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배 행법

1. 반듯하게 누워서 두 무릎을 세운다. 옷을 젖히고 배를 드러낸다.

 

2. 양손을 충분히 마찰한 후 따뜻해진 양손바닥으로 배 전체를 20-30회 시계방향으로 가볍게 문지른다. 소화를 위해서라면, 식사가 끝난 후 오른손 왼손으로 각각 100번씩 비빈다.

 

3. 배 전체를 가로세로 3등분한 것처럼 하여 양손의 손가락을 모아서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차례차례 눌러나간다. 누를 때에는 입으로 숨을 내쉬고 손을 뗄 때에는 조용히 코로 숨을 들이쉰다. 배를 눌렀을 때 단단하게 느껴지는 곳이 있으면 숙변이 괴어있는 곳이다. 두 손바닥을 포갠 채로 원을 그리듯 천천히 여러 번 문질러서 풀어준다.

 

4. 마지막에 배 전체를 손바닥으로 20-30회 가볍게 문지른다.

 

참고

이 행법을 하면 당장 변의便意가 생겨 대량의 변을 배설하게 된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변의 양과 횟수가 늘어난다. 이것은 장이 늘어져서 장내에 쌓여있던 여러 날 분의 변이 배설되기 때문이다. 또한 변의 빛깔이 새까만 것은 장벽에 끼어있던 숙변이 배설되기 때문이다. 이 행법을 일주일가량 하면 건강한 노란 변을 배설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배의 군살이 점점 줄어든다. 아침과 밤 공복 시에 이 행법을 두 차례 하면 변비는 당장 해소된다. 숙변에 의한 사기가 원인이 된 부스럼, 생리통 등의 증세도 낫게 된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도 좋다.

 

5. 반듯하게 누워서 무릎을 세운다. 양손은 깍지 끼고 머리 밑에 둔다. 입으로 숨을 내쉬면서 천천히 배를 쳐든다. 숨을 다 내쉬거든 입을 다물고 코로 숨을 들이쉬면서 천천히 배를 내려 원래의 자세로 돌아온다. 3회 이상 되풀이 한다. 배의 군살을 배고 싶은 사람은 여러 번 반복한다.

 

6. 두 다리를 펴고 앉는다. 입으로 숨을 내쉬면서 천천히 윗몸을 앞으로 쓰러뜨리고 허리를 굽히면서 두 팔을 앞으로 뻗어 손가락 끝으로 발가락을 잡아당긴다. 숨을 다 내쉬거든 입을 다물고 코로 숨을 들이쉬면서 천천히 윗몸을 일으켜 원래의 자세로 돌아온다. 3회 이상 되풀이 한다. 이 행법은 위장과 그 밖의 내장을 젊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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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민족은 판이하게 다른 세계관을 가진 민족이었다

<아시아 역사>(지와 사랑) 중에서

 

 

 

 

