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살에 요절한 왕발王勃의「등왕각滕王閣」
양형楊炯, 노조린盧照鄰, 낙빈왕駱賓王 등과 함께 당唐나라 초기 4걸四傑이라 불리는 당나라 초기의 대표적 시인 왕발王勃(650~676)은 자字가 자안子安으로 용문龍門(山西省 河津縣) 출생이며, 수隋나라 말의 유학자 왕통王通의 손자이며 시인 왕적王績의 조카이다. 왕발은 조숙한 천재로 6세 때 문장을 잘했으며, 17세 때인 666년 유소과幽素科에 급제했다. 젊어서 재능을 인정받아 664년에 조산랑朝散郞의 벼슬을 받았다. 왕족인 패왕沛王 현賢의 부름을 받고 그를 섬겼으나, 당시 유행하였던 투계鬪鷄에 대하여 장난으로 쓴 글이 고종高宗 황제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중앙에서 쫓겨나 쓰촨四川 지방을 방랑했다. 고종 이치李治의 아들이 투계를 좋아하자, 이를 풍자하여「격영왕계문檄英王鷄文」이란 글을 지었는데, 고종의 미움을 사 관직을 박탈당한 뒤 방랑하게 된 것이다. 뒤에 관노官奴를 죽였다는 죄로 관직을 빼앗기고 교지交趾(베트남 북부)의 영令으로 좌천된 아버지 복치福畤를 만나러갔다가 돌아오던 중,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배에서 바다로 떨어져 익사했다.
다음은 방랑 중 강가에 노닐 때에 여수를 읊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시이다.
長江悲已滯장강비이체 萬里念將歸만리념장귀; 슬프다! 장강에서 이렇게 오래 머뭇거리다니, 만 리 밖에서 돌아갈 것을 생각한다네.
況復高風晩황속고풍만 山山黃葉飛산산황엽비; 또다시 가을의 소슬한 바람 불어오고 산마다 단풍잎은 날리는데.
왕발의「등왕각滕王閣」은 유명하다. 등왕각은 당唐나라 고조高祖 이연李淵의 막내아들 원영元嬰이 홍주자사洪州刺史로 있을 때, 강서성江西省 남창현南昌縣에 지은 전각殿閣으로 원영이 등왕滕王에 봉작封爵되어 있었으므로 등왕각이라 부fms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왕발이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꿈속에서 강신江神이 나타나 말하기를 “내일 등왕각을 중수한 낙성식이 있으니 참석해 글을 지어 이름을 내라” 하기에, 왕발이 “여기서 남창까지는 7백 리인데 하룻밤에 당도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배에 오르기만 하면 내가 바람을 불어주리라.” 하더란다. 과연 왕발은 하룻밤 사이에 등왕각에 이르러 등왕각 시와 서문을 지어 문명文名을 떨쳤다.
滕王高閣臨江渚등왕고각임강저 佩玉鳴鸞罷歌舞패옥명난파가무; 등왕각滕王閣의 높은 누각은 아득히 솟아 강저江渚에 임하고 있으나 패옥佩玉을 찬 귀인과 방울 울리며 달리던 마차는 자취도 없네.
畫棟朝飛南浦雲화동조비남포운 朱簾暮捲西山雨주염모권서산우; 아침에는 단청한 기둥에 남포에서 일어난 구름이 날고 저녁에는 주렴을 걷고 서산西山의 비를 바라본다.
閒雲潭影日悠悠한운담영일유유 物換星移幾度秋물환성이기도추; 물에 어린 구름의 그림자 늘 유유한데 세상 바뀌고 세월은 흘러 몇 해나 지났던고.
閣中帝子今何在각중제자금하재 檻外長江空自流함외장강공자유; 이 누각의 주인이었던 제자帝子는 지금 어디 있는가 난간 밖에 장강만이 부질없이 도도히 흐르는구나.
강저江渚강저는 남창부南昌府 옆을 흘러 파양호鄱陽湖로 흘러 들어가는 장강章江을 말한다. 난鸞은 군주君主의 수레나 마차에 달던 방울을 말하는데, 그 모양이 난鸞새를 닮았다고 한다. 화동畫棟은 단청을 한 기둥을 말한다.
「송두소부임촉주送杜少府之任蜀州」는 왕발이 친구와 이별하며 쓴 시로서 ‘소부로 임명되어 촉주로 가는 두씨에게’란 뜻이다.
城闕輔三秦성궐보삼진 風煙望五津풍연망오진 與君離別意여군리별의 同是宦遊人동시환유인; 성궐城闕은 삼진三秦의 도움을 받는데 바람 연기 속의 오진五津을 바라본다. 지금 그대와 헤어지는 이 정은 다 함께 벼슬길에 떠돌기 때문이네.
海內存知己해내존지기 天涯若比隣천애약비린 無爲在歧路무위재기로 兒女共沾巾인녀공첨건; 이 세상에 지기知己만 있다면야 하늘 끝이라도 그 이웃인 것을, 지금 헤어지는 길에 있다고 하여 아녀자처럼 수건일랑 적시지 말자.
소부少府는 지방관으로 현縣의 차관次官에 대한 별칭이다. 현령縣令을 명부明府라 한다. 소부는 전한前漢시대에 제실재정帝室財政을 맡아 황제의 가산적家産的 수입을 관할했으며, 그 장관은 9경卿에 열좌列座되었고, 후한後漢 이후 국가 재정을 관장하는 대사농大司農에게 그 주요 임무를 흡수당한 뒤 궁정에서 사용하는 기물器物이나 공예품을 제작하는 관청이 되었다. 촉주蜀州는 현재의 사천성四川省 숭경현이다. 성궐城闕은 성과 궁궐로 장안長安을 말한다. 삼진三秦은 관중關中을 달리 이르는 말로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일대를 말한다. 항우項羽가 진秦 나라로 쳐들어가 관중을 셋으로 나누고, 장감章邯을 옹왕雍王으로, 사마흔司馬欣을 새왕塞王으로, 동예董翳를 적왕翟王으로 봉해 한때 진나라가 세 나라로 나뉘어 졌는데, 이후 이 지역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오진五津 촉지에 흐르는 양자강에는 다섯 나루터가 있는데 오진은 백화진白華津, 만리진萬里津, 강수진江首津, 섭해진涉海津, 강남진江南津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