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이블 성전>의 설계 이전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바이블 성전 Shrine of The Book>은 키슬러가 설계한 건축물 중 실제로 건립된 유일한 독립건축물인 동시에 유작이기도 하다.
그가 이 건물의 의뢰를 받은 것은 1958년이지만 우여곡절 끝에 완성을 본 것은 1965년 4월이다.
그해 12월 키슬러는 세상을 등진다.
인생의 막을 내리기 직전에 자신의 눈으로 직접 ‘엔드리스’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건물은 방랑생활을 하던 유태인이 자신들의 영토를 지니게 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자리 잡고 있다.
다윗(David) 왕이 이스라엘 영토를 확장한 후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이스라엘의 위상을 높였다.
여기에 세워진 키슬러의 <바이블 성전>에는 고고학상 20세기 최대의 발견이라고 일컬어지는 『사해사본 Dead Sea Scrolls』이 소장되어 있다.


키슬러에게 <바이블 성전>은 인생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것이었다.


『사해사본』은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었다.
그것을 위한 건축이라면 단지 논리적인 무엇이 아니라 격렬한 현실을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전의 두루마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현대적인 장치.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의미를 지니는 설치.
현대를 넘어서서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키는 건축.
최근에 유행하는 유리와 스틸을 이용할 것인가?
아니다.
절대 그럴 수 없다.1


이것은 「‘엔드리스 하우스’의 내면」(Simon and Schuster, 1964) 중에서, ‘사해사본’이라고 쓴 일기의 서두이다.
날짜는 1958년 5월 19일로 되어있다.
간단한 문장이기는 하나 키슬러가 대단한 각오를 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생을 마감하기 전에 생애를 통해 추구해온 ‘엔드리스’ 이론을 집대성하고,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해사본』을 넣어두기 위한 ‘그릇’을 건설한다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현실적인 기회가 찾아왔으므로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이것은 <엔드리스 하우스>와 같은 현세의 생활을 위한 건물이 아니다.
후에 <바이블 성전>이라고 명명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것은 ‘성전’이라고 불려지기에 충분한 건물이었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금기시해왔던 유태인의 종교관을 감안한다면 ‘성전’이라고 명명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건축물의 의의를 짐작할 수 있다.
<바이블 성전>은 사해의 사막에 있는 동굴 속에서 발견된 『사해사본』을 전시하기 위한 일종의 역사박물관이다.
키슬러는 기껏해야 200여 년의 역사밖에 지니지 않는 ‘근대(Modern)’와 그와 연계된 ‘현대(Contemporary)’를 통해 정립된 오늘날의 건축개념을 넘어서서, <바이블 성전>을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키는 건축이라고 단언한 것은 이 건축물의 중요성과 의의를 고려한 발언임에 틀림없다.


『사해사본』을 전시하기 위한 이 건물이 유리와 스틸로 된 현대건축양식을 따랐다면 어떠했을까.
단지 고고학이라는 전문분야의 자료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고, 결국 지금까지 지어져왔던 미술관이나 박물관과 다를 바 없는 건축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블 성전>은 다행스럽게도 또는 운명적 선택에 의해 근대기능주의 건축에 반발을 거듭해온 현대건축가 키슬러에 의해서 지어지게 되었다.
키슬러 정도라면 자신의 손으로 <바이블 성전>을 설계한다는 사실의 역사적 중요성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역사란 가끔 하찮은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있다.
인생에도 예상을 불허하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역사도 많은 계기들로 해서 방향지워진다.
<바이블 성전>이 완성되기까지 격은 우여곡절과는 별도로 베드윈의 양치기 소년이 발견한 『사해사본』의 운명도 결코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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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해사본』의 발견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옛부터 이스라엘에는 “글 쓰는 사람을 위한 기념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계율이 있었다.
그 때문에 고대 유태인의 유적으로 남아 있는 문헌은 거의 전무하다.
따라서 구약성경에 관한 고고학적 연구에는 문자로 남아 있는 자료의 발견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특히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성서의 원형이 어떠한 내용인가를 알기 위해서 고대성서의 사본 발견은 성서학자들의 오랜 꿈이기도 했다.2)


1947년 봄 고대 엣세네파(派)의 공동체가 살고 있었던 사해 근처의 크므랑 절벽에 있는 동굴에서 오늘날 『사해사본』이라 불리는 두루마리 책자가 발견되었다.
무하메드 애드 도르브라고 하는 문맹의 타아미레 아랍인 양치기 소년은 이 우연한 발견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도르브는 잃어버린 산양을 찾던 중 아무 생각 없이 들여다본 동굴에 돌을 던지자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소년은 다음날 사촌 아후메드 무하메드와 함께 그 동굴에 들어가 8개의 기다란 항아리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산양가죽에 문자를 적은 두루마리가 있었다.
이것이 『사해사본』을 발견한 경위이다.


