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환경과 유전(遺傳)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는 언제나 건축을 3개의 원칙이 복합된 것으로 인식했다.
앞장에서 소개한 사회성, 기술성, 구조성의 원칙이 그것이다.
반대로 르 코르뷔제, 미스 반 데어 로에, J. P. 아우트 등 많은 건축가들은 하나같이 건축을 ‘주택’개념으로부터 생각했다.
그들은 키슬러와는 달리 일가족 단위의 주택 또는 그것들의 집합을 발상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들의 건축은 하나의 통일된 건축상의 도그마(dogma)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나아가서 과학적 사고가 전제된 건축도 아니었다.
하물며 바이오테크닉에 이르기까지를 고려한 건축은 없었다고 키슬러는 말하고 있다.


키슬러는 기존의 기능주의에 대한 비판은 물론 통일된 이론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원칙을 주장했다.
키슬러는 많은 건축을 짓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그를 만족시킬 만한 건축 프로젝트가 없었다.
이런저런 조건들이 아직 미흡했던 것이다.9)
일반인들은 물론 전문가들조차도 르 코르뷔제의 건축과 같은 근대기능주의 건축이야말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명확한 해결방법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키슬러는 근대건축이 지니고 있는 결함에 주목했다.
상호현실주의는 건축을 단지 특정 대상물로 인식하는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탈피를 의도한 결과 체계화된 이론이다.


키슬러는 「상호현실주의과 바이오테크닉에 관하여」(Architectural Record, 1939, Sep)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난 역사상 끊임없이 계속되어왔던 건축의 위기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모든 힘의 핵으로 인식하는 과학적 사고방식의 결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과학적 논리의 세부적인 내용에 이르기까지 건축디자인 분야를 위해 응용 가능하도록 발전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각각의 요소가 지나치게 전문화하여 상호간에 균형을 유지하지 못한 채 단지 제품들의 집합체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아마 과학적 논리만이 이 같은 혼돈상태로부터 예술과 기술과 경제를 통합하는 건축을 실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이것으로 건축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적절한 구성력을 갖추게 될 수 있다.


오늘날 무수히 많은 종류의 전문화된 과학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들의 근저에 깔려 있는 각각의 기초를 연결하는 일반법칙을 발견해낼 필요가 있다.
종교나 철학과 같은 형이상학적 시점이 아니라 에너지의 다이나미즘에 사고의 중심을 두고 공식화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건축디자인의 일반법칙을 공식화해야 한다는 과제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상의 두 가지 과제는 서로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건축분야에서도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제과학에 대한 기초적 이해 없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여기서 근대과학의 몇 가지 개념을 요약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검색해야 한다.4


키슬러는 건축에 대한 구체적인 논고 이전에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명확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과 관련되는 환경을 ‘인간환경(H)’, ‘자연환경(N)’, ‘기술환경(T)’으로 나누고, ‘인간-유전(M)’을 중심으로 앞의 3가지 환경이 상호간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세 가지 구성요소가 연속되는 상호작용 속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는 자연과 기술의 대립은 있을 수 없으며, 기술과 인간도 마찬가지다.
서로 대립하기보다는 각각이 서로 간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키슬러는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디자인론을 전개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키슬러는 인간을 ‘집적된 힘의 핵’으로 인식했다.
여기서 말하는 힘이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임과 동시에 ‘인간에 의한 움직임’을 말한다.
힘이란 에너지를 지칭하는 것이다. 인간은 에너지의 핵으로 존재한다.
키슬러는 ‘주택’을 인간의 에너지 방출 및 충전의 장(場)으로 인식했다.
주택과 인간의 관계를 이 같은 에너지의 상호작용을 통해 파악하고자 했다.
그의 이론은 일반적인 경우와 같이 건축기술에 대한 연구나 양식적 제안으로부터 파생된 것이 아니다.
그가 상호현실주의과 바이오테크닉을 과학적 사고체계 속에 위치시킨 것도 이상과 같은 독자적인 원리에 사고의 출발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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