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문명: 수메르

 

 

 

 

 

고대 아시아가 비밀의 베일을 벗은 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면면히 이어져온 고대의 기록을 신주단지처럼 간직해온 유일무이한 제국인 중국을 제외하면 말이다. 아시아 대륙의 다른 나라들은 고고학자들이 오래된 문명의 자취를 발견해줄 때까지 그저 넋 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고고학자들의 손길은 태곳적에 아시아를 지배했던 이들이 남긴 흔적에 쉽게 닿지 않았다. 현대에 와서야 아시아의 고대유적들이 비로소 하나둘 세상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한 세기 반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친 끈질긴 발굴 끝에 드디어 인도뿐 아니라 서아시아의 잃어버린 문명이 빛을 보게 되었다. 특히 북부 이라크 모술 근방의 고대 니네베 유적지의 한 고분에서 아시리아 왕가의 서고가 발굴된 건 기념할 만한 수확이었다. 최초의 문명, 그 놀라운 비밀을 꼭꼭 숨기고 있던 보물창고의 문이 열린 것이다. 인류는 이 서고에서 발견된 문서들 덕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의 발상지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은 수메르인의 손에 의해 이곳에서 태동했다. 기원전 612년에 멸망한 니네베보다 무려 2000년 전에 세워진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도시에서 말이다. 참고로 니네베를 멸망시킨 건 신바빌로니아인(칼데아인)과 이란 종족의 일파인 메디아인 연합군이었다. 아시리아 최후의 도시 몰락으로 서아시아의 고대 역사는 막을 내렸다. 그 뒤를 이은 건 소아시아 전체를 차지한 강대한 대제국 페르시아였다.
왕궁 서고에서 발견된 문서의 해독에 세인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문서는 대부분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한 고 왕조 시대의 수메르인에 관한 것이었다.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건 1872년에 발굴된 점토판이다. 이 점토판에는 수메르에서 가장 오래된 서사시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기나긴 세월 진흙과 먼지 속에 파묻혀 있던 고대의 기록에서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바로 바빌로니아 대홍수에 관한 것이었다. 이 서사시에는 수메르판 노아라 할 수 있는 영웅 아트라 하시스가 등장한다. 그는 대홍수에 휩쓸린 세상을 구한다. 성서의 내용과는 달리 수메르의 대홍수는 인간의 죄업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엄청나게 불어난 수의 인간이 내는 소음을 더 이상 견딜 수없었던 수메르의 신들은 온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기로 결심한다. 특히 도통 잠을 이룰 수 없었던 하늘의 신 엔릴은 세상에 넘쳐나는 사람들의 수를 줄이기 위해 전염병・기아・홍수를 인간세상에 보낸다. 다행히 인간이 몰살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물의 신 엔키가 아트라 하시스에게 인류 최후의 재난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우여곡절 끝에 아트라하시스가 인류의 멸망을 막아낸다.
1920년대에 인더스 계곡에서도 고대유적 발굴이 진행되었다. 인더스 강 하류의 신드 지역에서는 모헨조다로 도시유적이, 펀자브 서부에서는 하라파 도시유적이 발굴되었다. 세계 고대문명 역사의 판도를 바꾸는 획기적인 발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발굴은 메소포타미아 유적의 발굴 당시에 비하면 그다지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인더스 문명의 문자를 끝내 해독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더스 계곡에서 발견된 유적들은 이곳에 놀라운 고대도시를 건설한 수메르 문명과 바빌론 문명의 존재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오랫동안 인더스 계곡의 토착민으로 살면서 남다른 생활양식으로 최초의 문명사회를 일군 사람들의 존재도 함께 말이다. 저 먼 동방의 땅 중국에 문명국가가 자리 잡은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중국 대륙에서는 기원전 1650년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최초의 왕조인 상商나라가 중국 북부 평원에 둥지를 틀었다. 인더스 문명의 영고성쇠가 끝나고도 한 세기가 더 흐른 뒤에 말이다.

