익을 당했다.
재산을 잃자 헤르마스의 자식들은 그를 비난했다.


헤르마스는 97년경에 『목양자 The Shepherd』를 썼는데 영감을 받아 쓴 이 책에는 주로 회개를 권면하는 교훈이 적혀 있다.
『목양자』는 열두 명령들(Mandates)과 열 가지 비유들(Similitudes)로 구성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말로 명령이 시작된다.


무엇보다도 우선 한 분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라.
그는 만물을 창조하고 그 운행을 정해 놓은 분이며, 무에서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며, 만물을 포괄하지만 그 자신은 파악될 수 없는 분이니라.


헤르마스는 하나님은 전능한 주로 세상을 창조하고, 부지하며, 지배하는 분이라고 했다.
또한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했지만 하나님 자신은 세상의 부분이 아니므로 보이지 않고, 파악되지 않으며, 창조되지도 않고, 영원하며, 아무런 부족함도 느끼지 않는 분이라고 했다.
이런 개념들은 대체적으로 구약성경과 유대교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리스인의 사상적 영향은 찾아 볼 수 없다.


세례와 관련해서 그는 말했다.


우리가 물속에 내려가서 지난 모든 죄를 용서받는 방법 외에는 다른 회개의 방법은 없다.


세례가 과거의 죄에 대해서만 용서를 확증해 주는 것이라면 미래의 죄는 어떻게 할 것인가?
교부들은 세례를 받은 후에 범하는 죄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범하는 부득이한 죄와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절대로 범해서는 안 될 특별한 죄를 명확하게 구별지어야 했다.
후세에 가서야 비로소 가벼운 죄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관한 구체적인 분류가 교리로 책정된다.


헤르마스는 하나님은 예외적인 방법으로 재차의 회개까지도 허용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최후의 은혜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으로 진심어린 회개를 권고했다.


헤르마스는 교회를 고대의 숙녀로 묘사했으며 회개의 천사를 목양자에 비유했다.
또한 그리스도와 성령을 동등하게 취급한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로마 교회는 『목양자』의 교훈을 신약성경에 버금가는 권위 있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였다.
『목양자』는 “이 문서를 선지자나 사도들의 저작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있을 때까지 교회에서 권위 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졌다.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4)는 『목양자』가 성령을 받아 쓴 훌륭한 저서라고 칭찬했으며 유세비우스는 이것이 정경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교인들이 즐겨 읽는 책이라고 했다.
제롬과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373)도 역시 『목양자』를 극찬했다.


『목양자』 제3편 비유(Similitudo VI)에 하나님은 농장의 주인, 그리스도는 종, 성령은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헤르마스는 성부(하나님), 성자(그리스도), 성령을 병렬하였다.
삼위가 일체를 이루는 삼위일체론은 그리스도교의 근본 되는 신학이므로 그는 삼위를 한 데 언급했다.


교부들은 한결같이 그리스도가 태초 이전에 하나님과 더불어 존재했다고 본다.
헤르마스는 “하나님의 아들은 창조보다 오래되었고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의 보조자였다”고 했다.
그리스도는 태초 이전에 이미 존재했으며 만물에 앞서 선재한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불리었다.
때에 이르러 그리스도가 성육신한 것을 두고 그는 그리스도의 성령이 육체의 장막에 거하는 것이라 묘사했다.


교부들은 예수의 은사를 새 율법의 계시로 해석한 데서 오류를 범했는데 예수를 새 율법의 수여자라고 믿었다.
『목양자』에서 이런 견해가 나타났고, 클레멘트는 “우리가 만일 사랑의 계명을 온전히 행하면 복이 있는 자가 될 것이니 사랑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했다.
헤르마스와 클레멘트는 하나님과 사람의 올바른 관계는 바울이 주장한 믿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의 계명을 온전히 지켜 행하는 데 따라서 조절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 같은 견해는 예수를 새 율법의 수여자로 인식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행위에 대한 두 사람의 강조는 스토아 철학자들의 금욕주의 윤리와 관련이 있으며 유대교의 율법주의와도 무관하지 않았는데 이런 점은 바울이 배척하려고 한 요소였다.
바울이 행위를 강조한 것은 믿음을 전제로 한 행위를 의미한 것이지 행위 자체가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부들은 교회가 절대권위를 가져야 함을 역설하면서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교회가 이미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그 예로 클레멘트는 저서 『설교』에서 최초의 영적 교회는 해와 달이 창조되기 전에 이미 존재했다고 했으며 헤르마스도 만물에 앞서 교회가 먼저 창조되었음을 주장했다.


겨울에는 잎이 모두 떨어져서 어느 것이 죽은 나무인지 산 나무인지를 분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알아 볼 수 없을 것 같아 보인다.…
불의한 자들이 쫓겨나게 되면 하나님의 교회는 한 몸, 한 이해, 한 마음, 한 신앙, 한 사랑을 이루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은 의로운 자들에 의해서 심히 기뻐하고 순결한 자기 백성을 얻게 될 것이다.


