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서신들 가운데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바울의 서신들 가운데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낸 서신 세 편은 목회서신으로 불리는데 바울이 쓴 것이 아니라 바울학파에 속한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빌어서 쓴 것으로 알려졌다.
내용과 문체가 그의 것과 달라 그가 쓴 것이 아니라는 학설이 유력하다.
일부 신학자는 데살로니가후서, 골로새서, 에베소서 역시 바울이 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내용과 문체가 바울이 쓴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목회서신을 제외한 열편을 그가 썼다는 전제 아래 각 서신의 내용을 요약하려고 한다.


이에 앞서 예루살렘의 유대교 지도자들이 국외에 있는 지도자에게 보낸 편지들의 공통된 여섯 가지 형식을 언급하여 바울의 서신도 이와 유사함을 지적하려고 한다.


1. (인사) 형제들이여, 예루살렘에 있는 우리가 그곳에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합니다.

2. (하나님께 감사) 우리의 하나님은 복되시니

3. (기도) 하나님의 가호가 있으시기를

4. 상황에 관한 설명

5. 용기를 북돋우거나 발신인의 요구사항들을 받아들일 것을 권유

6. (마지막 인사) 이제 하나님의 은혜가 너희에게


바울의 서신은 이런 형식을 따랐는데 가장 먼저 쓴 데살로니가전서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1)

2-3.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의 말함은 …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1:2-10, 2:1-16)

4.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2:17-3:13)

5.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4:1-5:22)

6.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5: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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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바울의 신학이 가장 잘 나타난 서신이 고린도에서 로마에 있는 크리스천에게 보낸 것이다.
이것은 3차 여행 말엽 57년에 고린도에서 쓴 것으로 짐작되는데 일부 신학자는 이듬해 봄에 썼을 것이라고 한다.
예루살렘의 가난한 크리스천들을 돕기 위해 모은 성금을 예루살렘으로 전달하러 가기 전에 쓴 것이다(로마서 15:25-27, 고린도전서 16:3-5, 고린도후서 8장).
그는 로마를 방문하고 싶어 했으며 서바나로 가기 전에 방문했으면 했다(로마서 15:22-23).
누가 로마에 교회를 세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개종한 유대인과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갔던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들이(사도행전 2:10) 세운 듯하며 교인들 대부분 이방인이었다(로마서 1:5-6, 13, 11:13, 15:15-16).
바울이 구약성경을 인용하면서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라는 말을 쓴 것으로 미루어 교인들 중에 유대인이 있었음을 알게 한다.


바울은 고린도에 가서 그곳 교회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한 후 이 서신을 썼다.
순서상으로 고린도전서와 갈라디아서를 쓴 지 2년 후이며 고린도후서를 쓴 직후였으므로 로마서의 내용은 고린도전서와 갈라디아서의 내용과 유사한 점이 많다.


로마서의 주요 내용이면서 고린도전서와 갈라디아서와 유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로마서 1:16-32, 고린도전서 1-2, 5-6장
바울은 그리스인의 지혜를 비난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게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로마서 1:20-23)


2. 로마서 2-3장, 고린도전서 1:18-2:9, 1:30-31
유대인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린도전서 1:23-24)


3. 로마서 5-6장, 고린도전서 15:20-55
모든 사람은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지만
새 아담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새 생명 즉 영생을 얻게 된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로마서 5:12-16)


4. 로마서 7장, 고린도전서 15:56-57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에 이르게 하지만 그리스도는 죄를 이기고 영생에 이르게 하신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린도전서 15:56-57)


5. 로마서 12장, 고린도전서 12장
교인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나의 지체를 이룬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12:4-5)


6. 로마서 13장, 고린도전서 13장
하나님이 주신 계명의 중심은 사랑이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로마서 13:8-10)


7. 로마서 14장, 고린도전서 8, 10장
음식규례로 해서 먹는 것에 관해 교인들끼리 서로 비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로마서 14:1-3)


8. 로마서 3:9-23, 갈라디아서 3:22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3:22)


9. 로마서 9:7-9, 갈라디아서 4:21-31
새 언약에 속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로마서 9:7-9)


