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은 우리에게 남을 도울 의무를 얼마나 요구하는가

 

 

 

 

 

지금 세계는 심각한 불평등으로 속을 끓이고 있다. 어떤 나라 사람들은 기본 욕구를 충족하며 잘 사는가 하면, 다른 나라에서는 생존을 위해 심각한 투쟁을 벌인다. 어떤 나라에서는 식량이 남아돌아 버리다시피 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은 굶어 죽는다. 어떤 나라에서는 죽지 않아도 될 어린이가 병으로 죽었다는 소문이 돌자 공무원이 사표를 써야 하는데 반해, 다른 나라에서는 어린이의 사망이 일상사와 다름없다. 참으로 불안한 정경이다. 필자와 이 책을 읽는 여러분들은 그래도 안락하게 살고 있지만, 세계의 다른 구석에서는 비상사태가 연일 일어나고 있다.
이 장에서 다루려는 문제는 우리에게는 어느 범위까지 남을 도와줄 의무가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현실을 돌아보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남을 돕기 위해 하는 일이 거
의 없다. 개인의 수입 가운데 기부나 자선에 쓰는 비율은 대체로 낮은편이다. 부유한 나라의 지출을 보면 가장 관대한 나라라 하더라도 국제 원조와 개발에 들이는 돈은 그 나라 전체 부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실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다른 사람들이 죽어갈 때 도와줄 능력이 있는데도 마냥 바라보고만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각 나라는 스스로 제 살길을 찾아 나서야 마땅할까?
이 장의 첫 대목에서는 세계적 빈곤문제와 빈곤한 나라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살펴보려 한다. 이와 관련한 원칙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낙태나 그 밖의 관련 문제들에 관해 더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가질 것이다. 기본 관심사는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인류를 대하는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느냐에 있다.

 

● 세계적 빈곤: 급진적 견해
세계적 빈곤은 어느 정도로 심각할까? 토머스 포지9가 인용한 최근 통계는 다음과 같다. 세계 인구 60억 가운데,

 

◆ 7억 9천만 명이 영양실조
◆ 10억 명이 안전한 물을 공급받지 못함
◆ 24억 명이 기본 위생시설을 이용할 수 없음
◆ 8억 8천만 명이 기본 건강서비스를 받지 못함
◆ 10억 명이 적당한 주거시설을 이용하지 못함
◆ 20억 명이 전기공급을 받지 못함1)

