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슬러는 인간이 만든 도구와 인간의 관계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물체의 라이프사이클은 오늘날에도 커다란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S. 샤마이에프와 C. 알렉산더의 공동연구 「커뮤니티와 프라이버시」는 도시를 중심으로 이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연구에는 렌베르그 홀름과 데오토르 라송이 작성한 차트가 실려 있다.
이것을 보면 물체의 일생은 새로운 문제가 새로운 형태를 원했을 때 시작되며, 결국에는 같은 일에 한층 적합한 그 밖의 물체가 등장하면서 수명을 다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이 같은 사이클을 연구, 디자인, 생산, 판매, 이용, 파기 등 6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샤마이에프와 알렉산더는 도시를 형태학적 위계(hierarchie)10)로 보고자 했다.
이 같은 발상은 그들의 책에서 인용되고 있는 L. F. 베르탈랑피의 다음과 같은 사상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유기체가 형태학적 위계의 제 단계에 대응하는지 하지 않는지는 따지지 않더라도, 많은 위계가 상호간에 얽혀있는 하나의 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상태가 유기체라고 할 수 있다는 정도의 언급은 가능할 것이다.11
그들은 인간의 거주공간을 환경 속에 존재하는 유기체의 일부로 파악하고, 제어를 위한 위계, 기술적 위계, 퇴폐적 위계, 접속을 위한 위계 등에 의해 도시환경과 거주공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논리화하고 있다.
여기에 키슬러의 “기술환경에서 발생하는 ‘요구의 진화’에 관한 차트”가 소개되고 있다.
키슬러는 인간이 만든 도구와 인간의 관계를 ‘건강’이라는 개념을 빌어 상호 관련시키고자 했다.
다시 말하면 기술로 환경을 컨트롤하여 건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건강’이란 육체와 마음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그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도구가 지니고 있는 힘에 의해 비활성화 되어 있는 인간의 신체가 다시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피로로 인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모든 기술환경의 유효성을 측정하는 공통분모는 인간의 건강이어야 한다.
엄밀하면서도 포괄적인 기준을 잣대로 인간의 건강을 측정한다면 기술은 인간의 에너지를 유지시키기 위한 가장 강력한 요소가 될 것이다.12
신체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신체가 내적 또는 외적 환경의 어떤 부분에 부적합하다는 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 같은 부적합한 요소를 피로로부터 보호(또는 예방)하고 어떻게 그것을 제거(또는 치료)하는가에 기술환경의 사활이 걸려 있다.
불행하게도 지난 역사상 기술환경이 꼭 인간의 건강에 공헌했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여기서 기술환경을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킬 것인가가 제2의 문제로 부각된다.
‘산업을 위한 산업’은 ‘예술을 위한 예술’보다 나쁘다.
따라서 기술적 생산방향을 컨트롤 할 필요가 있다.
한편 ‘환경 컨트롤’이란 무엇인가?
만약 컨트롤 수단이 환경의 일부라고 한다면 ‘환경에 의한 환경의 컨트롤’이라는 의미를 띠게 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환경이 자연, 인간, 기술이라는 3중 구조로 상호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그 의미가 좀더 명확해진다.
다시 말하면 ‘환경 컨트롤’이란 기술환경을 통해서 자연환경과 인간의 환경을 컨트롤하는 것을 말한다.13
결국 환경을 컨트롤한다는 것은 곧 건강을 컨트롤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환경의 건강을 컨트롤한다는 것은 인간과 사회의 건강을 환경을 통해 컨트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약하자면 ‘환경의 기술적 컨트롤’ 또는 ‘기술을 통한 환경의 컨트롤’이라는 말이 된다.14
키슬러는 이같은 견해를 건축에 적용했다.
건축은 인간의 심신을 얼마만큼 편안하게 유지 또는 확보시켜주느냐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건축은 인간의 건강을 저하시키는 요인과 재생력을 컨트롤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중략)
이 같은 인식이 확산된다면 건축이 리듬의 미, 재료의 병치, 현대적인 스타일 등에 주안점을 두고 평가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