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재림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그리스도교 신학은 부활로 종료되지 않고 재림으로 희망을 남겼다.
재림은 의인에게 희망이지만 불의한 사람들에게는 최후의 심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의 재림은 최후의 날이 도래하는 것을 뜻하며 인생에 대한 심판을 뜻한다.
예수는 생전에 이미 재림할 것을 예언하시면서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하면서 최후의 날을 노아의 홍수에 비유했다(마태복음 24:36-37).


마태와 누가 그리고 요한은 예수가 인자의 모습으로 재림할 것이며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으므로 예비하라고 했다(마태복음 24:44, 누가복음 12:40, 요한계시록 16:15).
마태는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다면서(마태복음 24:27) 환란 후에 닥칠 재림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태복음 24:29-31)


요한은 예수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찾겠다고 하신 말씀으로 재림에 관해 기록하면서(요한복음 14:18) 그분이 재림하게 되면 교인들은 그와 같아지게 된다는 희망을 심었다(요한1서 3:2).


누가는 제자들이 승천하는 예수를 바라보고 있을 때 천사가 예수의 재림에 대해 말해 주었다고 했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1:11)


바울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것이라면서(데살로니가전서 5:2) 예수가 재림하는 날 책망 받지 않도록 늘 믿음을 가지고 살라고 했다(고린도전서 1:8).
예수가 재림하면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심판할 것이라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디모데후서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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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을 이해하는 길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성경(Bible)은 책들(The Books)이라는 뜻으로 그리스어(ta biblia)에서 온 말이다.
성경을 정경이라 하는데 그리스어 kanon에서 유래한 정경(canon)은 규칙(rule) 또는 고정된 기준점(standard)이란 뜻으로 교회에서 정통성을 인정한 문서라는 뜻이다.
유대인에게 경(Scripture)이라면 의례 구약성경(The Old Testament)뿐이었지만 크리스천이 늘면서 교회가 예수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을 필요로 하게 되어 구약성경과 구별하기 위해 신약성경(The New Testament)이란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 바울의 서신들은 2세기 말경 이미 교회에서 정경으로 채택되었으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150-215)는 요한계시록도 포함시켰다.
정경으로 받아들여진 문서들은 교회에서 구약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인정받았는데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160-225)는 “율법과 예언자들”과 나란히 “복음적이고 사도적인 문서들”이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그 밖의 문서들도 하나 둘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신약성경으로 인정받아 내용이 늘어났다.
367년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373)가 회람시킨 그의 39번째 부활축일 목회서신에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27권의 신약성경 목록이 적혀 있었다.
27권이 그때 이미 정경으로 채택되었음을 본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신약성경 가운데 몇 권은 정경에 포함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 한때 논란이 되었다.
서방 교회는 히브리서가 사도의 저술이 아니란 점을 들어 정경에 포함시키기를 꺼려한 데 비해 동방 교회는 계시록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네 권의 소 문서들 베드로후서, 요한 2, 3서, 유다서는 신약성경의 초기 목록에서 종종 제외되었다.
당시 정경 밖으로 밀려난 몇 문서는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데는 실패했더라도 일부 교회에서는 정경에 버금가는 경으로 사용되었다.


신약성경 각 권의 배열순서 또한 상당한 변천을 거쳤는데 네 복음서가 가장 영예로운 지위인 앞부분을 차지해야 한다는 합의가 도출되었으며 다음에 사도행전이 영예를 차지해야 한다는 데는 이른 시기부터 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동방 교회는 일곱 편의 공동서신들(Catholic letters) 야고보서, 베드로전서와 후서, 요한1, 2, 3서, 유다서를 열네 편의 바울 서신(히브리서의 저자가 바울이라고 믿었다) 앞에 두는 경향이었던 반면 서방 교회는 바울의 서신들을 사도행전 직후에 두고 공동서신을 그 다음에 두었다.
계시록은 그 지위에 관해 동방 교회 내에서 수차례 논란이 있었지만 동방, 서방 정경의 끝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선별과정이 어떠했는지 세부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불분명한 채 남아있지만 서방 교회에선 4세기 말 이전에 우리가 사용하는 순서의 신약성경이 확립된 것이 확실하다.
그 후 종교개혁 때까지 신약성경의 문제는 더 이상 제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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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은 구약성경과 더불어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신약성경 27권은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알기에 충분하다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이것들만 알면 구원을 받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 교회의 공식적 입장이었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으로 한 획도 삭제되어서는 안 되며 또한 한 획을 가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교회의 법으로 준수되었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과 더불어 1,400년 동안 도전을 불허하는 불멸의 가르침으로 존중되어 왔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였으므로 파피루스에 기록된 내용을 보존하고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 필사본으로 재생하는 일이 필요했는데 이 과정에서 오자가 하나 둘 늘었다.
신약성경에서 오자가 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때였다.