소년은 이 두루마리를 평소에 알고 지내던 시리아인 상인 카일 이스칸델 샤인에게 건네준다.
샤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구두수선에라도 사용할 요량으로 가져갔다고 하니, 자칫 잘못했으면 『사해사본』는 어떤 사람의 구두밑창이 될 뻔했다.
거기에 적힌 문자의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예루살렘 구(舊)시가지에 있는 성마르코 수도원의 대주교에게 4권의 두루마리를 건네주면서부터 두루마리의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1948년 2월 대주교는 이것을 예루살렘에 있는 아메리카 오리엔트 연구소에 가져가서 그곳 학자들과 같이 사진을 찍게 한 후 볼티모어의 존스 홉킨스 대학의 올브라이트 교수에게 보냈다.
3월 15일 “현대 최대의 사본발견을 축하한다”는 내용의 편지가 도착하여 이 발견은 진실의 세계에 동참하게 된다.


한편 동굴에서 발견된 7권 중 나머지 3권은 어떻게 되었는가?
1947년 11월 23일 헤브라이 대학의 고고학자 엘레아잘 수케닉에게 아랍인 골동품상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시 팔레스티나는 영국의 위임통치를 끝내고 유태인 지역과 아랍인 지역으로 분할시키기 위한 국제연맹총회의 투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테러가 빈번한 상황 속에서 수케닉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아랍인 지역에 들어가 까다로운 매수(買收)교섭을 거쳐 나머지 3개의 두루마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연구를 시작한 11월 29일 국제연맹은 팔레스티나의 분할안(案)을 가결했다.


그러나 『사해사본』는 다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최종적으로 안주의 땅을 찾기까지 좀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한편 시리아 정교회 사무엘 대주교는 4권의 두루마리를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비싼 값으로 팔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학문적 자료라는 점에서는 사진 복제가 있으므로 이미 중요성을 상실해가고 있었다.
단지 역사적 자료라는 점만으로는 좀처럼 적당한 수집가를 만날 수 없었다.
1954년 6월 초 『월 스트리트 저널』지의 뉴욕판에 다음과 같은 공고가 났다.


그 밖의 매물. 『사해사본』 4권. 2,000년 전의 성서사본 판매. 개인 또는 단체가 교육 상 또는 종교상의 시설에 기부하기에 최적. 월 스트리트 저널 사서함 F206호.2


키슬러의 일기와 그 밖의 자료에 기술된 것과는 이후의 사실이 다소 다르게 적혀 있다.3)
건축설계를 담당한 키슬러의 일기에 의하면 이 광고 덕분에 뉴욕의 자선가 고테스만 기금(D. S. & R. H. Gottesman Foundation)의 대표 고테스만 부부가 이 두루마리를 구입해 1955년 3월 27일에 워싱턴의 이스라엘 영사관을 통해 이스라엘 정부에 기증했다고 적혀 있다.
이 두루마리를 소장하기 위한 <바이블 성전>의 설계가 키슬러와 바토스 팀에 의뢰된 이유는 고테스만의 딸이 바토스의 부인이었기 때문이다.
키슬러와 바토스는 뉴욕에서 텔아비브로 날아가 목하 건설 중인 예루살렘 대학을 향했다.
이 새 대학의 건설부지 안에 성전이 건설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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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이블 성전>의 설계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예루살렘 대학의 총장 맛아르로부터 『사해사본』의 발견경위를 들은 키슬러와 바토스는 이 자료를 전시하기 위한 방법을 제안했다.
애초에 맛아르는 고고학적 자료의 하나로 대학 도서관의 유리 케이스에 넣어 전시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에 그런 일이라면 우리는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 일이라면 이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유능한 젊은 건축가들도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바닥과 벽이 대리석으로 뒤덮인 방에 브론즈로 된 쇼 케이스를 놓아두고, 모퉁이에 고무나무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의자와 벤치를 놓고 공기청정기를 작동시키면, 이른바 바우하우스의 위대한 전통에 따른 ‘근대풍’의 것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와 같은 뉴욕 팀에게는 이미 표준화된 그 같은 수단에는 흥미가 없다.3


키슬러가 이같이 통렬한 제안을 한 것은 그에게 <바이블 성전>의 설계가 단지 사본의 전시라는 기본적인 목적 달성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키슬러는 중동의 사해와 북미의 이스트 리버 언덕 사이를 왕래하는 동안 <바이블 성전>의 테마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재생(Re-birth)’이었다.