4장에서는 중국 북부지역을 정복한 중앙아시아 민족에 관해 알아볼 것이다. 그들은 유럽인뿐만 아니라 여타 아시아인과도 판이하게 다른 세계관을 가진 민족이었다. 전차부대와 기마부대가 흙먼지를 날리면서 내달리던 유라시아 초원지대가 어떻게 대륙 간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밝혀진 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당시 대부분의 유목민들이 대서양의 기류가 초원을 우거지게 만들어주는 땅을 찾아 서쪽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동쪽으로 이동한 토카라족에게 전차기술을 전수받았다. 토카라족은 원래 러시아 초원지대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만리장성 축조로 동아시아를 침략할 가능성이 적어진 이후에는 유목민들이 서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토카라족의 동진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었다. 중앙아시아를 둘러싸고 있던 각국의 지도자들은 이 초원지대를 활보하는 유목민들을 애물단지 취급했다. 이러한 풍조는 투르크족과 무굴족이 각각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에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나서야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티무르가 건설한 대제국의 영고성쇠는 중앙아시아에 당연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5장에서는 서아시아의 중세에 관해 살펴볼 것이다. 이 시기에 두 번째 범아시아 종교인 이슬람교가 발흥했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역은 아시아 대륙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의 놀라운 교리는 성전에 몸을 바친 아라비아 병사들에 의해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로 전파되었다. 또한 이슬람교로 개종한 인도 상인들이 무역을 하면서 이 신흥 종교를 말레이 반도와 필리핀・인도네시아까지 전파했다. 가장 중요한 사건은 예루살렘과 메카 모두를 이슬람교의 성지로 지정한 것이다. 카바 신전으로 순례하는 이슬람교도들의 관행을 통해 아시아 전역 이슬람교도들의 통합이 가능해졌으니 말이다.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교 지도부에 불화가 싹텄다. 권력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지목된 네 명 가운데 세 명이 암살당했다. 그 중엔 무함마드의 사위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도 포함되었다. 우마이야 왕조와 아바스 왕조가 자리 잡은 후에야 당파를 가르고 정쟁을 일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자취를 감추었다. 750년에는 무함마드의 사위 알리를 살해한 데 대한 뒤늦은 복수가 우마이야 왕조에 피바람을 일으키는 일이 다시 한 번 벌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바스 왕조가 몰락한 후, 이슬람의 맹주 자리를 꿰어찬 건 이슬람교를 선도한 셀주크투르크 제국이었다. 이 비운의 제국은1095~1229년 십자군 전쟁을 겪게 된다. 이후 맹렬한 기세로 셀주크투르크를 압박해들어온 몽골군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이어서 출현한 사파비 왕조 페르시아와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아라비아의 맹주를 탐내기 시작한다. 이 강대했던 제국의 통치자들이 건립한 놀라운 기념건축물들을 오늘날 이스파한과 이스탄불에서 접할 수 있다.
6장은 이슬람교의 인도 전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힌두교와 불교국가들이 인도 남부와 스리랑카에서 번영을 누렸지만, 남아시아는 중세로 접어들면서 외세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슬람 세력의 거듭된 중앙아시아 침략은 조국 티무르에서 쫓겨난 칭기즈 칸의 후예 자히르 웃딘 무함마드 바부르가 1530년 무굴 제국을 건립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바부르는 자신을 따르던 유목민들의 통치자가 되었다. 이는 아시아 중세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들 가운데 하나다. 다행히 그의 후계자인 악바르는 인도의 종교와 풍습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했다. 악바르 대제가 세웠다는 아그라 부근에 있는 도시 파테푸르 시크리에서 지금도 그 흔적을 접할 수 있다.
육로로 오는 이방인만이 인도 아대륙을 탐낸 건 아니었다. 해로를 통해 유럽인이 인도로 몰려왔다. 최초로 아시아 해상 무역에 걸린 이권을 탐낸 건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였다. 곧이어 다른 강대국들도 이권 다툼에 속속 참가했고, 과열된 경쟁이 프랑스와 영국의 갈등을 초래했다. 이로 인해 벌어진 전쟁의 승자는 영국이었다. 1803년 아서 웰즐리(웰링턴 공작)가 인도 남부의 마라타 동맹까지 제압하면서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무역독점권을 확보한다. 영국령 인도를 좌지우지하는 캘커타의 집권세력이 델리에 무굴 황제의 왕궁이 버젓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인도 아대륙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등극한 것이다.
7장에서는 당나라와 송나라의 수도 장안長安과 카이펑開封을 중심으로 만개한 중국 문명의 흔적을 더듬어보겠다. 중국은 당나라와 송나라 집권기 동안 중앙아시아 민족에게 빼앗겼던 중국 북부지역을 회복하고 태평성대를 누린다. 중세 최대의 도시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는 2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거주했다. 단일 도시의 거주인구로는 당대 최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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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韓愈의 <가난을 보내는 글>

 

 

 

당唐나라 문인이자 사상가 한유韓愈(768~824)는 관료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3세에 고아가 되어 형수의 손에서 자랐으며 어려운 환경에서 학문에 정진하여 유가를 비롯한 제자백가의 학문을 두루 섭렵했다. 25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경조윤 등 여러 벼슬을 거쳐 이부시랑에 이르렀으며 57세로 생을 마쳤다. 조정에서 예부상서의 관작과 함께 문文이라는 시호를 추증하여 한문공韓文公으로 불린다.