교부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에만 있다고 하며 교회의 절대권위를 강조했는데 이는 또한 교부에게 절대권위가 있음을 시사한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교부들은 성경에도 절대권위를 부여했는데 “기록된 바와 같이”는 구약성경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구약성경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계시”였다.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계시로 믿었으므로 구약성경과 동등한 절대권위로 간주했다.
클레멘트는 교리적인 권위로 선지자와 사도들의 저서를 꼽았으며 바울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교훈을 구하라고 했다.
그러므로 교부들이 네 복음서와 바울의 서신을 신약성경으로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가치와 권위를 인정한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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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우스
Papius, 50-130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소아시아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의 감독 파피우스에 관해서는 이레네우스와 유세비우스의 인용으로 전해 온다.
파피우스는 마가복음서가 그 내용은 정확하지만 베드로가 기억한 예수의 생애를 시기적으로 편집하지 못한 오류를 범했다고 했다.
또한 공관복음서 저자들이 예수에 관해 구두로 전래된 이야기들을 알고 있었다고 했는데 이 같은 사실은 150년 전 공관복음서를 연구한 신학자들의 결론이기도 하다.


파피우스는 유대교의 묵시문학적 저작에서 유래한 요한의 천년왕국을 실제로 일어날 역사적인 사건으로 고대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요한계시록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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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
Barnabas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00년경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한 바나바가 쓴 편지가 1859년에 발견되었다.
이 바나바는 마가의 아저씨로 바울과 함께 안디옥에서 사역한 바나바와 동명이인이다.
그리스어로 쓰여진 이 편지에는 그리스도의 출현과 인류에 대한 구속이 구약성경에 암시되어 있다고 적혀 있으며 반유대인적인 감정도 노출되어 있다.


세례는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의식으로 행해졌는데 사도들에 의해서 행위 된 오래된 의식이었다.
교부들은 처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다가 나중에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이름으로 베풀었다.
삼위의 이름을 모두 언급하게 된 것은 세례의식을 통해서였다.
교부들은 세례를 받으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했으며 성령을 받았다는 자신감과 새 생명 즉 영생을 확증 받은 증거가 된다고 했다.
바나바는 세례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우리는 죄와 허물의 무거운 짐을 지고 물속으로 내려가지만
물에서 나올 때는 마음에 열매를 맺고
예수에 대한 경외와 소망을 가지고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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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나티우스
Ignatius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이그나티우스의 7서신’으로 알려진 편지들은 그가 110년과 115년 사이 에베소, 마그네시아, 트랄레스, 로마, 필라델피아, 서머나 교회와 서머나의 감독에게 보낸 것들이다.
이그나티우스는 에베소(Ephesus) 교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지칭했다.


우리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작정하심을 따라 마리아에게 났으며,
진실로 다윗의 자손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또한 성령에게서 났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그리스도와 일체가 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일체됨(oneness)에 관해 이그나티우스는 서머나(Smyrna) 교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여러분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 위에 서서 몸과 영혼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굳게 잡고,
주의 보혈을 통해 사랑 안에 견고하며,
또한 주가 육신을 따라서는 진실로 다윗의 후손이 되고,
하나님의 뜻과 권능을 따라서는 아들이 됨에 확신을 가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서머나 교회에 보낸 제1서신)


교부들의 문서에서 당시 교회의 제반 규정을 볼 수 있는데 본래 감독(bishop)과 장로(elder)는 동일한 계급이었지만 감독의 권위가 점차 증가해서 장로의 직분과 구별되었다.
서열상으로 감독이 장로보다 격상된 위치를 차지했던 것이다.
이 같은 군주적 감독직(monarchical episcopate)은 이그나티우스의 편지를 통해 소아시아에서 처음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로마에서 쓴 클레멘트의 편지와 헤르마스의 『목양자』에는 서열상으로 장로 직보다 위에 있는 직분이 언급되어 있지 않았지만 이그나티우스의 편지에는 감독직의 중요성이 언급되었으며 감독이 사도의 계승자임이 지적되었다.
사도적 계승(apostolic succession)의 사상은 유대교의 승계사상으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이그나티우스에 의하면 감독은 예수의 몸인 교회의 상징인 동시에 사도적 전통(apostolin tradition)의 전달자이다.
교인들은 감독에게 복종하도록 훈계되었으며 교회의 구심점이었던 감독은 교회를 파괴하려는 이단(heresy)에 대한 보호막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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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가들
apologists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교부들이 이교의 다신주의를 비방하면서 유일신을 숭배하는 그리스도교가 가장 우수하다고 말하자 그리스도교는 이교의 적으로 부상했다.
2세기 후반부터 그리스도교에 대한 위협이 급증했는데 교회 밖에서는 로마 제국의 반역적인 종교로 인식되어 그리스도인의 도덕과 신앙 모두가 공격을 받았다.
반면 교회 내에서는 영지주의자들이 위협적인 요소였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중상과 비방이 거세어지자 교부들 가운데 이런 대적들에 맞설 만한 학식을 겸비한 변증가들을 필요로 했다.
변증가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로 이교의 야비한 중상과 그릇된 진술에 대항해서 그리스도교를 옹호하는 것과 로마 제국의 위협에 대항해서 견디어내는 것인데 두 임무는 상호관련이 있었다.