인더스 계곡의 고대도시에서 발견된 유물들에 기록된 문자를 해독할 수는 없었지만, 학자들은 인더스 문명이 아시아 대륙의 종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인더스 문명은 아리아인의 철기문명에 의해 멸망했다. 하지만 이 고대문명은 은밀한 방식으로 침략자 아리아인에게 복수했다. 아리아인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들이 침략한 인더스 문명이 품고 있던 사상에 홀린 듯이 매료되었던 것이다. 아리아인은 인더스 문명에서 널리 시행된 세정의식洗淨儀式을 그대로 흡수했을 뿐만 아니라 신성한 요가에도 푹 빠져버렸다. 아리아인은 이 금욕운동이 신성한 계시를 받는 현자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해준다고 믿기 시작했다. 인더스 계곡에서는 뿔 달린 신이 요가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양이 새겨진 인장들도 발견되었다. 요가를 하는 뿔 달린 신의 정체는 현재 힌두교의 최고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시바이다. 인더스 계곡에서 태어난 시바가 호전적인 아리아인의 인드라 신을 무찌르고 힌두교 최고신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인더스 계곡을 공격한 아리아인에게 승리를 안겨준 ‘파괴의 신’ 인드라가 인더스 계곡 출신 요가족에게 밀려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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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P의 신오스만주의는 터키의 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식 국제주의의 혼합

 

 

 

 

미국 외교관들은 AKP를 이슬람교의 보수주의가 아닌 이슬람주의 당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2010년 말, 인터넷 조직 위키리크스가 상당수의 미국 국무부 케이블 방송을 집중보도하자, 독일의 『슈피겔』지는 이를 특종으로 다루었다. 터키의 EU가입 여부가 유럽의 주요 화두가 된 후에는 그 쟁점이 AKP를 둘러싼, 외교관들의 견해를 다룬 기사에 포함되었다. 케이블 방송은 터키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성명과 언론인의 보도가 모순된다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부시 및 오바마 행정부는 AKP가 민주정치에 의욕이 있다며 AKP가 집권한 터키가 EU에 가입할 수 있도록 지지하겠다고 주장해왔으나, 앙카라 주재 미국 외교관들은 이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슈피겔』지가 보도한 문건에 따르면, “AKP 정치인들이 EU 가입을 환영하는 까닭은… 터키가 유럽에 이슬람교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믿기 때문” 이라고 한다. AKP 당원의 말을 빌리자면 “이슬람교가 장악한 스페인이 회복되기를 바라며, 1683년 빈에서의 패배를 되갚아줄 생각” 이라는 것이다.

