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의 응답 │ 9장

<욥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2 내가 진실로 그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3 사람이 하나님과 쟁변하려 할 찌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

4 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스스로 강퍅히 하여 그를 거역하고 형통한 자가 누구이랴

5 그가 진노하심으로 산을 무너뜨리시며 옮기실 찌라도 산이 깨닫지 못하며

6 그가 땅을 움직여 그 자리에서 미신즉 그 기둥이 흔들리며

7 그가 해를 명하여 뜨지 못하게 하시며 별들을 봉하시며

8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9 북두성과 삼성과 묘성과 남방의 밀실을 만드셨으며

10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

11 그가 내 앞으로 지나가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나아가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12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누가 물을 수 있으랴

13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시나니
라합을 돕는 자들이 그 아래 굴복하겠거든

14 하물며 내가 감히 대답하겠으며 무슨 말을 택하여 더불어 변론하랴

15 가령 내가 의로울 찌라도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하였을 뿐이며

16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 찌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

17 그가 폭풍으로 나를 꺾으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많게 하시며

18 나로 숨을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으로 내게 채우시는구나

19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호출하겠느냐

20 가령 내가 의로울 찌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순전할 찌라도 나의 패괴함을 증거하리라

21 나는 순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22 일이 다 일반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순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23 홀연히 재앙이 내려 도륙될 때에 무죄한 자의 고난을 그가 비웃으시리라

24 세상이 악인의 손에 붙이웠고 재판관의 얼굴도 가리워졌나니
그렇게 되게 한 이가 그가 아니시면 누구이뇨

25 나의 날이 체부보다 빠르니 달려가므로 복을 볼 수 없구나

26 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 같고 움킬 것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

27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원통함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 찌라도

28 오히려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무죄히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29 내가 정죄하심을 입을 찐대 어찌 헛되이 수고하리이까

30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이 할 찌라도

31 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 하리이다

32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함도 불가하고 대질하여 재판할 수도 없고

33 양척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34 주께서 그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

35 그리하시면 내가 두려움 없이 말하리라 나는 본래 그런 자가 아니니라


좲 해설 좳

욥은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도 무죄할 수 없음을 시인했다(2절).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시편 143:2)


욥은 누구도 하나님과 겨룰 수가 없음을 시인했다(4절).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
암혈과 험악한 바위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이사야 2:19,21)


욥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자신을 피고로 하는 재판정에 하나님께서 서시기를 원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판사도 되시고, 원고도 되시며, 증인도 되시고, 형을 집행하시는 분도 되실 것이므로 자신이 겪는 불의한 고난을 그분께서 재판에 부치실 리가 만무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래서 재판에 응하라고 하나님께 강요할 수 없음을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을 재판에 부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인 줄 알면서도 그가 이런 꿈을 버리지 못한 이유는 만일 하나님께서 공정하게 재판을 집행하기만 하신다면 자신이 승소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꿈이 그를 우울하게 만드는 이유는 재판정에서 무죄함을 주장한다손 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그분 자신이 승소할 수 있도록 재판을 이끌어 가실 것이 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귀결될 승소를 뒤집어서 그분의 승소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니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는 욥으로서는 푸념할 수밖에 없었다.


욥은 친구들을 신임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았으며 또한 자신의 신학에 결함이 있음을 깨닫고 새로운 신학을 발견하려고 했다.
하나님께 대한 불평은 잘못된 신학에서 비롯한다. 잘못된 신학이란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사람에게는 물질로 축복하시고 불의한 사람에게는 재앙을 주신다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신학 즉 인과응보 신학이 욥으로 하여금 불평하게 한 원인이었다.
욥은 인과응보의 불공평한 신을 버리고 참된 신을 찾으려고 했는데 그가 진보적 신학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본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광명을 찾은 듯이 보인다.


9장과 10장은 친구들의 충고에 대한 욥의 두 번째 응답인데 친구들에게보다는 하나님을 겨냥한 것이다.
9장 1절부터 24절까지는 친구들에 대한 응변이고, 25절부터 35절까지는 독백이며, 10장에서는 하나님을 2인칭으로 부르면서 애소한다.