1516년에 에라스무스(Erasmus)가 만든 그리스어 신약성경과 1551년 로버트 에틴(Robert Etienne)의 중세 그리스어 신약성경 번역본에서 오자가 많이 발견되었다.
1581년에 6세기에 기록한 성경이 발견되었고, 1628년에는 5세기에 쓰여진 성경이 발견되었으며, 19세기에 4세기에 쓰여진 성경책 두 권이 발견되었다.
1947년 이집트에서 신약성경 일부가 다시 발견되기 전까지 이 두 권은 가장 오래된 성경책으로 알려졌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성경은 파피루스에 쓴 것들로 이 중에는 3세기와 2세기에 쓰여진 것들도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가로세로 2인치에 불과한 조각인데 요한복음서 18장의 구절이 적힌 것으로 2세기 초에 쓰여진 것으로 밝혀졌다.


옥스포드의 막달렌 대학(Magdalene college)에 소장되어 있는 파피루스 3편은 마태복음서의 부분으로 알려졌는데 그것들은 50년 이전에 쓰여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사본은 4,700점에 달하고 교부들의 인용은 10만 점에 달한다.
발견된 사본을 통해서 본래 성경에는 없는 내용들이 훗날 누군가에 의해서 가필되었음이 밝혀졌다.
마가복음서는 16장 8절로 종료되는데 누군가가 9절부터 20절에 이르는 내용을 첨가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맥교수는 저서 『누가 신약성경을 썼나?』에서 요한복음서에 나타난 간음한 여인에 관한 내용이 4세기 말 이전에 쓰여진 사본에는 없음을 밝혀냈다.
그는 요한1서에는 삼위일체에 관한 내용이 단순한 문체로 기록되어 있는 반면 4세기에 쓰여진 사본에는 다르게 기록되어 있어 누군가에 의해서 가필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상이한 구절을 다음의 예로 지적하였다.


증언자가 셋 있습니다.
곧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서로 일치합니다 (공동번역 성경, 요한1서 5:7-8)

There are three which bear witness,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 three are one

지상에는 증언자가 셋 있습니다.
곧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일치합니다.
하늘에는 증언자가 셋 있습니다.
곧 성부와 말씀과 성령인데 이 셋은 일치합니다 (4세기 성경)

There are three which bear witness on earth,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se three are one in Christ Jesus: and there are three who bear witness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Spirit, and these three are one


가필한 사람이 요한의 저술의도를 흐리게 할 목적으로 내용을 보탠 것은 아니지만 르네상스 때까지 계속된 가필로 인해 신약성경은 난해해졌다.
일부 신학자들이 보태진 내용을 제거하는 작업에 전력했지만 아주 오래 전에 가필된 부분을 발견해서 제거하는 일이란 어려운 일이다.
가령 2세기 또는 그 이전에 가필되었다면 그것을 발견하는 일조차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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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저자들이 참고한 출처에도 문제가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복음서 저자들이 참고한 출처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마태와 누가는 예수가 유다 지파(Judah tribe)의 후손이라고 기록했지만 같은 시기에 저술된 문서에 의하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1948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문서들 중에 마리아복음서가 있는데 여기에는 예수가 유다 지파가 아니라 레위 지파(Levi tribe)에 속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수가 과연 어느 지파에 속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또 있다. 복음서 저자들에게 주로 참고가 된 Q복음서와 선언이야기를 전래한 사람들은 예수의 인성을 강조했는데 비해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였다.
저자에 따라서 본질적인 내용이 극명하게 달라졌음을 본다.
복음서 저자들은 사람(anthropos)의 이미지(morphe)를 지닌 하나님 즉 신인동성론(anthropomorphism)을 제기했다.
물론 그들도 예수의 인성에 관해 언급했지만 신성을 강조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바울을 포함해서 신약성경 저자들 모두 예수의 신성(divinity)과 인성(humanity)의 관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 했다.
그래서 신성과 인성을 두루 갖춘 예수는 과연 누구일까 하는 것이 신학의 문제로 오랫동안 신학자들을 괴롭혔다.
양성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역사에 출현해 인성을 지니고 살았다는 것이 과연 인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이 이천 년 동안 논란거리가 되었다.
학설이 분분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신약성경의 중요한 내용은 예수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으로 인한 그분에 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이다.
이 책에서 필자는 성경 안에서 성경을 이해하는, 전적으로 성경에 의존하는 신학을 말하고자 하는데 복음주의에 근거한 그리스도론이라 할 수 있다.


