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슬러의 ‘상호현실주의’ 개념에 입각한 것이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쟝 루이 베도앙은 『초현실주의 20년/1939-1959』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자신들을 관대하게 맞이해 주는 부류조차도, 존경(?)받고 있는 세력들에 복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스스로를 이 세상에 혼자 유기되어 있는 이방인과 같은 존재로 규정하고,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혁명적 전망의 후퇴, 그리고 그것과 무관하지 않은 전쟁상태와도 같은 혼돈된 상황을 자각한 그들은 “현대사를 장식한 여러 가지 사건을 일으킨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라고 자문하게 된다.
지금까지 전능하다고 여겨졌던 정의나 이론으로는 그 같은 현상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10
이어서 베도앙은 브르통과 그 밖의 초현실주의자들이 정치적 또는 경제적인 분석을 통해서는 문제의 소재를 명확하게 규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세계를 변혁시켜야 한다는 그들의 과제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해석 자체의 변혁을 제기해야 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그는 브르통이 <초현실주의 제3선언>의 마지막에 노발리스가 언급한 “우리는 동물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기생충이라서, 숙주(宿主)의 구조가 우리의 구조를 규정하고 있으며 그 반대도 성립한다”는 대목을 인용하면서 “우리는 이제 숙주의 모양을 지각하고 그에 대처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말아야 할 것인가?”라는 의문형으로 마치고 있다는 데 이 선언문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11
이 같은 위기감의 고조와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키슬러는 초현실주의 작품전에 개입한다.
니콜라스 칼라스가 기획한 ‘피의 불꽃’전(1947)의 전시디자인이 그것이다.
여기서 키슬러는 육면체로 된 전시장을 구성하는 바닥, 벽, 천장, 문 등 기호화된 요소를 무의미하게 하는 대단히 간단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이미 존재하는 구성요소를 조합하여 실내공간의 문법을 해체시키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키슬러는 그의 계획을 이렇게 실현했다.
색채와 형태에 변화를 주는 것은 실내공간의 상태를 변화시키기 위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시간이 걸리지 않는 수단이다.
돈이 없는 사람은 페인트 냄새에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시골의 서민들이 해왔던 일로 아직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들은 집 안팎의 회반죽벽에 색을 칠한다.
그들은 테두리를 칠하기도 한다. 때로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처마 밑에 성모상을 그리기도 한다.
이것은 무지하고 소박한 그들이 본능적으로 해왔던 일이다.
휴고 화랑의 좁은 사각공간에 나는 시골사람들처럼 벽에 색을 칠하고 낙서를 했다.
실내는 동굴로 변화시키고자 낮은 천장을 철거했다.
그 결과 좁은 방안에 지금까지와는 달리 기지(esprit)가 넘쳤다.
삭막했던 공간에 움푹 패인 구멍과 툭 튀어나온 듯한 환영이 생겨난 것이다.12
이 전람회의 카탈로그에는 키슬러가 전람회장을 다시 칠하기 위하여 그린 조감도가 실려 있다.
그림의 하단에는 “건축적 레이아웃 및 칠은 키슬러에 의함”이라고 적혀 있다.
키슬러의 공간구획과 각각 다르게 칠해진 면들은 여기에 전시된 회화나 조각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회화작품은 벽에만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천장에도, 바닥과 벽 사이에도, 벽과 벽 사이의 코너에도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각각의 관계는 키슬러의 ‘상호현실주의’ 개념에 입각한 것이다.
또한 조각이나 모자이크 등이 필요에 따라 키슬러가 디자인한 가대(假臺)나 틀과 함께 전시되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좌대나 액자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나뉘어 칠해진 실내는 각각이 전혀 다른 모양을 띠고 있는데, 이 같은 기법은 후에 소개할 <엔드리스 하우스>에서도 볼 수 있다.
그가 말한 대로 한정된 예산을 고려한 결과 이러한 아이디어가 유추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되나, 여기서 보여준 실내공간의 새로운 연출기법은 30년이 지난 후 미국 건축가들에 의해 시작된 슈퍼그래픽 기법을 응용한 실내디자인과 일치한다.
키슬러 이후에도 많은 건축가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바닥, 벽, 천장이라는 육면체 공간을 표현대상영역으로 한정하는 실내디자인 기법을 남발하고 있다.
최근 들어 찰스 무어와 로버트 벤투리가 이미 기호화된 바닥, 벽, 천장 등의 경계를 무시하는 실내 공간 연출을 시도한 바 있는데, 그들은 이제야 겨우 키슬러와 같은 공간의 연속적인 장력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다.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