부유한 나라와 빈곤한 나라의 격차가 클 뿐 아니라 수백 수천만 명이 말도 안 되는 여건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살다가 죽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자립해보기도 전에 죽는다.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서른 살을 넘기기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의무는 무엇일까? 먼저 무척 단순하면서 급진적인 한 가지 견해부터 살펴보자.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팔짱만 낀 채 바라보는 건 옳지 않다. 우리에게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자원이 있다. 쉽게 말해서 식량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낭비하고 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세계적 고민을 풀어보려는 정치적 의지뿐이다.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세금을 올려 빈곤한 나라에 상당 규모의 돈을 제공하겠다는 정당은 결코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돕지 않으려는 자세는 정당화될 수 없다. 도울 수 있는데도 돕지 않는 것은 그들을 죽이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쁜 일이다. 연못에 빠진 아이가 허우적거리며 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어른이 바라보고만 있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물에 들어가 팔만 뻗어주면 되는데도 옷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그냥 바라보기만 한다. 그 사람을 비난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어른이 아이를 빠뜨려 죽인 것은 아니라 해도, 사실상 죽인 거나 다름없다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행태가 이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옷을 적시지 않으려고 어린이를 구하지 않았다. 그의 행태를 나쁘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부를 축내지 않으려고 바라보고만 있다면 어른의 행태보다 더 나은 걸까?
우리는 여러 가지를 누리며 안락하게 사는 것을 가난한 사람들의 목숨보다 더 중히 여긴다. 연못가의 어른과 우리가 보여주는 행태가 다르다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자세는 분명히 옳은 것이 아니다.
이 장에서 풀어보려는 과제 중 하나는 이 불안정한 급진적 견해가 정말 정당화될 수 있는가다. 먼저 급진적 견해가 퍼부어대는 비난에 대한 몇 가지 반론들을 살펴보자. 여기서 필자가 고려하지 않으려 하는 점 한 가지를 먼저 밝혀야겠다. 급진적 견해를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도움을 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다. 연못가의 어른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구경만 한 것은 충격적이고, 부분적으로는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도움을 주는 방법을 아는데도 내버려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세계적 빈곤의 경우와 연못가의 예를 똑같은 것으로 보아야 할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는 기술적 문제이므로 여기서는 깊이 다루지 않으려 한다. 이 문제를 풀려면 철학자보다는 경제학자나 정치학자의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문제는 논외로 한다. 그렇더라도 세계적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이른바 낙관론자들과 해결할 수 없다고 보는 비관론자사이에는 논쟁이 진행 중임을 알아두어야 한다. 잘 알려진 비관론자들 가운데는 대체로 토머스 맬서스10의 이론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다 .
18세기 경제학자 맬서스는 굶주림은 도덕적 위기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인구의 팽창을 억제한다고 주장했다. 맬서스를 추종하는 이론가들은 아사를 방지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좁은 땅에 인구를 늘려 더욱 지탱하기 어려운 상태에 빠져들게 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인구가 늘면 이들을 먹여 살릴 길이 없으니 굶주림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언젠가 닥쳐올 수밖에 없는 큰 재앙을 연기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인구가 늘어감에 따라 더는 지탱할 수 없는 사태가 반드시 오고 만다는 것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나는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에 있는 논쟁을 현명하게 중재할 처지가 아니다. 한편 급진주의자들은 장래에 더 심각한 인구문제를 가져오지 않으면서도 빈곤문제를 퇴치할 길은 분명히 있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에는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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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살에 요절한 왕발王勃의「등왕각滕王閣」

 

 

 

양형楊炯, 노조린盧照鄰, 낙빈왕駱賓王 등과 함께 당唐나라 초기 4걸四傑이라 불리는 당나라 초기의 대표적 시인 왕발王勃(650~676)은 자字가 자안子安으로 용문龍門(山西省 河津縣) 출생이며, 수隋나라 말의 유학자 왕통王通의 손자이며 시인 왕적王績의 조카이다. 왕발은 조숙한 천재로 6세 때 문장을 잘했으며, 17세 때인 666년 유소과幽素科에 급제했다. 젊어서 재능을 인정받아 664년에 조산랑朝散郞의 벼슬을 받았다. 왕족인 패왕沛王 현賢의 부름을 받고 그를 섬겼으나, 당시 유행하였던 투계鬪鷄에 대하여 장난으로 쓴 글이 고종高宗 황제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중앙에서 쫓겨나 쓰촨四川 지방을 방랑했다. 고종 이치李治의 아들이 투계를 좋아하자, 이를 풍자하여「격영왕계문檄英王鷄文」이란 글을 지었는데, 고종의 미움을 사 관직을 박탈당한 뒤 방랑하게 된 것이다. 뒤에 관노官奴를 죽였다는 죄로 관직을 빼앗기고 교지交趾(베트남 북부)의 영令으로 좌천된 아버지 복치福畤를 만나러갔다가 돌아오던 중,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배에서 바다로 떨어져 익사했다.

 

다음은 방랑 중 강가에 노닐 때에 여수를 읊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시이다.

 

長江悲已滯장강비이체 萬里念將歸만리념장귀; 슬프다! 장강에서 이렇게 오래 머뭇거리다니, 만 리 밖에서 돌아갈 것을 생각한다네.

況復高風晩황속고풍만 山山黃葉飛산산황엽비; 또다시 가을의 소슬한 바람 불어오고 산마다 단풍잎은 날리는데.