‘라합’은(13절) 레비아단의 또다른 이름으로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의 괴물이다(3:8).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라합을 정복하셨다.
라합은 하나님의 원수 애굽과 바빌론을 상징한다.
욥은 하나님께서 라합을 정복하신 분인 줄 알기 때문에 그분의 위력을 알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땅을 흔드시며, 모든 별을 만드시고, 해와 별을 명령하시는 분으로서 가히 측량할 수 없는 위력을 가지신 분이라며 탄식하였다.


욥은 이런 위력을 가지신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얼마나 미천한 존재인가를 깨닫기 시작하였다.
저자의 놀라운 천문지리에 관한 지식이 드러난다.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나아가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11절)라고 했는데 이 같은 표현을 23장 8-9절에서도 발견한다.
위대한 시인 괴테는 이 구절을 애독하였고 자신의 시에 인용하였다.


보라! 그분이 내 앞을 지나가신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뵐 수 없고 그분은 뒤로 가신다.
그러나 나는 이를 깨달을 수 없네. (엑크만 저 『괴테와의 대화』에서)


노자도 이 같은 표현으로 도를 설명하였다.


눈으로도 볼 수 없고, 귀로 들으려 해도 들을 수 없고,
손으로 붙잡을 수도 없네.
맞으려 하여도 그의 머리를 볼 수 없고,
따르려고 하여도 그의 뒷모습을 볼 수가 없네. (도덕경 14장)
(視之不見 聽之不聞 搏之不得. 迎之不見其首 隨之不見其後)


욥은 하나님과의 재판에서 승소를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분통을 터뜨리고 목 놓아 우는 지경에까지 다다랐다.
이런 절망적인 생각으로 인생을 무가치하다고 판단한 그가 구태여 목숨을 지탱하려고 한 것은 자신이 순전하다는 자만심 때문이다.
신학자들 가운데 이런 욥을 지적하여 자만이 그가 범한 큰 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왜냐면 욥은 자신의 의로움을 과대평가하여 그것으로 자신 외의 것들을 판단하려고 한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의인과 악인을 사정없이 함께 묻어 버리시는 무자비한 폭군이라고 원망했다.


여기서 우리는 세 친구와 욥 사이에 신학의 차이가 있음을 본다.
세 친구가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축복하고 악인을 벌한다고 주장한 반면 욥은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 모두를 무차별하게 벌하신다고 주장했다.
세 친구가 보수적인 인과응보주의 신학을 가진 반면 욥은 혁신적인 신학을 가진 것인데 욥에 의하면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피조물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해와 비를 의인과 악인 모두에게 골고루 주신다는 신학과 일치한다.
욥은 보수주의 신학을 버리고 사고에서 자유로워졌다.
이 같은 사고를 노자와 셰익스피어에게서 발견한다.


보라! 불행한 것은 우리뿐이 아니다.
이 세상의 광대한 무대 위에서는 우리가 당하고 있는 장면보다 더욱 비참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As you like it에서)


천지는 사랑이 없어 만물을 추구(芻狗, 풀로 만든 개)로 만든다.
성인은 사랑 없어 백성으로써 허수아비를 만든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노자 도덕경 5장)


욥은 자신이 무죄하다고 믿었지만 죄를 고백하라고 추궁당하자 추궁의 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며 애를 태웠지만 짐을 벗어 버릴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무죄함을 주장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통이 가중되었다.
그는 중재자가 나타나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면 하고 꿈꾼다.


중재자는 욥과 하나님 사이에 독립된 자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중재자(mediator)가 직접 하나님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믿은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재자는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이거나 자신을 충분히 대변할 수 있는 신격을 지닌 분(personal god)으로 하늘나라 영들 또는 천사들과 관계있는 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 녹은 물(snow water)’이라는 말은(30-31절) 사막지대에서는 눈이 올 때만 물을 넉넉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눈 녹은 물을 비누 풀 또는 우슬초(hyssop)라고 해석하는 것은 시편의 말씀을 염두에 둔 것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편 51:7)


‘잿물’은(30절) 비누를 말하는데 우리 조상도 짚을 태운 재로 물을 내려서 비누로 사용하였다.
이 구절은 육체의 불결함을 씻을 뿐만 아니라 심령의 더러움도 정결케 해야 한다는 뜻이다.
비누 풀은 눈과 같은 원어에서 온 말이다.


