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환경과 유전(遺傳)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는 언제나 건축을 3개의 원칙이 복합된 것으로 인식했다.
앞장에서 소개한 사회성, 기술성, 구조성의 원칙이 그것이다.
반대로 르 코르뷔제, 미스 반 데어 로에, J. P. 아우트 등 많은 건축가들은 하나같이 건축을 ‘주택’개념으로부터 생각했다.
그들은 키슬러와는 달리 일가족 단위의 주택 또는 그것들의 집합을 발상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들의 건축은 하나의 통일된 건축상의 도그마(dogma)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나아가서 과학적 사고가 전제된 건축도 아니었다.
하물며 바이오테크닉에 이르기까지를 고려한 건축은 없었다고 키슬러는 말하고 있다.


키슬러는 기존의 기능주의에 대한 비판은 물론 통일된 이론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원칙을 주장했다.
키슬러는 많은 건축을 짓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그를 만족시킬 만한 건축 프로젝트가 없었다.
이런저런 조건들이 아직 미흡했던 것이다.9)
일반인들은 물론 전문가들조차도 르 코르뷔제의 건축과 같은 근대기능주의 건축이야말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명확한 해결방법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키슬러는 근대건축이 지니고 있는 결함에 주목했다.
상호현실주의는 건축을 단지 특정 대상물로 인식하는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탈피를 의도한 결과 체계화된 이론이다.


키슬러는 「상호현실주의과 바이오테크닉에 관하여」(Architectural Record, 1939, Sep)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난 역사상 끊임없이 계속되어왔던 건축의 위기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모든 힘의 핵으로 인식하는 과학적 사고방식의 결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과학적 논리의 세부적인 내용에 이르기까지 건축디자인 분야를 위해 응용 가능하도록 발전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각각의 요소가 지나치게 전문화하여 상호간에 균형을 유지하지 못한 채 단지 제품들의 집합체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아마 과학적 논리만이 이 같은 혼돈상태로부터 예술과 기술과 경제를 통합하는 건축을 실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이것으로 건축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적절한 구성력을 갖추게 될 수 있다.


오늘날 무수히 많은 종류의 전문화된 과학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들의 근저에 깔려 있는 각각의 기초를 연결하는 일반법칙을 발견해낼 필요가 있다.
종교나 철학과 같은 형이상학적 시점이 아니라 에너지의 다이나미즘에 사고의 중심을 두고 공식화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건축디자인의 일반법칙을 공식화해야 한다는 과제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상의 두 가지 과제는 서로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건축분야에서도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제과학에 대한 기초적 이해 없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여기서 근대과학의 몇 가지 개념을 요약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검색해야 한다.4


키슬러는 건축에 대한 구체적인 논고 이전에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명확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과 관련되는 환경을 ‘인간환경(H)’, ‘자연환경(N)’, ‘기술환경(T)’으로 나누고, ‘인간-유전(M)’을 중심으로 앞의 3가지 환경이 상호간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세 가지 구성요소가 연속되는 상호작용 속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는 자연과 기술의 대립은 있을 수 없으며, 기술과 인간도 마찬가지다.
서로 대립하기보다는 각각이 서로 간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키슬러는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디자인론을 전개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키슬러는 인간을 ‘집적된 힘의 핵’으로 인식했다.
여기서 말하는 힘이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임과 동시에 ‘인간에 의한 움직임’을 말한다.
힘이란 에너지를 지칭하는 것이다. 인간은 에너지의 핵으로 존재한다.
키슬러는 ‘주택’을 인간의 에너지 방출 및 충전의 장(場)으로 인식했다.
주택과 인간의 관계를 이 같은 에너지의 상호작용을 통해 파악하고자 했다.
그의 이론은 일반적인 경우와 같이 건축기술에 대한 연구나 양식적 제안으로부터 파생된 것이 아니다.
그가 상호현실주의과 바이오테크닉을 과학적 사고체계 속에 위치시킨 것도 이상과 같은 독자적인 원리에 사고의 출발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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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호간에 작용하는 두 가지 힘의 카테고리’를 키슬러는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는 현실적인 문제와 형식적인 문제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우선 ‘물질’과 ‘현실’이라는 개념을 설정하여 각각의 상이점을 지적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환경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상호관계(correlation)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생물학에서는 유기체 사이의 상호의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선 모든 생명체에게 제일 먼저 요구되는 것은 적정한 음식물, 거주공간의 문제, 재생산, 유해한 힘으로부터의 방위 등인데, 생명이란 이 같은 일차적인 필요성을 충족하기 위한 개체들 간의, 또는 종(種)과 종간의 협력과 배제 그리고 투쟁의 표현이다.