한유의 문장 가운데 송궁문送窮文(가난을 보내는 글)이 있다. 한유는 이 글에서 자신에게 어려움을 주는 다섯 가지 일을 귀신으로 묘사하고, 이것들을 쫓아버리려는 자신의 마음을 해학적으로 그렸다. 그는 의인화한 궁귀窮鬼에게 세 번 읍泣하고 자신으로부터 떠나줄 것을 간청했다. 가난 귀신 궁귀는 한참 있다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와 선생님이 함께 살아온 지 사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 저는 선생님을 어리석게 여기지 아니하였고, 선생님의 공부도 하고 밭도 갈면서 벼슬과 명예를 추구하는 동안에도 오로지 선생님만을 따르며 처음처럼 끝내 변함이 없었습니다. 문門의 신神들에게 나는 야단맞고 꾸중을 들으면서도 부끄러움을 참고 무조건 따르면서 딴 곳에 뜻을 둔 적이 없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남쪽 먼 곳으로 귀양을 갔을 적에는 뜨겁고 덥고 습기 차고 찜질하는 듯했으므로, 나는 그 고장에 익숙하지 못하여 여러 귀신들이 속이고 능멸하였습니다. 태학에서 4년 공부하는 동안에는 아침에는 부추, 저녁에는 소금으로 반찬하며 지냈으나 오로지 저만이 선생님을 보살펴주었고, 사람 모두가 선생님을 싫어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선생님을 배반한 일이 없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다른 생각을 해본 일이 없었으며, 입으로는 가겠다는 말을 전혀 한 일이 없는데, 어디서 무슨 말을 듣고 저에게 가야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는 필시 선생님께서 남이 모함하는 말을 믿고서 저에게 거리를 두게 된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귀신鬼神이지 사람이 아니거늘 수레와 배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코로 추한 냄새와 향기나 맡고 지내니 미수가루와 양식도 버리는 게 좋을 것입니다. 홀로 외짝인 한 몸인데 친구와 무리란 어떤 자들입니까? 선생님께서 진실로 모두 알고 계신다면,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따질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모두 말할 수 있으시면 성인聖人이나 지인知人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실이 이미 드러나 있다면 감히 회피하지 않겠습니까?

 

 

송궁문送窮文은 다음과 같다.

 

元和六年正月乙丑晦, 主人使奴星, 結柳作車원화육년정월을축회, 주인사노성, 결류작차: 원화 육년 정월 을축날 저녁에, 주인이 하인 성星으로 하여금 버드나무를 엮어 수레를 만들고

 

縛草爲船, 載구輿장, 牛繫액下, 引帆上檣박초위선, 재구여장, 우계액하, 인범상장: 풀을 묶어 배를 만들게 한 뒤 미수가루와 양식을 싣고서 멍에 밑에 소를 매고 돛대에 돛을 달고

 

三揖窮鬼而告之曰, 聞子行有日矣삼읍궁귀이고지왈, 문자행유일의: 궁귀窮鬼에게 세 번 읍하며 말하였다. 듣건대 그대에겐 떠나야 할 날이 있다고 합니다.

 

鄙人不敢問所途, 躬具船與車, 備載구장비인불감문소도, 궁구선여차, 비재구장: 남루한 내가 감히 갈 길은 묻지 못하겠으나, 몸소 배와 수레를 마련하고 미수가루와 양식도 모두 실어놓았소.

