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건축의 산업화와 기능주의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건축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계’이다.
목욕탕, 햇빛, 온수, 냉수, 적당한 온도, 식품의 저장, 위생, 미(美)와 비례, 팔걸이의자는 살기 위한 기계이다.1


여기에 소개한 르 코르뷔제의 발언은 근대건축 관련서적에 자주 인용되는 보편적인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해석과는 달리 르 코르뷔제는 근대건축이 ‘기계’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시인이기도 했던 자신의 성격을 적극 반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정신’8)인 모더니즘이 19세기의 그림자를 뒤로하고 보다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프랑스의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르 코르뷔제의 발언은 나름대로의 당위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수긍할 만하다.
르 코르뷔제가 말하는 ‘기계’는 앙리 루소가 그린 하늘을 나는 기계, 바다를 횡단하는 기계, 도시와 전원을 연결하는 기계였던 것이다.
기계라는 능률적인 장치, 유기역학에 충실한 커버, 그것을 조작하는 20세기의 인간. 그들의 삶의 방식은 ‘새로운 정신’이라는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조류에 휩싸여 있었다.
따라서 인간들이 사는 집도 당연히 기계적인 형태와 기능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되었다.
르 코르뷔제는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는 능률적인 삶의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그는 ‘살아가기 위한 기계(machine for living in)’가 궁전과도 같은 것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으며, 기계의 개념이 건축에 도입됨으로써 충분히 인간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세상사람들은 그를 ‘시인’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르 코르뷔제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조차 자랑스럽게 여겼다.


산업화 사회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적 효율성은 아돌프 루스를 기점으로 시작된 탈장식의 이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인데, 이 같은 사상은 결과적으로 기계미학의 논리를 구체화하는 단순미 지향의 건축을 양산시켰다.
또한 도시의 생산성 증대와 공업노동력의 집중화 현상은 도시의 화이트칼라 계급과 공장노동자인 블루칼라 계급을 위한 효율적인 집단주택을 필요로 했다.
러시아 구성주의를 필두로 프랑스와 독일의 건축가들은 이 같은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로피우스의 뒤를 이어 바우하우스 2대 교장이 된 건축가 한네스 마이어도 건축을 기계장치의 하나로 파악하고 이것을 바우하우스 건축부문의 원칙으로 유도하기 위하여 1928년 다음과 같은 선언을 발표하였다.


건축은 하나의 생물적 프로세스를 지니고 있다.
건축은 미학적 프로세스를 통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건축은 단지 ‘살아가기 위한 기계’가 아니다. 건축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육체적 심적 필요에 부응하는 생물학적 장치로서의 주거지를 준비하는 일이다.2


새로운 주택을 건설한다는 것은 사회사업의 일종이다.
건축 산업은 성수기에만 활성화되는 부분적인 계절사업 또는 실업 구제업이라고 하는 냉대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척도에 의해 마치 노예처럼 일해 왔던 주부들을 가사로부터 해방시키고, 합리적인 원예수법에 의해 집안일이 비전문인의 딜레탕티즘(dilettantisme)정도의 것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주택을 건설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회사업의 일환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부 규격품이 전부 그러한 것처럼 주택도 전부 발명가들의 무명 커뮤니티가 만들어낸 규격화되고 공업화된 제품이기 때문이다.3


우리는 위의 인용에서 마이어의 사고방식이 르 코르뷔제보다 실무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새로운 주택’을 건설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천재가 아니라 산업사회를 지탱해주는 무명의 발명가들에 의해 가능한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주의를 끈다.
사실 마이어가 지도한 바우하우스에서는 ‘건축 아틀리에의 협동작업’을 통한 익명성이 중요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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