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중보자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예수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대속물로 내준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중재하기 위해서였으며 그에 의해 새 계약이 맺어졌기 때문에 옛 계약은 무효가 되었다.
옛 계약이란 하나님이 모세에게 준 율법을 의미하며 예수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만드는 중보자(mediator)였다.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브리서 9:15)


예수는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형상이었고, 태초에 하나님과 더불어 존재한 분이었으며, 만물을 창조한 분이었고, 죽은 자들 중에 먼저 부활한 분이었으며,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 중보자의 입장에서 사람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지상에 사랑과 평화를 제공하신 분이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왕권과), 주관들이나 (주권과), 정사들이나 (세력과), 권세들이나 (권세와)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로새서 1:15-20)


히브리서의 저자도 예수가 중보자임을 역설하였다.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히브리서 8:6)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브리서 9:15)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히브리서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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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지혜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예수는 태초에 하나님과 더불어 존재한 분으로 지혜였다. 유대인에게 지혜는 하나님의 호흡 또는 성령이었으며 그분을 대신하여 만물을 창조한 창조주였다.
유대인은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이 지혜를 발견하고는 그녀(지혜)를 자신들에게 주셨다고 믿었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지혜를) 가지셨으며
만세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 (잠언 8:22-31)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을 세우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고 (잠언 3:19)


잠언에는 지혜를 상실한 사람을 철부지요, 거만한 자며, 미련한 자로 기록되어 있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훤화하는 길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가로되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속마음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잠언 1:20-30)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이는 다 총명 있는 자의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의 정직히 여기는 바니라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내게는 도략과 참 지식이 있으며 나는 명철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 (잠언 8:6-14)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 9:10)


욥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를 잃자 절망에 빠졌다.
유대인은 지혜를 상실하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의 곳은 어디인고 (욥기 28:12)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꺼풀뿐이로구나
나의 친구여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기라
나를 불쌍히 여기라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욥기 19:20-1)


하나님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드셨는데 사람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며 지혜있는 사람은 얼굴을 펴고 웃는 광채가 나는 사람이다.


지혜자와 같은 자 누구며 사리의 해석을 아는 자 누구냐
사람의 지혜는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전도서 8:1)


성령 또는 지혜가 하나님의 능력이면서 그리스도라는 신학은 바울로부터 비롯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린도전서 1:22-24)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린도전서 1:30)


바울은 지혜가 예수임을 강조하고 예수 부활 후 지혜가 교회에 있다고 한 말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는 그의 말과 일치한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린도전서 2:1-2)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린도전서 2:7)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2:10)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에베소서 3:10-12)


바울은 예수의 지혜가 그리스도의 지혜임을 거듭 강조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야고보서 3:17-18)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린도전서 1:30)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와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의 지혜이십니다 (공동번역)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린도전서 1:21)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지혜로운 경륜입니다 (공동번역)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린도전서 2:7)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하느님의 심오한 지혜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천지 창조 이전부터 미리 마련하여 감추어 두셨던 지혜입니다 (공동번역)


지혜는 성령의 선물이자 예수로서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은총의 선물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고린도전서 12:7-8)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린도전서 2:13, 1:2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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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말씀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유대인에게 침묵하는 하나님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구약성경 저자들은 하나님의 의지를 나타낼 때 ‘하나님의 말씀’이란 말로 명료하게 하려고 했다.
플라톤은 저서 『공화국 Republic』에서 신성을 태양에 비유했고, 빛을 신성의 현존으로 비유했는데 이 같은 방법으로 빛이 말씀 또는 지혜의 의미로 하나님의 현존으로 묘사되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한복음 1:9-10)


요한이 말씀을 로고스라고 한 것은 신성에 관한 그리스인의 철학 개념을 신학으로 끌어들인 것을 의미했다.
요한과 바울이 초대교회에 미친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었는데 초대교회는 두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예수를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지혜라고 믿었다.
바울이 예수를 지혜라고 한 데 비해 요한은 말씀임을 강조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1-2)


예수의 계시는 이성적 충동으로서의 지혜의 말씀이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4)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과 더불어 존재한 하나님 자신이고 나사렛 예수로 성육신되어 우리처럼 듣고 보고 만질 수 있는 분이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요한1서 1:1-2)

