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대의 규모는 컸으며 대원들은 예복을 입었다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여호사밧 왕(Jehoshaphat, 기원전 870-846년 재위)은 전선으로 떠나기 전 드고아 들에서 성가대로 하여금 군인들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해서 군인들로 하여금 아람인과의 전투에 임하기 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했다(역대기하 20:20-21).
히스키야 왕은(Hezekiah, 기원전 716-687년 재위)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였다(역대기하 29:30).
요시야 왕(Josiah, 기원전 640-609년 재위) 재위 시 레위 지파 사람들로 구성된 성가대가 유월절에 찬송가를 불렀다는 기록이 있어 명절에 성가대의 활약이 두드러졌음을 안다(역대기하 35:15).


기원전 606년에 신바빌로니아 왕국(기원전 626-539년)이 앗시리아를 멸망시키고,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 기원전 604-562년 재위)은 구앗시리아의 영토를 손아귀에 넣었다.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느부갓네살은 어린 여호야긴 왕(기원전 598-597년 재위)과 대제사장 에스겔 그리고 시민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그들은 전쟁 포로가 되어 이국에서 종살이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에스겔(Ezekiel, 기원전 592-570년에 주로 활약)은 바빌론에서 선지자로 활약했다.
느부갓네살은 기원전 587년에 다시 예루살렘을 함락한 후 성전을 불사르고 또 시민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
이때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집트로 피신했으며 그곳에서 타계하고 말았다.
이런 역사의 분기에도 찬송가는 작사되었으며 이들 중 일부가 시편에 수록되었다.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한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Cyrus, 기원전 551-529년 재위)가 기원전 539년에 바빌론을 정복했다.
그는 바빌론에 억류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귀향을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성전을 재건하는 것도 허락했다.
바빌론으로부터 귀환한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폐허가 된 성전을 재건하고 성가대를 새로 구성한 후 하나님을 찬양했다(에스라 3:10-11).


예루살렘 성곽이 낙성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였다) (느헤미야 12:27)


저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결례의 일을 힘썼으며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도 그리하여
모두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의 명을 쫓아 행하였으니
옛적 다윗과 아삽의 때에는 노래하는 자의 두목이 있어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노래와 감사하는 노래를 하였음이며
스룹바벨과 느헤미야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쓸 것을 주되
그 구별한 것을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
레위 사람들은 그것을 또 구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느니라 (느헤미야 12:45-46)


시편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바빌론에서 포로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기원전 6세기 중반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찬송가를 지어 불렀다(이사야 40:12-31, 42:10-12, 44:23, 49:13, 52:9, 54:1-10).
제2 이사야(40장부터 55장)의 저자만 찬송가를 작사한 것이 아니라 제3 이사야(56장부터 66장까지)의 저자도 찬송가 몇 편을 지었다(이사야 61:10, 11, 63:7-64:12, 66:10-14).
요나의 2장 2절부터 9절까지는 후세 사람이 삽입한 내용으로 알려졌는데 이 구절은 그 형식이 시편과 유사하다.


정경 말고도 외경에 수록된 찬송가의 수도 적지 않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다 모세의 인도로 가나안땅에 올 때에 관한 내용과 바빌론에서 종살이할 때(기원전 586-539년) 내용도 시편에 있다.
가장 오래된 노래는 제90편으로 작사자가 모세로 알려졌는데 기원전 1446년경의 것이다.
후세의 것은 제137편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에서 종살이할 때의 것이다.
성전증수를 마친 기원전 515년 이후 작사된 제119편은 가장 긴 노래이다(에스라 3:5-6).


이스라엘 사람은 그리스인 철학자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시편 대부분이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작사된 것들이라서 이스라엘 사람의 독특한 사상이 담긴 귀중한 사료로 간주된다.
구전으로 전래되는 노래들을 따로 한 권으로 묶은 것은 퍽 후세의 일로 기원전 2세기 이전이었다.
1940년대 말 사해 근처에서 이 시기에 제작한 시편이 발굴되었는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의 편수와 내용이 같다.


