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슬러의 <엔드리스 하우스> 최종안은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는 이미 ‘월드 하우스’화랑의 ‘신사’와 약속한 바 있으므로 전화를 걸어 아마도 미술관 측에서 ‘월드 하우스’화랑에 <엔드리스 하우스>를 짓는 것을 허락해줄 것인데, 그렇게 되면 당신이 <엔드리스 하우스>를 최초로 소유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신사’는 “프레드! 그게 아냐! 내게 여유자금이 있어서 당신에게 이 같은 기회를 만들고자 청한 것이 아니야. 게다가 나는 당장 급하지 않아. 내게는 지금 집도 있고 아이들도 2년 후에나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엔드리스 하우스>가 필요한 것은 앞으로 2년 후의 일이 될텐데.”2 라고 했다.
키슬러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키슬러는 그해 9월 27일 까지 메이어가 <엔드리스 하우스>의 설계도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작업해온 것이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1960년 4월 22일경이다.
이날 일기에 키슬러는 이것을 운명적인 사건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로부터 약 1개월 후 5월 20일 일기에는 「갑작스러운 결정」이라는 표제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혀 있다.
이날 키슬러는 같은 오스트리아 태생 르네 다르논코트, 뉴욕 근대미술관의 아더 드렉슬러와 점심식사를 하면서 <엔드리스 하우스>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드렉슬러는 2천5백만 달러-이전보다 5백만 달러가 증가되어 있다-가 드는 정원의 새로운 건물 신축공사를 위한 캠페인은 아마도 내년까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정원에 <엔드리스 하우스>를 전시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그렇게 되면 일 년이 채 못 되는 기간밖에 전시할 수 없기 때문에 키슬러는 제안을 거절했다.
드렉슬러는 <엔드리스 하우스>를 건설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결과 새로운 제안을 했다.
신축건물의 지붕 위에 <엔드리스 하우스>를 건설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현재 8층으로 계획된 건물을 2층으로 하고 대신 넓이를 넓혀 정원 전체를 덮는 건물을 짓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엔드리스 하우스>를 건설할 기초를 만드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므로 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키슬러는 “너무 늦다. 어쨌거나 이미 늦었다”라고 대답했다.


드렉슬러는 또 하나의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것은 뉴욕 근대미술관이 9월에 예정하고 있는 ‘환영적 건축전’에 관한 것으로 드렉슬러는 전람회의 출품작 중에서 <엔드리스 하우스>를 대단히 중요한 프로젝트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엔드리스 하우스> 의 한 부분을 1/2축적 모형으로 만들어 전람회장 바닥에서 약 4피트 정도 올리는 것을 계획했다.
그 안으로 들어가는 복도를 만든다면 관객은 집 안을 걸어 다닐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하면 그들은 키슬러의 공간개념을 실제 체험을 통해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드렉슬러의 제안은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또한 다르논코트는 전람회가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기금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것을 계기로 <엔드리스 하우스>가 실제로 건설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키슬러는 그들의 제안을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전시회가 분명히 <엔드리스 하우스>의 건설을 성사시켜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에 배당된 40피트×21피트의 공간은 너무 작은 것이었다.
키슬러는 1923년의 오리지널 플랜과 모형, 그리고 그것을 완성했을 때의 도면을 나열할 계획이었다.
드렉슬러는 키슬러의 지적이 타당하다고 생각해서 “만약 9월 개막일의 3주 전에 이 새로운 소형 모형을 만드는 데 동의한다면 전시장소를 75피트×40피트로 늘려주겠다.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전시가 가능할 것이다. 나아가서 섬세한 조명 시스템을 사용한다면 전체 공간의 크기를 좀더 효과적으로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3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키슬러는 이 제안을 수용하고 즉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키슬러의 <엔드리스 하우스> 최종안은 이 같은 우여곡절을 거쳐 제작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 <엔드리스 하우스>의 발표와 반응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뉴욕 근대미술관이 주최한 ‘환영적 건축전’은 1960년 9월 27일에 개막되었다.
이날은 허버트 메이어가 <엔드리스 하우스>를 완성해달라고 의뢰한 날짜와 일치한다.
이 전람회에 출품된 작품들은 20세기의 건축 프로젝트 중 너무도 혁명적이기 때문에 실제로 건축될 수 없는 것을 30점 이상 모아두고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상적 도시안>은 과거의 선구적인 예로 전시된 것이라 볼 수 있으나, 20세기 초에 제작된 부르노 타우트의 <산 속의 수정궁>, 테오 반 뒤스브르크의 <마천루 군>, 엘 리시츠키의 <니키츠키 관문의 마천루>(1924) 등이 전시되었다.
SF영화의 원조격인 <다가올 세계>의 세트인 헤르만 핀스텔린의 미래도시도 출품작 중 하나라는 사실도 특이하다.
르 코르뷔제는 리오와 아르제의 도시계획안 중 하나인 건물과 도로의 결합안을 출품했으며, 1960년대의 시대적 경향을 대표하는 루이스 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키쿠다케 기요노리, 구로가와 기쇼, 윌리엄 카타볼로스 등의 도시계획안도 포함되었다.
주택안으로 출품된 것으로는 폴 넬슨의 <현가식 주택>과 키슬러의 <엔드리스 하우스>뿐이었다.


