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희생 2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아브라함은 볏집을 묶고 장작을 패서 제사 지낼 준비를 마쳤다.
아브라함은 잠든 모자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몇 차례 눈물을 닦았으며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동이 막 트려고 할 때 조용히 이삭을 깨웠다.
이삭의 귀에 대고 어머니가 깨지 않게 조용히 일어나라고 소근거린 후 종 두 사람더러 제사를 지내기 위해 떠날 차비를 해 두라고 분부하였다.
아침 일찍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나귀에 태우고 종들 등에는 제물을 태울 볏집과 장작더미 지워서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을 향해 떠났다.


이 광경을 사라가 보았을까?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려고 길을 떠나면서 이 사실을 사라와 합의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사라가 어떻게 이 일에 대처했는지 알 수 없다.
만일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사라가 남편과 함께 들었거나 남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면 사라는 분명 이삭대신 차라리 자기의 몸을 제물로 바치라고 떼를 썼을 것이다.
90세에 얻은 자식이고 더는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마당에 순순히 자식을 아비 편에 제물로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죽음도 모르고 즐거운 표정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는 이삭의 뒷모습을 사라가 보았다면 그녀는 아마 땅을 치며 통곡했거나 넋을 잃고 쓰러졌을 것이다.


길을 떠난 지 사흘 만에 아브라함 일행은 모리아 산이 멀리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전승에 의하면 모리아 지역의 산은 훗날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립한 예루살렘의 언덕이라고 한다.
이 사흘은 아브라함의 평생에 있어서 가장 괴롭고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는 또한 가슴을 에어내는 듯한 하나님의 시험을 통해서 신앙의 조상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구비하는 시간이었다.
고향을 떠난 이래 아브라함은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많은 재산을 모으며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자식의 축복도 받아 이스마엘과 이삭 두 아들을 얻었으며 부리는 종도 많았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두 주인으로 섬길 수 없는 것이다.


구약성경 저자는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향해 “네가 나보다 네 아들 이삭을 더 사랑하느냐? 나를 위해서 이삭을 포기할 수 있겠느냐?” 하고 시험하신 것이다.
인간의 눈에는 이 같은 하나님의 시험이 잔인하게 보인다.
잔인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서 창세기 편집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고 명료하게 적었다.
교훈을 주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모든 것을 기꺼이 바쳐야 한다는 점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서 지적한 것이다.
신앙은 이 같은 시련을 극복할 때 비로소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신앙을 고백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죽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한복음 3:16).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했으므로 자기의 외아들을 보내 십자가의 제물이 되게 하셨다.
이를 보면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시험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나님도 외아들을 인류를 위해 제물로 삼으셨던 것이다.


종교는 희생을 요구한다. 정의의 신은 자기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못하도록 하며 자기 생명을 대신해서 자기의 가장 귀중한 것을 바치라고 한다.
동양에서도 희생이란 산제사 즉 산 짐승을 바치는 것이다.
실제로 짐승을 잡아 천신께 희생 제물로 드리는 관습이 있었음을 옛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禮記編 月令 春秋 좌씨전 장공 십 년 참조).


현재 예루살렘 성전 안 중심에는 사각형 울을 쳐 놓은 큰 바위가 있다.
이 바위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고 했던 모리아 산의 제단이다.
일부 신학자들은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사흘 길을 걸어갔다고 했으니 예루살렘 북쪽 세겜에 있는 그리심산이 모리아 산이라고 주장한다.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말했다. (22:5)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아브라함은 번제물을 사를 볏집과 장작을 이삭의 등에 지우고 자신은 불씨와 칼을 숨겨 들었다.
아브라함과 함께 산을 올라가던 이삭이 말했다. (22:7-8)


“내 아버지여”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브라함과 이삭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에 이르렀다.
그는 그곳에 제단을 쌓고 볏집을 평평하게 한 후 그 위에 장작을 펼쳐 놓았다.
그리고 가엽게도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아들 이삭을 밧줄로 단단히 묶어 장작더미에 위에 올려놓았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울음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은 채 하나님께 애절하게 기도했다.
하나님! 다른 방법은 없단 말입니까?
이대로 집행하란 말입니까?
아브라함이 칼을 높이 쳐들어 막 이삭을 내리치려 할 때 하나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22:11-12)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그 소리를 들은 아브라함이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뿔이 덤불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숫양 한 마리가 보였다.
아브라함은 기쁜 마음으로 숫양을 잡아 이삭 대신 번제물로 하나님에게 바쳤다.
하나님이 친히 번제물을 마련해 주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곳을 여호아이레(YHVH-yireh)라고 명명했는데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다 The Lord Provides”는 뜻이다.