 

日吉辰良, 利行四方. 子飯一盂, 子酒一觴일길신량, 이행사방. 자반일우, 자주일상: 날짜 길하고 시절도 좋은 때라서 사방으로 떠나도 이로울 것이니, 그대는 밥 한 그릇을 먹고 술 한 잔 마신 뒤

 

携朋群周, 去故就新, 駕塵弓攫風, 與電爭先휴붕군주, 거고취신, 가진궁확풍, 여전쟁선: 친구와 무리들을 이끌고 옛 고장을 떠나 새 고장으로 떠나도록 하오. 먼지 일으키며 수레 달리고 빠른 바람 타고 배 몰아 번개와 앞 다투며 간다면

 

子無底滯之尤, 我有資送之恩, 子等有意於行乎자무저체지우, 아유자송지은, 자등유의어행호: 그대에게는 머물러 있다는 허물이 없게 될 것이오. 나는 노자路資를 갖추어 전송한 은혜를 지니게 될 것인데, 그대는 떠날 뜻이 있소? 하였다.

 

屛息潛聽, 如聞音聲, 若嘯若啼, 획훌우앵병식잠청, 여문음성, 약소약제, 획훌우앵: 숨을 죽이고 조용히 들으니 말소리가 들리는 듯했는데, 휘파람 소리와도 같고 우는 소리와도 같게 중얼거리고 칭얼거리니

 

毛髮盡竪, 悚肩縮頸, 疑有而無, 久乃可明모발진수, 송견축경, 의유이무, 구내가명: 몸 털과 머리카락이 모두 곤두서고 어깨를 들추고 목을 움츠리게 하였다. 소리가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하다가 오랜 뒤에야 분명해졌다.

 

若有言者曰, 吾與子居四十年餘, 子在孩提약유언자왈, 오여자거사십년여. 자재해제: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저와 선생님이 함께 살아온 지 사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

 

吾不子愚, 子學子耕, 求官與名, 惟子是從오불자우, 자학자경, 구관여명, 유자시종: 저는 선생님을 어리석게 여기지 아니하였고, 선생님의 공부도 하고 밭도 갈면서 벼슬과 명예를 추구하는 동안에도 오로지 선생님만을 따르며

 

不變于初. 門神戶靈, 我叱我呵, 包羞詭隨불변우초. 문신호영, 아질아가, 포수궤수: 처음처럼 끝내 변함이 없었습니다. 문門의 신神들에게 나는 야단맞고 꾸중을 들으면서도 부끄러움을 참고 무조건 따르면서

 

志不在他. 子遷南荒, 熱燥濕蒸, 我非其鄕지불재타. 자천남황, 열조습증, 아비기향: 딴 곳에 뜻을 둔 적이 없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남쪽 먼 곳으로 귀양을 갔을 적에는 뜨겁고 덥고 습기 차고 찜질하는 듯했으므로, 나는 그 고장에 익숙하지 못하여

 

百鬼欺陵, 太學四年, 朝제暮鹽, 惟我保汝백귀기릉, 태학사년, 조제모염, 유아보여: 여러 귀신들이 속이고 능멸하였습니다. 태학에서 4년 공부하는 동안에는 아침에는 부추, 저녁에는 소금으로 반찬하며 지냈으나 오로지 저만이 선생님을 보살펴주었고

 

人皆汝嫌. 自初及終, 未始背汝, 心無異謀인개여혐. 자초급종, 미시배여, 심무이모: 사람 모두가 선생님을 싫어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선생님을 배반한 일이 없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다른 생각을 해본 일이 없었으며

 

口絶行語, 於何聽聞, 云我當去. 是必夫子信讒구절행어, 어하청문, 운아당거. 시필부자신참: 입으로는 가겠다는 말을 전혀 한 일이 없는데, 어디서 무슨 말을 듣고 저에게 가야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는 필시 선생님께서 남이 모함하는 말을 믿고서

 

有間於予也. 我鬼非人, 安用車船, 鼻嗅臭香유간어여야. 아귀비인, 안용차선, 비후취향: 저에게 거리를 두게 된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귀신鬼神이지 사람이 아니거늘 수레와 배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코로 추한 냄새와 향기나 맡고 지내니

