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적 요소에 의해 공간이 변환된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최소한의 부지에 최대한의 공간을 얻는 것은 기본적인 문제였다.
<공간주택>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정해진 면적에서 다른 어떤 생활공간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또한 ‘한 공간단위’속에 1, 2층 또는 3층이 하나의 가족공간을 이루고 있다.
이같이 정해진 용적의 입체는 가벼운 부재(部材)에 의해 분할되며, 그 접합에 의해 가벼운 각체구조(殼體構造)를 띠게 된다.
따라서 부착 및 조합이 간단하다. 뿐만 아니다.
이 같은 구조에 의해 거주공간의 이동가능성이 증대된다.


주택은 거주자에게 발전기(제너레이터)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족에게 충전된 힘은 외부에서 방전된다.
여기서 말하는 외부란 그들 자신의 가족 및 그 밖의 다양한 그룹을 말한다.
주택은 이러한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하여 지어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발전과 방전을 유연하게 하는 장이어야 하는 것이다.


시간적 요소에 의해 공간이 변환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어떤 장소를 일정시간 사용하고자 할 경우, 대상공간이 지니는 기능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부엌, 차고, 수납고는 별도로 하더라도, 전 영역 안에 있는 모든 구분은 집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기능으로 교환 가능해야 한다.
레크레이션, 업무, 수면, 그리고 그 밖의 목적에 따라.9


여기서도 주택에 대한 키슬러의 유연한 사고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대기능주의가 주택을 필요한 기능별로 분할하는 방법으로 거주공간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던 것과 달리, 키슬러는 사용하는 사람들의 다이나미즘을 사고의 중심에 두는 사용기능과 이에 따라 파생되는 공간과 시간의 상관관계에 주목했다.
키슬러는 될 수 있으면 기능에 따라 개별적으로 분할된 공간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
그 대신에 ‘부분적인 구획(segment)’이라고 명명된 공간을 설치했다.
그리고 가족의 생활 패턴 또는 방문객의 필요에 따라 넓거나 좁게 사용할 수 있는 유연한 공간이용법을 생각했다.
이것은 일종의 공유공간에 가까운 것으로 러시아 구성주의의 <공공의 집>과 같은 공공공간의 설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같은 측면에서 본다면 키슬러는 근대기능주의자들이 주택의 기능과 구조에 있어서 새로운 스타일을 내세우면서도 여전히 과거의 개인주의 사상에 뿌리를 두는 주택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찰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부분적인 구획’에 의한 거주 공간 설계수법의 하나로 키슬러는 <공간주택> 바닥에 아주 적은 레벨의 차를 두어 공간의 기능에 변화를 주었다.
같은 맥락에서 수직면도 벽이나 칸막이 대신에 반고정식 수직 분리 면을 두어 공간에 변화를 주고 있다.
이것은 구동장치에 의해 작동되며, 음향, 조명, 환기를 컨트롤하는 기능도 한다.


