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슬러의 <엔드리스 하우스> 최종안은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는 이미 ‘월드 하우스’화랑의 ‘신사’와 약속한 바 있으므로 전화를 걸어 아마도 미술관 측에서 ‘월드 하우스’화랑에 <엔드리스 하우스>를 짓는 것을 허락해줄 것인데, 그렇게 되면 당신이 <엔드리스 하우스>를 최초로 소유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신사’는 “프레드! 그게 아냐! 내게 여유자금이 있어서 당신에게 이 같은 기회를 만들고자 청한 것이 아니야. 게다가 나는 당장 급하지 않아. 내게는 지금 집도 있고 아이들도 2년 후에나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엔드리스 하우스>가 필요한 것은 앞으로 2년 후의 일이 될텐데.”2 라고 했다.
키슬러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키슬러는 그해 9월 27일 까지 메이어가 <엔드리스 하우스>의 설계도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작업해온 것이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1960년 4월 22일경이다.
이날 일기에 키슬러는 이것을 운명적인 사건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로부터 약 1개월 후 5월 20일 일기에는 「갑작스러운 결정」이라는 표제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혀 있다.
이날 키슬러는 같은 오스트리아 태생 르네 다르논코트, 뉴욕 근대미술관의 아더 드렉슬러와 점심식사를 하면서 <엔드리스 하우스>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드렉슬러는 2천5백만 달러-이전보다 5백만 달러가 증가되어 있다-가 드는 정원의 새로운 건물 신축공사를 위한 캠페인은 아마도 내년까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정원에 <엔드리스 하우스>를 전시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그렇게 되면 일 년이 채 못 되는 기간밖에 전시할 수 없기 때문에 키슬러는 제안을 거절했다.
드렉슬러는 <엔드리스 하우스>를 건설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결과 새로운 제안을 했다.
신축건물의 지붕 위에 <엔드리스 하우스>를 건설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현재 8층으로 계획된 건물을 2층으로 하고 대신 넓이를 넓혀 정원 전체를 덮는 건물을 짓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엔드리스 하우스>를 건설할 기초를 만드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므로 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키슬러는 “너무 늦다. 어쨌거나 이미 늦었다”라고 대답했다.


드렉슬러는 또 하나의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것은 뉴욕 근대미술관이 9월에 예정하고 있는 ‘환영적 건축전’에 관한 것으로 드렉슬러는 전람회의 출품작 중에서 <엔드리스 하우스>를 대단히 중요한 프로젝트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엔드리스 하우스> 의 한 부분을 1/2축적 모형으로 만들어 전람회장 바닥에서 약 4피트 정도 올리는 것을 계획했다.
그 안으로 들어가는 복도를 만든다면 관객은 집 안을 걸어 다닐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하면 그들은 키슬러의 공간개념을 실제 체험을 통해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드렉슬러의 제안은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또한 다르논코트는 전람회가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기금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것을 계기로 <엔드리스 하우스>가 실제로 건설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키슬러는 그들의 제안을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전시회가 분명히 <엔드리스 하우스>의 건설을 성사시켜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에 배당된 40피트×21피트의 공간은 너무 작은 것이었다.
키슬러는 1923년의 오리지널 플랜과 모형, 그리고 그것을 완성했을 때의 도면을 나열할 계획이었다.
드렉슬러는 키슬러의 지적이 타당하다고 생각해서 “만약 9월 개막일의 3주 전에 이 새로운 소형 모형을 만드는 데 동의한다면 전시장소를 75피트×40피트로 늘려주겠다.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전시가 가능할 것이다. 나아가서 섬세한 조명 시스템을 사용한다면 전체 공간의 크기를 좀더 효과적으로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3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키슬러는 이 제안을 수용하고 즉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키슬러의 <엔드리스 하우스> 최종안은 이 같은 우여곡절을 거쳐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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