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바이블 성전>의 설계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예루살렘 대학의 총장 맛아르로부터 『사해사본』의 발견경위를 들은 키슬러와 바토스는 이 자료를 전시하기 위한 방법을 제안했다.
애초에 맛아르는 고고학적 자료의 하나로 대학 도서관의 유리 케이스에 넣어 전시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에 그런 일이라면 우리는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 일이라면 이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유능한 젊은 건축가들도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바닥과 벽이 대리석으로 뒤덮인 방에 브론즈로 된 쇼 케이스를 놓아두고, 모퉁이에 고무나무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의자와 벤치를 놓고 공기청정기를 작동시키면, 이른바 바우하우스의 위대한 전통에 따른 ‘근대풍’의 것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와 같은 뉴욕 팀에게는 이미 표준화된 그 같은 수단에는 흥미가 없다.3


키슬러가 이같이 통렬한 제안을 한 것은 그에게 <바이블 성전>의 설계가 단지 사본의 전시라는 기본적인 목적 달성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키슬러는 중동의 사해와 북미의 이스트 리버 언덕 사이를 왕래하는 동안 <바이블 성전>의 테마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재생(Re-birth)’이었다.


만약 ‘재생’이라는 아이디어를 조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재생’은 관객들에게 자신이 새롭게 태어난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주는 건축적 개념을 말한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사실.
그것은 모체로부터 태어날 당시의 기쁨을 다시 한 번 경험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이 스스로를 재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재생’이 죽은 후에 다시 태어나는 ‘환생(還生)’과는 다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재생’은 인간이 살아 있으면서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침묵의 성지(聖地)’가 될 것이다.
마치 흐르는 물의 유전(流轉)에서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재래(在來)를 감지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4


이 같은 키슬러의 정열적인 설득을 듣고 총장은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드디어 당신이 그 같은 도전을 시도할 것인가, 만약 시도한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지 물어왔다.
키슬러는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므로 지금으로서는 확약할 수 없다.
그러나 대략 3, 4개월 이내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키슬러와 바토스는 서둘러 뉴욕으로 돌아왔다.
귀국 도중 비행기 안에서 키슬러는 주머니에 있던 종이를 꺼내 파라볼라(parabolra)형 용기(容器)모양을 스케치했다.
두 개의 포물선 커브가 조합된 파라볼라 모양을 드로잉하면서 그는 이것이야말로 ‘재생’의 조형적 표현이라고 확신했다.


인간이 어떤 일에 극도로 집중할 때 기발한 발상이 가능한 법이다.
또한 이 같은 상황에서 얻은 최초의 영감은 최고의 결과를 낳는다.
뉴욕에 돌아온 키슬러는 이 드로잉을 도면으로 만들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그것을 설득시키는 데는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회의실 벽면에 계획안을 붙이자마자 모든 사람들이 그의 의도를 이해했다.
카슬러와 바토스는 즉시 작업에 착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1958년 일기에 키슬러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두 개의 포물선에서 유추된 이 형태는 예전에 포도주를 넣어두던 그릇과 같은 모양이다.
또한 파라볼라 상단부의 목 부분에 외부공간을 흡입하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다.5


여기에 언급된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현재의 돔(dome)이 된 것이다.
그런데 직경이 80피트나 되는 대형 파라볼라 형태의 돔을 어떤 구조체를 이용해 건설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키슬러는 1958년에서 61년에 걸쳐 뉴욕과 예루살렘을 수차례 왕래하면서 많은 엔지니어들과 상담을 거듭해야 했다.
도중에 건설 불가능에 가까운 결론에 도달한 적도 있었으나, 각고의 인내와 노력 끝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돔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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