 

왕발의「등왕각滕王閣」은 유명하다. 등왕각은 당唐나라 고조高祖 이연李淵의 막내아들 원영元嬰이 홍주자사洪州刺史로 있을 때, 강서성江西省 남창현南昌縣에 지은 전각殿閣으로 원영이 등왕滕王에 봉작封爵되어 있었으므로 등왕각이라 부fms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왕발이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꿈속에서 강신江神이 나타나 말하기를 “내일 등왕각을 중수한 낙성식이 있으니 참석해 글을 지어 이름을 내라” 하기에, 왕발이 “여기서 남창까지는 7백 리인데 하룻밤에 당도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배에 오르기만 하면 내가 바람을 불어주리라.” 하더란다. 과연 왕발은 하룻밤 사이에 등왕각에 이르러 등왕각 시와 서문을 지어 문명文名을 떨쳤다.

 

滕王高閣臨江渚등왕고각임강저 佩玉鳴鸞罷歌舞패옥명난파가무; 등왕각滕王閣의 높은 누각은 아득히 솟아 강저江渚에 임하고 있으나 패옥佩玉을 찬 귀인과 방울 울리며 달리던 마차는 자취도 없네.

畫棟朝飛南浦雲화동조비남포운 朱簾暮捲西山雨주염모권서산우; 아침에는 단청한 기둥에 남포에서 일어난 구름이 날고 저녁에는 주렴을 걷고 서산西山의 비를 바라본다.

閒雲潭影日悠悠한운담영일유유 物換星移幾度秋물환성이기도추; 물에 어린 구름의 그림자 늘 유유한데 세상 바뀌고 세월은 흘러 몇 해나 지났던고.

閣中帝子今何在각중제자금하재 檻外長江空自流함외장강공자유; 이 누각의 주인이었던 제자帝子는 지금 어디 있는가 난간 밖에 장강만이 부질없이 도도히 흐르는구나.

 

강저江渚강저는 남창부南昌府 옆을 흘러 파양호鄱陽湖로 흘러 들어가는 장강章江을 말한다. 난鸞은 군주君主의 수레나 마차에 달던 방울을 말하는데, 그 모양이 난鸞새를 닮았다고 한다. 화동畫棟은 단청을 한 기둥을 말한다.

 

「송두소부임촉주送杜少府之任蜀州」는 왕발이 친구와 이별하며 쓴 시로서 ‘소부로 임명되어 촉주로 가는 두씨에게’란 뜻이다.

 

城闕輔三秦성궐보삼진 風煙望五津풍연망오진 與君離別意여군리별의 同是宦遊人동시환유인; 성궐城闕은 삼진三秦의 도움을 받는데 바람 연기 속의 오진五津을 바라본다. 지금 그대와 헤어지는 이 정은 다 함께 벼슬길에 떠돌기 때문이네.

海內存知己해내존지기 天涯若比隣천애약비린 無爲在歧路무위재기로 兒女共沾巾인녀공첨건; 이 세상에 지기知己만 있다면야 하늘 끝이라도 그 이웃인 것을, 지금 헤어지는 길에 있다고 하여 아녀자처럼 수건일랑 적시지 말자.

 