32-33절은 욥이 중재자를 요청하는 중요한 구절인데 구약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말이다.
중재 사상이 저자에 의해서 제기되었음이 특기할 만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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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응답 계속 │ 10장

<욥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원통함을 발설하고
내 마음의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숨 쉬는 일이 이다지도 괴로워서 나의 슬픔을 하느님께 아뢰고
아픈 마음을 쏟아 놓지 않을 수 없구나)

2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니 나를 정죄하지 마옵시고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알게 하옵소서

3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취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4 주의 눈이 육신의 눈이니이까
주께서 사람의 보는 것처럼 보시리이까

5 주의 날이 어찌 인생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날과 같기로

6 나의 허물을 찾으시며 나의 죄를 사실하시나이까
(당신께서 하시는 일이란 이 몸의 허물이나 들추어내고 이 몸의 죄나 찾아내는 것입니까?)

7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

8 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거늘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당신께서는 나를 손수 빚어 만드시고는
이제 마음을 바꾸시어 나를 없애 버리시렵니까?)

9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10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 하셨나이까

11 가죽과 살로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뭉치시고

12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권고하심으로 내 영혼을 지키셨나이다

13 그러한데 주께서 이것들을 마음에 품으셨나이다
이 뜻이 주께 있은 줄을 내가 아나이다
(그러시면서도 속생각은 다른 데 있으셨군요.
그러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14 내가 범죄하면 주께서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시고
내 죄악을 사유치 아니하시나이다
(내가 죄를 짓는가 지켜보시다가
그 죄에서 풀어 놓아 주시지도 아니하십니다)

15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 찌라도
머리를 들지 못 하올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목도함이니이다
(악을 행하였다면 앙화를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잘못한 일이 없다고 하여도 머리를 쳐들 수 없는 일,
아, 진저리쳐지도록 당한 이 수모가 지긋지긋하도록 괴롭습니다)

16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내게 주의 기이한 능력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
(내가 몸을 일으키면, 당신께서는 어찌하여 사자처럼 달려드십니까?
어찌하여 계속 몰아치십니까?)

17 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갈마들여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갈마들어 치는 것 같으니이다
(공격에 공격을 퍼붓고 진노의 불길을 뿜으시며 계속 군대를 풀어 몰아치시니
어찌 된 일이십니까?)

18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찜이니이까
그렇지 아니 하였더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19 있어도 없었던 것 같이 되어서 태에서 바로 무덤으로 옮겼으리이다

20 내 날은 적지 아니 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저으기 평안하게 하옵시되

21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 하옵소서

22 이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


좲 해설 좳

욥은 하나님께서 새디스틱(sadistic)하신 분이거나 자신의 권위를 뽐내려고 한다고 생각했으며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보고 자기만족을 구하려고 하실 뿐 딴 고상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이 같은 태도는 전지전능한 분으로서 옳지 못하다면서 차라리 하나님께서 자신과 같은 사람이었더라면 자신을 동정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도공에 비유하면서 도공이 자신이 선택한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들고(창세기 2:7, 예레미야 18:6), 그 정교한 기술과 온전한 지식으로 제조한 사람을 다시 원상태인 흙으로 복구시킨다면서(창세기 3:9) 도대체 이 같은 행위가 목적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빈정거렸다.
그는 하나님께서 스파이처럼 죄를 발견하기만 하면 벌 줄 태세로 자신을 지켜보신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자신이 성난 사자에 쫓기는 한 마리 야수처럼 느껴져서 다음과 같이 절규하고 싶었을 것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 찐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민수기 11:15)


욥은 하나님의 관찰력이 사람의 수준밖에 안 되느냐고 항의했다(4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무엘상 16:7)


욥은 자신이 무죄하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의당 알고 계신다고 장담하였다(7절).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시편 139: 1-2)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몸을 흙으로 빚어 만드셨음을 상기시켰다(8절).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나로 깨닫게 하사 주의 계명을 배우게 하소서 (시편 119:73)


욥은 자신이 하나님의 손아귀에 있다고 믿고 누구도 자신을 그분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줄 자가 없음을 한탄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고대하였다.
선의 하나님, 의의 하나님만으로는 인생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은 그는 사랑의 하나님을 찾았다.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9절)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모태에서 태동하는 태아의 생리적 발육까지도 섭리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생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무한한 노력의 결과이므로 한 생명은 우주에 필적할 만하다.
한 마리 병든 양은 건강한 아흔 아홉 마리 양과 같다는 논리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시편 139:14)