변증가는 변호자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그리스어로 변호 또는 변증(apologia)은 법정의 판결에 대한 응답이란 뜻이다.
변증가들은 황제와 귀족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우수함을 알리기 위해서 탄원 또는 변증서 형식으로 써 보냈으며 그리스도교에 대한 중상과 비방을 변호하기도 했다.
그들의 중요한 점은 그리스도교를 진정한 철학(true philosophy)으로 이방인에게 부각시킨 것이며 또한 신학을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철학의 용어로 밝히려 한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논리적인 방법으로 정의했으며 처음으로 그리스 철학과 연결을 시도했다.


변증가들의 변증서에 나타난 사상은 그리스도 신학의 밑거름이 되었는데 요약하면 유일신 하나님은 무(nothing)에서 만물(everything)을 창조하고 부지한다는 것과 그분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상이 아니며, 태어난 분이 아니라 처음부터 존재한 분이고, 불가해한 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 또는 속성에 관해서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설명하기를 회피했는데 이런 시도가 자칫 하나님을 이교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과 유사하게 피조물의 영역으로 떨어뜨릴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그들은 로고스(logos)가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 만물을 창조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요한의 신학을 좇은 것이다.
말년에 에베소에서 활약한 요한은 바울 다음으로 근동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변증가들은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존재자 하나님과 만물 사이에 교량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대리인으로 예수를 꼽았다.
그들이 예수를 그리스인의 개념인 로고스로 부른 것은 당시 그리스 문화가 가장 우수하여 지식인들이 그리스 문화에 편중되어 있었으므로 지식인을 개종시키기 위해서는 철학의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유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로고스는 지식인의 관심을 당장에 끄는 동시에 그 뜻을 분명히 할 수 있는 개념이었다.
로고스란 말을 사용한 다른 이유는 이런 개념이 없이 예수에 관해 설명하여 변증가가 제2의 소크라테스로 묘사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변증가들은 예수의 인성보다는 신성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그들은 인성(humanity)을 가진 예수와 신성(divinity)을 가진 그리스도를 구분하고 성육신되기 전 선재한 그리스도는 신성을 지닌 로고스이며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을 통해 역사한 역사의 주재자라 했다.
하나님은 본래 그리스도의 본질도 지닌 존재인데 만물을 창조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인격적인 존재로 분리시켰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이 자기의 뜻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변증가들은 그리스도가 구약시대에는 계약의 천사로 나타났고 때가 이르자 사람의 본성을 자취하여 예수로 성육신되었다고 했다.
이를 종속론(Subordinationism)이라고 한다.
종속론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에 비해 열등함을 말한다.
변증가들은 그리스도를 제2급에 속하는 신령한 존재로 인식했다.
그들 중에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기관이며 종인 동시에 하나님에게 의존하는 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그들의 글을 통해서 당시 그리스도인이 부활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신앙을 가졌음을 볼 수 있다.


변증가들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자유의지(free will)를 부여받았으므로 자의로 선과 진리의 편에 설 수 있는 결단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서 자유의지를 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으며, 악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교섭 또는 합일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교회를 선과 진리를 가르치는 곳으로 정의하면서 참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 새 시대, 경건한 자들의 세대 등에 비유했으며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있는 곳임을 명백히 했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비방 중에는 그들이 로마 제국의 군사적 봉사에 참여하지 않는 것과 그리스도 신학은 엉뚱한 주장일 뿐만 아니라 철학의 요소를 가미한 미신에 불과한 미천한 지역의 저급한 미신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변증가들은 그리스도인이 로마 제국의 구조를 침식하는 것이 아니라 황제로 하여금 전쟁에 승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에게 기도함으로써 오히려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면서 그리스도인은 로마 제국의 암적 존재가 아니라 제국과 세계의 결합을 시도하는 존경받을 만한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변증서를 보면 당시 그리스도인에게 가해진 비방과 중상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변증가들은 주로 네 가지 비방에 대응했다.


1.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먹는 성찬식은 식인의 관습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다.

2. 이웃에 대한 사랑은 난잡한 성관계 파티(orgies)를 벌이려는 것이 아니다.

3. 황제를 숭배하지 않는 것은 제국을 침식하려는 불충성스러운 시민이 되려는 것이 아니다.

4. 말세를 염려하는 기도는 비그리스도인을 증오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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