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브르통에게 1942년 당시의 뉴욕은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초현실주의 운동이 내부적으로 안고 있었던 모순과 함께, 외부적으로도 초현실주의를 하나의 새로운 예술사조로 인정하고 기존의 미술사적 맥락에 포함시켜도 좋을 것인지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1942년 『VVV』 창간호에 발표된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제3선언: ‘발표인가 아닌가’를 위한 시론」에도 이 같은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경향이 커지면 커질수록 상황은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것은 예술작품을 숭배하는 일부 사람들이 만들어낸 무기력함에 의한 것이다.
반대로 온갖 교활한 수단을 동원하여 그 같은 경향을 파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상황이기도 하다.
그들은 모두 관객이 겪어야 할 피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당연히 관객들은 피로에 시달리게 된다.
물론 모든 위대한 사상은 그것이 불특정다수의 집단과 접촉하는 순간부터 애초에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실들과 타협하기 시작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심각한 변질을 피하기 어렵다.
(중략)
초현실주의도 예외는 아니어서 20년간 존속된 후 그간의 평판에 대한 대가이기도 한 여러 가지 문제점에 직면해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이 운동의 내부에서 ‘완벽성’을 지키지 못한 데에 첫 번째 원인이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같은 결과는 너무 지나친지 아닌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중략)
아라공과 같은 선배 제위의 혼돈된 위증으로도, 신(新)-좌익-나이트 테이블파의 『터어키 망자(亡者)』와 같은 악한(惡漢)소설로도 그와 같은 사기를 막을 수 없었다.
일본과 미국이 교전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경 변두리에 위치한 ‘차노유(茶の湯)’7)에서 뉴욕 5번가의 휘황찬란한 쇼윈도까지 전부를 초현실주의의 이념으로 뒤덮어버리기는 이미 불가능한 상태이다.
생각해보면 이 같은 현상은 당연한 것이어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과 ‘애초에 희망했던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일치할 수 없다.
따라서 아무리 이름을 떨친 사람이라도 네온의 후광으로 장식하기보다는 모래먼지를 뒤집어 쓴 채 사라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9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브르통은 초현실주의의 풍화현상을 우려했다.
당시의 초현실주의는 시나 회화는 물론 쇼윈도 디스플레이에도 응용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다도와 같은 문화형태의 내부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 같은 초현실주의의 확산현상에 대한 우려와 함께 초현실주의가 본래 목표했던 혁명적인 원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해둘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브르통은 다음과 같이 주의를 환기시킨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처지-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사회적 처지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조건’과 그 조건이 극도로 불안정하다는 사실이다-를 지각하지 않는 한,
(중략)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한,
(중략)
사람들 눈에 띠지 않은 채 스스로의 내면에 보호되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집단에게 보여주는 자신의 모습을 구분하는 위선을 계속하는 한,
(중략)
일부의 전문가조차도 이렇다 할 즐거움을 찾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밖의 대다수 사람들을 착취하는 한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더구나 오늘날 보편적인 가치로 군림하는 돈은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과 같은 것이며 폭탄의 도화선이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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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슬러의 ‘상호현실주의’ 개념에 입각한 것이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쟝 루이 베도앙은 『초현실주의 20년/1939-1959』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자신들을 관대하게 맞이해 주는 부류조차도, 존경(?)받고 있는 세력들에 복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스스로를 이 세상에 혼자 유기되어 있는 이방인과 같은 존재로 규정하고,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혁명적 전망의 후퇴, 그리고 그것과 무관하지 않은 전쟁상태와도 같은 혼돈된 상황을 자각한 그들은 “현대사를 장식한 여러 가지 사건을 일으킨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라고 자문하게 된다.
지금까지 전능하다고 여겨졌던 정의나 이론으로는 그 같은 현상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10


이어서 베도앙은 브르통과 그 밖의 초현실주의자들이 정치적 또는 경제적인 분석을 통해서는 문제의 소재를 명확하게 규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세계를 변혁시켜야 한다는 그들의 과제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해석 자체의 변혁을 제기해야 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그는 브르통이 <초현실주의 제3선언>의 마지막에 노발리스가 언급한 “우리는 동물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기생충이라서, 숙주(宿主)의 구조가 우리의 구조를 규정하고 있으며 그 반대도 성립한다”는 대목을 인용하면서 “우리는 이제 숙주의 모양을 지각하고 그에 대처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말아야 할 것인가?”라는 의문형으로 마치고 있다는 데 이 선언문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11


이 같은 위기감의 고조와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키슬러는 초현실주의 작품전에 개입한다.
니콜라스 칼라스가 기획한 ‘피의 불꽃’전(1947)의 전시디자인이 그것이다.
여기서 키슬러는 육면체로 된 전시장을 구성하는 바닥, 벽, 천장, 문 등 기호화된 요소를 무의미하게 하는 대단히 간단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이미 존재하는 구성요소를 조합하여 실내공간의 문법을 해체시키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키슬러는 그의 계획을 이렇게 실현했다.