150편 노래의 작사자들이 누구냐 하는 문제는 언제 작사한 것이냐 하는 문제보다 밝히기가 더욱 어렵다.
사무엘상, 하에는 다윗왕이 시인이면서 지략이 뛰어난 장군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시편의 저자가 다윗이라고 믿었다.
많은 표제에 다윗의 시(a Psalm of David) 또는 다윗의 기도(a Prayer of David)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작사한 것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of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le를 작사자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Le는 in the manner of, 또는 according to the standard of, 또는 for the use of라는 뜻이다.
팔레스티나에서 발굴된 질그릇에 보면 ‘왕에게 속한(belonging to the king)’ 또는 ‘왕가의 재산(royal property)’이란 뜻의 le-melek이라는 말이 적혀 있어 le가 ‘속하는(belonging)’이란 뜻으로 사용되었음을 본다.
이럴 경우 le는 허가받은(authorized)이란 뜻이 된다.
다윗의 노래는 그러므로 그의 허락을 받은 노래이거나 그가 작사한 노래와 유사한 방법으로 작사된 노래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150편의 노래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대부분 성전에 소속된 성가대 대장이 예배를 위한 의식용으로 만든 것이라는 학설도 그럴 듯하지만, 욥기와 잠언, 이사야서 등에 더욱 세련되고 지성적인 내용의 노래가 있는 것을 보면 반드시 성전에 소속된 소수가 작사자들이라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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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르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시편의 일주 노래에서 물씬 풍기는 흙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농사짓고 가축을 기르는 생활을 한 때문이다.
그리고 군대적인 내용이 많은 까닭은 그들이 이따금 땅을 정복하는 전쟁에 참여했거나, 침략을 받아 방어하는 전쟁들을 치루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신정국가였으므로 백성은 당연히 전쟁을 하나님의 징계로 인식했다.


시편에는 형식, 구성, 통일, 조화 및 다양성이 빈번하게 나타나며 또한 운율을 갖추고 있으므로 시의 영역에 속한다.
어휘들은 지성적일 뿐만 아니라 감성적이기도 하다.
자연의 이치를 통해 사람의 생명력과 안정을 표현한 데서 작사자들에게 상상력이 풍부한 시인의 마음이 있었음을 안다.
운율 외에도 유사한 표현을 통한 반복되는 의미의 대구법(Parallelelism)도 그들의 특징으로 꼽을 만하다.
이것은 히브리어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대구법을 둘 이상 사용해서 강조하는 방법은 이스라엘 사람의 독특한 문장구조이다.


몇 편을 제외하고는 행을 연이나 절로 배열하는 방법이 일률적이지 못함을 본다.
제119편은 규칙적으로 배열된 가장 잘 알려진 예인데 각 연은 8행으로 22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에 따른 배열을 나타내기 위해 후렴을 가진 노래도 몇 편 있는데 이런 예를 42:5, 11, 43:5, 57:5, 11, 80:3, 7, 19에서 본다.
그리고 몇 편은 히브리어 22자 알파벳순으로 작사되었는데 이 같은 구성에 관한 구체적 설명은 본문에서 언급하기로 한다.


150편을 장르별로 분류하는 방법은 금세기 초부터 성서학자들의 중요한 작업이었으며 따라서 많은 학설이 제기되었다.
몇 편은 특별한 의식에 사용되기 위해서 작사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순례자의 노래들(the pilgrim songs)로 알려진 제24, 48, 84편은 성가대 지휘자의 지침을 좇아 부른 것들로 하나님의 산과 성소를 향해 나아가면서 부른 것들이다.
신정국가의 시민이 되는 순례자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통치하시는 영광의 왕이심을 노래로 불러서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다짐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시편 24편)


제146편부터 제150편까지 마지막 다섯 편을 할렐루야(hallelujah)편이라고 하는데 시편의 종결부이다.
할렐루야는 주님을 찬양하라(praise the Lord)라는 뜻이다.