하나님의 천사가 또다시 큰 소리로 아브라함에게 말했다. (22:16-18)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아브라함은 종들이 있는 곳으로 와서 그들을 데리고 걸음을 재촉하여 브엘세바로 돌아갔다.
그는 처음으로 새 인생을 시작하는 감격을 맛보았으며 자기에게 일어난 기쁜 소식을 속히 사라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에게는 돌아가는 사흘길이 멀기만 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브라함은 사라와 소실 하갈 사이의 가정불화로 적자 이삭을 남겨 두고 서자 이스마엘을 어미 하갈과 함께 내쫓아야 했다.
아브라함은 하갈 모자를 내보내며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사라가 조강지처이긴 하지만 인간적으로 보면 하갈은 소실이기는 해도 이집트서부터 따라와서 자식을 낳아 주고 자신에게 평생을 바친 여인이다.
그리고 이삭을 갖기 전까지는 이스마엘을 적자로 여기며 키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분부한 것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비정하게 내쫓은 것에 대한 질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위로하고 축복하신 것을 보아도 이 사건은 그분의 뜻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갈과 이스마엘의 축출 그리고 이삭을 제물로 바친 사건은 아브라함의 생애에 가장 중대한 사건으로, 하나님이 주신 시련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태어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시련들을 극복한 후에야 아브라함은 인간으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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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죽음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사라는 127해를 살고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랏아르바(Kiryat-arba)에서 죽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시신 앞에서 슬퍼하고 애통해 하다가 일어나서 거민 헷 족속(Hittites)에게 말했다. (23:4-9)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그로 그 발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을 내게 주게 하되
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서 당신들 중에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헷 족속들은 아브라함을 가리켜 방백(a great lord 또는 a mighty prince)이라고 불렀다.
아브라함은 소할(Zohar)의 아들 에브론(Ephron)에게 은 400세겔을 주어 마므레 앞 막벨라(Machpelah)에 있는 밭을 구입하게 하고 그 속에 있는 굴과 그 사방에 둘린 수목을 소유했다.
은 한 세겔은 16그램이고 금 한 세겔은 16.4그램이었는데 당시에는 은이 금보다 귀했으므로 더 가치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6.4Kg의 은을 주고 밭 전체를 구입했다.
헷 족속의 부동산법에 의하면 땅 주인은 땅을 팔 때까지 세금을 내야 하므로 에브론이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밭 전체를 구입하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밭의 굴에서 장사지냈다. 사라는 며느리를 보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때 이삭의 나이가 37세였으며 3년 후에 결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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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아내 리브가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아브라함은 거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자신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 아브라함이 하루는 집안 살림을 맡아보는 늙은 종을 불러 말했다. (24:2-8)


“네 손을 내 환도뼈 밑에 넣으라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여자가 나를 좇아 이 땅으로 오고자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의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 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 지니라
만일 여자가 너를 좇아오고자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 지니라”


종은 이삭의 신부를 구해 오라는 아브라함의 분부를 받고 온갖 귀한 선물을 낙타 열 마리에 싣고 아브라함의 고향 메소포타미아로 향했다.
그는 나홀 성에 이르러 성문 밖 우물가에서 낙타를 쉬게 했다.
긴 여정에 지친 낙타들은 여기저기 무릎을 꿇은 채 머리만 똑바로 하늘을 향했다.
마침 저녁 때라서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우물로 왔다.
종은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원컨대 오늘 일이 모두 뜻대로 잘 되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십시오.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러 나오고 있으니 내가 우물 곁에 섰다가 한 소녀에게 물을 좀 마시게 해 달라고 청하겠습니다. 소녀가 흔쾌히 저에게 물을 주고 저뿐만 아니라 낙타에게도 물을 준다면 그 소녀가 바로 이삭의 배필이라 여기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고 종은 심신이 피로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물가에 모인 여자들을 열심히 관찰했다.
그때 그의 눈을 사로잡는 한 여자가 동갑내기 여자들과 어울려서 항아리를 들고 우물로 왔다.
그 여자는 리브가(Rebecca)로서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가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었다.
리브가는 지금까지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예쁘고 탐스럽게 생긴 처녀였다.
리브가가 우물에서 물을 떠 항아리에 채우자 종이 다가가 말했다. (24:17-19)