색채와 형태에 변화를 주는 것은 실내공간의 상태를 변화시키기 위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시간이 걸리지 않는 수단이다.
돈이 없는 사람은 페인트 냄새에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시골의 서민들이 해왔던 일로 아직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들은 집 안팎의 회반죽벽에 색을 칠한다.
그들은 테두리를 칠하기도 한다. 때로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처마 밑에 성모상을 그리기도 한다.
이것은 무지하고 소박한 그들이 본능적으로 해왔던 일이다.
휴고 화랑의 좁은 사각공간에 나는 시골사람들처럼 벽에 색을 칠하고 낙서를 했다.
실내는 동굴로 변화시키고자 낮은 천장을 철거했다.
그 결과 좁은 방안에 지금까지와는 달리 기지(esprit)가 넘쳤다.
삭막했던 공간에 움푹 패인 구멍과 툭 튀어나온 듯한 환영이 생겨난 것이다.12


이 전람회의 카탈로그에는 키슬러가 전람회장을 다시 칠하기 위하여 그린 조감도가 실려 있다.
그림의 하단에는 “건축적 레이아웃 및 칠은 키슬러에 의함”이라고 적혀 있다.
키슬러의 공간구획과 각각 다르게 칠해진 면들은 여기에 전시된 회화나 조각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회화작품은 벽에만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천장에도, 바닥과 벽 사이에도, 벽과 벽 사이의 코너에도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각각의 관계는 키슬러의 ‘상호현실주의’ 개념에 입각한 것이다.
또한 조각이나 모자이크 등이 필요에 따라 키슬러가 디자인한 가대(假臺)나 틀과 함께 전시되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좌대나 액자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나뉘어 칠해진 실내는 각각이 전혀 다른 모양을 띠고 있는데, 이 같은 기법은 후에 소개할 <엔드리스 하우스>에서도 볼 수 있다.
그가 말한 대로 한정된 예산을 고려한 결과 이러한 아이디어가 유추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되나, 여기서 보여준 실내공간의 새로운 연출기법은 30년이 지난 후 미국 건축가들에 의해 시작된 슈퍼그래픽 기법을 응용한 실내디자인과 일치한다.


키슬러 이후에도 많은 건축가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바닥, 벽, 천장이라는 육면체 공간을 표현대상영역으로 한정하는 실내디자인 기법을 남발하고 있다.
최근 들어 찰스 무어와 로버트 벤투리가 이미 기호화된 바닥, 벽, 천장 등의 경계를 무시하는 실내 공간 연출을 시도한 바 있는데, 그들은 이제야 겨우 키슬러와 같은 공간의 연속적인 장력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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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의 방>의 전시디자인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1946년 봄 브르통은 유럽에서 전후(戰後) 처음으로 열리는 초현실주의 전람회 초현실주의 국제전9)을 주관하기 위해 파리로 돌아가 다음해 뒤샹과 함께 전람회의 기획안을 완성한다.
1월 12일 프랑스뿐만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는 초현실주의자들에게 그들이 기획한 전시회에 참가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다.
여기에서 브르통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발표된 가장 대표적인 초현실주의자의 작품들-그 대부분은 복제를 통해서조차도 소개된 바가 없습니다.-을 파리에 집합시키게 되었습니다.
그 필요성이야 어쨌든 단순히 지금까지의 작품을 한군데 모으는 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1938년 파리 전람회 이후 초현실주의의 중요작품은 파리 이외의 장소에서 제작 발표되었다.
따라서 중남미와 그 밖의 지역에서 제작된 작품들을 한곳에 집합시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람회의 개최 의의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브르통은 그것만으로는 지난 동안 계속해온 운동 이상의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초현실주의에 요구되는 다양한 갈망을 한군데 모아 ‘새로운 신화’를 창출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전시장의 구성에도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야 했다.
이에 따라 브르통은 다음과 같이 주문한다.


이 전람회의 전체적인 구성은 마치 ‘비교전수(秘敎傳授)의 계보’를 보는 듯 구성해야 한다는 기본의도에 적합한 것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회장 안의 한 전시장에서 다른 전시장으로 이동함에 따라 그 계보가 변화해가는 듯한 구성이 필요합니다.


이 같은 그의 의도에 따라 키슬러는 <미신의 방>을, 뒤샹은 <비의 방>과 <미궁>을 담당하게 된다.
키슬러와 초현실주의의 협동 작업이 본격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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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현실주의’에 기초한 연속성의 원리를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는 <미신의 방>의 구성 원리를 ‘원자구조와 상호현실주의’에 두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공적으로 제한된 공간들이 모여 하나로 앙상블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즉 색, 형태, 물리적 구조가 각각 다른 공간들이 하나의 연속체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체가 내부적 힘에 의해 정합상태(整合狀態)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힘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와도 같은 것이다.
이 힘은 건축의 원자를 구성한다.
원자의 내부에는 연속장력 상태로부터 발생하는 건축학적 요소가 존재한다.
그것은 전자기(電磁氣)의 구성에 포함되어있는 다양한 분자의 장력상태와도 흡사한 것이다.
건축기술의 일렉트론(electron), 뉴트론(newtron), 프로튼(proton), 중성자, 양성자에 해당하는 것은 면, 색, 형태, 빛, 그림자 등이다.
여기서 원자구조의 요소와 건축의 요소가 같다고 하는 가장 큰 근거는 그것들이 환원 가능한 것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변환도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상호현실주의의 원리를 잊지 않는다면 각각의 요소는 전체의 형태를 잃어버리지 않고 변환될 수 있다.
회화는 건축이 되고, 조각은 회화가 되고, 건축은 색이 된다.
이렇게 되면 제4요소인 사이클로트론(cyclotron)없이도 놀랄 만한 변환이 가능하다.
그것을 위해서 단지 ‘현명한’ 두 사람과 하나의 물체만 있으면 된다.
예술가와 관객, 그리고 작품이 그것이다.
원자구조와 같이 공간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를 토대로 이 같은 시각 상의 변환이 발생한다.
‘상호현실주의’는 바로 이 같은 상태를 말한다.