시편을 크게 두 장르로 나누면 영광의 왕 또는 만군의 왕을 찬양하는 노래와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대부분 노래가 이 두 부류에 속한다.


작은 장르로는 지혜의 노래(wisdom psalms)가 있는데 성서학자들에 따라서 이 장르에 속한 찬송가의 수가 6편에서 12편 사이로 같지는 않지만 이의 없이 여기에 분류되는 것들은 제1편과 제37편이다.


군주의 노래(Monarchic psalms)로 알려진 것들은 제21편과 제72편인데 제21편은 다윗의 노래, 제72편은 솔로몬의 노래로 알려졌다.
둘 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바른 통치력과 정직한 마음을 주셔서 공의를 베풀 수 있도록 하신 데 감사하고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68편 다윗의 노래와 제78편 아삽의 노래는 역사의 노래(Historical psalms)로 알려졌는데 역사적인 사건들에서 교훈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 것들이다.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시편 78편)


제23편과 제62편은 신앙과 의로움을 토로한 것들로 따로 분류할 수 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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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구성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시편이 다섯 종류로 분류된다.
모세의 오경이 같은 시기에 분류된 것을 미루어 다섯 종류의 분류가 오경과 관련 있는 것 같다.


제1권: 제1편 - 제41편

서른일곱 편이 다윗의 노래로 알려졌고 나머지 네 편은 작자미상의 것들로 알려졌다.
작자미상의 노래들 중 제1편과 제2편은 시편 전체의 머리말과도 같은 중요한 것들이다.
스물한 편은 곤경에 처해 비탄의 감정이 표현된 것들이고, 열한 편은 순수 찬양의 노래이다.


제2권: 제42편 - 제72편

열여덟 편은 다윗, 일곱 편은 코라(Korah)의 후손, 한 편은 아삽, 한 편은 솔로몬, 나머지 네 편은 작자미상의 노래이다.
대부분 비탄이 담긴 것들이다.
코라 후손의 노래는 제42편부터 제49편까지 한데 편집되어 있는데 중간에 낀 제43편은 작자미상의 것이다.
제50편이 아삽의 노래이고, 다윗의 노래는 제51편부터 제71편까지 연속적으로 삽입되어 있는데 중간에 낀 제67편과 제71편은 작자미상의 것이다.
마지막 제72편은 솔로몬의 노래로 알려졌다.


제3권: 제73편 - 제89편

열한 편은 아삽, 한 편은 다윗, 네 편은 코라의 후손, 한 편은 헤만(Heman), 한 편은 에단(Ethan)의 노래이다.
아삽의 노래는 제73편부터 제83편까지이다.
다음에 일곱 편이 이어지는데 네 편은 코라 후손의 것들이고 각 한 편이 다윗, 헤만, 에단의 것이다.


제4권: 제90편 - 제106편

한 편은 모세, 두 편은 다윗, 열네 편은 작자미상의 노래이다.
작자미상의 노래들은 하나님과 만군의 왕을 찬양한다.
모세의 노래로 알려진 제90편은 가장 오래된 것으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시킬 때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제5권: 제107편 - 제150편

열다섯 편은 다윗, 한 편은 솔로몬, 스물여섯 편은 작자미상의 노래이다.
제120편부터 제134편까지는 순례자의 노래들로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면서 부른 노래이다.
제137편은 바빌론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 부른 애절한 노래이다.
제146편부터 제150편까지는 할렐루야 찬송이다.


다윗의 노래들은 대부분 제1권과 제2권에 수록되어 있으며, 제3권에는 다윗 재위 시 성가대 대장으로 활약한 아삽의 노래가 대부분 수록되어 있고, 제4권과 제5권에는 작자미상의 노래가 수록되었다.
작자미상의 것들은 다윗의 노래로 알려졌으므로 그의 것들과 함께 수록되었다.
이런 노래들은 예루살렘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주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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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을 열다섯 가지로 분류했다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새 성경 친구 New Bible Companion』의 공동저자 로버트 휴즈(Robert B. Hughes)와 칼 래니(J. Carl Laney)는 시편을 열다섯 가지로 분류했다.