마지막으로 구조에 대해서 키슬러는 ‘지붕의 역할’ 및 ‘연속장력’이라는 두 가지 방향에서 그의 조형관을 전개시켰다.
우선 ‘지붕의 역할‘은 쉘터(shelter) 기능에 있으므로 비, 바람, 화재 등에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연속장력’은 결국 지주(支柱)와 지주 사이의 거리를 말하는 스판(span)을 얼마만큼 길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귀착된다.
이 두 가지 테마에 대해서 기존 재료의 특징을 점검한 결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재료와 구조가 거대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키슬러는 기술적인 탐구가 어떤 목적에 한정되는 경우 그 크기를 극대화하는 해결방법을 선택함으로써 종종 문제의 본질로부터 멀어진다는 사실을 경계하고 있었다.
또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애초부터 가볍고 조립이 자유로운 구조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지붕’에 관한 그의 생각을 구체화하는 이 같은 취지는 <공간주택> 자체가 연속적인 장력에 의존하는 각체구조를 띠게 됨으로서 가능했다.
이것은 ‘엔드리스’개념에 입각한 최초의 실험이었던 <엔드리스 극장>(1924)의 각체구조와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같은 구조는 지붕만을 떼어내 독립된 구조체로 생각할 수 없다.
바닥은 벽면으로 계속되고, 벽면은 다시 지붕으로 연결된다.
<공간주택> 구조에 적용된 이 같은 사고는 후에 <엔드리스 하우스>를 통해 다시 한 번 시도된다.
이 같은 제안을 통해 키슬러는 근대기능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또한 <공간주택>의 인테리어디자인에서 키슬러는 스펀지 러버(rubber)의 커튼과 바닥 재료를 실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나아가서 넓은 거실의 벽면에는 ‘노동과 놀이’를 테마로 스코프(schop)를 든 남자와 테니스를 즐기는 남자를 조합한 대형사진 몽타주를 전시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주택을 생활의 중심으로 인식하면서도 삶의 발전과 방전(放電)을 휴식과 노동이라고 하는 개념의 결합을 통해서 실현시키고자 했던 키슬러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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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키슬러의 가구디자인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는 대략 1929년부터 1936년에 걸쳐 많은 제품디자인을 했다.
여기에는 <공간주택>과 관련되는 것도 있는데, 그 중에서는 <매달린 책상>(1929-35)과 같이 천장과 벽에 지지하고 있는 사무실용 책상과 같이 참신한 디자인이 있는가 하면 특허권을 얻을 정도의 발명도 있다.
특히 1935년에서 1936년에 걸쳐 찰스 마젠타임 부부 및 도날드 그로스만 부부를 위해 디자인된 일련의 가구는 그 형태나 사용재료에 있어서도 대단히 독특한 작품이다.
예를 들어 금속 크롬으로 도금된 플레임을 지니는 <다이닝 테이블>(1935)이 있는가 하면 알루미늄 주물로 된 유기적인 3개의 형태를 조합시킨 <세 부분으로 된 네스팅 테이블>(1935-38)도 있다.13)
키슬러는 이 테이블을 ‘신장형(腎臟型) 테이블’이라 불렀다.
뿐만 아니라 목재로 된 <식당용 사이드 보드> (1936)는 데 스틸의 디자인을 연상시킨다.
이들 중에서 <코너-소파-베드>라고 명명된 다목적 가구는 1936년 1월 24일자로 특허를 획득한 제품이다.
이것은 오늘날 너무도 일반화된 이른바 소파 베드의 원형이다.
그 밖에도 특허를 획득한 <조명테이블 구조물>(1935)은 동그란 유리판 테이블 아래에 금속접시가 부착되어 있어서 그 뒤에 조명장치를 부착한 것으로 키슬러가 선호한 복합기능 가구 중 하나이다.

키슬러는 1937년 7월부터 컬럼비아 대학 건축과에 개설된 디자인 상호관련 연구소에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미 <공간주택>의 설계를 통해 시도된 바 있는 바이오테크닉과 디자인 상호관련 등의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특히 키슬러가 지도했던 컬럼비아 대학 학생과의 공동 작업에 의한 제품디자인 연구는 그의 이론적 기초가 됐다.
여기에서의 연구를 통해 제품디자인의 사회적 위치를 점검하고 공업생산품의 라이프사이클이라는 중요 테마가 연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과 함께 디자인 상호관련을 실험하기 위한 소재로 <움직이는 가정용 책장>(19376-39)이 채택되었다.
이 실험은 키슬러만의 독자적인 인간공학에 의거한 디자인으로 최종적으로는 실물대의 모형으로 제작되었다.

키슬러는 이 책장의 설계와 제작을 건축적 표현의 일부로 인식했다.
1930년대는 미국의 제품디자인이 활성화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레이몬드 로이, 월터 다윈 티크, 노먼 벨 게데스와 같은 새로운 타입의 디자이너가 속속 등장했다.
바우하우스의 조형이론이 모홀리-나기에 의해 미국에 정착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이다.
그러나 건축, 제품디자인, 회화, 조각 등 영역별 전문화가 진행되어 결과적으로는 러시아 구성주의나 바우하우스의 이론이 퇴색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이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예술가 스스로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예술가를 받아들이는 사회 환경의 변화에 의한 것이다.
키슬러의 ‘상호현실주의’는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청해야 할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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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호현실주의의 탄생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오늘날 근대건축의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 기능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근대기능주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결여된 채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지만, 근대기능주의에 논리적 결함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근대기능주의 비판 그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근대기능주의를 넘어서는 무엇인가를 제시해야 한다는 데에 좀더 관심이 있다.


근대기능주의가 대두된 이후 이미 반세기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 50여 년 간 근대기능주의라는 건축개념은 ‘국제양식’이라고 하는 시각적 형식을 통해 보편화되어 왔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오늘날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근대기능주의는 형성 당시의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기능주의는 20세기 건축양식의 주류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키슬러의 기능주의 비판은 근대기능주의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다시 말하면 ‘건축의 산업화’를 실천하는 데 적절한 조건을 갖춘 미국으로 활동의 중심을 옮기기 시작한 1930년대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키슬러의 근대기능주의 비판은 1930년 발표한 선언서를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지금 필자의 손에 들려있는 이 선언서는 7장의 거친 종이를 스테이플러로 철한 볼품없는 모양을 하고 있다.
본문도 타이프로 친 것을 등사 인쇄한 것인데, ‘CORREALISM’이라는 영문제목만이 고무판으로 찍혀 있다.
그 밑에 트레이드마크가 달려 있고, “이 논문의 사용 및 판매에 관해서는 모든 부분에 있어서 권리를 제한한다”고 적혀 있다.
그 옆에는 10센트라는 가격이 명시되어 있다.
키슬러의 상호현실주의 선언서는 그 내용의 중요성에 비해 소박한 형태로 발표된 것이다.