소부少府는 지방관으로 현縣의 차관次官에 대한 별칭이다. 현령縣令을 명부明府라 한다. 소부는 전한前漢시대에 제실재정帝室財政을 맡아 황제의 가산적家産的 수입을 관할했으며, 그 장관은 9경卿에 열좌列座되었고, 후한後漢 이후 국가 재정을 관장하는 대사농大司農에게 그 주요 임무를 흡수당한 뒤 궁정에서 사용하는 기물器物이나 공예품을 제작하는 관청이 되었다. 촉주蜀州는 현재의 사천성四川省 숭경현이다. 성궐城闕은 성과 궁궐로 장안長安을 말한다. 삼진三秦은 관중關中을 달리 이르는 말로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일대를 말한다. 항우項羽가 진秦 나라로 쳐들어가 관중을 셋으로 나누고, 장감章邯을 옹왕雍王으로, 사마흔司馬欣을 새왕塞王으로, 동예董翳를 적왕翟王으로 봉해 한때 진나라가 세 나라로 나뉘어 졌는데, 이후 이 지역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오진五津 촉지에 흐르는 양자강에는 다섯 나루터가 있는데 오진은 백화진白華津, 만리진萬里津, 강수진江首津, 섭해진涉海津, 강남진江南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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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에 나타나는 오색五色, 오성五聲, 오음五音, 오계五界

 

 

 

한의학에서는 오색五色, 오성五聲, 오음五音, 오계五界로 사람의 병변兵變을 판단했다. 인체에 대한 세심한 관찰의 결과물이다. 이는 오랫동안 축적된 임상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한의학은 인체의 주인을 오장으로 본다. 간肝, 심心, 비脾, 폐肺, 신腎 오장五臟에 탈이 나면 정신은 병들 수밖에 없다. 자신의 정신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선 오장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

 

오색五色은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을 말하는데, 인체가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오장정기五臟精氣의 광채光彩는 안면顔面과 미목眉目 사이에 뚜렷하게 나타난다. 건강한 사람은 얼굴색에 얼룩이 없으나, 오장에 병변兵變이 생기면 안색顔色은 병변에 따라 변화가 온다.

 

간肝의 병변은 청색靑色으로 나타나고, 심心의 병변은 적색赤色으로 나타나며, 비脾의 병변은 황색黃色으로 나타나고, 폐肺의 병변은 백색白色으로 나타나며, 신腎의 병변은 흑색黑色으로 나타난다.

 

이상의 오색五色은 일반적인 병리현상病理現象이다. 그런데 그렇지만 극적현상克賊現象이 일어날 경우, 즉 오장에 병변이 발생하면 간병肝病이 오히려 백색白色으로 나타나고(금극목∼金克木), 심병心病이 오히려 흑색黑色으로 나타나며(수극화∼水克火), 비병脾病이 오히려 청색靑色으로 나타나고(목극토∼木克土), 폐병肺病이 오히려 적색赤色으로 나타나며(화극금∼火克金), 신병腎病이 오히려 황색黃色으로 나타나게(토극수∼土克水) 된다. 오장의 병변을 이렇게 오색五色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오장五臟은 색으로만 자신의 문제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소리로도 알리는데 이를 오성五聲이라 한다. 오장이 부르짖는 소리를 호呼라 하고, 웃는 소리를 소笑라 하며, 노래하는 소리를 가歌라 하고, 슬피 우는 소리를 곡哭이라 하며, 신음하는 소리를 신呻이라 한다.

 

일반적인 병리현상病理現象으로 간肝의 소리는 호呼이고, 심心의 소리는 소笑이며, 비脾의 소리는 가歌이고, 폐肺의 소리는 곡哭이며, 신腎의 소리는 신呻이다.

 

오음五音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나무 두들기는 소리인 각음角音(木)은 화생력化生力이 생기를 일으켜 뻗게 해서 빼어나도록 하는 데(其化生樂) 있고, 불타는 소리인 치음徵音(火)은 생화력生化力이 활달豁達하게 자라서 사방으로 무성하게 하는 데(其化蕃茂) 있으며, 울리는 소리인 궁음宮音(土)은 화생력化生力이 풍만하고 비육하게 살이 오르도록 하는데(其化豊滿) 있고, 쇠 두들기는 소리인 상음商音(金)은 정기를 거두어 밖으로부터 단단하게 밀폐시키는데 있으며, 물 흐르는 소리인 우음羽音(水)은 생화력生化力이 정기를 속으로 응축凝縮하여 견고하게 맺히는데(其化凝堅) 있다.