문건은 이른바 “다부토글루 접근법Davutoglu approach” 을 일컫는데, 이는 에르도안 전 총리의 외교정책 시각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이슬람주의자 아흐메드 다부토글루 외무장관의 이름을 따서 지어낸 것이다. 문건에는 “오스만이 장악한 발칸반도를 되찾아야한다” 는 다부토글루의 발언도 들어 있었다. 이를 두고 『슈피겔』지의 기자는 “다부토글루의 새로운 오스만 접근법은 미국에는 걱정거리가 된다” 고 했는데, “에르도안에 대한 다부토글루의 이슬람주의 영향력이 분명히 드러난” 앙카라의 소식통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슈피겔』지에 따르면, “이 문건에는 미국 정부가 터키를 두고 발표했던 성명뿐 아니라… 에르도안 총리의 것과도 완전히 대립된 분석 결과가 들어 있다” 고 한다. 앙카라주재 미국 대사관은 에르도안이 “이슬람주의 신문사들” 을 비롯하여, “자부심이 강하고 완강하며 에르도안에게 충성하는 이슬람주의 보좌관에게서 정보를 입수한다”고 밝혔다. 한편, AKP 대표는 “민주정치는 기차와 같다. 탈 땐 타더라도 종착역에서는 내려야 한다” 고 했다.24 독자라면 모로코를 제외한 모든 아랍국가— 중동과 북아프리카— 가 수세기간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를 받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신오스만주의는 이 전통을 부활시킬 태세다. 이스탄불 특파원 미샤엘 마르텐스는 2011년 8월 26일자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에 “전선의 무슬림” 이라는 제목으로—신오스만에 중점을 두고— 터키를 중동의 새로운 강대국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AKP의 계획을 보도했다. AKP는 터키 지도부 출마를 지지하기 위해, 아랍의 봄 운동으로 생긴 권력의 공백기를 이용하고 있다. 이 계획은 정치적이기도 하지만 군사력이 동원되기도 했다. 이슬람주의A KP 정부는 아랍 중동— 특히 리비아— 및 보스니아를 제멋대로 비교했다. 예컨대, “무슬림부대” 가 1995년 보스니아에 파병된 평화유지군을 진작 대체했더라면 스레브레니차의 대학살٤은 피할 수 있었을 거라고 한다. 마르텐스는 “터키는 자칭 지역 강대국이며… 이 같은 맥락에서 무슬림 평화부대의 인습적인 수단이 강화될 뿐이다. … 혹자는 이 부대가U N을 보완한다기보다는 UN 평화유지군에 종속된다고 봐야 옳다고 주장한다” 고 보도했다.25 신오스만주의는 야당에서 집권당으로의 과도기를 보내는 동안, 부상한 이슬람주의 조직을 지원하기 위해 정치적 이데올로기에서 군 전략으로 발전한 것이다.
2011년 1월, 『뉴욕 타임스/인터네셔널 헤럴드 트리뷴』지 국제판은 “다부토글루 접근법” 을 1면에서 상세히 다루었다. 『뉴욕 타임스』지 기자에 따르면, “다부토글루는 터키의 야심찬 대외정책을 조성했고, 에르도안과는 부활한 터키라는 원대한 비전에 공감하며 과거의 오스만 제국의 입지를 채우는 데까지 뜻을 넓히고 있다” 고 한다. 이는 평범한 국가의 비전이라기보다는 제국주의적 야심이라야 옳을 것이다. AKP의 신오스만주의는 터키의 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식 국제주의가 혼합된 것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차차 알겠지만, AKP와 무슬림 형제단의 인연은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 한다.
그렇다면 오바마 대통령이 문명의 교량을 위해 첫 연설 장소로 AKP가 집권한 터키를 선택한 까닭이 궁금해질 것이다. 그는 외교관들의 브리핑을 들었을까? 제도적 이슬람주의가 서방세계의 동반자로서 어울릴지도 감안해봐야 할 것이다. 터키는 나토 회원국으로 EU에도 가입하기 위해 미국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대외정책을 두고는 서방세계와 점점 동떨어져만 가고 있다. 혹자는 EU가 터키의 계략 때문에 가입시키기를 꺼린다며 이를 비난하나, 위키리크스 케이블 방송은 AKP의 태도를 실망한 동맹지망국의 정책보다는 “다부토글루식 접근법” 을 구사한다는 방증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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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에 있어 급진주의자들의 주장

 

 

 

 

 