만약 ‘재생’이라는 아이디어를 조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재생’은 관객들에게 자신이 새롭게 태어난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주는 건축적 개념을 말한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사실.
그것은 모체로부터 태어날 당시의 기쁨을 다시 한 번 경험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이 스스로를 재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재생’이 죽은 후에 다시 태어나는 ‘환생(還生)’과는 다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재생’은 인간이 살아 있으면서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침묵의 성지(聖地)’가 될 것이다.
마치 흐르는 물의 유전(流轉)에서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재래(在來)를 감지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4


이 같은 키슬러의 정열적인 설득을 듣고 총장은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드디어 당신이 그 같은 도전을 시도할 것인가, 만약 시도한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지 물어왔다.
키슬러는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므로 지금으로서는 확약할 수 없다.
그러나 대략 3, 4개월 이내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키슬러와 바토스는 서둘러 뉴욕으로 돌아왔다.
귀국 도중 비행기 안에서 키슬러는 주머니에 있던 종이를 꺼내 파라볼라(parabolra)형 용기(容器)모양을 스케치했다.
두 개의 포물선 커브가 조합된 파라볼라 모양을 드로잉하면서 그는 이것이야말로 ‘재생’의 조형적 표현이라고 확신했다.


인간이 어떤 일에 극도로 집중할 때 기발한 발상이 가능한 법이다.
또한 이 같은 상황에서 얻은 최초의 영감은 최고의 결과를 낳는다.
뉴욕에 돌아온 키슬러는 이 드로잉을 도면으로 만들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그것을 설득시키는 데는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회의실 벽면에 계획안을 붙이자마자 모든 사람들이 그의 의도를 이해했다.
카슬러와 바토스는 즉시 작업에 착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1958년 일기에 키슬러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두 개의 포물선에서 유추된 이 형태는 예전에 포도주를 넣어두던 그릇과 같은 모양이다.
또한 파라볼라 상단부의 목 부분에 외부공간을 흡입하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다.5


여기에 언급된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현재의 돔(dome)이 된 것이다.
그런데 직경이 80피트나 되는 대형 파라볼라 형태의 돔을 어떤 구조체를 이용해 건설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키슬러는 1958년에서 61년에 걸쳐 뉴욕과 예루살렘을 수차례 왕래하면서 많은 엔지니어들과 상담을 거듭해야 했다.
도중에 건설 불가능에 가까운 결론에 도달한 적도 있었으나, 각고의 인내와 노력 끝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돔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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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바이블 성전>의 주변환경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바이블 성전>의 건축적 특징 중 하나는 전시공간이 모두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상에 있는 것은 키슬러가 최초의 영감을 구체화한 흰색의 커다란 돔과 검은 색 입방체의 벽뿐이다.
이 두 개의 구조물은 건축물이라기보다는 마치 조각과 같이 상징 역할을 한다.


이 <바이블 성전>의 외관에 대하여 키슬러 특집호를 기획한 잡지 『조디악 Zodiack』(Milan, 1969)의 기사가 단순명료한 표현으로 전달해주었다.


예루살렘의 박물관은 설계자인 키슬러 자신이 주장한 바 있는 ‘환경조각’과 같이 주위의 경관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관객들은 하얗게 빛나는 파라볼라 형태의 돔과 그것과는 대조적인 검은색 현무암으로 된 벽을 보게 된다.
이것들은 낮은 떨기나무와 올리브나무, 그리고 사이프러스(cypress) 등이 흩어져 있는 돌투성이의 황량한 토지와는 대조적인 명확하면서도 산뜻한 이미지를 지니고 서 있다.6