 

각음角音은 간의 목기에 영향을 미쳐 길게 뻗치도록 하는 작용을 추동하고, 치음徵音은 심의 화기에 영향을 미쳐 사방으로 펼치는 작용을 추동하며, 궁음宮音은 비의 토기에 영향을 미쳐 풍만하게 살찌우는 작용을 추동하고, 상음商音은 폐의 금기에 영향을 미쳐 안으로 뭉쳐들면서 단단해지는 작용을 추동하며, 우음羽音은 신의 수기에 영향을 미쳐 속으로 응축하여 맺히도록 하는 작용을 추동한다.

 

사람은 각음角音을 듣게 되면 목기木氣가 추동을 받아 길이 성장이 빨라지고 적극적인 성격이 강해지며, 치음徵音을 듣게 되면 화기火氣가 추동을 받아 부피용적이 늘어나고 활달한 성격이 자라고, 궁음宮音을 듣게 되면 토기土氣가 추동을 받아 충만하게 살이 오르고 너그럽고 여유로워지며, 상음商音을 듣게 되면 금기金氣가 추동을 받아 피부근골皮膚筋骨이 굳건해지고 성격이 굳세 지면서 절도가 생기고, 우음羽音을 듣게 되면 수기水氣가 추동을 받아 음정陰精이 축정하여 견고해지면 세밀하고 완고한 성격이 강해진다.

 

그러므로 성음聲音은 각각의 특성에 따라 인체 오장지기五藏之氣 기기氣機의 강약을 직접적으로 유도하여 생명체 율동의 조화뿐 아니라 질병의 발생까지도 조절할 수 있는 자극방법으로 응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참고

목木은 풍風이며 바람, 기후, 혈행불순과 열성병을 주관한다. 모든 풍병風病을 간肝이 주관한다. - 간肝은 풍風을 싫어한다.

화火는 열熟이며 체온을 높은 것을 주관한다. 모든 열병熱病을 심心이 주관한다. 심心은 열熱을 싫어한다.

토土는 습濕이며 모든 습병濕病을 비脾가 주관한다. 비脾는 습濕을 싫어한다.

금金은 조燥이며 모든 조병燥病을 폐肺가 주관한다. 폐肺는 조燥을 싫어한다.

수水는 한寒이며 모든 한병寒病을 신腎이 주관한다. 신腎은 한寒을 싫어한다.

내장內臟과 사계四季의 기후전변氣後轉變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계절의 기후변화에 순응하지 못하고, 정기精氣가 부족하면 육음병사六淫病邪, 즉 한사寒邪, 풍사風邪, 습사濕邪, 조사燥邪, 서사暑邪, 열사熱邪가 내장內臟에 침습侵襲하여 병변病變을 일으키게 된다.

 

오장이 주장하는 계절 오계五界로 말하면, 간肝은 춘계春季와 통通하고, 목기木氣가 왕성한 절기이며, 심心은 하계夏季와 통通하고, 화기火氣가 왕성한 절기이고, 비脾는 장하長夏와 통通하고, 토기土氣가 왕성한 절기이며, 폐肺는 추계秋季와 통通하고, 금기金氣가 왕성한 절기이고, 신腎은 동계冬季와 통通하고, 수기水氣가 왕성한 절기이다.

 

「소문素問의 생기통천론生氣通天論」에는 춘春에 풍風에 상傷하여 사기邪氣가 장류長留하면 설사泄瀉가 된다. 하夏에 서暑에 상傷하면 추秋에 학질이 된다. 추秋에 습濕에 상傷하면 상역上逆해서 해咳가 되고 외발外發하여 수족手足이 위궐한다. 동冬에 한寒에 상傷하면 반드시 온병溫病이 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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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처학자梅妻鶴子 임포의 ‘동산에 작은 매화’

 

 

 

앞서 ‘이백李白의 과장은 그의 호탕한 성격을 드러내준다’는 제목으로 그의 시 두 편을 소개했는데, 북송北宋의 임포林逋(967~1028)는 이백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시인이었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매우 섬세하여 글로 한 폭의 그림을 그렸다. 그야말로 ‘그림 같은 시’를 지었다.