1. 개인의 비탄의 노래
Individual’s lament psalms (제 6, 13, 22, 102, 142편)

이 가운데 제102편을 제외하고 모두 다윗의 노래들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간청한 것인데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하나님께 불평하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신앙을 고백하는 것으로 종료된다.
‘들으소서’, 또는 ‘알아 주소서’ 라는 말로 노래하다가 ‘구하소서’, ‘도와 주소서’, 또는 ‘보호하소서’라는 말로 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2. 민족의 비탄의 노래
National lament psalms (제 74, 79, 80편)

세 편 모두 아삽의 것으로 이스라엘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 바치는 민족을 위한 비탄의 노래들이다.
다윗 개인의 비탄의 노래와 유사한 데가 있어 아삽이 다윗의 노래를 모델로 작사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개인의 비탄을 토로한 노래와 상이한 점은 민족 전체가 곤경에 처한 절망을 탄식한 것이다.
비탄을 애절하게 노래했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요소는 기본으로 담겨 있다.


3. 개인의 선언적 찬양의 노래
Individual’s declarative praise psalms (제 18, 30, 40편)

다윗은 개인적인 비탄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했다.
지난날을 회상하며 그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구체적으로 인식하며 찬양의 톤을 고조시켰다.
그는 듣는 이로 하여금 그분께서 역사하신 사건들이 무엇이었는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류의 노래는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예배에 사용되기보다는 개인적인 예배에 사용된 듯 하다.


4. 국가 선언적 찬양의 노래
A national declarative praise psalms (제 124, 129편)

순례자의 노래들 가운데 이스라엘 국가를 선언한 것이 두 편 있는데 이것들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은혜를 찬양한 것으로 그분의 구체적인 역사를 지적하여 찬양했다.


5. 설명적 찬양의 노래
Descriptive praise psalms (제 36, 105, 113, 117, 135, 136, 146편)

하나님의 권능을 좀더 구체적으로 묘사한 노래들이다.
여럿이 함께 신앙을 고백하며 그분의 위대하심을 찬양할 때 이 노래를 불렀다.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작사된 이런 노래들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역사의 주인 되심을 위대함으로 꼽으며, 그분에게는 사람을 구원할 힘이 있으시고,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보존하는 분이심을 확인시켜 준다.


6. 알파벳순의 노래
Alphabetical psalms (제 9, 25, 34, 37, 111, 112, 119, 145편)

히브리어 알파벳순으로 작사된 노래들이다.
백성으로 하여금 외우기 쉽도록 하려고 고안된 것들이다.


7. 창조의 노래
Creation psalms (제 8, 33, 104, 148편)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음을 찬양한 것들로 우주의 아름다움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서 그분의 창조 능력의 경이로움을 찬양해마지 않는다.


8. 탈출의 노래
Exodus psalms (제 44, 66, 68, 74, 77, 78, 80, 81, 95, 105, 106,
114, 135, 136편)

역사의 주인으로서 경이로운 힘을 발휘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 것들인데 조상이 애굽을 무사히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데 대한 감사를 표현한 것들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경이로운 그분의 역사는 위급한 상황에서 조상이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홍해바다를 갈라 길을 내신 것이다.


9. 저주의 노래
Imprecatory psalms (제 7, 35, 58, 59, 69, 83, 109, 137, 139편)

하나님의 진노가 적에게 내리기를 기원한 노래들이다.


10. 참회의 노래
Penitential psalms (제 6, 32, 38, 51, 102, 130, 143편)

자신들이 범한 죄를 통렬히 참회하면서 부른 노래들이다.
죄책감을 드러낸 후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 특색이다.


