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크리스천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비길 만하며,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되었으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이방인을 의롭게 만드신다고 했다.
그는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했다(갈라디아서 3:29).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으며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라디아서 3:26-29)


바울은 크리스천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분명히 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라디아서 4:4-7)


바울은 성령을 거스리는 육체의 정욕을 채우려 하지 말고 성령이 이끄는 대로 살아야 한다고 했다.
정욕이 빚어내는 것들로 그는 음행, 추행,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을 들었다(갈라디아서 5:16-21).
또한 크리스천은 성령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이며 다른 크리스천이 잘못을 저지르면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 잡아 주라고 했다(갈라디아서 6:1).
할례를 강요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말라면서 할례 받은 사람들조차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라디아서 5: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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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이 서신 1장 1절에 나타난 에베소란 말은 가장 오래된 그리스어 성경에는 없다.
이 서신에 관해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한데 하나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내려고 쓴 서신을 후세 사람들이 에베소란 말을 삭제하여 에베소 교인뿐만 아니라 모든 교인에게 해당하는 편지로 사용했다는 것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바울이 모든 교회 교인들을 위해서 쓴 것인데 사본 하나를 에베소 교회에 보냈다는 것이다.
여러 교회가 이 서신을 권위 있는 말씀으로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바울이 처음부터 모든 교인을 대상으로 쓴 것 같다.
바울은 서두에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적었다(에베소서 1:1).


에베소(Ephesus)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334년에 알렉산더 대왕의 입성으로 해방되었다.
기원전 133년 베르가모 왕국의 마지막 왕 앗탈로스 3세가 왕국을 로마에 바칠 때 에베소도 함께 바쳤다.
기원전 129년 로마는 에베소를 아시아의 속주의 수도로 삼았다.
에베소는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과 더불어 로마 제국에 속한 지중해 동쪽에 있는 도시들 가운데 중요한 도시였다.
이들 도시 사람들은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를 숭배했는데 아르테미스는 최고의 신이었지만 에베소가 그리스인의 통치를 받게 된 후부터 그리스 최고의 신 제우스(Zeus)의 딸이 되고 말았다.
당시 도시국가들 사이의 싸움에서 승리한 국가의 신은 패한 국가의 신의 상좌에 앉는 것이 일반이었다.
아르테미스를 라틴어로 디아나(Diana)라고 한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대단히 컸는데 길이가 340피드에 폭이 160피드였으며, 55피드도 더 되는 높은 기둥이 100개나 되었다.
이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다.
에베소인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아르테미스 여신이 에베소를 수호한다고 믿었다(사도행전 19:35).


바울이 에베소를 처음 방문한 것은 2차 여행 때였고(사도행전 18:19) 3차 여행 때도 이곳을 방문했는데(사도행전 19:8-10, 20:31) 에베소에 머문 기간은 2년 남짓 되었다.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은으로 만들어 팔던 우상제조업자들은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된다는 바울의 가르침 때문에 돈벌이가 신통치 않게 되자 소동을 피웠다.
그들의 항의가 워낙 거세었기 때문에 바울은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으며(사도행전 19:24-28, 20:1) 그는 밀레도(Miletus)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불러 만났다(사도행전 20:17-38).


에베소서는 바울이 60년부터 62년까지 로마에서 가택 연금된 상태에서 쓴 첫 번째 서신이며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도 감금된 상태에서 쓴 것들이다(에베소서 3:1, 4:1).
그는 여러 차례 감금되었는데 빌립보에서 감금된 적이 있었고(사도행전 16:23), 예루살렘에서 감금된 적이 있었으며(사도행전 23:18), 가이사랴로 압송되어 감금되었고(사도행전 23:33, 24:27, 25:14), 로마로 압송되어 감금되었다(사도행전 28:16, 20, 30).


에베소 교회 내분은 로마와 고린도 교회 내분에 비하면 경미한 편이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교인으로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면하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교인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 1:17-19, 3:18)


바울은 시편을 인용해 하나님은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켰으며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고 했다.
또한 그리스도의 만물을 완성하시는 계획이 교회에서 온전히 이루어진다고 역설했다(에베소서 1:22-23).
그리스도 안에서 교인들이 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으며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에게도 이 점을 강조했다(에베소서 2:11-18, 3:4-10).


그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교인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고 말했다(에베소서 2:19-22).


그는 겸손하고, 온유하며, 인내를 가지고 서로 사랑하면서 성령 안에서 교인 모두가 일체를 이룰 것을 역설하였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에베소서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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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 교인을 형제라고 불렀다(빌립보서 3:13, 17, 4:1, 8).
그가 빌립보(Philippi)에 처음 갔을 때 그곳에는 유대 공회당이 없었다(사도행전 16:13, 16).
그러므로 빌립보의 교인은 모두 이방인이라고 짐작된다.
이 도시의 이름은 마게도니아 왕 빌립(Philip)의 이름을 딴 것이며 빌립은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이다.


