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 교인을 형제라고 불렀다(빌립보서 3:13, 17, 4:1, 8).
그가 빌립보(Philippi)에 처음 갔을 때 그곳에는 유대 공회당이 없었다(사도행전 16:13, 16).
그러므로 빌립보의 교인은 모두 이방인이라고 짐작된다.
이 도시의 이름은 마게도니아 왕 빌립(Philip)의 이름을 딴 것이며 빌립은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이다.
바울이 빌립보에 교회를 세운 것은 50년 2차 여행 때였다(사도행전 16:11-40).
빌립보는 유럽에서 바울이 설교한 첫 번째 도시였으며 개종한 첫 번째 사람은 리디아(Lydia)이며 그녀는 자색 옷감 장수였다.
그녀는 가족과 함께 바울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바울과 실라는 잘못된 풍속을 선전한다는 이유로 기소되었으며 치안관은 부하를 시켜 그들의 옷을 찢고 매질한 후 감옥에 가두었다(사도행전 16:16-24).
이튿날 치안관은 바울과 실라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임을 알고 그들에게 사과한 후 빌립보를 떠나라고 간청하였다.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로 향했고 누가만 빌립보에 남아서 마게도니아에 있는 교회들을 보살폈다(사도행전 17:1, 20:5).
빌립보 교회는 경제적으로 바울을 후원하였다(빌립보서 4:15-16, 고린도후서 11:9).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에서 가택 연금된 상태에서 62년 봄에 쓴 것이다(빌립보서 1:7, 13, 17).
그곳 교인들이 일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면서 바울은 비록 자신은 감금상태에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의 위로를 받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지낸다고 적었다.
이 서신은 세 편으로 되었는데 훗날 누군가가 하나로 묶은 것 같다(빌립보서 4:10-20, 1:1-3:1, 3:2-4:9).
첫 번째와 두 번째 서신은 에베소에 감금되었을 때 쓴 것이거나(54-55년) 5년 또는 8년 후 빌립보에 교회를 세운 후에 쓴 것으로 짐작된다.
에바브로디도(Epaphroditus)가 빌립보 교인들의 선물을 바울에게 전달하고 함께 지냈다.
그의 병이 완쾌되자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디모데와 함께 빌립보로 보냈다(빌립보서 4:15-18, 2:19-30).
바울은 인생의 목표가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는 것이라며(빌립보서 3:11)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라고 했다(빌립보서 3:14).
이것은 바울의 개인적인 목표였지만 모든 크리스천이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바울은 크리스천들에게 그리스도를 닮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그리스도인(christian)이란 말은 그리스도를 닮는 인생이란 뜻이다(빌립보서 2:6-11).
그는 말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5)
바울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날에 책망을 받을 일이 없도록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고 했다(빌립보서 1:6, 10, 2:16).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날은 최후의 심판의 날이다(고린도전서 1:8, 5:5, 고린도후서 1:14, 5:10, 데살로니가전서 5:2, 데살로니가후서 2:2).
그날에 그리스도는 선지자 다니엘이 환상으로 본 대로 인자의 모습으로 오신다.
그리스도의 재림 신학은 초대교회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재림의 날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되며 부활한다고 바울은 강조하였다(로마서 8:23).
바울 자신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으려고”(빌립보서 3:10) 하므로 크리스천들에게도 자기를 본받으라고 권고했다(빌립보서 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