욥은 하나님께서 공들여서 사람을 만들어 놓으시고는 어찌하여 괴롭히냐고 불평하였는데 그의 불평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고 있음을 본다.
10장 전체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그의 소망이 점철되어 있다.
그의 마음에 사랑의 신이 새벽 여명처럼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사랑이라는 새 관념이 고뇌에 찬 마음에 한 줄기 빛으로 와 닿았다.
이 서광은 한 번 반짝 비쳤다가는 꺼지고 다시 비치곤 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느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네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편 42:5, 11, 43: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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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발의 1차 충고 │ 11장

<욥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가로되

2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입이 부푼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3 네가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
(자네의 지껄이는 소리를 듣고 누가 입을 열지 않으며
그 빈정거리는 소리를 듣고 누가 핀잔을 주지 않겠는가?)

4 네 말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의 목전에 깨끗하다 하는구나

5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6 지혜의 오묘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너는 알라 하나님의 벌하심이 네 죄보다 경하니라
(행여나 신비한 지혜를 열어 보여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의 지혜에는 다른 면들이 감추어져 있다네.
자네가 죄를 잊어버린 것도 바로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지)

7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8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9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10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개정하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
(그가 쫓아 와서 고랑을 채워 불러내시는데 그 누가 거역하겠는가?)

11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치 않으시는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12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

13 만일 네가 마음을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14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로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라

15 그리하면 네가 정녕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16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추억할 찌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

17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두움이 있다 할 찌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18 네가 소망이 있으므로 든든할 찌며
두루 살펴보고 안전히 쉬리니

19 네가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겠고 많은 사람이 네게 청을 드리리라

20 그러나 악한 자는 눈이 어두워서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리니
그의 소망은 기운이 끊침이리라


좲 해설 좳

소발은 욥이 자신의 생각이 옳다면서 무죄를 계속 내세우자 그가 오로지 의문의 일면에만 치우쳐 있다고 지적하였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은 사람의 지혜로는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욥의 죄를 이미 알고 계시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소발은 욥으로 하여금 회개할 것을 요구하며 회개하면 다시 현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의 유한한 지혜에 비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하늘보다 높으며, 지하의 지옥보다도 깊고, 그분이 창조하신 우주보다도 넓기 때문에 그분의 숨은 지혜를 사람은 헤아릴 능력조차 없다고 했다.
이런 데도 욥은 우둔해서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은 고난을 통해 욥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했다.


젊고 혈기가 있는 소발은 처음에는 과격한 어조로 말하더니 얼마쯤 지나자 부드러운 말로 욥을 위로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7절)라는 말로 욥의 어리석음을 꾸짖었다.


첫 번째 충고자로 나선 엘리바스는 욥에게 “하나님은 선이시다”라고 했고, 두 번째 충고자로 나선 빌닷은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라고 했으며, 마지막 충고자로 나선 젊은 소발은 “하나님의 능력은 측량할 수가 없다”고 했다.
세 친구의 말은 코끼리를 만져 본 적이 있는 맹인들의 말처럼 일방적으로 들렸다.
한 사람은 코끼리가 바람벽처럼 생겼다고 말한 것이며, 다른 한 사람은 절구통처럼 생겼다고 말한 것이고, 나머지 사람은 구렁이처럼 생겼다고 말한 꼴이다.
그들의 말은 그들의 지식 안에서는 옳겠지만 욥을 납득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욥을 죄인 취급한 소발은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로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라. 그리하면 네가 정녕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14-15절)라는 말로 전통주의 인과응보 신학으로 욥을 설득하려고 했다.
이사야에서도 발견되는 이 같은 신학은 당시의 보편적 사고였다.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라 (이사야 3:11)


소발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매달리면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욥을 달랬다.
그렇게 되면 과거를 모두 잊을 수 있으며 마음이 낮보다 환하게 밝아진다고 했다(17절).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시편 37:5-6)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이사야 58:8)


엘리바스와 빌닷과 마찬가지로 소발도 욥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임을 역설했다.
두 친구와 마찬가지로 그도 욥이 하나님께 제기한 신학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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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응답과 기도 │ 13장
욥의 응답

<욥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통달하였느니라

2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한 내가 아니니라

3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4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데없는 의원이니라
(자네들은 고작 거짓말이나 꾸며 내는 사람들, 모두들 하나같이 돌팔이 의사)

5 너희가 잠잠하고 잠잠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

6 너희는 나의 변론을 들으며 내 입술의 변명을 들어 보라

7 너희가 하나님을 위하여 불의를 말하려느냐 그를 위하여 궤휼을 말하려느냐

8 너희가 하나님의 낯을 좇으려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려느냐
(자네들은 그에게 아첨이라도 하고 그를 변호라도 하려는 것인가?)