이 같은 활동적인 힘이 눈에 보이는 형태를 취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물질’이라고 부르는데, 이것들은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현실’이 이같이 표면적으로 해석되는 이유는 우주에 작용하는 힘과 그 관련에 대해서 생각하기에는 인간의 감각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질’이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물질’이 곧 ‘현실’이라고 한다면 생명은 정적(靜的)인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형식’이라고 부르는 것은-그것이 자연의 것이든, 인공의 것이든-완만한 속도로 서로의 힘이 통합과 붕괴를 반복하는 가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은 가시적 또는 비가시적인 형태로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는 힘의 두 가지 카테고리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상호작용에 의한 힘의 교환을 나는 ‘상호현실(co-reality)’이라고 부르고, 상호관련성의 법칙에 관한 과학을 ‘상호현실주의(Correalism)’라고 부르고자 한다.
상호현실주의는 인간, 자연환경, 기술환경 사이에 작용하는 연속적인 상호작용의 다이나미즘을 나타내는 용어이다.5


여기서 말하는 ‘상호간에 작용하는 두 가지 힘의 카테고리’를 키슬러는 생물학에서 말하는 ‘유전’과 ‘환경’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자 했다.
물론 인간은 일반적인 생물과는 달라서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세 가지 형태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생물학 일반과는 구별된다.


키슬러의 이론 중에는 생물학의 개념을 응용한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이론을 생태학(ecology) 분야에 귀속시킬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는 기술환경의 의미를 보다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건축은 여기에서 말하는 기술환경의 하나이다.
나아가서 그는 생물학에서 말하는 유전개념을 확대해서 세 가지 환경에 대응하는 세 가지 유전의 의미를 검토하고 있다.
자연적 유전, 사회적 유전, 기술적 유전이 그것이다.


생물학에서는 힘의 두 가지 카테고리를 ‘유전’과 ‘환경’으로 양분한다.
인간은 유전과 환경의 상위개념인 저항할 수 없는 힘의 영향력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인간은 기술적 환경을 창출하고, 종(種)으로서의 인간에게 부여된 짧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육체적 존재를 유지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볼 때 자손을 위해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실천하기 어려웠다.
자손들은 하나같이 자연에의 적응방법을 새롭게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일반에게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부모가 습득한 특성이나 습관은 생식(生殖)을 통해서 자손들에게 전달시키기 위한 신체세포의 형태로 변형되는 일이 없는 것이다.


