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간에 작용하는 두 가지 힘의 카테고리’를 키슬러는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는 현실적인 문제와 형식적인 문제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우선 ‘물질’과 ‘현실’이라는 개념을 설정하여 각각의 상이점을 지적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환경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상호관계(correlation)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생물학에서는 유기체 사이의 상호의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선 모든 생명체에게 제일 먼저 요구되는 것은 적정한 음식물, 거주공간의 문제, 재생산, 유해한 힘으로부터의 방위 등인데, 생명이란 이 같은 일차적인 필요성을 충족하기 위한 개체들 간의, 또는 종(種)과 종간의 협력과 배제 그리고 투쟁의 표현이다.
이 같은 활동적인 힘이 눈에 보이는 형태를 취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물질’이라고 부르는데, 이것들은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현실’이 이같이 표면적으로 해석되는 이유는 우주에 작용하는 힘과 그 관련에 대해서 생각하기에는 인간의 감각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질’이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물질’이 곧 ‘현실’이라고 한다면 생명은 정적(靜的)인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형식’이라고 부르는 것은-그것이 자연의 것이든, 인공의 것이든-완만한 속도로 서로의 힘이 통합과 붕괴를 반복하는 가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은 가시적 또는 비가시적인 형태로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는 힘의 두 가지 카테고리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상호작용에 의한 힘의 교환을 나는 ‘상호현실(co-reality)’이라고 부르고, 상호관련성의 법칙에 관한 과학을 ‘상호현실주의(Correalism)’라고 부르고자 한다.
상호현실주의는 인간, 자연환경, 기술환경 사이에 작용하는 연속적인 상호작용의 다이나미즘을 나타내는 용어이다.5
여기서 말하는 ‘상호간에 작용하는 두 가지 힘의 카테고리’를 키슬러는 생물학에서 말하는 ‘유전’과 ‘환경’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자 했다.
물론 인간은 일반적인 생물과는 달라서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세 가지 형태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생물학 일반과는 구별된다.
키슬러의 이론 중에는 생물학의 개념을 응용한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이론을 생태학(ecology) 분야에 귀속시킬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는 기술환경의 의미를 보다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건축은 여기에서 말하는 기술환경의 하나이다.
나아가서 그는 생물학에서 말하는 유전개념을 확대해서 세 가지 환경에 대응하는 세 가지 유전의 의미를 검토하고 있다.
자연적 유전, 사회적 유전, 기술적 유전이 그것이다.
생물학에서는 힘의 두 가지 카테고리를 ‘유전’과 ‘환경’으로 양분한다.
인간은 유전과 환경의 상위개념인 저항할 수 없는 힘의 영향력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인간은 기술적 환경을 창출하고, 종(種)으로서의 인간에게 부여된 짧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육체적 존재를 유지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볼 때 자손을 위해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실천하기 어려웠다.
자손들은 하나같이 자연에의 적응방법을 새롭게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일반에게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부모가 습득한 특성이나 습관은 생식(生殖)을 통해서 자손들에게 전달시키기 위한 신체세포의 형태로 변형되는 일이 없는 것이다.
‘자연’은 안정된 유전자를 태아의 세포에 부여함으로써 그것이 어떤 목적을 지니든지 그 목적에 근본적으로 간섭하고자 하는 세력으로부터 방어해왔다.
태아에게 부여된 ‘밀봉된 명령’에는 자연의 의사가 포함되어 있어서 인간은 자신의 생명이 유지되는 범위 내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뿐 그 한계를 넘을 수는 없다.
따라서 기술적 환경을 창출하는 역할을 하는 디자이너는 자신이 대단히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대로 기술적 환경은 한 사람의 일생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적 환경은 인간을 방어하는 메카니즘의 한 부분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후대에 계승시킬 수 있는 인간의 경험은 훈련과 교육에 의한 관습과 습관이다.
따라서 ‘사회적 유전’만이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다.
모든 생명체가 긴 세월에 걸친 연쇄를 거쳐 스스로의 종(種)을 변형시키는 것과 같이, 인간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 또는 과거의 이데올로기나 그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변형시켜야만 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의자는 지친 몸을 쉬게 하기 위해 그 동안 인간이 만들어낸 많은 도구의 역사로부터 발생된 것이다.
이것이 교육을 통해서 전승되는 기술적 유전이다.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