이 같은 개념에 기초한 연속성의 원리를 충실하게 수행함으로써 순수회화 또는 순수조형이 탄생하는 현장과 만나게 된다.
또한 입구에서 출구로 진행하면서 빛과 공기의 순환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여러 가지 요소가 계속 나타나 마치 천궁(天宮)의 황도12궁(黃道12宮)과도 같이 완벽하게 짜여진 전체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이 암호를 해독하여 도량형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공식을 통해 ‘본질적인 것’이 자동적으로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몇 가지 형태로 표면을 나누어 회화와 조각을 위한 구(求)로 된 조형적 구조물의 설계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전시될 회화와 조각을 위해 각각의 정확한 위치가 명기된 청사진을 만들었다.14


키슬러의 설계는 두 개의 커다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원의 조합에서 출발한다.
두 개의 열린 타원은 수직과 수평으로 각각 완만하게 구부러져 있다.
즉 ‘지혜의 원’ 두 개가 맞물려 있는 듯한 구조를 상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금세기 예술’화랑과 같이 전람회장이 본래 지니고 있던 육면체의 실내공간구조를 전부 무시하고 있다.
그 안에 건축, 회화, 조각 등이 우열의 구분 없이 동등한 관계를 지니는 아비타의 실현에 성공하고 있다.
여기에 관한 설치도면을 보면 단일 유기체로서의 회화, 조각, 건축 등의 위치와 각각의 조합을 표시한 정도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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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슬러는 ‘공간의 디자인’에 주목했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미신의 방>의 전시디자인은 브르통과 뒤샹의 권유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또한 이 전시에 출품한 작가로는 마타, 헤어, 미로, 에른스트, 탕기, 뒤샹 등이 있다.
키슬러도 최초의 조각 <모든 종교를 위한 토템>을 발표했다.10)
그런데 주목할 사실은-브르통의 요청에 따른 것이겠으나-키슬러의 역할이 단지 각 작가의 작품을 배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몇 명의 작가가 키슬러의 계획에 공동제작자로 참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로의 <미신의 여울>과 <명확>이나 탕기의 <단계적으로 예고된 죽음> 등이 설치도면과 함께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여기에 대해 키슬러는 1947년에 발표된 <마술적 건축>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공간의 디자인’에 주목했다.
나는 화가 뒤샹, 에른스트, 마타, 미로, 탕기, 그리고 조각가 헤어와 마리아를 초대해서 내 플랜의 실현을 위한 동의를 구했다.
모두들 열심히 도와주었다.
나는 형태에 있어서도, 내용에 있어서도, 전체의 모든 부분이 작가들 모두를 위한 것이 될 수 있도록 계획했다.
모두들 그것을 이해해주었다.
만약 전체가 원만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부 내 책임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의 상호관련 플랜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분야의 전문적인 예술가들의 모임이 아니라, 건축가, 화가, 조각가를 하나로 묶은 그룹과, 그리고 테마를 맡은 시인이 참여하여 창조된 공동제작은, 설사 그것이 성공하지 못한 채 끝난다 하더라도 우리의 조형예술 발전에 대단히 강력한 희망을 가져다줄 것이다.15
앞서 소개한 베도앙의 책 『20년 간의 초현실주의: 1939-1959』에 실린 피엘 겔의 논문은 <미신의 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미신의 방>은 프레데릭 키슬러의 작품으로 뒤샹과 마타의 도움에 의한 것이다.
침묵과 고뇌가 느껴지는 청색과 황색의 기묘한 빛 속에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녹색으로 칠한 캔버스가 둘러싸여 있어서 ‘인간의 존재 자체에 뿌리내리고 있는 마술적 건축의 실상’이 실현되고 있었다.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거대한 황색 형상이 천장으로부터 내려뜨려져 있다.
사람 형상을 한 인형의 발밑에는 막스 에른스트가 <검은 호수>를 그렸다.
인형 주위에는 여러 가지 공포의 형상들이 모여 마치 인간을 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르셀 뒤샹의 <녹색 빛>, 수작(秀作) <모든 종교의 토템>, 디에고의 <흡혈귀>, 도네티의 <악의 눈> 등이 그것이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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