11. 순례자의 노래
Pilgrim psalms (제 120 ~ 제134편까지)

순례자의 노래를 상승의 노래(Songs of Ascent)로 부르기도 한다.
이것들은 신명기에 언급된 이스라엘의 가장 큰 세 명절 과월절, 추수절, 초막절(신명기 16:16)에 예루살렘으로 온 순례자들이 그분에게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성산을 오르면서 부른 노래들이다.


12. 제왕의 노래
Royalor Enthronement psalms (제 47, 93, 96~99편)

하나님께서 구원의 왕, 공의의 왕으로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 중의 왕이심을 찬양하는 노래들이다.


13. 교훈의 노래
Didactic psalms (제 14, 15, 24, 50, 52, 53, 75, 78, 81, 95, 105편)

백성에게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작사한 것들인데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치려고 했음을 본다.
이와 유사한 목적으로 만든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지혜서로 분류된다(제 1, 37, 49, 73, 91, 112, 128, 133, 139편).


14. 토라 노래
Torah psalms (제 19, 119편)

이 두 편은 토라 즉 하나님의 가르침을 찬양한 노래들이다.
하나님의 가르침이란 주로 율법을 말하지만 말씀, 심판, 계명, 언약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15. 메시야의 노래
Messianic psalms (제 2, 8, 16, 22, 41, 45, 69, 72, 89, 102, 109,
110, 118, 132편)

장차 오실 메시야를 고대하는 것들로 크리스천에게는 예수님의 출현을 고대하는 노래로 해석된다.
누가는 이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을 예고한 것들이라고 단정하였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누가복음 24:44)


제1권과 제2권 즉 72편은 이스라엘 왕국이 형성되기까지와 다윗과 솔로몬왕의 전성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제3권, 4권, 5권 즉 78편에 해당하는 노래들은 이후 이스라엘에 관한 것들로 북왕국이 패망한 기원전 722년 이전과 예루살렘이 멸망한 기원전 587년 이전과 50년 동안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바빌론으로부터 귀환해 성전을 재건하고 예배드린 때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셨는데 이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다(마태복음 27:46).
마태는 시편 22장 1절을 인용하였다.
다섯 권으로 된 시편은 예수님 당시에도 랍비가 공회당에서 모세오경(Torah)과 더불어 가르쳤으므로 그분도 이 노래들을 부르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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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편의 궁극적 의미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하나님은 아담(Adam, 남자라는 뜻)과 이브(Eve, 여자라는 뜻)를 낙원인 에덴동산에 거주하게 하면서 선과 악을 분별케 하는 열매만은 따먹어서 안 된다고 분부하셨다.
하지만 사탄의 유혹을 받은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고 부끄러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낙원에서 추방된 인류의 조상은 카인(Cain)과 아벨(Abel)을 낳았는데 장자 카인은 농부가 되었고, 차자 아벨은 목자가 되었다.
카인은 시기심에 사로잡혀 의로운 아우 아벨을 들에서 살해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셨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창세기 6:6-7)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께서 무고한 피를 신원해 주지 아니하심을 탄원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니이까 (요한계시록 6:10)


시편 저자들이 곡에 맞추어 부른 노래들은 이와 유사한 내용의 탄원들이었다.
인류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인생의 고달픔을 비탄의 마음으로 읊으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의 손길을 소원했는데 고달프고 괴로운 삶이 그분의 저주에서 비롯한 사실을 안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야말로 휴식을 주고, 달래주며, 구원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분이시라고 믿었다.
그들은 노래를 통해 하나님과 동등한 자격의 공의로운 심판자가 신성한 권능을 지니고 지상으로 오시리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으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 역할을 하실 메시야가 선왕 다윗의 후손으로 위엄을 지니고 오실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믿음은 타민족에게는 이해되지 않겠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가능했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약속하신 때문이다(창세기 17:1-8).