 

구장可損. 單獨一身, 誰爲朋周. 子苟備知구장가손. 단독일신, 수위붕주. 자구비지: 미수가루와 양식도 버리는 게 좋을 것입니다. 홀로 외짝인 한 몸인데 친구와 무리란 어떤 자들입니까? 선생님께서 진실로 모두 알고 계신다면

可數以不. 子能盡言, 可謂聖智. 情狀旣露가수이불. 자능진언, 가위성지. 정상기로:

런가 그렇지 않은가 따질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모두 말할 수 있으시면 성인聖人이나 지인知人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실이 이미 드러나 있다면

 

敢不廻避. 主人應之曰, 子以吾爲眞不知也邪감불회피. 주인응지왈, 자이오위진부지야사: 감히 회피하지 않겠습니까? 주인이 대답했다. 그대는 내가 정말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子之朋周, 非六非四, 在十去五, 滿七除二자지붕주, 비육비사, 재십거오, 만칠제이: 그대의 벗과 무리들은 여섯 명도 아니고 네 명도 아니며, 열에서 다섯을 뺀 숫자이고 일곱 중에서 둘을 덜어낸 숫자요

 

各有主張, 私立名字, 裂手覆羹, 轉喉觸諱각유주장, 사립명자, 열수복갱, 전후촉휘: 제각기 주장하는 일이 있고, 사사로이 이름을 내세우며, 남의 손을 비틀어 뜨거운 국을 덮고 노래를 하며 남의 꺼리는 일을 말하였소.

 

凡所以使吾面目可憎, 語言無味者, 皆子之志也범소이사오면목가증, 어언무미자, 개자지지야: 모든 내 얼굴을 가증스럽게 하고, 하는 말을 맛없게 하는 것이 모두 그대의 뜻이었소.

 

其一名曰智窮, 矯矯亢亢, 惡圓喜方, 羞爲姦欺기일명왈지궁, 교교항항, 오원희방, 수위간기:

그 첫째 이름은 지궁智窮인데, 고답적이면서도 뻣뻣하고 둥근 것은 싫어하고 모난 것을 좋아하며, 간사하고 속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데

 

不忍害傷, 其次名曰學窮, 傲數與名, 摘抉杳微불인해상, 기차명왈학궁, 오수여명, 적결묘미: 남을 해치고 상하게 하는 짓은 차마 하지 못하오. 그 다음은 이름을 학궁學窮이라 하는데, 법도와 명서名書에 대하여는 오만하고, 심원하고 미묘한 것을 잡아내며

 

高理群言, 執神之機, 又其次曰文窮, 不專一能고이군언, 집신지기, 우기차왈문궁, 불전일능: 여러 가지 이론들을 높이 들추어내어 신神의 기밀을 파악하지요, 또 다음은 문궁文窮이라 하는데, 한 가지 능력만을 오로지 추구하지 않고

 

怪怪奇奇, 不可時施, 之以自嬉, 又其次曰命窮괴괴기기, 불가시시, 지이자희, 우기차왈명궁: 기괴한 표현을 일삼아 시국에 응용할 수가 없고 오직 스스로 즐길 따름이오. 또 그 다음은 命窮이라 하는데

 

影與形殊, 面醜心姸, 利居衆後, 責在人先영여형수, 면추심연, 이거중후, 책재인선: 그림자와 형체가 달라서 얼굴은 추하나 마음은 곱고, 이利로운 일에는 다른 사람들 뒷전에 서고 책임질 일은 남들보다 앞장서지요.