“청컨대 네 물 항아리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우라”

“주여 마시소서
당신의 약대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리브가는 얼른 물 항아리의 물을 구유에 붓고는 우물로 가서 낙타를 위해 다시 물을 길었다.
종은 리브가의 일거일동을 관찰하면서 과연 하나님이 뜻대로 이루어 주실 것인지 알아보려고 했다.
낙타들이 물을 다 마시자 종은 반 세겔 나가는 금코걸이와 십 세겔 나가는 금팔찌 한 쌍을 선물로 주면서 물었다. (24:23-25)


“네가 뉘 딸이냐 청컨대 내게 고하라 네 부친의 집에 우리 유숙할 곳이 있느냐”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
우리에게 짚과 보리가 족하며 유숙할 곳도 있나이다”


종은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께 경배하고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의 주인에게 당신의 인자함과 성실함을 끊이지 않게 베풀어 주시니 이렇게 나를 인도하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습니다”라고 기도했다.


리브가는 집으로 먼저 뛰어가서 이 사실을 식구들에게 알렸다.
리브가에게는 라반(Laban)이란 오라비가 있었는데 브두엘이 늙어 집안 모든 일을 라반이 관리하고 있었다.
라반은 리브가로부터 어떤 사람이 유숙할 곳을 청한다는 말을 듣자 별로 탐탁치않게 여겼다.
그는 리브가가 금코걸이를 하고 또 금팔찌를 장식한 것을 보고는 그것들이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다.
낯선 사람이 주었다는 리브가의 대답에 라반은 그를 맞기 위해 우물로 달려갔다.
나그네가 부자라는 것을 직감한 라반은 낙타와 함께 우물가에 있는 늙은이에게 다가가서 방과 낙타의 처소를 마련했으니 어서 집으로 들라고 정중하게 권했다.


손님을 집으로 모신 라반은 낙타 등에 실려 있는 짐과 안장을 풀어 내리고 낙타에게 겨와 여물을 주었으며 손님과 일행의 발을 씻을 물을 떠오고 음식도 준비했다.
그러나 종은 자기가 주인 아브라함의 심부름 온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고, 여기에 온 이유를 말하기 전에는 음식을 들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라반은 그렇다면 식사하기 전 자초지종을 말하라고 권유했다.
종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많이 받아 굉장한 부자가 되었으며 재산으로 양떼, 소떼, 금과 은, 남종과 여종, 낙타와 나귀들이 많다는 것, 또한 여주인 사라가 늙으막에 낳은 아들이 이삭이라는 것과 아브라함이 전 재산을 이삭에게 주었다는 것도 말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자기에게 맹세를 요구하며 당부한 이야기를 전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는 며느리감을 고르지 않고 반드시 고향에서 며느리감을 구하고자 하는데 자신이 섬겨 온 하나님이 천사를 동행시켜서 이 일을 이루어 주실 것임을 믿고 있으며 자기의 일가들한테 가기만 해도 그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자기를 인도해 주셔서 주인의 조카딸을 며느리감으로 찾을 수 있게 하셨다면서 결혼승낙 여부를 알려 달라고 했다.


라반과 브두엘은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이므로 자신들이 가부를 말할 수 없다면서 리브가가 그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아브라함 며느리가 되게 하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종은 땅에 엎드려 하나님에게 경배한 후 금은패물과 옷가지들을 리브가에게 건네주고 오라버니와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선물을 주었다.
종은 그제서야 음식을 들었고 일행도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며 그날 밤을 편히 쉬었다.