겉보기와는 달리 이 팜플렛은 키슬러가 주장한 디자인 이론의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표지에는 “프레데릭 키슬러, 상호현실주의, 바이오테크닉 - 디자인을 위한 새로운 접근”라고 적혀있다.2)
그리고 표지 안쪽 페이지에는 “이 ‘상호현실주의’이라는 용어를 통해서 앞으로 팜플렛, 책, 논문, 건축상의 토픽, 과학, 예술, 산업에 대해서, 나아가서 사회경제생활 전반에 관한 토픽 등을 포함하는 흥미 있는 테마를 다루어나갈 것”이라고 적고 있다.


키슬러의 이 같은 예고는 1937년에서 1939년에 걸쳐 『아키텍추얼 레코드Architectural Record』지에 발표된 ‘디자인 상호관련(Design Corration)’에 관한 논문 6편에 의해 실현된다.3)
한편 앞장에서 다룬 ‘바이오테크닉’을 중심으로 한 ‘디자인 상호관련’에 관한 언급으로는 1934년 <공간주택>에 관하여 쓴 「<공간주택>에 관한 노트 Notes on Architecture, The Space House: Annotations at Random」(Hound and Horn, vol.7, No.2, Jan.-Mar. 1934, pp. 292-297)를 들 수 있다.


키슬러가 1930년 발표한 「상호현실주의 선언」이 활자로 인쇄된 것은 1939년 9월 잡지 『아키텍추얼 레코드』에 게재된 논문 「상호현실주의과 바이오테크닉에 관하여/건축디자인에 관한 새로운 접근방법에 관한 실험」을 통해서였다.
이 논문은 키슬러가 1930년 이후 행해온 연구와 실험, 특히 1936년부터 1938년까지4) 컬럼비아 대학 건축과에 개설된 ‘디자인 상호관련연구소’에서 행해진 <움직이는 가정용 책장>의 설계와 시작(試作)을 통해서 산업사회에서 디자인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를 검토한 후에 쓴 것이다.
이것을 정독해보면 상호현실주의는 단지 디자인에 관한 이론적 제안을 넘어서서 사회과학적 측면을 고려한 대단히 설득력 있는 문헌임을 알 수 있다.
이 논문은 1938년 6월 메사추세스 주의 공과대학에서 열린 심포지엄 ‘과학과 디자인’에서 발표되기도 했다.5)


다소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으나 1943년 초현실주의 계열의 잡지 『VVV』에서도 「건축적 계획을 위한 접근으로서의 디자인 상호관련」이라는 제목으로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6)
또한 1949년 발표된 「상호현실주의 선언」(Boulogne, Architecture d’Aujourd’hui, pp.80-105)에서는 <움직이는 가정용 책꽂이>와 <프리-포름>, 그리고 두 개의 초현실주의 전람회장 설계 등의 실례를 들면서 상호현실주의를 설명하고 있다.7)


1930년 이후 약 20년에 걸쳐 발표된 상호현실주의는 키슬러의 독자적인 디자인 이론으로 그가 행한 근대기능주의 비판 및 실천을 뒷받침하는 논리적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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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건축의 산업화와 기능주의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건축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계’이다.
목욕탕, 햇빛, 온수, 냉수, 적당한 온도, 식품의 저장, 위생, 미(美)와 비례, 팔걸이의자는 살기 위한 기계이다.1


여기에 소개한 르 코르뷔제의 발언은 근대건축 관련서적에 자주 인용되는 보편적인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해석과는 달리 르 코르뷔제는 근대건축이 ‘기계’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시인이기도 했던 자신의 성격을 적극 반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정신’8)인 모더니즘이 19세기의 그림자를 뒤로하고 보다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프랑스의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르 코르뷔제의 발언은 나름대로의 당위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수긍할 만하다.
르 코르뷔제가 말하는 ‘기계’는 앙리 루소가 그린 하늘을 나는 기계, 바다를 횡단하는 기계, 도시와 전원을 연결하는 기계였던 것이다.
기계라는 능률적인 장치, 유기역학에 충실한 커버, 그것을 조작하는 20세기의 인간. 그들의 삶의 방식은 ‘새로운 정신’이라는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조류에 휩싸여 있었다.
따라서 인간들이 사는 집도 당연히 기계적인 형태와 기능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되었다.
르 코르뷔제는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는 능률적인 삶의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그는 ‘살아가기 위한 기계(machine for living in)’가 궁전과도 같은 것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으며, 기계의 개념이 건축에 도입됨으로써 충분히 인간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세상사람들은 그를 ‘시인’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르 코르뷔제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조차 자랑스럽게 여겼다.