9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임 같이 그를 속이려느냐

10 만일 가만히 낯을 좇을 찐대 그가 정녕 너희를 책망하시리니
(그에게 아첨이나 하려는 엉큼한 생각을 품었다가는 호되게 꾸중이나 들을 것일세)

11 그 존귀가 너희를 두렵게 하지 않겠으며 그 위엄이 너희에게 임하지 않겠느냐

12 너희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요 너희의 방어하는 것은 토성이니라
(자네들의 좌우명은 티끌 위에 쓴 격언이요 자네들의 답변은 흙벽돌에 쓴 답변일세)

13 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임하든지 내가 당하리라

14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나 이를 악물고 목숨을 내걸고 맞서리라)

15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변백하리라
(어차피 그의 손에 죽을 몸, 아무 바랄 것도 없지만 나의 걸어 온 발자취를 그의 앞에 낱낱이 밝히리라)

16 사곡한 자는 그의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
(이렇게 그의 앞에 나설 수 있음이 곧 나의 구원일는지도 모르는 일)

17 너희는 들으라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설명을 너희 귀에 담을 찌니라

18 보라 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내가 스스로 의로운 줄 아노라

19 나의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


욥의 기도

20 오직 내게 이 두가지 일을 행하지 마옵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얼굴을 피하여 숨지 아니하오리니
(하느님, 두 가지 부탁만 들어 주소서.
그리하시면, 저도 당신 앞에서 숨지 않겠습니다)

21 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옵시며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마옵실 것이니이다
(당신의 주먹을 거두어 주소서,
당신의 진노를 거두시어 두려워 떨지 않게 하여 주소서)

22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나로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23 나의 불법과 죄가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24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우시고
나를 주의 대적으로 여기시나이까

25 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래시며 마른 검불을 따르시나이까

26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나로 나의 어렸을 때에 지은 죄를 받게 하시오며

27 내 발을 착고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한정하시나이다

28 나는 썩은 물건의 후패함 같으며 좀먹은 의복 같으니이다
(사람이 술부대가 삭아 떨어지듯 옷이 좀먹어 떨어지듯 떨어집니다)


좲 해설 좳

욥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에 관해 친구들과 대화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친구들은 그저 논리적으로만 하나님에 관해 말하려고 할 뿐 욥과 같이 진정으로 문제를 씨름하려는 태도가 아니므로 욥은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했으면 하고 바랐다.
그는 친구들의 일방적 논리들에 못마땅하고 화가 치밀어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1, 너희들이 거짓 증거로 하나님을 도우려고 한다만은 하나님께서 너희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것 같으냐?

2, 너희들은 하늘나라에 가서도 그따위 말을 할 셈이냐?

3, 거짓말들을 너희들이 하나님의 시험을 받을 때도 반복해서 말할 수 있겠느냐?


욥은 친구들의 충고가 가식적으로 여겨졌다.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것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변론하는 일이 자신들에게 이익이라도 되는 양 그럴싸하게 말한다고 나무랬다.
그러느니 차라리 입을 닥치라고 했다(5절).
입을 닥치는 것이 오히려 지혜로움을 잠언에서 본다.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 (잠언 17:28)


욥은 “사곡한 자(hypocrite)는 그의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16절)라고 했는데 ‘구원(salvation)’은 구출(deliverance)의 의미도 된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이사야 12:3)


욥은 자신의 무죄함을 믿었고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애타게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지만 하나님께서 계속 침묵을 지키시자 분노가 치밀어 하나님께서 자신을 피고로 여기지 않고 적으로 취급한다고 힐난하였다.
그는 “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19절)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사람이 나타나면 사라지겠다고 했다.
그가 애타게 중재자를 기다렸음을 본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 찌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찌어다 (이사야 50:8)


욥은 진노를 거두어 달라고 하나님께 애원하였다(21절).