임화정林和靖으로 불린 임포는 중국말로 린푸이다. 전당(장쑤성 항주) 사람으로 평생 독신으로 항주(항저우) 서호西湖(시호)의 고산孤山에 은거하며 홀로 청빈하게 살면서 학문을 좋아하고 시사서화詩詞書畵에 모두 능했다.

중국에 서호西湖라는 이름을 가진 호수가 800개가 될 정도로 아주 많은데, 가장 유명한 것이 항주의 서호이며,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담수호이다. 이 글을 쓰면서 그곳에서 배를 타고 안개 속을 나아가던 때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항주는 시인들과 관련이 많은데, 임포에 앞서 당나라 중반 덕종 정원唐貞元(785-804) 연간에 백거이白居易가 항주로 임명되어 무너진 제방이 농사를 망치는 것을 보고 제방공사를 다시 했다. 백거이는 더 길고, 튼튼한 둑을 쌓게 했는데, 이로 인해 수원이 풍부해지면서 가뭄을 해갈했다. 이것이 지금의 백제白堤이다. 그는 둑 옆에 수양버들을 심고는 매일 산책하고, 공사를 감독했다고 한다. 임포 이후에는 철종 원우(1086-1094) 때 소동파(소식蘇軾)가 항주에 임명되어 왔다. 이때 다시 농민들은 가뭄으로 고생을 하게 되었는데, 웃자란 수초들 때문에 물대기가 힘들게 되었던 것이다. 소동파는 호수 바닥에 침전된 진흙을 모두 파내게 했는데, 이것이 기존의 백제보다 세 배는 더 길고, 넓었다. 이게 나중에 소동파의 성을 따서 소제蘇堤가 되었다.

임포는 서호의 동산에 살면서 매화 300본을 심고 학 두 마리를 기르며 20년 동안 성안에 들어오지 않고 풍류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야말로 고독을 즐긴 시인으로 아내가 매화이고 아들이 학이란 뜻의 매처학자梅妻鶴子라는 말을 들었을 법하다. 이백이 여기저기 돌아다닌 데 비하면 한 곳에 머물러 산 임포에게서 과장이 나타날 리 없다. 그 자신이 학이 되어 임포의 집에는 학이 세 마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임포가 매화를 소재로 지은 8수의 시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산원소매山園小梅>이다. ‘동산에 작은 매화’라는 뜻이다. 물에 거꾸로 비친 매화의 정취에 감동하여 그 자리에서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매화향기가 암향暗香(어두울 암)이란 별명을 얻은 것은 임포 덕분이다. 향기는 보이지 않으니, 어둠에 숨은 것처럼 은근하다. 그것이 살그머니 떠오르니(浮動), 달빛에 스며들어 달빛에 떠돈다. 멋진 표현이다.

 

衆芳搖落獨暄姸중방요락독훤연; 모든 꽃이 시들어 떨어져도 홀로 아름답게 남아

占盡風情向小園점진풍정향소원; 마음속의 정이 작은 동산을 향하네.

疏影橫斜水淸淺소영횡사수청천; 성긴 그림자 맑고 얕은 물이 비스듬히 기울고

暗香浮動月黃昏암향부동월황혼; 그윽한 매화 향기는 달빛 어린 황혼에 떠도네.

霜禽欲下先偸眼상금욕하선투안; 흰 두루미는 내려앉기 전에 주위를 훔쳐보고

粉蝶如知合斷魂분접여지합단혼; 나비가 알게 되면 (그 모습에) 넋을 잃기 십상인데

幸有微吟可相狎행유미음가상압; 다행히 시를 읊조리고 함께 친할 수 있으니

不須檀板共金尊불수단판공금준; 단판이나 금술잔도 다 필요 없다네.