급진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한 몇 가지 반응을 더 살펴보자. 윤리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상황적 도덕에 관한 급진주의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론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급진주의 이론가들의 도덕적 주장은 연못가에 서 있던 어른의 사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므로 급진주의적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사람 역시 우선 이 사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급진주의 이론가들의 주장에 대응하는 전략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먼저, 연못가의 어른이 도움을 제공하지 않은 것을 정말 나쁘다고 봐야 하느냐란 의문이다. 둘째로는 설령 그 어른이 정말 나빴다 하더라도 그 어른이 놓인 상황이 지금 우리가 놓인 상황과 같다고 할 수 있느냐란 의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급진주의적 견해에 대한 반론을 다음과 같이 고찰해볼 수 있다.
첫 번째 반론: 죽어가는 사람의 바로 옆에 서서 구경만 하는 것과, 보이지 않는 지구의 반대편에서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는 것은 많이 다르다. 연못가의 어른은 어린이의 목숨에 냉담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훨씬 간접적으로 들려온다. 신형 오디오나 유명 디자이너의 의상을 구입하는 데 돈을 쓰면서 옥스팜11에는 돈을 기부하지 않는다 해도, 연못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어린이를 못 본 체하고 지나치는 것과 똑같은 냉혈이라고 할 수는 없다.
두 번째 반론: 급진주의 이론가들은 사치품을 구입하는 데 돈을 쓰면서 옥스팜에 기부하지 않는 것이 굶주리는 사람들의 목숨보다 자신의 사치품을 더 중히 여기는 일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 한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 돈을 내가 벌었다는 사실이다. 그 돈은 내 것이므로 내 맘대로 써도 된다. 물론 돈을 기부하면 나는 더 착한 사람이 될 것이고, 또 자선을 하는 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번 돈을 어떻게 쓰든지 그건 온전히 나의 자유다.
세 번째 반론: 돈을 기부하지 않는 것이 사람을 죽이는 것과 똑같이 나쁜 건 아니다. 살인은 무고한 목숨을 일부러 빼앗는 짓이다. 거기에는 죽이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급진주의 이론가들은 죽이는 행위와 죽게 내버려두는 행위를 혼동한다. 돈을 기부하지 않는 것은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두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지만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 반드시 사람을 직접 죽이는 것만큼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장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반론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살펴보려 한다. 그에 앞서, 첫 번째 반론에서 시작된 논쟁이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간단히 살펴보자. 먼저 급진주의자들은 첫 번째 반론에 타당성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견해를 변호하려 할 것이다. 멀리 있는 생명이라고 가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더 절박하게 느끼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심리적 성향을 상황의 도덕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생명은 비할 데 없이 귀중한 것이다. 따라서 그에 깃든 가치를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면, 마땅히 인종, 색깔, 신앙 따위를 가리지 않고, 또한 고난에 빠진 사람들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가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에게 똑같은 의무를 지워야 한다.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나 곤경에 처한 사람보다 캐나다나 프랑스에서 태어나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더 큰 도움을 주어야 할 까닭이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첫 번째 반론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먼저 인간의 생명이 지닌 가치는 평등한 것이기에, 어디서 살든지 모든 인간에 대하여 우리가 똑같은 기본 의무를 져야 한다는 급진주의자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은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을 똑같이 도와줄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지상의 모든 인간에게 어느 정도의 의무를 지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우리에게는 친구, 가족, 학생, 선생님, 고용주, 피고용자,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수많은 시민들이 있지 않은가? 본래 나와 특별한 인연도 없이 멀리서 굶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보다는 곁에서 살아가는 친구와 가족, 동료 학생들과 선생님 같은 사람들을 먼저 도울 의무가 있고 나아가 그럴 권리가 있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어디서 살든 모든 인간을 똑같이 대해야 할 기본 의무를 진다는 급진주의자들의 주장이 옳기는 하지만, 그런 식의 의무만 지는 것은 아니다. 급진주의자들은 우리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굶주린 사람들의 이익보다는 자기 이익을 앞세운다는 식으로 나쁜 그림을 그려낸다. 하지만 실상은 그 그림보다 훨씬 복잡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비단 심리적 성향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상황의 도덕을 제대로 이해한 데서 나오는 태도다. 가족, 친구, 선생님과 학생처럼 가까운 이들과 맺어진 특별한 관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이들을 위해 우리의 시간과 자원을 쓰는 일이다. 우리에게 특별한 관계가 전혀 없다면, 우리의 삶은 의미를 잃고 만다. 이러한 터에,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많은 자원을 퍼붓는 것이 정말 필요한 일일까? 아무리 양보하더라도 극심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특정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의 균형을 찾아야 할 터인데, 급진주의자들은 이를 옳게 헤아리지 못한다.
이렇게 시작된 논쟁은 더 발전할 여지가 있다. 예컨대, 급진주의자들은 곁에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우정을 나누고 공동체를 가꾸어나갈 특별한 의무가 우리에게 지워진 건 사실이지만, 이런 생각은 단순히 우리 문화와 사회에 폭넓게 깔린 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다른 문화와 다른 시대에 사는 다른 사회의 사람들은 친구와 우정에 대하여 우리와는 전혀 다른 개념을 지녔을 터이다. 그러므로 가족이나 우정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보편적인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친구나 가족을 향한 충심의 관념은 부자를 늘 부자로 살면서 불운한 사람들을 그냥 무시해 버리는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오므로 특히 그러하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우선시하는 도덕 관념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기에 연연하면서 궁핍한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는 태도를 정당화한다. 이것이야말로 탐욕적인 우리 사회, 곧 전형적인 자본주의 사회(‘각자가 자신만을 위하고’, ‘제 살길만 찾으면서 남을 거들떠보지 않는’ 사회)가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급진주의자들은 주장할 것이다. 정작 문제는 빈곤한 사람들을 먼저 돌봐야 한다는 급진주의 관점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은 사고방식에 있는 게 아닐까? 이 논의는 일단 여기서 접기로 하고, 급진주의 견해에 대한 두 번째, 세 번째 반론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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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의 제구양공문祭歐陽公文

