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아내 리브가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아브라함은 거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자신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 아브라함이 하루는 집안 살림을 맡아보는 늙은 종을 불러 말했다. (24:2-8)


“네 손을 내 환도뼈 밑에 넣으라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여자가 나를 좇아 이 땅으로 오고자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의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 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 지니라
만일 여자가 너를 좇아오고자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 지니라”


종은 이삭의 신부를 구해 오라는 아브라함의 분부를 받고 온갖 귀한 선물을 낙타 열 마리에 싣고 아브라함의 고향 메소포타미아로 향했다.
그는 나홀 성에 이르러 성문 밖 우물가에서 낙타를 쉬게 했다.
긴 여정에 지친 낙타들은 여기저기 무릎을 꿇은 채 머리만 똑바로 하늘을 향했다.
마침 저녁 때라서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우물로 왔다.
종은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원컨대 오늘 일이 모두 뜻대로 잘 되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십시오.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러 나오고 있으니 내가 우물 곁에 섰다가 한 소녀에게 물을 좀 마시게 해 달라고 청하겠습니다. 소녀가 흔쾌히 저에게 물을 주고 저뿐만 아니라 낙타에게도 물을 준다면 그 소녀가 바로 이삭의 배필이라 여기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고 종은 심신이 피로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물가에 모인 여자들을 열심히 관찰했다.
그때 그의 눈을 사로잡는 한 여자가 동갑내기 여자들과 어울려서 항아리를 들고 우물로 왔다.
그 여자는 리브가(Rebecca)로서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가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었다.
리브가는 지금까지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예쁘고 탐스럽게 생긴 처녀였다.
리브가가 우물에서 물을 떠 항아리에 채우자 종이 다가가 말했다. (24:17-19)


“청컨대 네 물 항아리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우라”

“주여 마시소서
당신의 약대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리브가는 얼른 물 항아리의 물을 구유에 붓고는 우물로 가서 낙타를 위해 다시 물을 길었다.
종은 리브가의 일거일동을 관찰하면서 과연 하나님이 뜻대로 이루어 주실 것인지 알아보려고 했다.
낙타들이 물을 다 마시자 종은 반 세겔 나가는 금코걸이와 십 세겔 나가는 금팔찌 한 쌍을 선물로 주면서 물었다. (24:23-25)


“네가 뉘 딸이냐 청컨대 내게 고하라 네 부친의 집에 우리 유숙할 곳이 있느냐”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
우리에게 짚과 보리가 족하며 유숙할 곳도 있나이다”


종은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께 경배하고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의 주인에게 당신의 인자함과 성실함을 끊이지 않게 베풀어 주시니 이렇게 나를 인도하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습니다”라고 기도했다.


리브가는 집으로 먼저 뛰어가서 이 사실을 식구들에게 알렸다.
리브가에게는 라반(Laban)이란 오라비가 있었는데 브두엘이 늙어 집안 모든 일을 라반이 관리하고 있었다.
라반은 리브가로부터 어떤 사람이 유숙할 곳을 청한다는 말을 듣자 별로 탐탁치않게 여겼다.
그는 리브가가 금코걸이를 하고 또 금팔찌를 장식한 것을 보고는 그것들이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다.
낯선 사람이 주었다는 리브가의 대답에 라반은 그를 맞기 위해 우물로 달려갔다.
나그네가 부자라는 것을 직감한 라반은 낙타와 함께 우물가에 있는 늙은이에게 다가가서 방과 낙타의 처소를 마련했으니 어서 집으로 들라고 정중하게 권했다.


손님을 집으로 모신 라반은 낙타 등에 실려 있는 짐과 안장을 풀어 내리고 낙타에게 겨와 여물을 주었으며 손님과 일행의 발을 씻을 물을 떠오고 음식도 준비했다.
그러나 종은 자기가 주인 아브라함의 심부름 온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고, 여기에 온 이유를 말하기 전에는 음식을 들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라반은 그렇다면 식사하기 전 자초지종을 말하라고 권유했다.
종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많이 받아 굉장한 부자가 되었으며 재산으로 양떼, 소떼, 금과 은, 남종과 여종, 낙타와 나귀들이 많다는 것, 또한 여주인 사라가 늙으막에 낳은 아들이 이삭이라는 것과 아브라함이 전 재산을 이삭에게 주었다는 것도 말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자기에게 맹세를 요구하며 당부한 이야기를 전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는 며느리감을 고르지 않고 반드시 고향에서 며느리감을 구하고자 하는데 자신이 섬겨 온 하나님이 천사를 동행시켜서 이 일을 이루어 주실 것임을 믿고 있으며 자기의 일가들한테 가기만 해도 그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자기를 인도해 주셔서 주인의 조카딸을 며느리감으로 찾을 수 있게 하셨다면서 결혼승낙 여부를 알려 달라고 했다.


라반과 브두엘은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이므로 자신들이 가부를 말할 수 없다면서 리브가가 그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아브라함 며느리가 되게 하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종은 땅에 엎드려 하나님에게 경배한 후 금은패물과 옷가지들을 리브가에게 건네주고 오라버니와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선물을 주었다.
종은 그제서야 음식을 들었고 일행도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며 그날 밤을 편히 쉬었다.


이튿날 날이 밝아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떠나겠다고 말하자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어머니가 극구 만류했다. (24:55-58)


“소녀로 며칠을 적어도 열흘을 우리와 함께 있게 하라 그 후에 갈 것이니라”
“나를 만류치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그들이 리브가에게 물었다.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가겠나이다”


그들은 리브가와 그녀의 유모를 아브라함의 종과 일행에 딸려 보내면서 리브가에게 복을 빌어주었다.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리브가는 몸종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아브라함의 종을 따라 나섰다. 종은 아브라함의 며느리감을 데리고 길을 떠나면서 임무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 대단히 흡족해 했다. 이때 이삭은 남쪽 브엘라해로이(Beer-lahai-roi)라는 샘이 있는 사막지방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곳은 네겝(Negev) 땅이었다. 저녁무렵 산보하러 들을 거닐던 이삭은 낙타떼가 오는 것을 보고 그것이 아버지가 보낸 종의 일행이라는 것을 알았다.
리브가는 고개를 들어 저만치 한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 낙타에서 내려 아브라함의 종에게 물었다. (24:65)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뇨”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는 종의 말을 듣고 너울을 꺼내 얼굴을 가렸다. 종은 낙타에서 내려 이삭에게 그 동안의 경위를 낱낱이 보고했다.
이삭은 첫눈에 리브가가 마음에 들었다. 리브가 역시 온순한 인상을 한 40세의 이삭이 오빠 라반과는 달리 인정이 많아 보여서 좋았다.
이삭은 리브가를 모친 사라의 장막에서 아내로 맞아들이고 리브가를 사랑하면서 어머니 잃은 슬픔을 달랬다.


창세기 편집자는 이렇듯 리브가에 관하여 매우 자세하게 소개했다.
이는 리브가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라가 역사의 희생물이었다면 리브가는 역사를 배후에서 조종한 여걸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야곱에 관한 이야기에서 알려진다.


이 이야기에서 아브라함의 종의 이름이 거명되지 않았지만 여러분은 창세기 15장에 언급된 다메섹(Damascus) 사람 엘리에셀(Eliezer)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아브라함이 가장 신뢰한 종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한 적도 있다.
“주 여호와여, 내게 무엇을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러온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입니다”(15:2-3).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에게서 맡은 바 사명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는지를 여러분은 보았을 것이다.
창세기 편집자는 하나님에게 충성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한 교훈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충성한 늙은 종 엘리에셀의 행적을 기록해서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교훈이 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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