 

단판檀板은 박자拍子를 치는 데 사용한 널빤지 모양의 것으로, 참빗살나무檀로 만들었다.

 

단편은 우리나라에서도 사용되었는데, <세조실록>에 이런 내용이 있다.

 

登俊試崔適等 奉箋謝恩 進豐呈 上御勤政殿受之…上 令四妓及登俊試人 就前起舞 又命永順君溥 執檀板 領樂 極歡

등준시에 합격한 최적 등이 전문을 받들어 은혜를 사례하고 풍정을 바치니, 임금이 근정전에 나아가서 이를 받았다.…임금이 네 명의 기생과 등준시에 합격한 사람으로 하여금 앞에 나아와서 일어나 춤추게 하고, 또 영순군 이부에게 명하여 단판을 쥐고 악공을 거느리게 하고 지극히 즐거워하였다

 

‘霜禽欲下先偸眼 粉蝶如知合斷魂흰 두루미는 내려앉기 전에 주위를 훔쳐보고 나비가 알게 되면 (그 모습에) 넋을 잃기 십상인데’ 이 구절은 현대 중국어에서는 ‘흰 두루미가 곧 내려앉을 때에는 먼저 매화꽃 봉오리를 훔쳐본다. 매화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나비가 알았더라면 마땅히 일찍이 넋을 잃었을 것이다’라고 번역한다고 한다.

 

임포는 젊은 시절 강회지방江淮地方을 주유周遊하면서 40세가 되도록 각지의 산수를 두루 돌아보았으나, 모두 자기 고향 서호만은 못함을 알고 행랑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와 서호의 북쪽 고산 북쪽자락에 초려草廬를 묶고 살았다. 그는 비록 은거했지만, 그의 도덕과 문장이 당대를 풍미風靡하여, 조야朝野를 막론하고 그를 사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주 찾아왔다.

항주태수를 지낸 설영薛映과 이급李及은 매번 그를 찾아 올 때마다 하루 종일 환담을 나누다 돌아갔다. 임포는 고산에 살았던 20년 동안 시내를 들어간 적이 없었다. 그는 유명한 정치가이자 문학가 범중엄范仲淹(989~1052)과도 친밀하게 지냈다. 범중엄은 장쑤성江蘇省 쑤저우蘇州 출생으로 1038년 이원호李元昊가 서하西夏에서 제위帝位에 오르자, 산시경략안무초토부사陝西經略安撫招討副使가 되어 서하 대책을 맡고, 그 침입을 막았으며, 그 공으로 추밀부사樞密副使가 되고, 이어 참지정사參知政事(부재상에 해당)로 승진하여 내정개혁에 힘썼다. 범중엄은 임포를 칭송하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기풍이 중후하더니, 문장은 더 없이 맑은 경지로구나!

 

시인들마다 특별히 마음을 빼앗긴 것을 가지고 있는데, 진晉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어둑어둑한 서산에 해질 때까지 외로운 솔 쓰다듬으며 배회하노라”고 했고, 왕헌지王獻之는 대나무의 기상을 사랑하여 “나는 하루도 이 벗이 없으면 못사노라”고 했으며, 초나라의 굴원屈原은 <이소경離騷經>에서 “아침에는 목란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가을 국화의 지는 잎을 먹는다”고 했다. 송나라 주돈이周敦頣는 연꽃을 특히 사랑하여 <애련설愛蓮說>에서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좋아하지만 자신은 홀로 진흙 속에서 나왔으면서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살에 씻기면서도 요염하지 않으며, 멀리 바라볼 수는 있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연꽃을 사랑한다”고 했다. 그들에 반해 임포는 “성긴 그림자 맑고 얕은 물이 비스듬히 기울고”라는 말로 매화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다.

