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韓愈의 <가난을 보내는 글>
당唐나라 문인이자 사상가 한유韓愈(768~824)는 관료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3세에 고아가 되어 형수의 손에서 자랐으며 어려운 환경에서 학문에 정진하여 유가를 비롯한 제자백가의 학문을 두루 섭렵했다. 25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경조윤 등 여러 벼슬을 거쳐 이부시랑에 이르렀으며 57세로 생을 마쳤다. 조정에서 예부상서의 관작과 함께 문文이라는 시호를 추증하여 한문공韓文公으로 불린다.
한유의 문장 가운데 송궁문送窮文(가난을 보내는 글)이 있다. 한유는 이 글에서 자신에게 어려움을 주는 다섯 가지 일을 귀신으로 묘사하고, 이것들을 쫓아버리려는 자신의 마음을 해학적으로 그렸다. 그는 의인화한 궁귀窮鬼에게 세 번 읍泣하고 자신으로부터 떠나줄 것을 간청했다. 가난 귀신 궁귀는 한참 있다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와 선생님이 함께 살아온 지 사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 저는 선생님을 어리석게 여기지 아니하였고, 선생님의 공부도 하고 밭도 갈면서 벼슬과 명예를 추구하는 동안에도 오로지 선생님만을 따르며 처음처럼 끝내 변함이 없었습니다. 문門의 신神들에게 나는 야단맞고 꾸중을 들으면서도 부끄러움을 참고 무조건 따르면서 딴 곳에 뜻을 둔 적이 없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남쪽 먼 곳으로 귀양을 갔을 적에는 뜨겁고 덥고 습기 차고 찜질하는 듯했으므로, 나는 그 고장에 익숙하지 못하여 여러 귀신들이 속이고 능멸하였습니다. 태학에서 4년 공부하는 동안에는 아침에는 부추, 저녁에는 소금으로 반찬하며 지냈으나 오로지 저만이 선생님을 보살펴주었고, 사람 모두가 선생님을 싫어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선생님을 배반한 일이 없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다른 생각을 해본 일이 없었으며, 입으로는 가겠다는 말을 전혀 한 일이 없는데, 어디서 무슨 말을 듣고 저에게 가야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는 필시 선생님께서 남이 모함하는 말을 믿고서 저에게 거리를 두게 된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귀신鬼神이지 사람이 아니거늘 수레와 배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코로 추한 냄새와 향기나 맡고 지내니 미수가루와 양식도 버리는 게 좋을 것입니다. 홀로 외짝인 한 몸인데 친구와 무리란 어떤 자들입니까? 선생님께서 진실로 모두 알고 계신다면,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따질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모두 말할 수 있으시면 성인聖人이나 지인知人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실이 이미 드러나 있다면 감히 회피하지 않겠습니까?”
송궁문送窮文은 다음과 같다.
元和六年正月乙丑晦, 主人使奴星, 結柳作車원화육년정월을축회, 주인사노성, 결류작차: 원화 육년 정월 을축날 저녁에, 주인이 하인 성星으로 하여금 버드나무를 엮어 수레를 만들고
縛草爲船, 載구輿장, 牛繫액下, 引帆上檣박초위선, 재구여장, 우계액하, 인범상장: 풀을 묶어 배를 만들게 한 뒤 미수가루와 양식을 싣고서 멍에 밑에 소를 매고 돛대에 돛을 달고
三揖窮鬼而告之曰, 聞子行有日矣삼읍궁귀이고지왈, 문자행유일의: 궁귀窮鬼에게 세 번 읍하며 말하였다. 듣건대 그대에겐 떠나야 할 날이 있다고 합니다.
鄙人不敢問所途, 躬具船與車, 備載구장비인불감문소도, 궁구선여차, 비재구장: 남루한 내가 감히 갈 길은 묻지 못하겠으나, 몸소 배와 수레를 마련하고 미수가루와 양식도 모두 실어놓았소.
日吉辰良, 利行四方. 子飯一盂, 子酒一觴일길신량, 이행사방. 자반일우, 자주일상: 날짜 길하고 시절도 좋은 때라서 사방으로 떠나도 이로울 것이니, 그대는 밥 한 그릇을 먹고 술 한 잔 마신 뒤
携朋群周, 去故就新, 駕塵弓攫風, 與電爭先휴붕군주, 거고취신, 가진궁확풍, 여전쟁선: 친구와 무리들을 이끌고 옛 고장을 떠나 새 고장으로 떠나도록 하오. 먼지 일으키며 수레 달리고 빠른 바람 타고 배 몰아 번개와 앞 다투며 간다면
子無底滯之尤, 我有資送之恩, 子等有意於行乎자무저체지우, 아유자송지은, 자등유의어행호: 그대에게는 머물러 있다는 허물이 없게 될 것이오. 나는 노자路資를 갖추어 전송한 은혜를 지니게 될 것인데, 그대는 떠날 뜻이 있소? 하였다.
