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의 방>의 전시디자인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1946년 봄 브르통은 유럽에서 전후(戰後) 처음으로 열리는 초현실주의 전람회 초현실주의 국제전9)을 주관하기 위해 파리로 돌아가 다음해 뒤샹과 함께 전람회의 기획안을 완성한다.
1월 12일 프랑스뿐만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는 초현실주의자들에게 그들이 기획한 전시회에 참가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다.
여기에서 브르통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발표된 가장 대표적인 초현실주의자의 작품들-그 대부분은 복제를 통해서조차도 소개된 바가 없습니다.-을 파리에 집합시키게 되었습니다.
그 필요성이야 어쨌든 단순히 지금까지의 작품을 한군데 모으는 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1938년 파리 전람회 이후 초현실주의의 중요작품은 파리 이외의 장소에서 제작 발표되었다.
따라서 중남미와 그 밖의 지역에서 제작된 작품들을 한곳에 집합시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람회의 개최 의의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브르통은 그것만으로는 지난 동안 계속해온 운동 이상의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초현실주의에 요구되는 다양한 갈망을 한군데 모아 ‘새로운 신화’를 창출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전시장의 구성에도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야 했다.
이에 따라 브르통은 다음과 같이 주문한다.
이 전람회의 전체적인 구성은 마치 ‘비교전수(秘敎傳授)의 계보’를 보는 듯 구성해야 한다는 기본의도에 적합한 것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회장 안의 한 전시장에서 다른 전시장으로 이동함에 따라 그 계보가 변화해가는 듯한 구성이 필요합니다.
이 같은 그의 의도에 따라 키슬러는 <미신의 방>을, 뒤샹은 <비의 방>과 <미궁>을 담당하게 된다.
키슬러와 초현실주의의 협동 작업이 본격화된 것이다.