 

又其次曰交窮, 磨肌斡骨, 吐出心肝, 企足以待우기차왈교궁, 마기알골, 토출심간, 기족이대: 또 다음은 교궁交窮인데, 살갗을 부비며 남과 가까이 지내고 마음속을 다 토해내서 보여주고 발 돋음하고 기다리며

 

他我讐寃. 凡此五鬼, 爲吾五患, 飢我寒我타아수원. 범차오귀, 위오오환, 기아한아: 남을 대우하고도 나를 원수자리에 놓이게 하는 것이오. 이 다섯 귀신들은 나의 다섯 가지 환난을 마련해주어, 나를 굶주리게 하고 헐벗게 하며

 

興訛造難, 能使我迷, 人莫能間. 朝悔其行흥와조난, 능사아미, 인막능간. 조회기행: 내게 소동을 일으키고 비난을 받게 하여, 나를 미혹하게 만들고 있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이에 간섭하지 못하오. 아침에 그러한 행동을 후회하지만

 

暮已復然, 蠅營狗苟, 驅去復還. 言未畢모이복연, 승영구구, 구거복환. 언미필: 저녁이면 또 다시 그러하니, 파리 떼가 붕붕거리고 개가 구차히 지내듯 쫓아버려도 다시 돌아오지요. 말을 마치기도 전에

 

五鬼相與張眼吐舌, 跳輛偃否, 抵掌頓脚오귀상여장안토설, 도량언부, 저장돈각: 다섯 귀신들이 모두 눈을 크게 뜨고 혀를 내밀고 펄쩍 뛰다가는 이리저리 나자빠지며,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失笑相顧, 徐謂主人曰, 子知我名, 凡我所爲실소상고, 서위주인왈, 자지아명, 범아소위: 실소하면서 서로 돌아다보고 천천히 주인에게 말하였다. 선생께서 우리 이름과 모든 우리 행위를 아시고

 

驅我令去, 小知大癡. 人生一世, 其久幾何구아령거, 소지대치. 인생일세, 기구기하: 우리를 내쫓아 떠나라고 하시는데, 작게는 약지만 크게 바보 같은 짓입니다. 사람이 나서 한 평생 얼마나 오래 사는 겁니까?

 

吾立子名, 百世不磨. 小人君子, 其心不同오립자명, 백세불마. 소인군자, 기심부동: 우리는 선생님의 명성을 세워서 백세 뒤에도 지워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소인과 군자는 그들 마음이 같지 않은 것이니

 

惟乖於時, 乃與天通, 携持琬琰, 易一羊皮유괴어시, 내여천통, 휴지완염, 역일양피: 오직 시국에 어긋나야만 비로소 하늘과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주옥을 가지고 한 장의 양가죽과 바꾸고

 

膏於肥甘, 慕彼糠美. 天下知子, 誰過於予고어비감, 모피강미. 천하지자, 수과어여: 기름지고 단 것에 배가 불러 겨와 쌀겨를 아름답다고 하는거나 같은 일이지요, 천하에서 선생님을 아는데 있어서 누가 우리보다도 더 낫겠습니까?

 

雖遭斥逐, 不忍子疏, 謂予不信, 請質詩書수조척축, 불인자소, 위여불신, 청질시서: 비록 배척받아 쫓겨나게 되었다고 하여도 차마 선생님을 멀리하지 못하겠습니다.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놓고 질정해보도록 하십시오.

 

主人於是垂頭喪氣, 上手稱謝주인어시수두상기, 상수칭사: 주인은 그러자 머리를 떨구고 기가 죽어 두 손을 들어 사과를 한 다음

 

燒車與船, 延之上座소차여선, 연지상좌: 수레와 배를 불사르고 그들을 마중하여 상좌에 앉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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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허리 행법

1. 똑바로 서서 입으로 숨을 내쉬면서 천천히 윗몸을 손바닥이 바닥에 닿도록 앞으로 쓰러뜨린다. 윗몸을 굽힌 후 입을 다물고 코로 숨을 들이마시면서 천천히 원래의 자세로 돌아온다. 9-18회 반복한다. 손바닥이 바닥에 닿으면 요추 추간판 헤르니아hernia가 나은 것이다.