키슬러는 우여곡절을 겪은 터라 <엔드리스 하우스>의 발표결과에 대해 조바심을 감추지 못했다.
9월 28일 일기는 다음과 같이 시작되고 있다.


뉴욕 근대미술관의 전람회가 열린 지 하루가 지났다.
어제 나는 ‘불가능한’ 건축 ‘엔드리스’를 물 위에 띄우든, 공중에 매달든, 방법이야 어쨌든 어딘가에 건설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날이었다.
모형이 전시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법 좋은 시작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4


<엔드리스 하우스>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는 코너에는 모형내부를 촬영한 사진 패널이 검은 색 벽면 위에 걸려 있었는데, 마치 전시장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창문을 연상시킨다.
또한 강력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모형은 하늘을 나는 원반이 순항하는 듯이 보인다.
이 모형에는 출입구와 채광 및 조망을 위해 많은 구멍이 뚫려있다.
이 같은 전시방법을 택한 것은 키슬러가 의도한 공간개념인 ‘엔드리스’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같이 철저하게 계산된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엔드리스 하우스>가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 걱정했다.
또한 ‘엔드리스’의 실현을 위해 미국 또는 그 밖의 나라에서 충분한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를 염려했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의문과 희망이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숨바꼭질하는 듯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5
70세에 이른 예술가 키슬러는 아직도 성공한 유명인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특히 이번 작품발표는 실제 건설을 위한 예비단계 성격을 띠고 있어서 이 전람회를 통해 세상의 주목받을 수 있을지 그렇지 못할지는 대단히 민감한 문제였다.


일기에 의하면 이 작품발표 후 20명 정도의 사람들과 서드 애비뉴 53번가의 술집에 들렀는데, 그 중에는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재스퍼 존스가 끼어 있었다.
그 밖에도 페기 구겐하임, 레오 카스텔리, 그리고 그의 제자 시드니 재니스 등도 있었다.
그들은 키슬러의 작품세계에 공감하는 ‘소수의 이해자’였다.
그들의 열광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고 키슬러는 생각했다.
그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언제나 성공을 실질적으로 계측할 수 있는 것은 대중이나 비평가의 반응을 통해서가 아니라, 동료들로부터 얻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그 같은 일이 일어났다.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3. <엔드리스 하우스> 최종안의 목적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그런데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전시된 <엔드리스 하우스> 최종안은 1950년에 발표된 것보다 복잡한 곡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의 <엔드리스 하우스>는 둥근 빵을 위 아래로 누른 듯한 평평한 타원형이었는데, 이번에는 깨진 달걀껍질을 모아놓은 듯한 형태를 띠고 있다.
또한 실내공간의 활용에 있어서도 첫 번째 것은 기본안을 드로잉으로 보여주는 정도에 머물렀던 데 반해, 이번 작품은 정확한 기본 설계도를 통해 실내공간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키슬러는 최종안의 발표를 통해 <엔드리스 하우스>가 단지 개념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화할 수 있는 주택의 구체적인 제안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다.