 

매화의 향기는 왕안석王安石에게도 붓을 들게 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쓰게 만들었다.

 

墻角數枝梅 담 모퉁이에는 매화 몇 가지

凌寒獨自開 추위를 이기며 홀로 피었구나.

遙知不是雪 멀리서도 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음은

爲有暗香來 전해오는 그윽한 향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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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李白의 과장은 그의 호탕한 성격을 드러내준다

 

 

 

<추포가秋浦歌>는 이백李伯이 지은 17편의 연작시連作詩이다. 지주부池州府 추포현秋浦縣(지금의 안휘성 귀주현)에 있을 때 지은 것이다. 첫머리는 '秋浦長似秋 蕭條使人愁추포장사추 소조사인수'라고 적혀 있는데, '추포는 늘 가을 같아서 그 쓸쓸함이 사람을 못내 시름겹게 하네.’라는 뜻이다.

추포에 가보지 않아 어떤 의미에서 일 년 내내 가을 같다는 것인지 상상할 수 없지만, 포구의 이름에 가을 추秋가 들어간 것을 보면 이백 이전부터 사람들이 사계절 내내 그곳에서 가을을 느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문학작품에 나타나는 가을을 보면 농가에서 벌어지는 일이 보통이다. 시인들의 가을에 대한 느낌은 국화·목화·단풍·낙엽 등 식물에 대한 관찰과 기러기·귀뚜라미 등 동물에 대한 관찰이 보통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달·바람·비·하늘과 같은 자연현상이다. 가을에는 시인들이 고독과 비애를 표현하는 시를 쓰게 된다. 예를 들면 서리를 맞아가며 피는 국화, 기러기나 귀뚜라미의 날아가는 모습이나 우는 소리, 낙엽 떨어지는 소리나 달빛의 맑고 처량한 분위기, 가을 달은 사계절 중 가장 밝고 청량한 느낌을 주며, 때 맞춰 부는 바람도 소슬하여 청량감을 더해준다.

이백의 시에는 과장誇張이 특성인데 과장은 그의 호탕浩蕩한 성격을 드러내준다. 근심으로 허옇게 센 머리카락의 길이가 삼천 길이나 된다고 했다.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은 수심愁心으로 덧없이 늙어가는 것을 한탄하는 뜻으로 머리털을 표현했다기보다는 한없는 인생의 근심을 과장한 것이다. 그는 삼천三千이란 말을 자주 사용했는데, 한이 없다는 뜻이다.

 

白髮三千丈백발삼천장: 흰 머리털이 삼천 길

緣愁似箇長연수사개장: 수심으로 이토록 길었나.

不知明鏡裏부지명경리: 알지 못하겠도다, 거울 속을 보아도

何處得秋霜하처득추상: 어디서 가을 서리를 얻었던고.

 

자신의 흰 머리카락을 보고 가을 서리에 비유한 이 시는 그의 생애 말년 귀양에서 풀려나 추포秋浦에 와서 거울을 보고 지은 것이다. 그의 과장법서 사람들은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을 과장된 것을 비웃는 말로 즐겨 사용하게 되었다.

이백의 과장은 장시성江蘇省에 있는 여산폭포를 바라보며 지은〈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에서도 나타난다. 4구로 된 이 시의 제3, 4구에서 ‘물줄기 내리 꽂아 길이 삼천 척 하늘에서 은하수 쏟아지는가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라고 하여 폭포가 흘러내리는 모양을 호방하면서도 낭만적으로 묘사했다. 삼천 길, 삼천 척 모두 강조법으로 일품이다.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는 다음과 같다.

日照香爐生紫煙일조향로생자연: 해 비친 향로봉 보라 안개 어리고

遙看瀑布掛長川요간폭포괘장천: 저 멀리 폭포는 강을 매단 듯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 물줄기 내리 꽂아 길이 삼천 척

疑是銀河落九天의시은하락구천: 하늘에서 은하수 쏟아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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