흰색 파라볼라 형태의 돔은 외견만 보더라도 그것이 지붕, 씌우개, 또는 내부에 무엇인가를 감싸고 있는 용기의 덮개와 같은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이 돔은 <바이블 성전> 중앙 홀의 쉘터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돔과는 대조적인 위치에 있는 검은 벽은 건축적으로는 아무런 기능도 지니고 있지 않다.
일종의 모놀리스(monolith: 一石柱)와 같은 것이다.
이 벽면을 본 순간 필자는 1968년 4월에 공개된 영화 <2001년의 우주의 여행 A Space Odessey 2001>에 등장하는 의문의 물체 모놀리스가 떠올랐다.
기원전 3백만 년 전 지구상에 돌연 나타난 모놀리스를 본 유인원이야기로 시작되는 영화에서, 의문의 물체 모놀리스는 2001년에 지구에서 본 달의 뒤편 분화구 속에서 다시 발견된다.
이 영화의 스토리를 활자화한 『우주의 오디세이 2001』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우주복을 입은 남자가 포즈를 취하고 있는 뒤편에 어떤 물체가 보였다.
높이 약 10피트, 폭 5피트의 칠흑색(漆黑色)으로 된 직립(直立) 평판(平板)이다.
을씨년스러운 그것에서 프로이드(역주: 영화 속의 주인공)는 거대한 묘석(墓石)을 연상했다.
가장자리가 날카로운 완전한 좌우대칭의 물체로 너무나 검기 때문에 그것을 비추고 있는 빛을 모두 흡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돌인지, 금속인지, 플라스틱인지, 아니면 인류가 알지 못하는 물질인지 사진을 통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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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커다란 모뉴멘트를 주된 구성요소로 하는 <바이블 성전>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가 <바이블 성전>의 구상을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말이다.
스탠리 큐브릭과 아서 클라크가 구상한 영화보다 18년이나 앞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키슬러의 구상이 지구상에 현존하는 이론을 넘어서는 SF적 세계 또는 우주적 의식에 근접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미지의 물체 모놀리스는 1969년경 이탈리아의 건축가 그룹 슈퍼 스튜디오(Super Studio)가 시도한 개념적 프로젝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슈퍼 스튜디오의 프로젝트로 유명한 단일 정방형 그리드에 에워싸인 <끊임없는 모뉴멘트 Continuous Monument>도 서구를 중심으로 진보된 모더니즘을 부정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슈퍼 스튜디오 건축가들이 지구상의 모든 환경의 상대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는 인공물 모놀리스는 근대기능주의가 목표로 했던 합목적성 또는 합리성에 기초하는 건축을 부정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었다.

모놀리스의 상징적 의미는 어느 경우에도 과거와 미래 사이에 놓여 있는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한 의식을 환기시키기 위한 표석(標石)이었다.
이 같은 사실을 감안하면 그것이 묘비와 같은 이미지를 지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키슬러의 <바이블 성전>에 설치된 모놀리스가 파라볼라 형태의 돔과 상대개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돔이 키슬러가 즐겨 사용했던 곡면의 연속성에 의존하고 있는 반면, 모놀리스는 곡면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직육면체로 되어 있다.
그가 끊임없이 부정해왔던 입방체의 감옥과 같은 건축물과 닮아 있다.
그러나 이 입방체의 벽은 그 안에 사람이 거주할 수 있다는 건축적 기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 공간을 지니지 않는 검은 모놀리스. 그것은 국제양식이라는 미명 아래 맨해튼의 풍경을 형성하고 있는 유리와 스틸로 된 육면체 건축의 묘지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필자가 이 <바이블 성전>을 방문했을 때, 검은 벽은 그림자와 같은 존재라는 인상을 받았다.
여기에 반해서 파라볼라에는 11월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고, 예루살렘의 언덕 위에 커다란 하얀 돔의 곡면이 그 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돔의 완만한 곡면에 의해 형성된 음영의 그라데이션은 끝없이 펼쳐져 있는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돔 전체가 생명체와도 같이 생생하게 숨 쉬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파라볼라의 곡면을 덮고 있는 것은 271,000개의 흰 타일인데, 타일의 딱딱한 질감은 느껴지지 않고 대신에 키슬러가 말한 대로 여체와도 같이 관능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그리고 이 돔에서 얼마간 떨어진 곳에 검은 침묵의 모놀리스가 돔의 존재감을 보다 강력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면서 엄숙하게 서있다.
이 두 가지 요소의 대비는 키슬러가 좋아했던 극적 효과를 낳는 구성방법의 하나로 볼 수 있는데, 여기서도 그 같은 의도가 완벽하게 성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서 이 두 개의 커다란 모뉴멘트를 주된 구성요소로 하는 <바이블 성전>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예루살렘의 돌산에서 캐온 거친 돌조각으로 쌓은 낮은 담을 만들었다.
평편하게 다듬어진 입방체 모놀리스, 흰 타일을 붙여 만든 추상적인 구성물 돔, 주위의 돌담과 낮은 나무, 그리고 담 바깥쪽에 무성한 잡초가 있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바이블 성전>은 훨씬 더 우아하게 보인다.
이같이 두 개의 상반되는 심벌은 주위환경과의 대비로 극적 효과가 한층 더 강조되도록 계산되어 있다.

돔과 모놀리스의 대비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돔 : 흰색-곡면구성-파라볼라-개방성-빛-실체-호흡-삶-물

모놀리스 : 검은색-평면구성-직방체-패쇄성-어둠-그림자-침묵-죽음-불

이 두 개의 추상적인 구성물은 형태의 단순성과 큰 스케일, 그리고 조형적인 측면에 있어서 건축적 모뉴멘트라는 측면보다는 조각작품과 같은 특성이 강하다.
여기서도 건축을 환경조각의 일종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키슬러의 접근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나아가서 대지에 중력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건축물의 숙명을 넘어서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훌륭한 예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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