최종안을 자세히 검토해보면 대단히 흥미로운 주제에 부딪치게 된다.
“모형이 먼저인가? 도면이 먼저인가?”라는 모형과 도면의 전후관계가 그것이다.
일반적인 건축의 경우 기본적인 구상에 기초한 도면을 근거로 제1차 모형이 제작되는 것이 통례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좀더 구체적인 기본설계에 따라 모형이 제작된다.
다시 말하면 도면이 우선하며 그것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모형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키슬러의 <엔드리스 하우스> 최종안은 분명 모형이 먼저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모형을 살펴보면 그려진 형태의 이미지를 정확하게 재현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컨셉트 드로잉과 같은 수법에 의해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철망을 손으로 구부려가면서 어떤 형태를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그 같은 유동적인 형태를 유추해내는 데는 철망을 구부리는 손의 자발적인 반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3)


키슬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철망을 구부리는 과정 자체가 일종의 ‘공간적 드로잉’과 같은 것으로 형태도 이 과정에서 결정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최종안을 위해 제작된 입체적 형태의 모형은 ‘엔드리스’라는 개념에 입각한 ‘공간적 드로잉’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서 이 모형은 <엔드리스 하우스>의 축척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모형을 확대하면 도면을 제작할 수 있다.
이 도면에 따라 시공하면 되는 것이다. 이같이 <엔드리스 하우스> 최종안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모형과는 다르다.
이 모형은 ‘실체화된 이미지의 핵’이라 불러 마땅하다.
만약 우리 주위에서 이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을 찾는다면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예술작품’이라 부르는 것에 해당한다.


키슬러는 <엔드리스 하우스>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비유했는데, 이것은 단순한 비교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육체와 같이 무한하다. 시작도 끝도 없다.


나의 <엔드리스 하우스>는 예각을 지닌 남성적 건축이라기보다는 감각적인 곡선으로 된 여성의 육체에 가깝다.7


키슬러는 공간을 기능적으로 분석하여 각각의 기능을 다시 모으는 기능주의 건축과는 다른 세계를 추구했다.
그는 인간의 삶을 중심에 두고 미와 관능을 포함하는 인간생활 자체를 위한 공간을 꿈꾸었다.
<엔드리스 하우스>는 조각적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다시 말하면 예술 속의 삶을 추구한 결과물이었다.
주거공간에 관한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엔드리스 하우스>의 중심 테마였던 것이다.


부정형으로 된 <엔드리스 하우스>는 그저 ‘내키는 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인간생활의 스케일에 따라 엄격하게 계산된 구성방식에 따른 것이다.
<엔드리스 하우스>는 건물설계의 일반적인 기준이나 ‘내키는 대로’의 장식적인 취향에 따른 유행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프로세스에 따라 정해진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8


자연은 인간을 창조했다. 예술은 삶을 만들어낸다.
<엔드리스 하우스>에서 산다는 것은 충실한 삶을 영위한다는 것과 같다.
여기서 말하는 충실한 삶이란 단지 먹고 살기 위한 삶이 아니며, 뻔한 사회적 의무를 위한 것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계절의 변화, 자동으로 교대되는 낮과 밤, 또는 대낮의 태양과 한밤중의 달 등과 같이 ‘당연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엔드리스 하우스>는 돈이 많거나 돈이 많은 척하는 사람들의 표준적인 거주지 이상의 것이 될 수도 있고 이하의 것이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산업,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전제로, 먹는 것, 자는 것, 성행위 등 인간의 기본욕구에 주목하면 보다 이하의 것이 될 수도 있다.
<엔드리스 하우스>는 ‘생활’이라는 인간 활동을 돕는 기계적인 수단으로서의 역할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으며, 생산기술에 근거를 두고 유추된 결과물도 아니다.
필요에 따라 그것을 사용할 수는 있으나 산업이 휘두르는 독재의 노예는 결코 아니다.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엔드리스 하우스>에서는 사람들의 출입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엔드리스 하우스>는 산업을 우선으로 진행되고 있는 근대기술문명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디자인된 것이지, 단지 보기 드문 형태를 한 ‘신기한’ 건축을 제안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산업생산기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인간을 위한 기술, 다시 말하면 인간의 본질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기술의 탐구를 목표로 한 것이다.


