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와 데살로니가후서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데살로니가(Thessalonica)는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 여동생 이름인데 그녀의 남편 카산더(Cassander)가 기원전 315년에 도시의 이름으로 명했다.
서쪽 마게도니아로 통하는 이 도시는 델마익 만(Thermaic Gulf) 북동쪽 코너의 훌륭한 항구에 세워졌다.
당시 사람들은 이 도시를 “전 마게도니아의 열쇠”라고 불렀다.
데살로니가는 기원전 168년에 로마 공화국에 합병되어 마게도니아 지방의 로마 수도로 바울 당시 인구가 20만 명에 달하는 큰 도시였다.
바울의 말에서 이 도시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니아와 아가야만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데살로니가전서 1:8)
바울은 이곳으로 오기 전에 빌립보에 있었다(데살로니가전서 2:2).
그는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면서 목회했으며(데살로니가전서 2:9, 데살로니가후서 3:8) 빌립보 교회로부터 몇 차례 재정적으로 도움을 받았다(빌립보서 4:16).
세 차례에 걸쳐 안식일에 공회당에서 가르쳤는데 데살로니가에는 유대인도 많이 거주했다.
유대인들이 바울의 가르침을 배척하면서 소동을 피웠으므로 바울은 이곳을 떠나 베뢰아(Berea)로 가야 했다(사도행전 17:11-12).
하지만 극성스러운 유대인은 베뢰아까지 와서 그가 활동하지 못 하도록 계속 소동을 피웠기 때문에 바울은 베뢰아도 떠날 수밖에 없었다(사도행전 17:13-15).
그는 아테네로 가면서 실라와 디모데로 하여금 계속 베뢰아에 남아 활동하도록 했다.
실라와 디모데는 나중에 아테네로 가서 그를 만났다(데살로니가전서 3:1-2).
바울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가게 하고 자신은 고린도로 갔다.
데살로니가로 간 디모데는 바울에게 교회상을 자세히 보고했다(사도행전 18:1-5).
디모데로부터 소식을 들은 바울은 교인들을 위로하면서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굳게 하라고 권고하였다.
이 서신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50년 또는 51년에 쓴 것인데 신약성경 중 가장 먼저 쓴 것이다.
데살로니가를 떠난 지 약 6개월 후에 쓴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의 이름으로 2차 여행 때(50-52년) 쓴 것임을 알 수 있다(데살로니가전서 1:1, 3:2, 6, 사도행전 15:40, 16:1-3, 19, 17:4, 10, 14, 18:5).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3:6-7)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건립하고(데살로니가전서 1:5-6) 교인들을 자식처럼 여겼다(데살로니가전서 2:11).
그는 교인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는 것이며 최후의 심판 때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면서 크리스천은 결국 영광을 받는다고 주장하였다(데살로니가후서 1:5-10).
고난 받고 죽는 것은 의로운 일이며
의롭게 살다 죽은 사람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심판의 날에(데살로니가전서 4:14-17)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유대인의 부활과 그리스인의 영원함을 혼용했다.
그는 영혼이 육체를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면서 이 같은 믿음을 가지고 스스로 위로하라고 했다.
또한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면서(데살로니가후서 3:13)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기원하였다(데살로니가후서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