‘자연’은 안정된 유전자를 태아의 세포에 부여함으로써 그것이 어떤 목적을 지니든지 그 목적에 근본적으로 간섭하고자 하는 세력으로부터 방어해왔다.
태아에게 부여된 ‘밀봉된 명령’에는 자연의 의사가 포함되어 있어서 인간은 자신의 생명이 유지되는 범위 내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뿐 그 한계를 넘을 수는 없다.
따라서 기술적 환경을 창출하는 역할을 하는 디자이너는 자신이 대단히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대로 기술적 환경은 한 사람의 일생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적 환경은 인간을 방어하는 메카니즘의 한 부분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후대에 계승시킬 수 있는 인간의 경험은 훈련과 교육에 의한 관습과 습관이다.
따라서 ‘사회적 유전’만이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다.
모든 생명체가 긴 세월에 걸친 연쇄를 거쳐 스스로의 종(種)을 변형시키는 것과 같이, 인간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 또는 과거의 이데올로기나 그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변형시켜야만 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의자는 지친 몸을 쉬게 하기 위해 그 동안 인간이 만들어낸 많은 도구의 역사로부터 발생된 것이다.
이것이 교육을 통해서 전승되는 기술적 유전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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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술환경과 도구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에게 ‘환경’은 지리적인 것과 동물적인 것이 있다.
그런데 인간은 기술환경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술환경과 인간이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다시 말하면 기술환경이 인간에게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대하여 연구하는 학문은 없다.
키슬러는 이 같은 연구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디자인에 관한 새로운 이론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 오늘날의 현실을 개탄할 필요는 없다.
중세의 과학자들이 말(馬)이 벌새를 낳고, 나귀는 벌새의 변종을 낳고, 치즈는 쥐(鼠)를 낳는다고 생각했던 것과 같이 현대인은 산업이 기술환경을 탄생시켰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기술환경은 인간의 요구, 즉 절대적인 요구와 모방적인 요구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기술환경이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보다 잘 제어하기 위하여 개발한 ‘도구’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나는 ‘도구’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여기에는 나름대로의 의도가 있다.
일반적으로 ‘도구’와 ‘기계’의 차이는 그것을 조작하는 힘이 인력(人力)인지 주변 환경에 존재하는 힘-자연에 존재하는 물을 이용한 인공의 전기 등-인지에 따라 구별된다.
그러나 기술 분야에 따라 각양각색인 ‘도구’의 차이점에 주목하기보다는, 기술적 발전 전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나는 ‘도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자 한다.
‘도구란 자연의 힘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인간이 창조한 모든 수단’이라고. 나는 ‘기계’보다는 ‘도구’라는 단어가 좀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도구’ 개념은 기계가 탄생했던 시점으로 우리들을 인도해준다.
이것으로 보다 높은 생산성을 성취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시킨다는 애초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 같은 입장에서라면 인간의 생존경쟁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 다시 말하면 인공적인 기술환경의 일부-셔츠에서 피난소까지, 대포에서 시(詩)까지, 전화에서 회화까지-가 ‘도구’로 인식될 수 있다.
또한 어떠한 ‘도구’도 단독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모든 기술적 발안(發案)은 ‘현실과 함께(co-real)’하는 것이다.7


이상의 설명보다 키슬러가 말하는 ‘도구’의 개념정의는 훨씬 더 폭이 넓다.
그는 ‘도구’의 발전 형태에 유전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발전 형태에 따라 나타나는 ‘도구’의 타입에는 어떤 원칙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같은 ‘도구’에 관한 질적 고찰은 그가 1936년부터 지도한 ‘디자인 상호관련 연구소’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는 디자인 상호현실주의 연구소에서의 연구결과를 차트로 정리했다.
여기서는 칼(刀)이라는 도구가 대상으로 선택되었다.
기술환경은 인간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며, 유전의 법칙에 따라 기술은 발전한다.
특히 산업생산 시스템 하에서 생산된 ‘도구’를 3가지 타입으로 분류하여 생각했다.


표준 타입:절대적인 요구에 의해 전개된다.

변종 타입:보조적인 수단을 위해 표준 타입으로부터 진화한다.

모방 타입:앞의 두 가지 타입으로부터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파생된다.
이것은 앞의 두 가지 타입 보다 훨씬 더 큰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재료사용상의 효율 결여 및 디자인 또는 사용된 재료가 변경되었다는 점에서 표준 타입 및 변종 타입과는 구별된다.


이상의 3가지 타입은 각각 나름대로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표준 타입은 과학적 지식으로부터 생성된다.
변종 타입은 표준 타입으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어떤 조건에 의해 자연스럽게 파생된 것이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타당성을 찾아볼 수 있다.
모방 타입은 우연히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사회 환경에 대한 무지의 산물이다.
모방 타입은 다른 것들보다 넓게 퍼져 있으며, 단기간에 소멸되므로 교체가 빠르다.
그 결과 에너지의 분산이 진행되어 새로운 표준타입의 출현 시기를 늦추거나, 표준 타입이 보다 효율적인 레벨에 도달하는 시기를 늦출 정도의 파괴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인간의 기본적인 요구를 충족시킨다는 의미에서라도 모방 타입을 제거하고, 변종 타입을 바꾸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산업화 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재조정은 모방 타입을 만들어내고 있는 (인력 및 기계적인 힘을 포함하는) 모든 힘을 표준 타입과 변종 타입의 영역에 흡수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생산성이 증가될 것이다.8