<엔드리스 하우스>에서는 사람들의 출입, 빛의 유입, 따뜻한 또는 차가운 공기의 유입 등을 단순한 일로 취급하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조작되는 모든 일들은 마치 특별한 의식에서 발생하는 감동과 같은 것을 창출해내는 일종의 이벤트로 취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의 컵 속으로, 물을 데우는 기구 안으로, 당신의 욕조 안에 물을 채우기 위해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흐르게 하는 것 등,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모세가 사막에서 바위를 손으로 만졌을 때와 같이 감동적이어야 한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마술적 힘’의 발현이어야 한다.
따라서 그 모든 것들은 항상 경이로움을 가지고 자만할 수 있을 정도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이벤트여야 한다.
산업이라는 이름의 화원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 있다.
그러나 그것들 전부가 행복한 해프닝에서와 같은 매력과 영감에 호소하는 색과 향을 지닌 것은 아니다.
삶의 활력을 방해할 정도로 자라버린 잡초는 뽑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선별하여 그 밖의 것들을 제거하거나 골라내고 그 자리를 보강할 필요가 있다.10


키슬러는 1936년부터 1942년까지 컬럼비아 대학에 개설된 디자인 상호관련연구소에서 산업사회가 생산해낸 여러 형태의 기계제품과 그 기능에 관한 연구를 했다.
여기서의 연구에 기초하여 인간이 기술적 수단을 빌어 생산한 인공물의 형태학적 진화를 기술한 차트를 작성하기도 했다.
이 차트를 보면 현재의 상황에 충실한 기준이 되는 형태의 탄생을 예측할 수 있다.
결국 용도에 따라 기준형태는 몇 가지 다양성을 지니게 된다.
키슬러는 이것을 ‘표준 타입’이라고 불렀다.
이 단계까지는 기술적 필요성에 의해 형태가 유추된다.
그러나 다음 단계에서 발생하는 ‘모방 타입’은 필연적인 요구에 의해 유추되는 것이 아니다.
그 대부분은 상업적인 목적으로부터 유추된 것으로 이전보다 불필요한 요소가 많아진다.
실제로 우리의 생활환경을 구성하는 거의 대부분의 기술적 생산품은 이 ‘모방 타입’에 해당한다.
주택마저도 산업생산의 대상물이 된 오늘날 키슬러의 논지는 수정 없이 적용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지적한 근대건축의 모순은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우리는 산업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이 가져온 결과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의 진정한 가치와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키슬러는 범인이 그러하듯 이미 우리 생활에 침투되어있는 기술적 성과를 일상적인 것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신에게 부여받은 것이므로 경애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생활은 날이 갈수록 산업기술의 독재 속에 빠져가고 있다.
많은 건축가들이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도시 기술문명의 확장계획에만 주력하고 그것이 인간의 삶과 생활에 진정 필요한 것인지에 관해서는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키슬러의 <엔드리스 하우스>는 그것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와 같이 신비적인 사상이나 초현실적인 이미지의 창출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기계기술문명의 발전과 함께 잊혀져가는 인간적인 생활의 기본조건을 회복시키겠다는 목적을 지닌 것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형태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는 상반되게 현실적인 동시에, 보다 근본적인 목적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지극히 파격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4. <엔드리스 하우스> 최종안의 내용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실제로 건설 가능한 구체적인 기본설계와 함께 발표된 <엔드리스 하우스> 최종안을 통해 우리는 이 주택에서의 생활방식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안의 특징은 ‘엔드리스’ 개념에 입각해 구획된 각체구조의 공간이 용도에 따라 몇 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생활공간으로 설정된 중앙의 커다란 방과 그것을 에워싼 식당과 부엌, 그리고 아이들 방과 침실 등이 그것이다.
이같이 특정 사용목적을 지닌 공간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전체적으로 ‘엔드리스’의 개념에 충실한 공간을 이루고 있다.