 

 

 

구양수歐陽修는 소동파가 약관弱冠 시절일 때 관직에 추천하고 보살펴 줌으로써 환로宦路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그에게는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구양수 이후 등장한 왕안석王安石은 소위 신법新法을 만들어 국민 생활의 많은 모순을 타파하려 했으나 그 자체가 오히려 백성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한 결과를 초래한 측면도 있었고, 이러한 사회 개혁을 틈타 시세에 편승하려는 아부파의 발호는 어느 세상에서나 있게 마련이었다. 구양수가 죽었을 때 소동파는 항주에서 임무를 맡고 있어서 직접 문상을 가지 못하고, 구양공의 영전에 <제구양공문祭歐陽公文>이라는 글을 지어 보내 조문에 대신하였는데 그 조문에 ‘드렁허리’ 라는 글이 등장한다. 드렁허리는 드렁허리과에 속하는 민물고기로 한자어로 선鱓(혹은 鱔)이라 한다.

 

 

嗚呼哀哉오호애재; 아! 슬프다.

公之生於世공지생어세; 이 세상에 태어난 지

六十有六年육십유육년; 육십육 년이 되었습니다.

民有父母민유부모; 백성들에게는 부모처럼 사랑해주는 분이 있었고

國有蓍龜국유시구; 나라에는 시구蓍龜(점칠 때 쓰는 가새풀과 거북)가 있었으며

斯文有傳사문유전; 사문(도학)에는 전함이 있었고

學者有師학자유사; 배우는 자들에게는 스승이 있었으며

君子有所恃而不恐군자유소시이불공; 군자들은 믿는 바가 있어 두려워하지 않고

小人有所畏而不爲소인유소외이불위; 소인들은 두려워하는 바가 있어 나쁜 짓을 하지 못하였으니

譬如大川喬嶽비여대천교악; 비유하면 큰 내와 큰 산악이

雖不見其運動수불현기운동; 비록 그 움직임을 볼 수 없으나

而功利之及於物者이공리지급어물자; 공과 이익을 물건에 미치는 것을

蓋不可數計而周知개불가수계이주지; 숫자로 계산하여 두루 알 수 없는 것과 같았습니다.

今公之沒也금공지몰야; 이제 공이 별세함에

赤子無所仰庇적자무소앙비; 적자(백성)들은 우러러 비호 받을 곳이 없고

朝廷無所稽疑조정무소계의; 조정은 의심나는 것을 상고할 이 없으며

斯文化爲異端사문화위이단; 사문(도학)이 변하여 이단이 되고

學者至於用夷학자지어용이; 배우는 자들이 오랑캐 법을 씀에 이르렀으며

君子以爲無與爲善군자이위무여위선; 군자들은 더불어 선을 할 사람이 없고

而小人沛然自以爲得時이소인패연자이위득시; 소인들은 패연히 스스로 때를 만났다고 여기니

譬如深山大澤비여심산대택; 비유하면 깊은 산과 큰 못에

龍亡而虎逝용망이호서; 용이 없어지고 범이 떠나가면

則變怪百出즉변괴백출; 변괴가 갖가지로 나와서

舞鰌鱔而號狐狸무추선이호호리; 미꾸라지와 드렁허리가 춤을 추고 여우와 살쾡이가 울부짖는 것과 같습니다.

公之未用也공지미용야; 공이 등용되기 전에는

天下以爲病천하이위병; 천하가 공이 등용되지 않음을 나쁘게 여겼고

而其旣用也이기기용야; 이미 등용되어서는

則又以爲遲즉우이위지; 또 늦다고 여겼으며

及其釋位而去也급기석위이거야; 지위를 내놓고 떠남에 미쳐서는

莫不冀其復用막불기기복용; 다시 등용되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었고

至於請老而歸也지어청노이귀야; 치사를 청하고 돌아감에 이르러는

莫不悵然失望막불창연실망; 창연이 실망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而猶庶幾於萬一者이유서기어만일자; 그래도 만에 하나 바랐던 것은

幸公之未衰행공지미쇠; 다행히 공이 쇠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었는데

孰謂公無復有意於斯世也숙위공무복유의어사세야; 누가 공이 다시는 이 세상에 뜻이 없어

奄一去而莫予追엄일거이막여추; 갑자기 한번 떠나가 우리들이 따라갈 수 없게 될 줄을 생각하였겠습니까?