바울이 빌립보에 교회를 세운 것은 50년 2차 여행 때였다(사도행전 16:11-40).
빌립보는 유럽에서 바울이 설교한 첫 번째 도시였으며 개종한 첫 번째 사람은 리디아(Lydia)이며 그녀는 자색 옷감 장수였다.
그녀는 가족과 함께 바울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바울과 실라는 잘못된 풍속을 선전한다는 이유로 기소되었으며 치안관은 부하를 시켜 그들의 옷을 찢고 매질한 후 감옥에 가두었다(사도행전 16:16-24).
이튿날 치안관은 바울과 실라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임을 알고 그들에게 사과한 후 빌립보를 떠나라고 간청하였다.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로 향했고 누가만 빌립보에 남아서 마게도니아에 있는 교회들을 보살폈다(사도행전 17:1, 20:5).
빌립보 교회는 경제적으로 바울을 후원하였다(빌립보서 4:15-16, 고린도후서 11:9).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에서 가택 연금된 상태에서 62년 봄에 쓴 것이다(빌립보서 1:7, 13, 17).
그곳 교인들이 일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면서 바울은 비록 자신은 감금상태에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의 위로를 받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지낸다고 적었다.
이 서신은 세 편으로 되었는데 훗날 누군가가 하나로 묶은 것 같다(빌립보서 4:10-20, 1:1-3:1, 3:2-4:9).
첫 번째와 두 번째 서신은 에베소에 감금되었을 때 쓴 것이거나(54-55년) 5년 또는 8년 후 빌립보에 교회를 세운 후에 쓴 것으로 짐작된다.
에바브로디도(Epaphroditus)가 빌립보 교인들의 선물을 바울에게 전달하고 함께 지냈다.
그의 병이 완쾌되자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디모데와 함께 빌립보로 보냈다(빌립보서 4:15-18, 2:19-30).


바울은 인생의 목표가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는 것이라며(빌립보서 3:11)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라고 했다(빌립보서 3:14).
이것은 바울의 개인적인 목표였지만 모든 크리스천이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바울은 크리스천들에게 그리스도를 닮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그리스도인(christian)이란 말은 그리스도를 닮는 인생이란 뜻이다(빌립보서 2:6-11).
그는 말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5)


바울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날에 책망을 받을 일이 없도록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고 했다(빌립보서 1:6, 10, 2:16).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날은 최후의 심판의 날이다(고린도전서 1:8, 5:5, 고린도후서 1:14, 5:10, 데살로니가전서 5:2, 데살로니가후서 2:2).
그날에 그리스도는 선지자 다니엘이 환상으로 본 대로 인자의 모습으로 오신다.


그리스도의 재림 신학은 초대교회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재림의 날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되며 부활한다고 바울은 강조하였다(로마서 8:23).
바울 자신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으려고”(빌립보서 3:10) 하므로 크리스천들에게도 자기를 본받으라고 권고했다(빌립보서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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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골로새(Colosse)는 에베소로부터 동쪽 120마일 떨어진 리쿠스(Lycus) 계곡에 위치했다.
골로새로부터 북서쪽 10마일가량 떨어진 곳에는 골로새보다 조금 작은 도시들 라오디게(Laodicea)와 히에라폴리스(Hierapolis)가 있어 세 도시 사람들은 서로 왕래했다.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그리스인 헤로도투스(Herodotus, BC.484?-425?)는 이 도시를 전략상 중요한 도시라고 했는데 군사 요새로 세워진 도시였던 것 같다.
많은 유대인이 이 도시에 거주했지만 대부분 이방인이었다(골로새서 1:27, 2:13).


골로새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바울이 2년 이상 에베소에서 활약할 때였다.
에바브라가 로마로 와서 바울에게 골로새 교회 소식을 전한 것으로 보아 그가 골로새에 교회를 세운 후 라오디게와 히에라폴리스에도 교회를 세운 것 같다(골로새서 1:7-9, 4:12-13).
아킵보(Archippus)가 에바브라와 함께 활동했다(골로새서 4:17, 빌레몬서 1:2).


