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리스 하우스>에서는 사람들의 출입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엔드리스 하우스>는 산업을 우선으로 진행되고 있는 근대기술문명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디자인된 것이지, 단지 보기 드문 형태를 한 ‘신기한’ 건축을 제안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산업생산기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인간을 위한 기술, 다시 말하면 인간의 본질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기술의 탐구를 목표로 한 것이다.


<엔드리스 하우스>에서는 사람들의 출입, 빛의 유입, 따뜻한 또는 차가운 공기의 유입 등을 단순한 일로 취급하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조작되는 모든 일들은 마치 특별한 의식에서 발생하는 감동과 같은 것을 창출해내는 일종의 이벤트로 취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의 컵 속으로, 물을 데우는 기구 안으로, 당신의 욕조 안에 물을 채우기 위해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흐르게 하는 것 등,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모세가 사막에서 바위를 손으로 만졌을 때와 같이 감동적이어야 한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마술적 힘’의 발현이어야 한다.
따라서 그 모든 것들은 항상 경이로움을 가지고 자만할 수 있을 정도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이벤트여야 한다.
산업이라는 이름의 화원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 있다.
그러나 그것들 전부가 행복한 해프닝에서와 같은 매력과 영감에 호소하는 색과 향을 지닌 것은 아니다.
삶의 활력을 방해할 정도로 자라버린 잡초는 뽑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선별하여 그 밖의 것들을 제거하거나 골라내고 그 자리를 보강할 필요가 있다.10


키슬러는 1936년부터 1942년까지 컬럼비아 대학에 개설된 디자인 상호관련연구소에서 산업사회가 생산해낸 여러 형태의 기계제품과 그 기능에 관한 연구를 했다.
여기서의 연구에 기초하여 인간이 기술적 수단을 빌어 생산한 인공물의 형태학적 진화를 기술한 차트를 작성하기도 했다.
이 차트를 보면 현재의 상황에 충실한 기준이 되는 형태의 탄생을 예측할 수 있다.
결국 용도에 따라 기준형태는 몇 가지 다양성을 지니게 된다.
키슬러는 이것을 ‘표준 타입’이라고 불렀다.
이 단계까지는 기술적 필요성에 의해 형태가 유추된다.
그러나 다음 단계에서 발생하는 ‘모방 타입’은 필연적인 요구에 의해 유추되는 것이 아니다.
그 대부분은 상업적인 목적으로부터 유추된 것으로 이전보다 불필요한 요소가 많아진다.
실제로 우리의 생활환경을 구성하는 거의 대부분의 기술적 생산품은 이 ‘모방 타입’에 해당한다.
주택마저도 산업생산의 대상물이 된 오늘날 키슬러의 논지는 수정 없이 적용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지적한 근대건축의 모순은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우리는 산업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이 가져온 결과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의 진정한 가치와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키슬러는 범인이 그러하듯 이미 우리 생활에 침투되어있는 기술적 성과를 일상적인 것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신에게 부여받은 것이므로 경애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생활은 날이 갈수록 산업기술의 독재 속에 빠져가고 있다.
많은 건축가들이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도시 기술문명의 확장계획에만 주력하고 그것이 인간의 삶과 생활에 진정 필요한 것인지에 관해서는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키슬러의 <엔드리스 하우스>는 그것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와 같이 신비적인 사상이나 초현실적인 이미지의 창출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기계기술문명의 발전과 함께 잊혀져가는 인간적인 생활의 기본조건을 회복시키겠다는 목적을 지닌 것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형태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는 상반되게 현실적인 동시에, 보다 근본적인 목적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지극히 파격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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