구약성경 저자들은 하나님의 경이로운 능력을 지혜, 말씀, 성령이란 말로 표현했는데 모두 신성을 나타내는 말들이다.
요한이 신성을 지혜란 말 대신에 말씀이란 말을 사용한 이유는 지혜가 여성을 상징하는 말이기 때문인 것 같다.
바울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누가가 말씀을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로 이해했고 요한은 말씀을 하나님의 아들로 이해하였다.
지혜와 성령에 비해 말씀이란 말이 더욱 명료하고 구별되며 말씀을 말하는 사람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요한이 말씀이란 말을 선호한 것 같다.
다시 말해 예수를 하나님과 구별하고 직접적인 관계를 명료하게 하는 데 말씀이란 말이 더욱 유용하기 때문에 말씀이란 말을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바울은 말씀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길이라고 가르쳤다.
그는 말씀을 통해 의인이 될 수 있다면서 말씀을 받아 전하는 은혜를 구하라고 권유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17)


요한은 바울과 달리 성령이란 말보다는 말씀이란 말로 예수를 묘사하면서 그를 통해 지혜로운 경륜을 알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구약성경 저자들이 말씀과 지혜를 동의어로 사용한 데 비해 신약성경 저자들은 말씀과 지혜를 구별해서 사용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신의와)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요한계시록 19:11-13)


말씀의 위력은 하나님의 현존과 창조의 힘이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씨뿌린 사람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이사야 55:10-11)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저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시편 3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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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임마누엘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임마누엘(Immanuel)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예수의 탄생은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진 사건이다.
이 명칭은 마태가 선택한 신학 개념으로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동정녀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잉태한 사실을 알렸음을 기록하면서 사용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태복음 1:20-21)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14)


이사야는 임마누엘을 빛에 비유했으며 요한이 빛의 신학을 받아들였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이사야 9:2).
스가랴는 임마누엘의 출현을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스가랴 9:9)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스가랴 12:10)


유대인을 위해 복음서를 쓴 마태는 하나님이 유대인과 함께 하는 이유는 유대인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하여 신학을 유대인에 한정시켰다.
마태의 임마누엘 신학에는 유대인 외의 민족은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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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나사렛 예수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유대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름 앞에 아버지의 이름이나 동네 이름을 붙여 사용하였다.
흔한 이름의 경우 이런 방법으로 사람을 구별했다.
예수란 이름이 흔했기 때문에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다.
예수의 유대명은 여호수아(Jehosuah)인데 당시 흔한 이름이었다.
히브리어 여호수아의 애칭은 예수아(Jeschua)인데 이를 그리스어로 표기하면 예수(Jesus)가 된다.


구약성경에 나사렛에 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나사렛이 유대인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마태는 예수가 나사렛에서 성장한 것을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고(마태복음 2:23) 했지만 구약성경에서는 이런 기록을 발견할 수 없다.


나사렛은 사방이 야산으로 둘러싸인 해발 380m의 높은 분지인데 다른 도시나 마을과 교류가 거의 없는 아주 한적한 곳이다.
그곳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000-2000년경부터였고 유대인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00년경부터였다.
나사렛이란 이름은 히브리어 ‘나자르’에서 연유했는데 ‘지키다’ ‘수호하다’라는 뜻이다.
그리스어와 라틴어 발음을 따라서 나사렛이라고 부른다.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란 음성을 듣고 나사렛으로 돌아온 예수는 안식일에 회당에 가서 이사야의 글을 낭독했다.
낭독을 마친 그는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하셨다.
그의 말투는 권위 있는 선지자의 말투였다.
나사렛 사람들은 그가 선지자 행세를 한다고 하여 언덕에서 떨어뜨려 죽이려고 했다(누가복음 4:14-30).
누가는 나사렛 예수는 이사야가 고대한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준 분으로 묘사하였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누가복음 4:18-19)


주의 성령이 예수에게 임했다는 말과 예수의 사역은 이사야의 말과 관련이 있다.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이사야 11:2)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이사야 11:3-5)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선택한 종이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이사야 42:1)


가롯 유다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보낸 경비병들이 예수를 잡으려고 왔을 때 예수는 그들에게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요한복음 18:4-5)고 물었으며 그들이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고 하자 자신이 나사렛 예수임을 밝히셨다.
예수가 대제사장의 관저로 붙들려 갔을 때 몰래 잠입해 뜰에서 불을 쬐던 베드로를 발견한 하녀가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마가복음 14:66-67)라고 말한 데서 예수가 나사렛 사람 예수라고 불리웠음을 또한 알 수 있다.


그리고 예수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조롱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 붙인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란 팻말에서 대제사장과 장로들도 그를 단순히 나사렛 사람으로 여겼음을 알게 한다(요한복음 19:19).
일요일 아침 일찍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예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려고 무덤으로 갔을 때 천사가 여인들에게 예수의 부활소식을 알리면서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사용했다(마가복음 16:6).
마태의 말대로 나사렛 사람 가운데 그리스도가 출현할 것이라는 선지자의 말이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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