주의 징책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시편 39:10)


욥은 어째서 자기에게서 얼굴을 돌리시느냐고 하나님께 불평하였다(24절).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시편 13:1)


욥은 재판도 받기 전에 이미 형을 집행 받았다면서 이제는 공정한 판결을 기대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고 불평하였다.
그는 자신을 썩은 물건의 후패함 같고 좀먹은 의복 같은 신세라고 한탄하였다.
친구들이 욥에게 충고하기는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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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기도 계속 │ 14장

<욥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2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 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

3 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을 들어 살피시나이까
나를 주의 앞으로 이끌어서 심문하시나이까

4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5 그 날을 정하셨고 그 달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 제한을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사람이 며칠이나 살며 몇 달이나 움직일지는 당신께서 결정하시는 일이 아닙니까? 넘어갈 수 없는 생의 마감 날을 그어 주신 것도 당신이십니다)

6 그에게서 눈을 돌이켜 그로 쉬게 하사
품군같이 그 날을 마치게 하옵소서
(그러니, 이제 그에게서 눈을 돌리시고
품꾼같이 보낸 하루나마 편히 좀 쉬게 내버려 두소서)

7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 찌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8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찌라도

9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발하여 새로 심은 것 같거니와

10 사람은 죽으면 소멸되나니 그 기운이 끊어진즉 그가 어디 있느뇨

11 물이 바다에서 줄어지고 하수가 잦아서 마름 같이

12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 하느니라

13, 주는 나를 음부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14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싸우는 모든 날 동안을 참고 놓이기를 기다리겠나이다

15 주께서는 나를 부르셨겠고 나는 대답하였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아껴 보셨겠나이다

16 그러하온데 이제 주께서 나의 걸음을 세시오니 나의 죄를 살피지 아니하시나이까

17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
(나의 죄를 자루에 넣어 봉하시고 나의 죄악을 모두 지워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18 무너지는 산은 정녕 흩어지고 바위는 그 자리에서 옮겨가고

19 물은 돌을 닳게 하고 넘치는 물은 땅의 티끌을 씻어 버리나이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사람의 소망을 끊으시나이다

20 주께서 사람을 영영히 이기셔서 떠나게 하시며
그의 얼굴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 보내시오니
(끝없이 억누르시는 당신의 힘, 벗어날 길이 없어 사람은 갑니다.
얼굴이 파랗게 질려 쫓겨 갑니다)

21 그 아들이 존귀하나 그가 알지 못하며 비천하나 그가 깨닫지 못 하나이다
(자손들이 영광을 누려도 알지 못하고 비천하게 되어도 상관하지 못합니다)
22 오직 자기의 살이 아프고 자기의 마음이 슬플 뿐이니이다
(다만 몸은 아픔으로 절었고 마음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좲 해설 좳

욥은 자신의 신세를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 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2절)이라며 탄식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사야 40:6-7)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시편 103:15)


욥은 “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을 들어 살피시나이까 나를 주의 앞으로 이끌어서 심문하시나이까”(3절)라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란 사람에게 벌을 주시기 위해 죄목을 찾으시기에 분주하여 마치 스파이 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불평하였다.
나무는 죽었더라도 재생이 가능하지만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면 다시 생명을 불어 넣어줄 물이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것만 보더라도 하나님의 사람의 창조는 공정치 못함을 증명한다고 욥은 지적하였다.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실 때 흙을 물로 빚으셨다고 했으므로 욥은 물이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사람이 나무보다도 희망이 없어서야 되겠느냐고 푸념하였다.
그는 식물도 재생할 수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 재생할 수 없어서야 되겠느냐고 재생이 마땅함을 하나님께 요구하였다.
그는 육체의 부활을 의심하였지만 영혼의 불멸은 믿었다.


당시 유대인은 부활에 관해 아주 무지한 상태였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뿐이라고 믿었다. 저자는 부활을 언급하였는데 그에 의해서 처음으로 부할 신학이 제기된 것이다.
욥에게 있어 부활이란 재생되어 자신의 온전함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소망을 의미한다.
부활은 그에게 있어 심한 고뇌와 번민 가운데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었다.
이런 사상은 훗날 무죄한 순교자들에게 소망이 되었으며 불의한 자들이 죽은 후에 반드시 받아야 할 죄의 심판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욥이 커다란 회의에 빠졌음을 알 수 있다.
회의는 신실한 신앙의 원천이다.
內村鑑三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커다란 회의 없이는 깊은 신앙에 들어갈 수 없다.
검은 연기 속에서 광명의 불길이 일어나듯 의심의 검은 연기 속에서 영의 불길이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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