도구와 기계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다.
윌리엄 모리스가 기계기술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수공업을 통해 실천가능한 공예의 부활을 주장했었던 것도 기계제품의 질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바우하우스에서 그로피우스가 기술직(craft)을 중요시한 것도 산업사회에서 생산된 제품의 질을 높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작업에 의한 제품이라고 해서 전부 질이 좋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질의 문제를 단순히 파악해서 어떤 제품이 기계에 의한 것인지 수작업에 의한 것인지, 다시 말하면 기계 제작인지 도구 제작인지를 따진다고 해도 산업사회가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답도 얻을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도 현실을 직시하는 키슬러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키슬러는 기계와 도구를 단지 대상물로 인식하는 수준에서는 그것으로부터 파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날이 변화하는 산업사회에서 경제적인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생산된 모든 제품이 인간과 환경 속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에 주목했다.
키슬러가 분류한 세 가지 타입은 제품을 만들어낸 수단의 문제, 다시 말하면 기계생산인지 수작업인지와는 무관한 것이다.
또한 전기스탠드에서부터 건축물까지 3가지 타입 중에 어느 하나의 그룹에 분류 가능하다.
여기서 문제는 어떤 대상물이 어느 타입에 속하는가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과, 모방 타입 제품을 가능한 한 표준 타입과 변종 타입으로 흡수시킬 수 있는 방법론의 탐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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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요구의 진화’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는 이 같은 방법론을 “기술환경에서 발생하는 ‘요구의 진화’에 관한 차트”를 통해 요약 정리하고 있다.
이 차트에서 키슬러는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여 기술환경을 만들어낸 원인을 인간의 생존에 대한 요구와 관련된다고 전제하고, 그 같은 요구가 사회적으로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는가를 점검하고자 했다.
키슬러는 그 같은 요구가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진화과정의 하나로 파악했다.
그는 그것을 ‘요구의 진화’라고 불렀다.


인간은 ‘자연에 준하는 것(장치)’에 방어와 공격을 위한 인공적인 장치를 첨가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므로 ‘도구’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높은 생산성에 대한 인간의 선천적인 욕망이 그 같은 물질적 표현을 발견하게 한 것이다.


이같이 인간은 도구의 세계를 구축했다.
이윽고 구축된 도구의 세계로부터 우리가 기술환경이라고 부르는, 이른바 ‘인간이 만들어낸 상호관련성을 지닌 복합체의 집단’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기술환경의 카오스적인 상황을 수정하기 위해서라도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기원으로부터 본 그것의 본성은 무엇인가?
요구는 무엇인가?
그것은 어떠한 형태로 일어나는가?
요구란 자연의 것인가, 인공의 것인가?
그것은 정적인 것인가, 진화하는 동적인 것인가?
요구에 대한 정의는 오늘날과 같은 기술환경 아래의 디자이너에게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이다.
이 같은 난제에 관한 고찰은 건축에 관한 연구가 아니라 인간에 관한 연구에 기초하여 행해져야 한다.9


모든 과학은 인간에게 결핍된-마치 나뭇가지처럼 분류된-여러 가지 상황에 대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인간의 창조성은 언제나 결핍에서 효율로 향한다.
이 같은 발전적 순환은 하나의 생활기준으로부터 또 다른 생활기준으로의 상승되는 현상을 반복하면서 단계적으로 나타난다.10


“기술환경에서 발생하는 ‘요구의 진화’에 관한 차트”는 과거의 기준으로부터 현재의 기준으로, 그리고 현재의 기준으로부터 새로운 기준의 디자인으로의 이행을 전제로 ‘요구의 진화’를 단계적으로 설정한 것이다.
키슬러는 이것을 13단계로 나누어 생각했다.


⑴ 현재의 기준.

⑵ 기준이 흡수된다.

⑶ 흡수는 무효력(無效力)을 낳는다.

⑷ 무효력은 관찰을 유도한다.

⑸ 관찰은 발견을 유도한다.

⑹ 발견은 발명을 유도한다.

⑺ 발명은 저항에 부딪친다.

⑻ 저항은 ‘계획적 요구’를 유도한다.

⑼ 계획적 요구는 소규모의 생산을 유도한다.

⑽ 소규모의 생산은 생산을 촉진시킨다.

⑾ 생산의 촉진은 대량생산을 유도한다.

⑿ 대량생산은 요구를 낳는다.

⒀ 절대적인 요구는 새로운 기준이 된다.