屛息潛聽, 如聞音聲, 若嘯若啼, 획훌우앵병식잠청, 여문음성, 약소약제, 획훌우앵: 숨을 죽이고 조용히 들으니 말소리가 들리는 듯했는데, 휘파람 소리와도 같고 우는 소리와도 같게 중얼거리고 칭얼거리니
毛髮盡竪, 悚肩縮頸, 疑有而無, 久乃可明모발진수, 송견축경, 의유이무, 구내가명: 몸 털과 머리카락이 모두 곤두서고 어깨를 들추고 목을 움츠리게 하였다. 소리가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하다가 오랜 뒤에야 분명해졌다.
若有言者曰, 吾與子居四十年餘, 子在孩提약유언자왈, 오여자거사십년여. 자재해제: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저와 선생님이 함께 살아온 지 사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
吾不子愚, 子學子耕, 求官與名, 惟子是從오불자우, 자학자경, 구관여명, 유자시종: 저는 선생님을 어리석게 여기지 아니하였고, 선생님의 공부도 하고 밭도 갈면서 벼슬과 명예를 추구하는 동안에도 오로지 선생님만을 따르며
不變于初. 門神戶靈, 我叱我呵, 包羞詭隨불변우초. 문신호영, 아질아가, 포수궤수: 처음처럼 끝내 변함이 없었습니다. 문門의 신神들에게 나는 야단맞고 꾸중을 들으면서도 부끄러움을 참고 무조건 따르면서
志不在他. 子遷南荒, 熱燥濕蒸, 我非其鄕지불재타. 자천남황, 열조습증, 아비기향: 딴 곳에 뜻을 둔 적이 없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남쪽 먼 곳으로 귀양을 갔을 적에는 뜨겁고 덥고 습기 차고 찜질하는 듯했으므로, 나는 그 고장에 익숙하지 못하여
百鬼欺陵, 太學四年, 朝제暮鹽, 惟我保汝백귀기릉, 태학사년, 조제모염, 유아보여: 여러 귀신들이 속이고 능멸하였습니다. 태학에서 4년 공부하는 동안에는 아침에는 부추, 저녁에는 소금으로 반찬하며 지냈으나 오로지 저만이 선생님을 보살펴주었고
人皆汝嫌. 自初及終, 未始背汝, 心無異謀인개여혐. 자초급종, 미시배여, 심무이모: 사람 모두가 선생님을 싫어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선생님을 배반한 일이 없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다른 생각을 해본 일이 없었으며
口絶行語, 於何聽聞, 云我當去. 是必夫子信讒구절행어, 어하청문, 운아당거. 시필부자신참: 입으로는 가겠다는 말을 전혀 한 일이 없는데, 어디서 무슨 말을 듣고 저에게 가야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는 필시 선생님께서 남이 모함하는 말을 믿고서
有間於予也. 我鬼非人, 安用車船, 鼻嗅臭香유간어여야. 아귀비인, 안용차선, 비후취향: 저에게 거리를 두게 된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귀신鬼神이지 사람이 아니거늘 수레와 배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코로 추한 냄새와 향기나 맡고 지내니
구장可損. 單獨一身, 誰爲朋周. 子苟備知구장가손. 단독일신, 수위붕주. 자구비지: 미수가루와 양식도 버리는 게 좋을 것입니다. 홀로 외짝인 한 몸인데 친구와 무리란 어떤 자들입니까? 선생님께서 진실로 모두 알고 계신다면
可數以不. 子能盡言, 可謂聖智. 情狀旣露가수이불. 자능진언, 가위성지. 정상기로: 그
런가 그렇지 않은가 따질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모두 말할 수 있으시면 성인聖人이나 지인知人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실이 이미 드러나 있다면
敢不廻避. 主人應之曰, 子以吾爲眞不知也邪감불회피. 주인응지왈, 자이오위진부지야사: 감히 회피하지 않겠습니까? 주인이 대답했다. 그대는 내가 정말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子之朋周, 非六非四, 在十去五, 滿七除二자지붕주, 비육비사, 재십거오, 만칠제이: 그대의 벗과 무리들은 여섯 명도 아니고 네 명도 아니며, 열에서 다섯을 뺀 숫자이고 일곱 중에서 둘을 덜어낸 숫자요
各有主張, 私立名字, 裂手覆羹, 轉喉觸諱각유주장, 사립명자, 열수복갱, 전후촉휘: 제각기 주장하는 일이 있고, 사사로이 이름을 내세우며, 남의 손을 비틀어 뜨거운 국을 덮고 노래를 하며 남의 꺼리는 일을 말하였소.
凡所以使吾面目可憎, 語言無味者, 皆子之志也범소이사오면목가증, 어언무미자, 개자지지야: 모든 내 얼굴을 가증스럽게 하고, 하는 말을 맛없게 하는 것이 모두 그대의 뜻이었소.
