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커다란 모뉴멘트를 주된 구성요소로 하는 <바이블 성전>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가 <바이블 성전>의 구상을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말이다.
스탠리 큐브릭과 아서 클라크가 구상한 영화보다 18년이나 앞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키슬러의 구상이 지구상에 현존하는 이론을 넘어서는 SF적 세계 또는 우주적 의식에 근접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미지의 물체 모놀리스는 1969년경 이탈리아의 건축가 그룹 슈퍼 스튜디오(Super Studio)가 시도한 개념적 프로젝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슈퍼 스튜디오의 프로젝트로 유명한 단일 정방형 그리드에 에워싸인 <끊임없는 모뉴멘트 Continuous Monument>도 서구를 중심으로 진보된 모더니즘을 부정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슈퍼 스튜디오 건축가들이 지구상의 모든 환경의 상대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는 인공물 모놀리스는 근대기능주의가 목표로 했던 합목적성 또는 합리성에 기초하는 건축을 부정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었다.
모놀리스의 상징적 의미는 어느 경우에도 과거와 미래 사이에 놓여 있는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한 의식을 환기시키기 위한 표석(標石)이었다.
이 같은 사실을 감안하면 그것이 묘비와 같은 이미지를 지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키슬러의 <바이블 성전>에 설치된 모놀리스가 파라볼라 형태의 돔과 상대개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돔이 키슬러가 즐겨 사용했던 곡면의 연속성에 의존하고 있는 반면, 모놀리스는 곡면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직육면체로 되어 있다.
그가 끊임없이 부정해왔던 입방체의 감옥과 같은 건축물과 닮아 있다.
그러나 이 입방체의 벽은 그 안에 사람이 거주할 수 있다는 건축적 기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 공간을 지니지 않는 검은 모놀리스. 그것은 국제양식이라는 미명 아래 맨해튼의 풍경을 형성하고 있는 유리와 스틸로 된 육면체 건축의 묘지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필자가 이 <바이블 성전>을 방문했을 때, 검은 벽은 그림자와 같은 존재라는 인상을 받았다.
여기에 반해서 파라볼라에는 11월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고, 예루살렘의 언덕 위에 커다란 하얀 돔의 곡면이 그 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돔의 완만한 곡면에 의해 형성된 음영의 그라데이션은 끝없이 펼쳐져 있는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돔 전체가 생명체와도 같이 생생하게 숨 쉬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파라볼라의 곡면을 덮고 있는 것은 271,000개의 흰 타일인데, 타일의 딱딱한 질감은 느껴지지 않고 대신에 키슬러가 말한 대로 여체와도 같이 관능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그리고 이 돔에서 얼마간 떨어진 곳에 검은 침묵의 모놀리스가 돔의 존재감을 보다 강력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면서 엄숙하게 서있다.
이 두 가지 요소의 대비는 키슬러가 좋아했던 극적 효과를 낳는 구성방법의 하나로 볼 수 있는데, 여기서도 그 같은 의도가 완벽하게 성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서 이 두 개의 커다란 모뉴멘트를 주된 구성요소로 하는 <바이블 성전>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예루살렘의 돌산에서 캐온 거친 돌조각으로 쌓은 낮은 담을 만들었다.
평편하게 다듬어진 입방체 모놀리스, 흰 타일을 붙여 만든 추상적인 구성물 돔, 주위의 돌담과 낮은 나무, 그리고 담 바깥쪽에 무성한 잡초가 있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바이블 성전>은 훨씬 더 우아하게 보인다.
이같이 두 개의 상반되는 심벌은 주위환경과의 대비로 극적 효과가 한층 더 강조되도록 계산되어 있다.
돔과 모놀리스의 대비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돔 : 흰색-곡면구성-파라볼라-개방성-빛-실체-호흡-삶-물
모놀리스 : 검은색-평면구성-직방체-패쇄성-어둠-그림자-침묵-죽음-불
이 두 개의 추상적인 구성물은 형태의 단순성과 큰 스케일, 그리고 조형적인 측면에 있어서 건축적 모뉴멘트라는 측면보다는 조각작품과 같은 특성이 강하다.
여기서도 건축을 환경조각의 일종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키슬러의 접근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나아가서 대지에 중력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건축물의 숙명을 넘어서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훌륭한 예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