이상과 같은 단계를 거쳐 요구가 진화해간다.
하나의 단계를 거치면 다시 다음 단계가 시작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요구의 진화’가 발생한다.
키슬러는 이 같은 진화는 인간내부의 구조와 인간을 에워싼 환경의 핵심적인 성질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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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슬러는 인간이 만든 도구와 인간의 관계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물체의 라이프사이클은 오늘날에도 커다란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S. 샤마이에프와 C. 알렉산더의 공동연구 「커뮤니티와 프라이버시」는 도시를 중심으로 이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연구에는 렌베르그 홀름과 데오토르 라송이 작성한 차트가 실려 있다.
이것을 보면 물체의 일생은 새로운 문제가 새로운 형태를 원했을 때 시작되며, 결국에는 같은 일에 한층 적합한 그 밖의 물체가 등장하면서 수명을 다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이 같은 사이클을 연구, 디자인, 생산, 판매, 이용, 파기 등 6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샤마이에프와 알렉산더는 도시를 형태학적 위계(hierarchie)10)로 보고자 했다.
이 같은 발상은 그들의 책에서 인용되고 있는 L. F. 베르탈랑피의 다음과 같은 사상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유기체가 형태학적 위계의 제 단계에 대응하는지 하지 않는지는 따지지 않더라도, 많은 위계가 상호간에 얽혀있는 하나의 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상태가 유기체라고 할 수 있다는 정도의 언급은 가능할 것이다.11


그들은 인간의 거주공간을 환경 속에 존재하는 유기체의 일부로 파악하고, 제어를 위한 위계, 기술적 위계, 퇴폐적 위계, 접속을 위한 위계 등에 의해 도시환경과 거주공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논리화하고 있다.
여기에 키슬러의 “기술환경에서 발생하는 ‘요구의 진화’에 관한 차트”가 소개되고 있다.


키슬러는 인간이 만든 도구와 인간의 관계를 ‘건강’이라는 개념을 빌어 상호 관련시키고자 했다.
다시 말하면 기술로 환경을 컨트롤하여 건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건강’이란 육체와 마음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그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도구가 지니고 있는 힘에 의해 비활성화 되어 있는 인간의 신체가 다시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피로로 인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모든 기술환경의 유효성을 측정하는 공통분모는 인간의 건강이어야 한다.
엄밀하면서도 포괄적인 기준을 잣대로 인간의 건강을 측정한다면 기술은 인간의 에너지를 유지시키기 위한 가장 강력한 요소가 될 것이다.12


신체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신체가 내적 또는 외적 환경의 어떤 부분에 부적합하다는 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 같은 부적합한 요소를 피로로부터 보호(또는 예방)하고 어떻게 그것을 제거(또는 치료)하는가에 기술환경의 사활이 걸려 있다.


불행하게도 지난 역사상 기술환경이 꼭 인간의 건강에 공헌했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여기서 기술환경을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킬 것인가가 제2의 문제로 부각된다.
‘산업을 위한 산업’은 ‘예술을 위한 예술’보다 나쁘다.
따라서 기술적 생산방향을 컨트롤 할 필요가 있다.
한편 ‘환경 컨트롤’이란 무엇인가?
만약 컨트롤 수단이 환경의 일부라고 한다면 ‘환경에 의한 환경의 컨트롤’이라는 의미를 띠게 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환경이 자연, 인간, 기술이라는 3중 구조로 상호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그 의미가 좀더 명확해진다.
다시 말하면 ‘환경 컨트롤’이란 기술환경을 통해서 자연환경과 인간의 환경을 컨트롤하는 것을 말한다.13


결국 환경을 컨트롤한다는 것은 곧 건강을 컨트롤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환경의 건강을 컨트롤한다는 것은 인간과 사회의 건강을 환경을 통해 컨트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약하자면 ‘환경의 기술적 컨트롤’ 또는 ‘기술을 통한 환경의 컨트롤’이라는 말이 된다.14


키슬러는 이같은 견해를 건축에 적용했다.


건축은 인간의 심신을 얼마만큼 편안하게 유지 또는 확보시켜주느냐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건축은 인간의 건강을 저하시키는 요인과 재생력을 컨트롤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중략)
이 같은 인식이 확산된다면 건축이 리듬의 미, 재료의 병치, 현대적인 스타일 등에 주안점을 두고 평가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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