이튿날 날이 밝아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떠나겠다고 말하자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어머니가 극구 만류했다. (24:55-58)


“소녀로 며칠을 적어도 열흘을 우리와 함께 있게 하라 그 후에 갈 것이니라”
“나를 만류치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그들이 리브가에게 물었다.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가겠나이다”


그들은 리브가와 그녀의 유모를 아브라함의 종과 일행에 딸려 보내면서 리브가에게 복을 빌어주었다.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리브가는 몸종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아브라함의 종을 따라 나섰다. 종은 아브라함의 며느리감을 데리고 길을 떠나면서 임무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 대단히 흡족해 했다. 이때 이삭은 남쪽 브엘라해로이(Beer-lahai-roi)라는 샘이 있는 사막지방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곳은 네겝(Negev) 땅이었다. 저녁무렵 산보하러 들을 거닐던 이삭은 낙타떼가 오는 것을 보고 그것이 아버지가 보낸 종의 일행이라는 것을 알았다.
리브가는 고개를 들어 저만치 한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 낙타에서 내려 아브라함의 종에게 물었다. (24:65)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뇨”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는 종의 말을 듣고 너울을 꺼내 얼굴을 가렸다. 종은 낙타에서 내려 이삭에게 그 동안의 경위를 낱낱이 보고했다.
이삭은 첫눈에 리브가가 마음에 들었다. 리브가 역시 온순한 인상을 한 40세의 이삭이 오빠 라반과는 달리 인정이 많아 보여서 좋았다.
이삭은 리브가를 모친 사라의 장막에서 아내로 맞아들이고 리브가를 사랑하면서 어머니 잃은 슬픔을 달랬다.


창세기 편집자는 이렇듯 리브가에 관하여 매우 자세하게 소개했다.
이는 리브가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라가 역사의 희생물이었다면 리브가는 역사를 배후에서 조종한 여걸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야곱에 관한 이야기에서 알려진다.


이 이야기에서 아브라함의 종의 이름이 거명되지 않았지만 여러분은 창세기 15장에 언급된 다메섹(Damascus) 사람 엘리에셀(Eliezer)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아브라함이 가장 신뢰한 종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한 적도 있다.
“주 여호와여, 내게 무엇을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러온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입니다”(15:2-3).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에게서 맡은 바 사명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는지를 여러분은 보았을 것이다.
창세기 편집자는 하나님에게 충성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한 교훈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충성한 늙은 종 엘리에셀의 행적을 기록해서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교훈이 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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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이후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아브라함은 고령이었지만 사라가 죽은 후 다시 아내를 맞이했다.
그녀의 이름은 그두라(Keturah)였다.
그두라는 아브라함에게서 시므란(Zimran), 욕산(Jokshan), 므단(Medan), 미디안(Midian), 이스박(Ishbak), 그리고 수아(Shuah)를 낳았다. 욕산은 세바(Sheba)와 드단(Dedan)을 낳았다.
드단의 자식들에게서 아스르족(Ashurim)과 르트스족(Letushim), 르음족(Leummim)이 퍼졌다.
미디안에게는 에바(Ephah), 에벨(Epher), 하녹(Hanoch), 아비다(Abidah), 그리고 엘다아(Eldaah)라는 아들들이 있었다.
이들 모두 아브라함과 그두라로부터 비롯한 자손들이다.


아브라함은 전 재산을 이삭에게 물려주었고 소실들에게서 난 자식들에게도 살림밑천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그는 죽기 전에 그두라에게서 난 자식들을 적자 이삭을 떠나 동방으로 가서 살게 했다.
아브라함은 향년 175해를 누리다가 열조로 돌아갔다.
이스마엘이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달려와서 이삭과 함께 아버지의 시신을 마므레 앞 막벨라 동굴에 안장했다.
사라가 죽었을 때는 아브라함만이 슬퍼했으며 마을 사람들이 호의를 베풀어 장사를 지냈지만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는 이스마엘이 이삭과 함께 아버지를 장사지냈다고 한다.
사라의 장례식에는 하갈과 이스마엘이 참석했다는 기록이 없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구입해서 사라를 매장한 그곳에 사라와 함께 매장되었다.
이스마엘과 이삭 형제는 같은 마을 또는 이웃마을에서 사이좋게 살았던 것 같다.


이스마엘의 자손들은 다음과 같다.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Nebajoth)이고, 그 다음은 게달(Kedar), 앗브엘(Adbeel), 밉삼(Mibsam), 미스마(Mishma), 두마(Dumah), 맛사(Massa), 하닷(Hadar), 데마(Tema), 여둘(Jetur), 나비스(Naphish), 그리고 게드마니(Kedemah)이다.
이 이름들은 촌과 부락의 이름대로 된 것으로 이들은 열두 부족들의 대표자들이기도 하다.