 

 

참고

헤르니아는 체내의 장기(내장)가 본래의 부위에서 일탈한 상태, 탈장脫腸을 말한다. 복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고, 또한 대부분이 소장이나 대망大網(복부 내에 앞치마처럼 길게 늘어난 위간막의 주름)에서 일어나는데, 뇌·폐·근육 등이 탈출하여 헤르니아를 나타내는 일도 있다. 보통 피막이나 장막漿膜 등에 덮인 채로 일탈되는 것을 가리키며, 덮이지 않은 경우는 탈출이라고 하여 구별한다. 일탈한 장기를 헤르니아 내용, 그것을 싸는 막을 헤르니아낭, 일탈부위를 헤르니아문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발생부위에 따라 외外헤르니아와 내內헤르니아로 크게 나누며, 전자에는 서혜鼠蹊헤르니아를 비롯하여, 대퇴 헤르니아, 제臍헤르니아 등이 있고 후자에는 횡격막橫隔膜헤르니아 등이 포함된다. 또 발생 원인에 따라서는 선천성·후천성·술후성術後性·외상성 헤르니아로 나누는 것 외에, 내용으로 소장·대장·대망·방광 헤르니아 등이 있으며, 상태에 따라 환납성還納性·비환납성·염증성·감돈嵌頓헤르니아로 나눈다.

대표적인 것이 서혜헤르니아이며 복부에서 볼 수 있는 것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일반적으로 환자를 눕히고 조용히 부풀어 오른 부분을 문질러주면 되돌아간다.

 

 

2. 두 다리를 펴고 앉는다. 다리를 굽혀 무릎을 모아 세우고 두 손으로 그것을 끌어앉는다. 입으로 숨을 내쉬면서 두 손에 힘을 주어 천천히 두 무릎을 가슴에 갖다 댄다. 이때 아래턱이 무릎에 닿도록 한다. 입을 다물고 코로 숨을 들이쉬면서 천천히 다리를 펴고 원래의 자세로 돌아온다. 4회 이상 되풀이 한다.

허리에 통증이 있는 사람은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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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문명은 아시아에서 발생했다

 

 

 

 

 

<아시아 역사> 서문 중에서

 