더디오(Tertius)가 대필한 서신에서(로마서 16:22) 바울은 복음의 능력, 인간 자만심의 문제, 육체의 연약함 세 가지를 강조했다.
다음 구절은 로마서를 요약한 말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1-2)


바울은 하나님의 본질로 만물의 창조와(로마서 1:20, 25, 4:17, 8:18-23, 9:19-21) 의로움을 지적했는데(로마서 2:11, 3:3-4, 25-26, 9:6, 14, 19, 11:1-2) 하나님의 본질인 의로움을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어떤 의로움이라도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의로움(righteousness)은 중요한 신학의 개념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불의하지만 하나님의 나타난 의로움 즉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라도 의로워질 수 있다고 했으며(로마서 3:9, 21-24),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고 했다(로마서 8:1-4, 12-13).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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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동쪽과 서쪽에 각각 훌륭한 항구를 가진 고린도는 그리스 본토에 있는 상업도시로 아테네로부터 서쪽으로 60마일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그리스의 중요한 이 도시는 기원전 146년에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간 후 로마인들에게도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율리우스 시저(Julius Caesar, 그리스어로는 카이사르)는 기원전 44년에 고린도를 새로운 도시로 변모시켰으며 기원전 27년에는 그리스 지역의 로마 수도로 정했다.
고린도에는 상인, 여행자, 철학자들이 많았으며 노예도 아주 많았다.
로마로부터 관리, 기술자, 상인, 연예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왔고 그리스인, 유대인, 동방인 등 각종 인종들이 어울려 사는 인종박람장과도 같은 도시였다.


바울이 처음 고린도를 방문한 것은 51년 3월로 2차 여행 때 아테네를 방문한 후였다(사도행전 18:1).
그는 고린도에서 유대인 아굴라(Aquila)와 브리스길라(Priscilla)를 만나 그들과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해서 생계를 해결했으며 안식일에는 공회에서 가르쳤다.
고린도는 빈부의 격차가 심한 도시였는데 대부분 빈민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바울의 가르침을 들었다.
바울은 실라(Silas)와 디모데와 함께 고린도에 교회를 세웠다(사도행전 18:5).
그가 목회한 기간은 일 년 반가량 되었다.
목회는 성공적이었으며 많은 사람이 그로부터 세례를 받았다(사도행전 18:8, 11).
이 시기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두 차례 편지를 썼다.
52년에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떠나자(사도행전 18:18-19), 후임 아볼로(Apollos)가 교회를 더욱 부흥시켰다(사도행전 18:26-19:1).
아볼로는 나중에 에베소로 가서 바울을 만나 교회의 성장을 보고하였다(고린도전서 16:12). 그 후 교회에 문제가 생기자 글로에(Chloe)가 바울에게 교회 내분에 관하여 보고했다.
그는 당장 갈 수 없어 편지로 해결책을 써 보냈는데 그것이 고린도전서이다(고린도전서 1:11).


고린도 교회에는 파당행위가 있었는데 교인들은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고 그리스도파로 갈라져서 반목했다(고린도전서 1:12).
그들 가운데는 음행을 한 자, 아비의 아내와 간음한 자도 있었다(고린도전서 5:1).
교인들끼리 고소한 불미스러운 사건도 있었고(고린도전서 6:1) 그리스도교의 핵심이 되는 그리스도의 부활조차 믿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고린도전서 15:12).
그들은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면서 동료 교인들을 업신여겼으며(고린도전서 12:1-14:40) 심지어 예수를 저주한 자도 있었다(고린도전서 12:3).