이스마엘은 137세에 죽어 열조에 들어갔다.
이스마엘의 자손들은 하월라(Havilah)에서부터 앗수르(Assyria)로 통하는 이집트 앞 수르(Shur)까지 이르러 살았다.
수르는 이집트 동쪽 시리아로 가는 도중에 있는 마을이다.
오늘날 아라비아인들은 이스마엘을 조상으로 섬긴다.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 라해로이 우물이 있는 곳에서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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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권리를 매매한 이삭의 아들들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이삭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는 자식이 없다가 이삭이 아기를 갖게 해 달라고 하나님에게 간절히 빌었더니 리브가가 잉태했다.
리브가는 쌍둥이를 가졌는데 뱃속에 든 두 아이가 서로 싸우므로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이렇게 괴로워서야 어디 살겠는가!)”라고 말했다.
리브가가 하나님께 이 사실을 알리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25:23)


두 국민이 네 태 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 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


해산기한이 차서 몸을 푸니 쌍둥이인데 먼저 나온 형은 살결이 붉은 데다 온몸이 털투성이였다.
그래서 이름을 에서(Esau)라고 했다.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
그래서 이름을 야곱(Jacob)이라고 했다.
야곱은 “발꿈치를 잡은 사람 Hell-Grasper”이라는 뜻이다.
이때 이삭의 나이 60세였다.


에서는 성장해서 날쌘 사냥꾼이 되어 대부분 들에서 살았다.
반면 성격이 차분한 야곱은 장막에 머물면서 살았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 오는 고기에 맛을 들였고 또 에서가 장자이기에 차자인 야곱보다 더 사랑했다.
하지만 리브가는 에서보다 야곱을 더 사랑했다.


하루는 에서가 허기가 져서 축 늘어진 채 집에 와 보니 야곱이 죽을 끓이고 있었다.
에서는 며칠 동안 사냥하느라고 들판을 뛰어다녔지만 사냥에 실패하고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에서는 죽냄새만 맡아도 살 것 같았다.
그는 배가 너무 고프니 그 붉은 죽을 좀 먹게 해 달라고 야곱에게 간청했다.
몹시 시장해하는 형에게 야곱이 말했다. (25:31-33)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오늘 내게 맹세하라”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동생이 뚱단지처럼 상속권을 팔라며 맹세를 요구하자 에서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상속권을 팔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던 에서는 동생이 자신을 놀리려 는 줄만 알고 “그래 맹세하지”하고 말했다.
우선 요기를 하는 것이 급했기 때문이다.
장자의 상속권이란 장자가 차자에 비해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두 배로 물려받는 것을 뜻한다.
그뿐만 아니라 장자에게는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복을 받는 권리가 있다(25:19-34, 27:19, 36, 신명기 21:17).


당시 장자의 상속권을 매매했다는 기록이 메소포타미아의 누지 기록에 있는 것처럼 야곱은 착한 형의 약점을 이용해 죽 한 그릇에 재산을 두 배로 증식할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동생이 흑심을 알지 못한 에서는 허기진 배를 채워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으므로 동생이 원하는 대로 대답하고 붉은 죽을 먹은 후 다시 들로 나갔다.
에서의 별명이 에돔(Edom)이 된 것은 붉다는 뜻의 히브리어에서 연유했다.


여기서 우리는 장자로서 에서의 경솔한 태도를 본다. 끼니를 몇 차례 걸렀다고 해서 장자의 권리(birthright)를 죽 한 그릇에 판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퍽 어리석었던 사람인 것 같다. 그러나 경솔하고 어리석었음에도 불구하고 훗날 야곱에게 베푼 자비를 보면 에서는 동생과 달리 인정이 많은 사람이다.
반면 야곱은 욕심이 많고 교활한 인물이었다. 형의 어리석음을 이용해서 죽 한 그릇에 장자의 권리를 사고 장자 행세를 하려 했다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그것은 형에 대한 사기행각이자 아버지에 대한 불효이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놀랍게 하는 것은 이런 야곱을 하나님이 축복하셨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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