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대의 규모는 컸으며 대원들은 예복을 입었다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여호사밧 왕(Jehoshaphat, 기원전 870-846년 재위)은 전선으로 떠나기 전 드고아 들에서 성가대로 하여금 군인들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해서 군인들로 하여금 아람인과의 전투에 임하기 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했다(역대기하 20:20-21).
히스키야 왕은(Hezekiah, 기원전 716-687년 재위)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였다(역대기하 29:30).
요시야 왕(Josiah, 기원전 640-609년 재위) 재위 시 레위 지파 사람들로 구성된 성가대가 유월절에 찬송가를 불렀다는 기록이 있어 명절에 성가대의 활약이 두드러졌음을 안다(역대기하 35:15).


기원전 606년에 신바빌로니아 왕국(기원전 626-539년)이 앗시리아를 멸망시키고,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 기원전 604-562년 재위)은 구앗시리아의 영토를 손아귀에 넣었다.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느부갓네살은 어린 여호야긴 왕(기원전 598-597년 재위)과 대제사장 에스겔 그리고 시민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그들은 전쟁 포로가 되어 이국에서 종살이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에스겔(Ezekiel, 기원전 592-570년에 주로 활약)은 바빌론에서 선지자로 활약했다.
느부갓네살은 기원전 587년에 다시 예루살렘을 함락한 후 성전을 불사르고 또 시민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
이때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집트로 피신했으며 그곳에서 타계하고 말았다.
이런 역사의 분기에도 찬송가는 작사되었으며 이들 중 일부가 시편에 수록되었다.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한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Cyrus, 기원전 551-529년 재위)가 기원전 539년에 바빌론을 정복했다.
그는 바빌론에 억류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귀향을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성전을 재건하는 것도 허락했다.
바빌론으로부터 귀환한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폐허가 된 성전을 재건하고 성가대를 새로 구성한 후 하나님을 찬양했다(에스라 3:10-11).


예루살렘 성곽이 낙성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였다) (느헤미야 12:27)


저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결례의 일을 힘썼으며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도 그리하여
모두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의 명을 쫓아 행하였으니
옛적 다윗과 아삽의 때에는 노래하는 자의 두목이 있어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노래와 감사하는 노래를 하였음이며
스룹바벨과 느헤미야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쓸 것을 주되
그 구별한 것을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
레위 사람들은 그것을 또 구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느니라 (느헤미야 12:45-46)


시편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바빌론에서 포로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기원전 6세기 중반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찬송가를 지어 불렀다(이사야 40:12-31, 42:10-12, 44:23, 49:13, 52:9, 54:1-10).
제2 이사야(40장부터 55장)의 저자만 찬송가를 작사한 것이 아니라 제3 이사야(56장부터 66장까지)의 저자도 찬송가 몇 편을 지었다(이사야 61:10, 11, 63:7-64:12, 66:10-14).
요나의 2장 2절부터 9절까지는 후세 사람이 삽입한 내용으로 알려졌는데 이 구절은 그 형식이 시편과 유사하다.


정경 말고도 외경에 수록된 찬송가의 수도 적지 않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다 모세의 인도로 가나안땅에 올 때에 관한 내용과 바빌론에서 종살이할 때(기원전 586-539년) 내용도 시편에 있다.
가장 오래된 노래는 제90편으로 작사자가 모세로 알려졌는데 기원전 1446년경의 것이다.
후세의 것은 제137편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에서 종살이할 때의 것이다.
성전증수를 마친 기원전 515년 이후 작사된 제119편은 가장 긴 노래이다(에스라 3:5-6).


이스라엘 사람은 그리스인 철학자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시편 대부분이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작사된 것들이라서 이스라엘 사람의 독특한 사상이 담긴 귀중한 사료로 간주된다.
구전으로 전래되는 노래들을 따로 한 권으로 묶은 것은 퍽 후세의 일로 기원전 2세기 이전이었다.
1940년대 말 사해 근처에서 이 시기에 제작한 시편이 발굴되었는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의 편수와 내용이 같다.


150편 노래의 작사자들이 누구냐 하는 문제는 언제 작사한 것이냐 하는 문제보다 밝히기가 더욱 어렵다.
사무엘상, 하에는 다윗왕이 시인이면서 지략이 뛰어난 장군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시편의 저자가 다윗이라고 믿었다.
많은 표제에 다윗의 시(a Psalm of David) 또는 다윗의 기도(a Prayer of David)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작사한 것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of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le를 작사자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Le는 in the manner of, 또는 according to the standard of, 또는 for the use of라는 뜻이다.
팔레스티나에서 발굴된 질그릇에 보면 ‘왕에게 속한(belonging to the king)’ 또는 ‘왕가의 재산(royal property)’이란 뜻의 le-melek이라는 말이 적혀 있어 le가 ‘속하는(belonging)’이란 뜻으로 사용되었음을 본다.
이럴 경우 le는 허가받은(authorized)이란 뜻이 된다.
다윗의 노래는 그러므로 그의 허락을 받은 노래이거나 그가 작사한 노래와 유사한 방법으로 작사된 노래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150편의 노래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대부분 성전에 소속된 성가대 대장이 예배를 위한 의식용으로 만든 것이라는 학설도 그럴 듯하지만, 욥기와 잠언, 이사야서 등에 더욱 세련되고 지성적인 내용의 노래가 있는 것을 보면 반드시 성전에 소속된 소수가 작사자들이라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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