첫 장은 신약성경의 저자 9명과 그들의 저서에 관한 내용이다.
주요 저자 6명을 주로 다루면서 예수의 두 동생과 작자미상에는 작은 지면을 할애했다.
특히 복음서 저자 네 명과 베드로, 바울에 초점을 두었다.
바울에 지면이 많이 할애된 것은 그의 저서가 가장 많고 또 그의 영향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의 순서를 따라서 베드로와 바울을 먼저 쓰고 복음서의 순서대로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순으로 정리했다.


2장과 3장은 예수의 가르침과 그분에 대한 명칭을 정리한 것이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서른아홉 차례에 걸쳐 비유로 가르쳤다.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직접적인 어법으로는 신성한 지식을 가르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유란 상징주의 언어를 구사했음을 말하는데 언어의 상징성을 해석하는 것이 가르침을 이해하는 척도가 된다.
그의 가르침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는 이천 년 동안 논란거리였으며 언어의 상징성은 시대에 따라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필자는 유형의 통로를 따라서 예수가 사용한 상징주의 언어가 구약시대와 사도들에게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가르침에 근접하려고 했다.


서른아홉 차례에 걸친 비유의 가르침은 예수에 대한 수많은 명칭을 가능하게 했는데 명칭이란 그분의 신성을 나타내는 호칭을 말한다.
그분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45가지 예수의 모습은 필자가 골라낸 그리스도론이고 ‘모퉁이 돌’(에베소 2:20), ‘죽은 자들 가운에 먼저 나신 자’(골로새서 1:18), ‘만물의 으뜸’(골로새서 1:18), ‘아브라함의 자손’(갈라디아서 3:16), ‘다윗의 씨’(요한복음 7:42) 등을 합하면 50가지도 더 된다.


이렇게 많은 명칭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어려움을 주고 혼란을 일으키게 했다.
그들이 사용한 떡, 빛, 양, 목자, 대제사장, 문 등의 명칭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떡, 빛, 양, 목자, 대제사장, 문과 같은 의미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신약성경 저자들이 예수의 신성을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우리가 충분히 알았다거나 그들이 충분히 설명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사용한 상징주의 언어의 이중적 의미 때문이다.


필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크리스천 스스로 그리스도의 본질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성경에 나타난 비유와 은유의 표현 때문에 많은 사람이 성경을 읽으면서도 그 참뜻을 헤아리지 못 하고 사제나 목회자들의 신학적 입장에 주로 의존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그들에 따라서 각각 다른 입장과 해석을 하게 되는데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 정도는 알고 성경을 대한다면 자신의 주관적 이해를 가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


또한 비크리스천으로 하여금 그리스도교에 관심을 갖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
그리스도교가 2천 년 동안 서양의 두드러진 종교가 되다 보니 종교의 범주를 넘어서 서양문화의 근원이 되었다.
그리스도교를 이해하지 못 한 채 서양의 역사, 철학, 예술을 말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제넘은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스도교의 뿌리는 서양문화 전반에 내려져 있다.
종교에 대한 관심이 아니더라도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교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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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가이사랴 지방의 한 마을을 지나다 예수는 문득 제자들에게 질문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가복음 8:29)


예수를 스승으로 삼아 그와 더불어 먹고 자면서 이스라엘 전역을 방랑한 지 2년도 훨씬 지났는데 새삼 자기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제자들은 의아했다.


예수는 이제 사역을 마감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은 사천 명이, 어느 날은 오천 명이 말씀을 들으러 몰려왔지만 그들은 예수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예수는 사랑하는 제자들만이라도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주길 바랐다.
지금은 알지 못한다면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알아주기를 바랐다.