<엔드리스 하우스>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출입과 조망, 채광 등을 위해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나같이 상어나 돌고래의 입과 눈을 연상시키는 자유로운 곡선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사각형이나 원형의 것은 하나도 없다.
뿐만 아니라 형태나 크기가 각각 다른 창들이 곡면 위의 여기저기에 위치하고 있다.
이같이 다양한 형태를 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벽면 또는 천장에 반사되는 빛의 조화를 독자들은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태양과 지구의 운동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엔드리스 하우스>가 연출하는 빛과 그림자의 드라마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훌륭한 효과를 낼 것임에 틀림없다.
독자들은 <엔드리스 하우스>의 모형사진을 통해 이 같은 빛과 그림자의 드라마를 일부분이나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조명에 관한 그의 구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구멍으로부터 들어오는 빛을 색유리로 착색하는 방법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벽면 안쪽의 구성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엔드리스 하우스>에서는 실내공간의 광선처리, 프레스코나 유화 등의 배치, 또는 높고 낮은 부조물의 설치 등을 건축물 자체와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건물을 포함하는 모든 것들을 조각품처럼 취급하고 있다. 또한 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엔드리스 하우스>는 마치 식물이 성장하는 것과 같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색과 형태가 성장해야만 한다.
이제 우리는 건축을 생각하면서 미술관 용어 중의 하나인 ‘예술’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중지해야 할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오늘날의 건축은 시대에 뒤져 있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럴 듯한 장식 등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우리가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또 다른 사실은 예술이라는 형식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예술은 다시 한 번 이미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11


현대건축은 기능주의라는 미명 아래 여기저기 콘크리트를 그대로 드러낸 구조물을 세우고, 유리로 된 커튼 벽과 스틸과 알루미늄으로 된 격자구조 틀을 만들어냈다.
현대건축은 장식을 배제한다는 명목으로 예술을 추방하고 짧은 시간에 건축적 구조에 기반을 둔 기능미를 완성시켰다.
언제부터인가 건축은 ‘기능을 고려한 조형성의 추구’라는 본래의 소명을 잊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건축은 제도 기술에 의해 탄생한 기능주의 건축의 결점을 다시 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보충하고자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예술가들은 일단 전문가로 대접받고 있으나, 실제로는 유행의 속성에 타협하는 장식기술자로 전락했다고 볼 수 있다.
굳이 키슬러의 지적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것은 명백한 예술가의 타락이다.
건축은 일시적으로 위기를 넘기는 데 급급해서 스스로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같은 양상이 앞으로도 여전히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엔드리스 하우스> 최종안을 응용한 예가 몇 가지 있다.
두 가지 안을 제시한 마리 시스터를 위한 <엔드리스 하우스> 계획안도 그 중 하나이다.
도면으로 남아 있는 이것은 언뜻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발표된 것과 같은 형태이나, 자세히 보면 세부적인 부분에 약간의 변화가 있다.
또한 설치장소도 커다란 인공호수 가운데의 섬으로 되어 있는데, 이 같은 설정은 후에 논고할 <명상의 동굴>(1963)과 같다.
다른 안은 <엔드리스 하우스> 최종안에서 보여준 길게 연속되어 있는 공간을 짧게 압축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1층에서 3층까지의 상하공간이 연속되는 ‘엔드리스’를 실현하고 있다.
또한 필로티스 양식4)을 채택하고 있어서 <엔드리스 하우스>의 전체 높이는 일반적인 높이보다 훨씬 높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