바울은 분쟁에 대한 해결책으로 지혜를 강조하였다. 지혜를 가지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며 우주가 어떻게 운행하는가를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임을 가르치면서 지혜는 구약시대부터 알려진 가르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혜와 어리석음이란 말을 고린도전서에서 서른 번도 더 사용했는데 1-3장에서 지혜란 말을 23번이나 사용하였다.
그가 말한 지혜란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에 의해 나타나는 지혜였다.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린도전서 2:7)


바울은 일부일처를 따르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우상숭배를 피하라,
육체의 부활을 의심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고린도전서 7:1-2)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고린도전서 7:17)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고린도전서 8:1-3)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고린도전서 10:14)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2:1, 3)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5:35-38)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다시 방문한 것은 3년 후였다(고린도후서 13:2).
3차 여행 때 에베소에 갔다가 그곳 교회에 문제가 생겼다는 보고를 받고 가서 문제를 수습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고린도후서 2:1, 12:14, 13:2).
그는 고린도를 떠나면서(고린도전서 5:9) 다시 올 때는 간음한 자들을 용서치 않겠다고 경고했다(고린도후서 13:2).
고린도후서는 전서를 쓴 지 6개월 후에 쓴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를 세 번 방문했는데 그가 고린도 교회에 처음 쓴 서신은 현존치 않고 있다(고린도전서 5:9).
고린도전서는 실제로는 두 번째 서신이 되는 셈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에서 하나님이 돌에 새겨 모세에게 주신 언약과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으로 사람의 마음에 새겨 주신 새 언약의 상이함을 지적하였다.
그가 말한 새 언약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과 관련이 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레미야 31: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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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veil)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고린도후서 3:14-17)


이 구절은 바울이 로마인에게 한 말과 유사하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로마서 11:25)


바울이 말한 ‘수건’이란 모세의 얼굴을 가린 수건을 말한다(출애굽기 34:29-35).
모세는 하나님의 계명을 유대인에게 전한 후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바울은 그 수건이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계명을 주셨는데 새 계명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되었으며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성령은 사람을 살린다고 했다(고린도후서 3:6).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교인들을 칭찬하면서(고린도후서 1:14, 21, 7:4, 14, 5:12, 8:24, 9:2)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역사하심을 강조하였다(고린도후서 10:1, 13, 15-17, 11: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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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바울은 1차, 2차 전도여행 때 갈라디아를 방문했다.
갈라디아서를 쓴 연대에 관해서는 신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많은 신학자들은 바울이 2차여행 때 트로아(Troas)로 가는 길에 갈라디아를 방문했으며 편지는 그 후에 쓴 것으로 짐작한다.
그렇다면 2차 여행을 마친 56년 이후에 쓴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갈라디아(Galatia)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소아시아 북쪽 갈라디아인들의 동네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소아시아 남쪽으로 기원전 25년에 로마 제국에 속한 영토를 말한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소아시아 남쪽 도시들이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갈라디아 지역 교회의 문제는 일부 교사들이 유대교를 모델로 해서 그리스도교를 가르치면서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한 데서 발생했다.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바울이 수차례에 걸쳐서 강조한 가르침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1:6-7, 4:17, 5:10)


바울은 서신을 통해 할례를 강요하는 가르침은 잘못임을 지적하면서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고 했다(갈라디아서 5:2).
그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이란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며 율법에 매이는 것은 오히려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갈라디아서 5:3-12, 6:13).
그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저주했다.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8-9)


바울이 저주한 자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거짓 형제들과(갈라디아서 2:4) 야고보가 안디옥으로부터 보낸 사람들이었다(갈라디아서 2:12).
그들은 교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하였다.
할례는 유대인의 공동체에 속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치루어야 할 값인데 바울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값을 치루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다.
할례 받는 것은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지는” 것이며(갈라디아서 5:3) 유대인이 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는 교인들에게 반문하였다.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갈라디아서 3:2)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갈라디아서 4:21)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은 할례뿐만 아니라 유대인 명절까지도 지켰으며 기적행위도 믿었다(갈라디아서 4:10, 3:5).
바울이 서신에 몹시 분노를 나타낸 것은 자신이 배설물로 여긴 것들을 교인들이 받아들이고 지켰기 때문이다.
그는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바나바까지도 진리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다고 나무라면서 자신의 가르침이 타당함을 주장했다(갈라디아서 2:11-13).
바울은 베드로를 책망했다.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갈라디아서 2:14)


바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믿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라도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둘 수 있다고 했다(갈라디아서 3:6-9, 창세기 15:6).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인 아브라함의 의로움은 “440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며(갈라디아서 3:17) 율법을 하나님의 언약에 추가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갈라디아서 3:19)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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