하나님은 자신의 계명을 지킨다면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한 백성으로 만드시겠다고 시내 산에서 약속하셨다(출애굽기 19:3-6).
그들에게 하나님은 성약의 신(the Covenant God)이었다.
성약의 의미를 아는 것은 시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탄원하든지, 찬양하든지, 150편 모두가 성약에 대한 믿음과 표현이라는 것을 알면 시편을 이해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성약과 함께 시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말은 구원(salvation), 선량(goodness), 그리고 자비(mercy)이다.
이런 말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히브리어에는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말들이 따로 있으며 양성적인 말들도 있다.
하늘과 관련된 말은 남성적으로 사용되었고, 땅과 관련된 말은 여성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애굽인과는 상반되는 어법이었다.
의와 구원은 때에 따라서 남성명사 또는 여성명사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지칭할 때는 남성명사를 사용했는데 이런 예를 이사야의 말에서 본다.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 같이 듣게 할지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 내릴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이사야 45:8)

Shower, O heavens (남성), from above and let the skies (남성) rain down righteousness (남성, tsedeq); let the earth (여성) open, that they may bear the fruit of salvation (남성), and let it cause righteousness (여성, tsedaqah) to spring up also I the Lord have created it.


시편 저자들도 이사야와 마찬가지로 의와 구원을 남성과 여성 양성명사로 사용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뜻으로 구원(yesha)이란 말을 사용할 때는 남성명사로 사용했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구원한다는 뜻으로 구원(yeshu’ah)이란 말을 사용할 때는 여성명사로 사용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상은 창세기 1장 26절에서 비롯했다.
하나님이 아담을 자기의 이미지로 만드셨다는 것은 그분이 하시는 대로 우리도 따라서 행동할 수 있음을 뜻한다.
하나님의 구원(yesha, 남성명사)이 사람의 마음에 뿌리내려 사람도 구원(yeshu’ah, 여성명사)을 이웃에게 베풀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은 마찬가지 방법으로 의로움(tsedeq, 남성명사)을 주셔서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의로움(tsedaqah, 여성명사)을 베풀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의롭게 살 것을 힘으로 강요하신 것이 아니라 구원(yeshu’ah, 여성명사)의 방법으로 하셨는데 이런 방법은 그분의 선물 또는 은혜이다.


여성명사로서의 의로움이란 이웃으로 하여금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하는 것인데 새 인생을 살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이웃에게 의를 베푸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 불린다고 하셨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9)


의와 구원 말고도 노래에는 선량(goodness)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선량하다는 말은 도덕적인 뜻이 함축된 말이지만 꼭 그런 의미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좋았다는 말은 도덕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분이 보시기에 좋다는 뜻이다.
출애굽기에는 모세가 태어났을 때 산모가 보기에 훌륭한 자식(a fine child)이라고 기록되었는데 본래부터 훌륭한 자식이란 있을 수 없다.
선량 또는 훌륭함은 시편 저자들에 의해서 도덕적인 뜻이 배제된 가운데 사용되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누가는 태어날 아기 예수가 훌륭하실 것이라고 하지 않고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라고 적었다(누가복음 1:32).


자비(mercy)는 자궁(womb)이란 말에서 연유했는데 산모가 아기에 대해 가지는 실존적 동정심이 있는 사랑(existential compassionate love)을 뜻하는 말이다.
이사야가 이 같은 뜻으로 사용했음을 본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9:14-15)


이사야를 포함한 구약성경 저자들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자식에 대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으로 묘사하였다.
시편 저자들은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죄를 참회하면서 용서를 빌었는데 이미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으로서는 그분의 자비의 목적에 부합되기를 소원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믿음을 위해 노래했으며, 소망을 위해 노래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기 위해 노래하였다.
독창을 하는 사람이나 합창을 하는 사람이나,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기 위해 그분께서 개인에게 그리고 민족 전체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가를 상기하려고 했다.
이것이 시편의 궁극적인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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