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저자들이 참고한 출처에도 문제가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복음서 저자들이 참고한 출처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마태와 누가는 예수가 유다 지파(Judah tribe)의 후손이라고 기록했지만 같은 시기에 저술된 문서에 의하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1948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문서들 중에 마리아복음서가 있는데 여기에는 예수가 유다 지파가 아니라 레위 지파(Levi tribe)에 속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수가 과연 어느 지파에 속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또 있다. 복음서 저자들에게 주로 참고가 된 Q복음서와 선언이야기를 전래한 사람들은 예수의 인성을 강조했는데 비해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였다.
저자에 따라서 본질적인 내용이 극명하게 달라졌음을 본다.
복음서 저자들은 사람(anthropos)의 이미지(morphe)를 지닌 하나님 즉 신인동성론(anthropomorphism)을 제기했다.
물론 그들도 예수의 인성에 관해 언급했지만 신성을 강조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바울을 포함해서 신약성경 저자들 모두 예수의 신성(divinity)과 인성(humanity)의 관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 했다.
그래서 신성과 인성을 두루 갖춘 예수는 과연 누구일까 하는 것이 신학의 문제로 오랫동안 신학자들을 괴롭혔다.
양성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역사에 출현해 인성을 지니고 살았다는 것이 과연 인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이 이천 년 동안 논란거리가 되었다.
학설이 분분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신약성경의 중요한 내용은 예수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으로 인한 그분에 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이다.
이 책에서 필자는 성경 안에서 성경을 이해하는, 전적으로 성경에 의존하는 신학을 말하고자 하는데 복음주의에 근거한 그리스도론이라 할 수 있다.


첫 장은 신약성경의 저자 9명과 그들의 저서에 관한 내용이다.
주요 저자 6명을 주로 다루면서 예수의 두 동생과 작자미상에는 작은 지면을 할애했다.
특히 복음서 저자 네 명과 베드로, 바울에 초점을 두었다.
바울에 지면이 많이 할애된 것은 그의 저서가 가장 많고 또 그의 영향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의 순서를 따라서 베드로와 바울을 먼저 쓰고 복음서의 순서대로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순으로 정리했다.


2장과 3장은 예수의 가르침과 그분에 대한 명칭을 정리한 것이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서른아홉 차례에 걸쳐 비유로 가르쳤다.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직접적인 어법으로는 신성한 지식을 가르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유란 상징주의 언어를 구사했음을 말하는데 언어의 상징성을 해석하는 것이 가르침을 이해하는 척도가 된다.
그의 가르침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는 이천 년 동안 논란거리였으며 언어의 상징성은 시대에 따라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필자는 유형의 통로를 따라서 예수가 사용한 상징주의 언어가 구약시대와 사도들에게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가르침에 근접하려고 했다.


서른아홉 차례에 걸친 비유의 가르침은 예수에 대한 수많은 명칭을 가능하게 했는데 명칭이란 그분의 신성을 나타내는 호칭을 말한다.
그분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45가지 예수의 모습은 필자가 골라낸 그리스도론이고 ‘모퉁이 돌’(에베소 2:20), ‘죽은 자들 가운에 먼저 나신 자’(골로새서 1:18), ‘만물의 으뜸’(골로새서 1:18), ‘아브라함의 자손’(갈라디아서 3:16), ‘다윗의 씨’(요한복음 7:42) 등을 합하면 50가지도 더 된다.


이렇게 많은 명칭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어려움을 주고 혼란을 일으키게 했다.
그들이 사용한 떡, 빛, 양, 목자, 대제사장, 문 등의 명칭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떡, 빛, 양, 목자, 대제사장, 문과 같은 의미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신약성경 저자들이 예수의 신성을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우리가 충분히 알았다거나 그들이 충분히 설명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사용한 상징주의 언어의 이중적 의미 때문이다.


필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크리스천 스스로 그리스도의 본질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성경에 나타난 비유와 은유의 표현 때문에 많은 사람이 성경을 읽으면서도 그 참뜻을 헤아리지 못 하고 사제나 목회자들의 신학적 입장에 주로 의존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그들에 따라서 각각 다른 입장과 해석을 하게 되는데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 정도는 알고 성경을 대한다면 자신의 주관적 이해를 가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


또한 비크리스천으로 하여금 그리스도교에 관심을 갖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
그리스도교가 2천 년 동안 서양의 두드러진 종교가 되다 보니 종교의 범주를 넘어서 서양문화의 근원이 되었다.
그리스도교를 이해하지 못 한 채 서양의 역사, 철학, 예술을 말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제넘은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스도교의 뿌리는 서양문화 전반에 내려져 있다.
종교에 대한 관심이 아니더라도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교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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