예수가 묻고자 한 것은 자신에게서 신성을 발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성에 관하여 말해 보라는 것이다.
신학의 대상이 되는 분이 제자들의 신학을 듣기를 원하신 것이다.


신학(theology)이란 신(theos)과 말(logos)의 합성어로 ‘신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첫 번째 신학자는 흥미롭게도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물 길러 우물로 나왔다가 우연히 그분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이다.


서기 28년의 이야기이다. 예수는 요한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마리아를 경유해서 갈릴리로 가던 중이었다.
아직 사역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야곱의 우물로 알려진 우물가에 앉아 쉬고 있던 예수가 물 길러 온 여인에게 물 한 그릇을 청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요한복음 4:9-26)


유대인이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청하느냐는 말에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서로 친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예수는 하나님의 선물인 생수에 관해 말하면서 자신이 새 삶을 주는 능력이 있음을 시위했다.
예수가 말한 생수는 성령이지만 가르침이기도 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야곱(Jacob, 별명이 이스라엘이다)의 아들 요셉(Joseph)의 후손이라고 믿었다.
당신이 야곱보다도 위대하냐는 여인의 질문에 예수는 야곱의 우물을 마시면 다시 목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는 말로 자신이 야곱보다 위대함을 드러냈다.
예수는 여인에게 남편이 다섯 명 있었음을 지적하여 그녀의 모든 죄를 알고 있음을 나타내어 여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깨닫게 했다.
여인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알고 있다고 하자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라고 직접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가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전했다.
사마리아 여인이 처음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고, 사람들에게 증거한 것이다.


30년 4월 6일 목요일 저녁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서 유월절 만찬 겸 최후의 만찬을 가졌다.
저녁식사를 마친 그는 제자들을 데리고 인근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갔다.
예수는 자주 그 동산에 가서 기도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았는데 대제사장 가야바의 사주를 받은 무리가 창과 몽둥이와 횃불을 들고 가롯 유다를 앞세워 예수를 잡으려고 왔다.
급작스러운 습격을 당하자 베드로는 허리에 찬 칼을 빼어 종의 귀를 자르는 저항을 시도했지만 결국 예수를 홀로 남겨놓고 제자들과 함께 도망치고 말았다(마태복음 26:56).
베드로가 가이사랴에서 고백한 대로 예수가 그리스도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진정으로 믿었다면 그날 줄행랑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베드로의 비겁한 행위는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사태를 관망하기 위해서 예수가 붙들려 간 대제사장의 관저에 몰래 들어가 뜰에서 불을 쬐고 있을 때 계집종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나사렛 예수와 한패라고 말하자 그는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다(마태복음 26:72).


4월 7일 금요일 아침 예수는 다른 두 사형수와 함께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공회 의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총독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에 시신을 안치했다(누가복음 23:50-53).
사흘 후 일요일 아침 일찍 예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기 위해 무덤으로 간 막달라 여인 마리아가 시신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무덤에 있던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가 그녀에게 예수의 부활을 알려 주었다(누가복음 24:1-6).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예수의 부활소식을 알렸지만 그들은 마리아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마가복음 16:10-11).
무덤으로 달려 간 베드로는 예수의 시신을 쌌던 세마포만 발견했다.
이 일에 대해 누가는 베드로가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기록했다(누가복음 24:12).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질문에 제자들이 신학적으로 응답한 것은 부활한 예수를 보고난 후였다.
제자들의 신학은 각자의 신앙고백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부활한 예수에게는 산 자뿐만 아니라 죽은 자도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신성한 능력이 있다고 했다.
부활보다 더 큰 하나님의 역사는 과거에 없었다. 영생에 대한 인류의 소망이 예수의 부활로 결실을 맺었다.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라는 것이 부활로 증명된 것이다.


예수의 부활이 그리스도 신화를 창조했다.
기원전 2500년경 이집트 사람들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립하면서 부활의 꿈을 키웠지만 그들에게 부활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신의 아들이라고 하는 이집트 왕은 미라가 된 채 4,500년 동안 갇혀 있었지만 피라미드 밖으로 걸어 나오지 못했다.


부활에 관한 베드로의 말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란 전제 하에서 가능한 신앙고백이었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사도행전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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