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시편의 궁극적 의미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하나님은 아담(Adam, 남자라는 뜻)과 이브(Eve, 여자라는 뜻)를 낙원인 에덴동산에 거주하게 하면서 선과 악을 분별케 하는 열매만은 따먹어서 안 된다고 분부하셨다.
하지만 사탄의 유혹을 받은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고 부끄러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낙원에서 추방된 인류의 조상은 카인(Cain)과 아벨(Abel)을 낳았는데 장자 카인은 농부가 되었고, 차자 아벨은 목자가 되었다.
카인은 시기심에 사로잡혀 의로운 아우 아벨을 들에서 살해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셨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창세기 6:6-7)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께서 무고한 피를 신원해 주지 아니하심을 탄원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니이까 (요한계시록 6:10)
시편 저자들이 곡에 맞추어 부른 노래들은 이와 유사한 내용의 탄원들이었다.
인류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인생의 고달픔을 비탄의 마음으로 읊으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의 손길을 소원했는데 고달프고 괴로운 삶이 그분의 저주에서 비롯한 사실을 안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야말로 휴식을 주고, 달래주며, 구원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분이시라고 믿었다.
그들은 노래를 통해 하나님과 동등한 자격의 공의로운 심판자가 신성한 권능을 지니고 지상으로 오시리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으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 역할을 하실 메시야가 선왕 다윗의 후손으로 위엄을 지니고 오실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믿음은 타민족에게는 이해되지 않겠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가능했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약속하신 때문이다(창세기 17:1-8).
하나님은 자신의 계명을 지킨다면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한 백성으로 만드시겠다고 시내 산에서 약속하셨다(출애굽기 19:3-6).
그들에게 하나님은 성약의 신(the Covenant God)이었다.
성약의 의미를 아는 것은 시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탄원하든지, 찬양하든지, 150편 모두가 성약에 대한 믿음과 표현이라는 것을 알면 시편을 이해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성약과 함께 시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말은 구원(salvation), 선량(goodness), 그리고 자비(mercy)이다.
이런 말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히브리어에는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말들이 따로 있으며 양성적인 말들도 있다.
하늘과 관련된 말은 남성적으로 사용되었고, 땅과 관련된 말은 여성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애굽인과는 상반되는 어법이었다.
의와 구원은 때에 따라서 남성명사 또는 여성명사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지칭할 때는 남성명사를 사용했는데 이런 예를 이사야의 말에서 본다.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 같이 듣게 할지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 내릴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이사야 45:8)
Shower, O heavens (남성), from above and let the skies (남성) rain down righteousness (남성, tsedeq); let the earth (여성) open, that they may bear the fruit of salvation (남성), and let it cause righteousness (여성, tsedaqah) to spring up also I the Lord have created it.
시편 저자들도 이사야와 마찬가지로 의와 구원을 남성과 여성 양성명사로 사용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뜻으로 구원(yesha)이란 말을 사용할 때는 남성명사로 사용했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구원한다는 뜻으로 구원(yeshu’ah)이란 말을 사용할 때는 여성명사로 사용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상은 창세기 1장 26절에서 비롯했다.
하나님이 아담을 자기의 이미지로 만드셨다는 것은 그분이 하시는 대로 우리도 따라서 행동할 수 있음을 뜻한다.
하나님의 구원(yesha, 남성명사)이 사람의 마음에 뿌리내려 사람도 구원(yeshu’ah, 여성명사)을 이웃에게 베풀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은 마찬가지 방법으로 의로움(tsedeq, 남성명사)을 주셔서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의로움(tsedaqah, 여성명사)을 베풀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의롭게 살 것을 힘으로 강요하신 것이 아니라 구원(yeshu’ah, 여성명사)의 방법으로 하셨는데 이런 방법은 그분의 선물 또는 은혜이다.
여성명사로서의 의로움이란 이웃으로 하여금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하는 것인데 새 인생을 살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이웃에게 의를 베푸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 불린다고 하셨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9)
의와 구원 말고도 노래에는 선량(goodness)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선량하다는 말은 도덕적인 뜻이 함축된 말이지만 꼭 그런 의미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좋았다는 말은 도덕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분이 보시기에 좋다는 뜻이다.
출애굽기에는 모세가 태어났을 때 산모가 보기에 훌륭한 자식(a fine child)이라고 기록되었는데 본래부터 훌륭한 자식이란 있을 수 없다.
선량 또는 훌륭함은 시편 저자들에 의해서 도덕적인 뜻이 배제된 가운데 사용되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누가는 태어날 아기 예수가 훌륭하실 것이라고 하지 않고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라고 적었다(누가복음 1:32).
자비(mercy)는 자궁(womb)이란 말에서 연유했는데 산모가 아기에 대해 가지는 실존적 동정심이 있는 사랑(existential compassionate love)을 뜻하는 말이다.
이사야가 이 같은 뜻으로 사용했음을 본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9:14-15)
이사야를 포함한 구약성경 저자들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자식에 대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으로 묘사하였다.
시편 저자들은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죄를 참회하면서 용서를 빌었는데 이미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으로서는 그분의 자비의 목적에 부합되기를 소원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믿음을 위해 노래했으며, 소망을 위해 노래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기 위해 노래하였다.
독창을 하는 사람이나 합창을 하는 사람이나,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기 위해 그분께서 개인에게 그리고 민족 전체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가를 상기하려고 했다.
이것이 시편의 궁극적인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