인류 최초의 문명은 아시아에서 발생했다. 기원전 4000년경, 현재 이라크의 수메르에서 최초의 도시들이 생겨났다. 곧이어 이집트에서도 도시들이 생겨났지만, 고대 서아시아의 뿌리를 형성하는 데 중대한 영향을 미친 건 수메르인이었다. 아시리아 왕들의 행적이 담긴 고문헌은 현대의 우리에게 수메르인의 심오한 사상을 전해준다. 1872년에 진행된 아시리아 왕궁 서고의 문헌을 해독하는 작업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성경의 이야기로 알고 있던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바빌로니아 신화의 한 대목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노아의 방주 신화가 수메르 신화인 아트라하시스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학자들이 확인하게 되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들 가운데 몇몇이 이곳에서 발원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장에서는 고대 서아시아에서 수메르의 후계 국가인 바빌로니아・아시리아・페르시아 제국을 통해 수메르인의 유산을 살펴본다. 페르시아의 세력을 꺾은 사람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영토는 인도 북서부까지 뻗어나갔을 정도였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은 이 막대한 영토를 관리하기에 역부족이었고, 재정비를 마친 페르시아가 지중해에서 로마 제국과 맞닥뜨린다. 아시아와 유럽 세력의 일진일퇴는 중세의 십자군전쟁과, 오스만투르크의 발칸 반도 점령까지 이어지게 된다. 고대에도 대륙 간 전쟁은 이미 종교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 수메르의 다신교사상이, 기독교에 의해 예수 유일신사상으로 상당부분 대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 예수에게 대입한 개념은 수메르 신의 죽음과 부활의 개념이었으며, 놀랍게도 이러한 개념을 훗날 이슬람의 무함마드가 차용했다.
2장은 기원전 2200년경, 인더스 강 유역에서 발생한 인더스 문명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문명이라서 문자판독이 불가능한 부분이 많아 완벽하게 이해하는 건 어렵지만, 고고학적 유물들이 인도인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종교적 전통을 보여준다. 인도의 세정의식이나 요가・모신숭배 등이 기원전 1750~1500년 사이 인더스 강 유역에 자리 잡고 있던 아리아인에게 전파되었다.
아리아인은 전차부대를 앞세워 인도를 침략했고, 이후 전차는 아리아인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harata』에는 전차의 효용을 극찬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마하바라타』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장편 대서사시이다. 인도네시아 중앙부에 있는 섬 술라웨시에 거주하던, 말레이-폴리네시아어계에 속하는 부기스족은 대서사시 『라 갈리고La Galigo』를 저술했다. 오직 『라 갈리고』에서만 인간세상에 내려와 사람이 된 신의 후예인 샤웨리가딩의  업적을 대대적으로 칭송하고 있다. 반면 아리아 문화에 호락호락하게 길들여지지 않은 것도 있었다. 최초의 범아시아적 종교 불교가 그런 경우이다. 오히려 붓다의 교리가 서서히 아리아인의 정신을 물들였고, 아리아인이 역으로 자신들의 삶에 불교를 받아들이는 일이 일어났다.
마우리아 왕조와 쿠샨 왕조의 왕들이 불교를 후원했으며, 수도승들이 불교를 중앙아시아로 전파했다. 수도승들의 왕성한 포교활동 덕에 불교는 저 먼 동아시아의 중국・한반도・일본에까지 전해졌다. 쿠샨족은 중앙아시아 민족들 가운데 유일하게 인도 북부를 통치했다. 인도 북부의 토착민족인 굽타족이 세운 굽타 왕조의 통치기에 인도는 태평성대를 누렸다. 훈족이 밀려들어오기 전까지 말이다. 아틸라의 후예 아니랄까봐 훈족의 왕 미히르쿨라도 농경민족의 삶을 폐허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즐겼다. 굽타 왕조 말기의 통치자들은 불교를 배척하고 힌두교를 숭상했다. 7세기에 이슬람교가 인도에 전파되었다.
하지만 남아시아의 대표적인 종교는 여전히 힌두교였다. 3장에서는,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동아시아 문명 발상지에 대해서 주로 살펴볼 것이다. 상나라와 주나라 황제들의 행보에서 중국만의 고유하고도 지속적인 문화의 형성과정을 볼 수 있다. 중국문화는 장구한 세월 동안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하나의 흐름을 가진 문화가 무려 기원전 221년부터 기원후 1912년까지 지속된 것이다.
진시황의 통치 하에 중국이 통일되기 전, 유교와 도가가 출현하여 통치사상의 자리를 놓고 자웅을 겨뤘고, 중국 황제들은 가족중심적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유교를 선택했다. 서아시아나 남아시아의 다른 고대 문명의 중심지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던 덕에 중국은 고유한 세계관을 정립할 수 있었다.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의 유목민은 두고두고
중국의 골칫거리였다. 결국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중국의 농업지대와 유목민의 초원지대 사이에 만리장성이 축조되었다. 하지만 유목민들이 연합을 이루게 되면서, 만리장성만으로는 중국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시대가 열렸다. 316년 중국은 거의 대부분의 북부영토를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대표적인 유목민인 훈족의 침입과, 그로 인한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멸망하고 만 서로마 제국의 쇠망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두 국가의 쇠락을 동일선상에 놓고 평가할 것은 아니다. 역사의 흔적이 되어버린 라틴어와는 다르게 중국어는 온전히 살아남아 유구한 역사의
기억을 후대에 전했다. 중국을 침략한 이민족들이 한족의 언어를 자신들의 공식언어로 채택했을 정도였다. 이처럼 칼과 공포로 제압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던 언어는 중국어 말고 페르시아어가 유일하다. 아랍어들의 각축장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페르시아인의 아름다운 언어 말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페르시아어도 상당부분 변질된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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