바울은 이 서신을 쓸 때 그는 로마에서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다.
그는 이 서신을 라오디게 교회 교인들에게도 읽힐 것을 염두에 두었는데 그는 두 도시를 방문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골로새서 4:16, 2:1).
많은 신학자들은 이 편지가 62년경에 그에 의해서 쓰여졌다고 하지만 일부 신학자는 골로새서의 내용이 바울의 가르침과 꼭 일치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훗날 바울학파 사람들에 의해 그의 이름으로 70년대 또는 80년대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한다.
골로새에 보낸 서신을 에베소서의 내용과 비교하면 그 내용이 바울의 가르침과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닮는 인생을 살게 되면 부활이 가능하다고 가르쳤다.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의 내용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로새서 2:12)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 2:5-6)


골로새 교인들은 믿음과 사랑으로 제대로 성장하고 있었는데(골로새서 1:3-8) 어떤 자가 와서 잘못된 가르침을 전해 물의를 일으켰다.
잘못된 가르침이란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을 의미한다(골로새서 2:8, 11, 16).
바울이 서신을 쓴 까닭은 그리스도보다도 위대한 것이란 있을 수 없다는 점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골로새서 2:2-3)고 영지주의자들로부터 다른 지혜를 구하지 말 것을 당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리스도를 다음과 같은 말로 묘사하였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골로새서 2:9-10)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로새서 3:1-4)


바울은 모든 크리스천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므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골로새서 2:19).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새 사람이 되라고 했으며(골로새서 3:9-10) 에베소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편지에서도 지혜를 강조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니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로새서 3:16-17)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골로새서 2:2-3, 에베소서 1:17-23)


바울은 크리스천이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임을 강조하면서(골로새서 2:19) 교인이 아닌 사람들 앞에서 지혜롭게 행동할 것을 당부하였다(골로새서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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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와 데살로니가후서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데살로니가(Thessalonica)는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 여동생 이름인데 그녀의 남편 카산더(Cassander)가 기원전 315년에 도시의 이름으로 명했다.
서쪽 마게도니아로 통하는 이 도시는 델마익 만(Thermaic Gulf) 북동쪽 코너의 훌륭한 항구에 세워졌다.
당시 사람들은 이 도시를 “전 마게도니아의 열쇠”라고 불렀다.


데살로니가는 기원전 168년에 로마 공화국에 합병되어 마게도니아 지방의 로마 수도로 바울 당시 인구가 20만 명에 달하는 큰 도시였다.
바울의 말에서 이 도시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니아와 아가야만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데살로니가전서 1:8)


바울은 이곳으로 오기 전에 빌립보에 있었다(데살로니가전서 2:2).
그는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면서 목회했으며(데살로니가전서 2:9, 데살로니가후서 3:8) 빌립보 교회로부터 몇 차례 재정적으로 도움을 받았다(빌립보서 4:16).
세 차례에 걸쳐 안식일에 공회당에서 가르쳤는데 데살로니가에는 유대인도 많이 거주했다.
유대인들이 바울의 가르침을 배척하면서 소동을 피웠으므로 바울은 이곳을 떠나 베뢰아(Berea)로 가야 했다(사도행전 17:11-12).
하지만 극성스러운 유대인은 베뢰아까지 와서 그가 활동하지 못 하도록 계속 소동을 피웠기 때문에 바울은 베뢰아도 떠날 수밖에 없었다(사도행전 17:13-15).


그는 아테네로 가면서 실라와 디모데로 하여금 계속 베뢰아에 남아 활동하도록 했다.
실라와 디모데는 나중에 아테네로 가서 그를 만났다(데살로니가전서 3:1-2).
바울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가게 하고 자신은 고린도로 갔다.
데살로니가로 간 디모데는 바울에게 교회상을 자세히 보고했다(사도행전 18:1-5).
디모데로부터 소식을 들은 바울은 교인들을 위로하면서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굳게 하라고 권고하였다.


이 서신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50년 또는 51년에 쓴 것인데 신약성경 중 가장 먼저 쓴 것이다.
데살로니가를 떠난 지 약 6개월 후에 쓴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의 이름으로 2차 여행 때(50-52년) 쓴 것임을 알 수 있다(데살로니가전서 1:1, 3:2, 6, 사도행전 15:40, 16:1-3, 19, 17:4, 10, 14, 18:5).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3:6-7)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건립하고(데살로니가전서 1:5-6) 교인들을 자식처럼 여겼다(데살로니가전서 2:11).
그는 교인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는 것이며 최후의 심판 때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면서 크리스천은 결국 영광을 받는다고 주장하였다(데살로니가후서 1:5-10).


고난 받고 죽는 것은 의로운 일이며
의롭게 살다 죽은 사람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심판의 날에(데살로니가전서 4:14-17)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유대인의 부활과 그리스인의 영원함을 혼용했다.
그는 영혼이 육체를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면서 이 같은 믿음을 가지고 스스로 위로하라고 했다.
또한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면서(데살로니가후서 3:13)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기원하였다(데살로니가후서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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