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엔드리스 하우스> 최종안의 내용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실제로 건설 가능한 구체적인 기본설계와 함께 발표된 <엔드리스 하우스> 최종안을 통해 우리는 이 주택에서의 생활방식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안의 특징은 ‘엔드리스’ 개념에 입각해 구획된 각체구조의 공간이 용도에 따라 몇 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생활공간으로 설정된 중앙의 커다란 방과 그것을 에워싼 식당과 부엌, 그리고 아이들 방과 침실 등이 그것이다.
이같이 특정 사용목적을 지닌 공간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전체적으로 ‘엔드리스’의 개념에 충실한 공간을 이루고 있다.
<엔드리스 하우스>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출입과 조망, 채광 등을 위해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나같이 상어나 돌고래의 입과 눈을 연상시키는 자유로운 곡선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사각형이나 원형의 것은 하나도 없다.
뿐만 아니라 형태나 크기가 각각 다른 창들이 곡면 위의 여기저기에 위치하고 있다.
이같이 다양한 형태를 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벽면 또는 천장에 반사되는 빛의 조화를 독자들은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태양과 지구의 운동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엔드리스 하우스>가 연출하는 빛과 그림자의 드라마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훌륭한 효과를 낼 것임에 틀림없다.
독자들은 <엔드리스 하우스>의 모형사진을 통해 이 같은 빛과 그림자의 드라마를 일부분이나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조명에 관한 그의 구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구멍으로부터 들어오는 빛을 색유리로 착색하는 방법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벽면 안쪽의 구성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엔드리스 하우스>에서는 실내공간의 광선처리, 프레스코나 유화 등의 배치, 또는 높고 낮은 부조물의 설치 등을 건축물 자체와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건물을 포함하는 모든 것들을 조각품처럼 취급하고 있다. 또한 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엔드리스 하우스>는 마치 식물이 성장하는 것과 같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색과 형태가 성장해야만 한다.
이제 우리는 건축을 생각하면서 미술관 용어 중의 하나인 ‘예술’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중지해야 할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오늘날의 건축은 시대에 뒤져 있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럴 듯한 장식 등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우리가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또 다른 사실은 예술이라는 형식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예술은 다시 한 번 이미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11
현대건축은 기능주의라는 미명 아래 여기저기 콘크리트를 그대로 드러낸 구조물을 세우고, 유리로 된 커튼 벽과 스틸과 알루미늄으로 된 격자구조 틀을 만들어냈다.
현대건축은 장식을 배제한다는 명목으로 예술을 추방하고 짧은 시간에 건축적 구조에 기반을 둔 기능미를 완성시켰다.
언제부터인가 건축은 ‘기능을 고려한 조형성의 추구’라는 본래의 소명을 잊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건축은 제도 기술에 의해 탄생한 기능주의 건축의 결점을 다시 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보충하고자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예술가들은 일단 전문가로 대접받고 있으나, 실제로는 유행의 속성에 타협하는 장식기술자로 전락했다고 볼 수 있다.
굳이 키슬러의 지적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것은 명백한 예술가의 타락이다.
건축은 일시적으로 위기를 넘기는 데 급급해서 스스로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같은 양상이 앞으로도 여전히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엔드리스 하우스> 최종안을 응용한 예가 몇 가지 있다.
두 가지 안을 제시한 마리 시스터를 위한 <엔드리스 하우스> 계획안도 그 중 하나이다.
도면으로 남아 있는 이것은 언뜻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발표된 것과 같은 형태이나, 자세히 보면 세부적인 부분에 약간의 변화가 있다.
또한 설치장소도 커다란 인공호수 가운데의 섬으로 되어 있는데, 이 같은 설정은 후에 논고할 <명상의 동굴>(1963)과 같다.
다른 안은 <엔드리스 하우스> 최종안에서 보여준 길게 연속되어 있는 공간을 짧게 압축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1층에서 3층까지의 상하공간이 연속되는 ‘엔드리스’를 실현하고 있다.
또한 필로티스 양식4)을 채택하고 있어서 <엔드리스 하우스>의 전체 높이는 일반적인 높이보다 훨씬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