산업화 사회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적 효율성은 아돌프 루스를 기점으로 시작된 탈장식의 이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인데, 이 같은 사상은 결과적으로 기계미학의 논리를 구체화하는 단순미 지향의 건축을 양산시켰다.
또한 도시의 생산성 증대와 공업노동력의 집중화 현상은 도시의 화이트칼라 계급과 공장노동자인 블루칼라 계급을 위한 효율적인 집단주택을 필요로 했다.
러시아 구성주의를 필두로 프랑스와 독일의 건축가들은 이 같은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로피우스의 뒤를 이어 바우하우스 2대 교장이 된 건축가 한네스 마이어도 건축을 기계장치의 하나로 파악하고 이것을 바우하우스 건축부문의 원칙으로 유도하기 위하여 1928년 다음과 같은 선언을 발표하였다.


건축은 하나의 생물적 프로세스를 지니고 있다.
건축은 미학적 프로세스를 통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건축은 단지 ‘살아가기 위한 기계’가 아니다. 건축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육체적 심적 필요에 부응하는 생물학적 장치로서의 주거지를 준비하는 일이다.2


새로운 주택을 건설한다는 것은 사회사업의 일종이다.
건축 산업은 성수기에만 활성화되는 부분적인 계절사업 또는 실업 구제업이라고 하는 냉대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척도에 의해 마치 노예처럼 일해 왔던 주부들을 가사로부터 해방시키고, 합리적인 원예수법에 의해 집안일이 비전문인의 딜레탕티즘(dilettantisme)정도의 것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주택을 건설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회사업의 일환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부 규격품이 전부 그러한 것처럼 주택도 전부 발명가들의 무명 커뮤니티가 만들어낸 규격화되고 공업화된 제품이기 때문이다.3


우리는 위의 인용에서 마이어의 사고방식이 르 코르뷔제보다 실무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새로운 주택’을 건설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천재가 아니라 산업사회를 지탱해주는 무명의 발명가들에 의해 가능한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주의를 끈다.
사실 마이어가 지도한 바우하우스에서는 ‘건축 아틀리에의 협동작업’을 통한 익명성이 중요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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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계이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기계화, 규격화, 표준화는 당시의 새로운 이데올로기였다.
그것은 산업사회를 성립시키는 이데올로기이기도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산업사회의 구성요소에 건축을 포함시킬 경우 그것은 건축의 상위개념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미스 반 데어 로에도 이 같은 사회적 경제적 상황을 현실적 조건으로 수용하고 그 안에서 건축이 취해야 하는 조건을 기계화, 규격화, 표준화로 파악했다.
‘건축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계이다’는 르 코르뷔제 개인의 생각이라기보다 주택을 포함한 모든 건축을 산업사회의 체제 속에 귀속시키고자 했던 1920년대와 1930년대 유럽 건축가의 사상을 대변하는 테제였던 것이다.
당시는 건축의 산업화라는 버스를 타지 못할 경우 건축가 또는 건축이라고 하는 조형분야가 소멸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던 시대였다.
그렇다면 근대기능주의는 하나의 양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유행’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전반(前半) 유럽에서 뿌리를 내린 표현주의는 이 같은 산업화에 대한 본능적인 반항이 노출된 형태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근대건축의 성립과정을 표현주의와 기능주의로 양분하여 각각을 대립개념으로 이해하고, 결과적으로는 표현주의의 후퇴와 기능주의의 승리라고 정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것은 현실을 왜곡시킬 뿐이다.
산업화는 건축분야에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인 대세였다.
따라서 시대적 대세를 이해하고 그 결과를 냉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산업화를 전제로 표현주의와 기능주의의 건축양식을 비교 분석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는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윤추구와 대량생산을 전제하는 산업사회의 윤리강령에 입각한 기계화, 규격화, 표준화라는 근대기능주의의 이데올로기가 결과적으로 어떠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경향은 유럽보다는 고도 자본주의경제 체제 하의 미국에서 좀더 명확하게 나타났다.
키슬러는 상대적으로 빠른 시기에 이 같은 경향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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