其一名曰智窮, 矯矯亢亢, 惡圓喜方, 羞爲姦欺기일명왈지궁, 교교항항, 오원희방, 수위간기:
그 첫째 이름은 지궁智窮인데, 고답적이면서도 뻣뻣하고 둥근 것은 싫어하고 모난 것을 좋아하며, 간사하고 속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데
不忍害傷, 其次名曰學窮, 傲數與名, 摘抉杳微불인해상, 기차명왈학궁, 오수여명, 적결묘미: 남을 해치고 상하게 하는 짓은 차마 하지 못하오. 그 다음은 이름을 학궁學窮이라 하는데, 법도와 명서名書에 대하여는 오만하고, 심원하고 미묘한 것을 잡아내며
高理群言, 執神之機, 又其次曰文窮, 不專一能고이군언, 집신지기, 우기차왈문궁, 불전일능: 여러 가지 이론들을 높이 들추어내어 신神의 기밀을 파악하지요, 또 다음은 문궁文窮이라 하는데, 한 가지 능력만을 오로지 추구하지 않고
怪怪奇奇, 不可時施, 之以自嬉, 又其次曰命窮괴괴기기, 불가시시, 지이자희, 우기차왈명궁: 기괴한 표현을 일삼아 시국에 응용할 수가 없고 오직 스스로 즐길 따름이오. 또 그 다음은 命窮이라 하는데
影與形殊, 面醜心姸, 利居衆後, 責在人先영여형수, 면추심연, 이거중후, 책재인선: 그림자와 형체가 달라서 얼굴은 추하나 마음은 곱고, 이利로운 일에는 다른 사람들 뒷전에 서고 책임질 일은 남들보다 앞장서지요.
又其次曰交窮, 磨肌斡骨, 吐出心肝, 企足以待우기차왈교궁, 마기알골, 토출심간, 기족이대: 또 다음은 교궁交窮인데, 살갗을 부비며 남과 가까이 지내고 마음속을 다 토해내서 보여주고 발 돋음하고 기다리며
他我讐寃. 凡此五鬼, 爲吾五患, 飢我寒我타아수원. 범차오귀, 위오오환, 기아한아: 남을 대우하고도 나를 원수자리에 놓이게 하는 것이오. 이 다섯 귀신들은 나의 다섯 가지 환난을 마련해주어, 나를 굶주리게 하고 헐벗게 하며
興訛造難, 能使我迷, 人莫能間. 朝悔其行흥와조난, 능사아미, 인막능간. 조회기행: 내게 소동을 일으키고 비난을 받게 하여, 나를 미혹하게 만들고 있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이에 간섭하지 못하오. 아침에 그러한 행동을 후회하지만
暮已復然, 蠅營狗苟, 驅去復還. 言未畢모이복연, 승영구구, 구거복환. 언미필: 저녁이면 또 다시 그러하니, 파리 떼가 붕붕거리고 개가 구차히 지내듯 쫓아버려도 다시 돌아오지요. 말을 마치기도 전에
五鬼相與張眼吐舌, 跳輛偃否, 抵掌頓脚오귀상여장안토설, 도량언부, 저장돈각: 다섯 귀신들이 모두 눈을 크게 뜨고 혀를 내밀고 펄쩍 뛰다가는 이리저리 나자빠지며,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失笑相顧, 徐謂主人曰, 子知我名, 凡我所爲실소상고, 서위주인왈, 자지아명, 범아소위: 실소하면서 서로 돌아다보고 천천히 주인에게 말하였다. 선생께서 우리 이름과 모든 우리 행위를 아시고
驅我令去, 小知大癡. 人生一世, 其久幾何구아령거, 소지대치. 인생일세, 기구기하: 우리를 내쫓아 떠나라고 하시는데, 작게는 약지만 크게 바보 같은 짓입니다. 사람이 나서 한 평생 얼마나 오래 사는 겁니까?
吾立子名, 百世不磨. 小人君子, 其心不同오립자명, 백세불마. 소인군자, 기심부동: 우리는 선생님의 명성을 세워서 백세 뒤에도 지워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소인과 군자는 그들 마음이 같지 않은 것이니
惟乖於時, 乃與天通, 携持琬琰, 易一羊皮유괴어시, 내여천통, 휴지완염, 역일양피: 오직 시국에 어긋나야만 비로소 하늘과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주옥을 가지고 한 장의 양가죽과 바꾸고
膏於肥甘, 慕彼糠美. 天下知子, 誰過於予고어비감, 모피강미. 천하지자, 수과어여: 기름지고 단 것에 배가 불러 겨와 쌀겨를 아름답다고 하는거나 같은 일이지요, 천하에서 선생님을 아는데 있어서 누가 우리보다도 더 낫겠습니까?
雖遭斥逐, 不忍子疏, 謂予不信, 請質詩書수조척축, 불인자소, 위여불신, 청질시서: 비록 배척받아 쫓겨나게 되었다고 하여도 차마 선생님을 멀리하지 못하겠습니다.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놓고 질정해보도록 하십시오.
主人於是垂頭喪氣, 上手稱謝주인어시수두상기, 상수칭사: 주인은 그러자 머리를 떨구고 기가 죽어 두 손을 들어 사과를 한 다음
燒車與船, 延之上座소차여선, 연지상좌: 수레와 배를 불사르고 그들을 마중하여 상좌에 앉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