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엔드리스 하우스>의 발표와 반응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뉴욕 근대미술관이 주최한 ‘환영적 건축전’은 1960년 9월 27일에 개막되었다.
이날은 허버트 메이어가 <엔드리스 하우스>를 완성해달라고 의뢰한 날짜와 일치한다.
이 전람회에 출품된 작품들은 20세기의 건축 프로젝트 중 너무도 혁명적이기 때문에 실제로 건축될 수 없는 것을 30점 이상 모아두고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상적 도시안>은 과거의 선구적인 예로 전시된 것이라 볼 수 있으나, 20세기 초에 제작된 부르노 타우트의 <산 속의 수정궁>, 테오 반 뒤스브르크의 <마천루 군>, 엘 리시츠키의 <니키츠키 관문의 마천루>(1924) 등이 전시되었다.
SF영화의 원조격인 <다가올 세계>의 세트인 헤르만 핀스텔린의 미래도시도 출품작 중 하나라는 사실도 특이하다.
르 코르뷔제는 리오와 아르제의 도시계획안 중 하나인 건물과 도로의 결합안을 출품했으며, 1960년대의 시대적 경향을 대표하는 루이스 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키쿠다케 기요노리, 구로가와 기쇼, 윌리엄 카타볼로스 등의 도시계획안도 포함되었다.
주택안으로 출품된 것으로는 폴 넬슨의 <현가식 주택>과 키슬러의 <엔드리스 하우스>뿐이었다.


키슬러는 우여곡절을 겪은 터라 <엔드리스 하우스>의 발표결과에 대해 조바심을 감추지 못했다.
9월 28일 일기는 다음과 같이 시작되고 있다.


뉴욕 근대미술관의 전람회가 열린 지 하루가 지났다.
어제 나는 ‘불가능한’ 건축 ‘엔드리스’를 물 위에 띄우든, 공중에 매달든, 방법이야 어쨌든 어딘가에 건설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날이었다.
모형이 전시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법 좋은 시작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4


<엔드리스 하우스>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는 코너에는 모형내부를 촬영한 사진 패널이 검은 색 벽면 위에 걸려 있었는데, 마치 전시장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창문을 연상시킨다.
또한 강력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모형은 하늘을 나는 원반이 순항하는 듯이 보인다.
이 모형에는 출입구와 채광 및 조망을 위해 많은 구멍이 뚫려있다.
이 같은 전시방법을 택한 것은 키슬러가 의도한 공간개념인 ‘엔드리스’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같이 철저하게 계산된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엔드리스 하우스>가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 걱정했다.
또한 ‘엔드리스’의 실현을 위해 미국 또는 그 밖의 나라에서 충분한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를 염려했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의문과 희망이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숨바꼭질하는 듯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5
70세에 이른 예술가 키슬러는 아직도 성공한 유명인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특히 이번 작품발표는 실제 건설을 위한 예비단계 성격을 띠고 있어서 이 전람회를 통해 세상의 주목받을 수 있을지 그렇지 못할지는 대단히 민감한 문제였다.


일기에 의하면 이 작품발표 후 20명 정도의 사람들과 서드 애비뉴 53번가의 술집에 들렀는데, 그 중에는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재스퍼 존스가 끼어 있었다.
그 밖에도 페기 구겐하임, 레오 카스텔리, 그리고 그의 제자 시드니 재니스 등도 있었다.
그들은 키슬러의 작품세계에 공감하는 ‘소수의 이해자’였다.
그들의 열광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고 키슬러는 생각했다.
그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언제나 성공을 실질적으로 계측할 수 있는 것은 대중이나 비평가의 반응을 통해서가 아니라, 동료들로부터 얻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그 같은 일이 일어났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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