豈厭世之溷濁기염세지혼탁; 아마도 세상의 혼탁함을 싫어하여

潔身而逝乎결신이서호; 몸을 깨끗이 하려고 떠나가셨나 봅니다.

將民之無祿장민지무록; 또는 백성들이 복이 없어서

而天莫之遺이천막지유; 하늘이 남겨놓지 않은 것입니까?

昔我先君석아선군; 옛날 저의 선친께서

懷寶遯世회보둔세; 보배를 품고 세상에 은둔하고 계실 때에

非公則莫能致비공즉막능치; 공이 아니었으면 데려가지 못했을 것이요

而不肖無狀이불초무상; 그 불초 무상한 저도

夤緣出入인연출입; 인연하여

受敎門下者수교문하자; 출입하여 공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은 지가

十有六年於斯십유육년어사; 이에 십육 년이 되었습니다.

聞公之喪문공지상; 그러하니 공의 상을 들었으면

義當匍匐往弔의당포복왕조; 의리상 마땅히 달려가서 조문하여야 할 것이 온대

而懷祿不去이회록불거; 록祿을 생각하고 떠나가지 못하오니

愧古人以恧怩괴고인이뉵니; 옛날 분들에게 부끄럽습니다.

緘辭千里함사천리; 조사를 천리 먼 길에 봉함하여

以寓一哀而已이우일애이이; 한 슬픔을 부칠 뿐이오니

蓋上以爲天下慟개상이위천하통; 위로는 천하를 위하여 애통하고

而下以哭吾私이하이곡오사; 아래로는 저의 사사로운 정 때문에 통곡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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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머리카락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얼굴 행법

 

1. 양 손바닥을 비벼서 따뜻하게 한다. 오른손바닥으로 이마에서 오른쪽 볼에서 턱까지 18회 문지른다. 왼손바닥으로 이마에서 왼쪽 볼에서 턱까지 18회 문지른다. 오른손바닥으로 오른쪽 눈에서 오른쪽 볼 그리고 턱까지 18회 문지른다. 왼손바닥으로 왼쪽 눈에서 왼쪽 볼부터 턱까지 18회 문지른다.

얼굴은 전신건강의 거울이다. 이 행법은 얼굴 피부를 윤기 있게 하고, 밝고 싱싱한 표정으로 바굴 수 있게 해준다. 얼굴의 군살도 빠지고 광대뼈 모양도 변하여 우아해진다. 여성의 경우 화장을 지운 후에 한다.

 

 

머리카락 행법

 

1. 두 다리를 쭉 펴고 앉아서 양쪽 손가락으로 두피를 누르고, 머릿가죽을 움직이는 것처럼 하면서 머리꼭대기를 향하여 문질러 올라간다. 옆머리에서 시작하여 뒷머리로 옮겨가는 것이 좋다. 손바닥으로 머리를 18회 가볍게 두들긴다. 하루 5회 이상 실시한다.

머리털이 노화가 오면 센머리, 성긴 머리, 대머리가 되는데, 이런 증상들은 직접적으로 머리털이 나 있는 두피 부분의 기혈 흐름이 쇠퇴한 것이 원인이다. 이 행법은 뇌의 기혈 흐름을 활발하게 해주어 두피뿐만 아니라 노의 기혈 흐름을 활발하게 해주므로 지친 머리를 시원하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 머리털의 노화현상은 두피의 기혈 쇠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장이 쇠약해진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그럴 때에는 이 행법의 효과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머리털이 가늘어지고 오그라드는 것은 심장이 약해진 때문이고, 머리털이 성기어지는 것은 신장이 약한 경우가 많다.

백발, 탈모 등에 효과를 나타내는 이 행법은 대머리가 시작된 사람도 두 달쯤 후에는 머리털이 불어나 눈에 띌 정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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